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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1

        

         직, 지직!

         파지지직——!!

         

         “…이제야 왔네요. 정말 안 도와드려도 괜찮은 거 맞아요 언니?”

         

         “됐어. 이 아바타랑 사적으로 아는 티나 안 나게 조심해. 그런 거 걸리면 얘기가 복잡해지니까.”

         

         “에이, 수습해줄 보호자도 따로 있는 상황에서 엘리시움 프로들이랑 한 따까리 해볼 일이 또 생기진 않을 것 같은데. 아쉽다~”

         

         로잘린은 살짝 걱정하고, 마리나는 긴장을 털어내기 위해서인지 마음에도 없는 허세를 부리고 있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일부러 다른 유저들이 목격하거나 괜한 간섭하는 일이 없도록 최대한 외곽으로 빠져, 커뮤니티 접속은 거의 명목상으로만 유지하고 있던 우리 사이에 확고한 경계선이 쫙쫙 그어졌다.

         

         개개인을 분류하여 가둬두듯이 그녀들을 따로, 또한 나를 별도로 나누는 녀석으로다가.

         

         내 이론이 정확히 맞았다면… 지금쯤 ‘해킹잘모름’으로 의심받는 현실 인물들에겐 전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 만큼 그렇게 조심하진 않아도 멀쩡할 수도 있는데, 일단 혹시 모르니까.

         

         다만 왜 저런 극적인 감전 효과음이 재생되는지는 이 사태를 예견한 나로서도 도통 모르겠네.

         

         어디까지나 데이터가 변조된다는 측면에서만 진짜이며, 실제론 공간이 갈라지고 찢어지는 게 아니라 사용자별 위상 격리용 코드가 강제로 삽입되는 과정이 시각적으로 보일 뿐인 건데 말이지.

         

         그러니 이렇게 깔끔한 선으로 모든 걸 도려낼 이유도, 굳이 수용 면적을 완벽한 정육면체 형태로 유지할 필요도 없을 텐데… 가상 공간에서도 양식미와 멋 부린 스타일을 소중히 여기는 건 이 직종 종사자들의 공통된 취미인가?

         

         엘리시움 소속 특수부대의 기술자 정도면 사이버웨어 전문가로서 손에 꼽히는 엘리트라 생각해도 무방하거늘, 폼 잡는 걸 좋아하는 건 이쪽이나 저쪽이나 피차 비슷하구만.

         

         겸손한 접근법을 좀 배우십쇼 이 똑똑한 인간들아, 원래 서로의 실력을 가늠하기 힘든 달인끼리 싸우면 잘난 척을 덜 하는 쪽이 이기는 것도 몰라?

         

         이런 전자 세계와 소프트웨어 관련된 분야라면 그냥 집중해서 능력을 쓰는 걸로 뿅! 하고 원하는 결과를 거의 다 현실로 끌어올 수 있는 나조차, 댁들이랑 맞붙을 때도 똑같이 통용될지에 대해선 확신이 없어서 갖은 주의를 다 기울여가며 존중하고 있는데.

         

         이렇게 본 게임이 시작되기도 전에 마치 우위를 점한 것처럼 거만하게 굴며 등장하신다 이거지?

         

         오냐, 엘리트 해커와 야매 초능력자. 오늘 아주 견적을 제대로 내보자고.

         

         대신 오만가지 방법으로 따돌릴 수 있는 경찰과 다르게, 여태 도시 네트워크의 억제력 그 자체라 여기던 너희들이 실은 내 밑이라는 사실이 이번 기회에 뽀록난다면… 기대해라 진짜로.

         

         추후 시나리오고 나발이고, 절제라는 개념을 잊어버린 벼락부자처럼 마음대로 판을 짜서 손님맞이를 해 줄 테니까.

         

         “가용 메모리 최대로 끌어올리고 가능한 부품은 오버클럭도 꼭 준비해, 실시간으로 분석되는 내용도 계속 내 사이버웨어로 보내주고. 저쪽도 가진 자원을 분산 베팅한 거겠지만 우리가 밀릴 가능성도 있으니.”

         

         –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절대. –

         

         흡사 차원이 진보하듯이 우리 일행을 분단하던 금선은 면으로, 면은 언어와 문자로 변해 그 정체를 드러낸다.

         

         단순 명쾌하게 풀이하자면, 엘리시움 프로그래머들이 짜낸 소스 코드가 내가 먼저 나서서 쪼갤 것도 없이 제로의 손에 낱낱이 분해되어 알아보기 좋게 주석까지 달린 채로 시야에 나타났다는 뜻이고.

         

         내 예상대로. 로잘린과 우리 사이에 그어진 선은 그녀가 파이브 아이즈 소속이라는 걸 기업이 우연히 밝혀냈다거나 하는 얘기가 아니라, 일차적으로 표본을 분리하기 위한 거름망에 불과했다.

         

         이건 물리적인 게이트웨이를 통한 구분.

         즉, 현재 마리나와 내가 대여 서비스를 신청한 VR 가게가 선동꾼 해킹잘모름으로 추정되는 유력한 용의자-보나마나 나겠지만-가 있는 접속처라 여기고 임시 봉쇄한 것이리라.

         

         거기에 함께 싸잡혀간 마리나 세라노와 문제의 아나스타샤 발렌타인을 가르는 경계는, 나를 둘러싼 프로그램 코드는 조금 특별하다.

         

         같은 방에서 비슷한 기계로 가상 현실을 즐기고 있는 둘을 미리 입수한 내부 정보나 기기 일련번호도 없이 당장 구분할 방법이 어디 있겠어? 실내 카메라나 이 영업장 DB를 엘리시움 쪽에서 불법으로 터는 게 아닌 이상.

         

         하지만 아쉽게도 그건 할 수 없다. 왜? 정말 자랑거리는 못되지만, 방문했던 증거를 안 남기고 가려고 일찌감치 서버 권한을 건드려 놓은 터라 지금 와서 그딴 헛수작을 부리면 나나 제로가 바로 눈치채거든.

         

         아니, 당초에 이건 아나스타샤라는 시민을 노린 공작조차 아니다.

         

         이 다크 웹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 리스크를 감수해가며 예비 거물 범죄자가 아바타 자체의 접속을 마음대로 끊지 못하게 만들려고 만들어낸 코드의 감옥이자, 현실 사람 대신에 가상의 계정을 타게팅해서 속박하는 기발한 전자 수갑.

         

         통칭 락다운(Lockdown; 대상의 행동 통제, 제재) 모듈.

         

         우선 도망가지 못하도록 정신을 강제로 가상 공간에 묶어두고 증거는 나중에 찾아서 가져다 붙인다니, 사용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안전 로그아웃 시스템마저 역이용한 겁나 악랄한 체포 방식이 되시겠습니다~ 와우.

         

         “소셜 닉네임 idkHacking, 그대는 사회 기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안전법령 21가지와 정보 통신 보안법 16종, 총 37개를 위반하였으며. 이는 긴급 체포 사유에 해당하는 만큼 현 시간부로, 엘리시움 코퍼레이션에서는 그대의 신병 구속을 결정하였다.”

         

         갑자기 허공에 생긴 경계선만큼이나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뜬금없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범인을 이렇게 확보했다면… 혹은 가두었다 믿는다면, 집행자들이 친히 모습을 드러내는 걸 당연한 수순이 아니겠나?

         

         짧게 정리한 머리, 제복, 방탄 조끼, 선글라스, 노골적으로 표면 피부를 대체한 특수 임플란트 등등. 아바타인 걸 고려하면 복사 및 연출한 이미지일 가능성이 농후하나, 그래도 꽤 압박감을 선사하는 센티넬 팀원의 형상이 둘… 셋… 아무튼 다수 등장.

         

         주변의 트래픽이 순간적으로 열 배 가까이 폭증한 비율을 보면 아직 모습을 숨기고 지켜보는 인원도 따로 빼논 모양이셔?

         

         여하간 이제 신분을 밝히고 체포하려 덤벼들던, 솜씨를 한 번 발휘해 찍어 누르던 할 줄 알고 기껏 차분하지만 긴장을 유지한 태도로 다음 말이나 행동을 기다렸는데.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는 해당 계정으로 일으킨 물의를 시인하고 본인의 신원을 공식적으로 밝힐 경우에만 제공되며, 그 과정에서 나온 언사는 추후 불리한 증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시벌, 뭐하냐 니들?

         

         “잠깐, 혹시 내가 제대로 된 저항을 안 해줘서 그래? 뭐, 특수한 방법으로 공격해서 이쪽의 상호작용을 무력화하는 것도 아니요, 통신 임플란트나 사이버웨어 제어권을 탈취하려 시도하지도 않아. 고작 올가미 하나 대충 감아두고 땡??”

         

         “…그대의 수완과 배짱을 인정하는 시각도 있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게 우수한 실력으로 직결될 요소는 아니니, 간교한 언변 하나로 사기꾼 이상의 취급을 받거나 관심을 끌길 원했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해두겠어. 아, 이만한 소란으로 발전할 주제를 고른 건 제법 운이 좋았군. 발칙한 테러리스트 꼬맹이.”

         

         그것 참 합리적인 점수 매기기시네요.

         

         적어도 무근거한 과대평가는 안 하는 셈이니까 이걸 낭비 없이 효율적인 일처리라 여겨야 해? 아니면 말단 부대원 주제에 상부 결정을 실행으로 옮기는데 있어서 현장 판단을 함부로 과하게 끼워 넣는 어리숙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봐야 해?

         

         정말 특별한 이유는 없는데 왠지 살짝 열 받네.

         

         그래, 나는 진심으로 싸울 정신 무장을 다잡아 놓았거늘. 나름 대항마라 여겼던 적수들은 수갑이 잠겼는지조차 똑바로 체크 안 한 걸로도 모자라, 이미 잡은 쥐에게는 자기소개도 똑바로 안 하시겠다.

         

         당장 와서 한 번 잡아가보라고 동네방네 광고하고 기다리기까지 한 게 나인데, 그렇게 홈 그라운드도 아닌 장소에서 싸울 자신 있냐 너네?

         

         “….”

         

         조용히 두 손을 들어 나를 둘러싼 반투명 입방체, 락다운 모듈에 가져다 댄다.

         

         그러자 제로의 데이터 분석과 뇌에 때려 박는 듯한 자의적 해석이 겹쳐져 이 구속 기능이 발휘되는 원리를 대강 알 것 같았다.

         

         돌연 접속이 끊어지면 사용자의 뇌 가소성에 악영향이 있고… 공감각이 난잡하게 흐트러지고… 어쩌고저쩌고. 대충 접속기기에 있는 안전 조건을 더 빡빡하게 조이고, 갇힌 사람의 상태를 계속 불안정하게 만들어 로그아웃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게 만들며 스크립트를 꼬아버리는 자가당착형 트랩.

         

         아하, 방금 내가 저급한 도발에 쉽게 짜증이 났던 것도 다 이런 것 때문이었구나? 어쩐지.

         

         – 아샤님의 정신이 겨우 그런 파장 유도형 루프에 이끌렸을 가능성은 굉장히……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불쾌하셨다면 이제 그만 모듈 무효화를 시도할까요? –

         

         ‘됐어. 이것들은 괘씸하니까, 아예 그냥 보란듯이 부숴줘야지!’

         

         실은 이미 옛날 옛적에 데이터 마이닝을 끝낸 상황이지만 저들의 눈에는 빠져나갈 구멍이 있나 살피는 것처럼 보였던 걸까.

         

         “소용없다. 엘리시움 특허가 들어간 가상 현실 접속기기를 사용하는 한, 락다운 모듈은 근본적으로 어중이떠중이가 해제할 수 있는 영역의 프로그램이 아니니까. 괜히 잘못 건드려서 사고 장애 일으키지 말고 얌전…히…?”

         

         까득! 으드득!! 끼기긱…!!

         

       

       

         

         

       

       

         남자가 아주 플래그를 신나게 무더기로 세우고 있거나 말거나.

         

         깨진 거울…이 아니지, 마치 얼음에 균열이 생기면 불투명해지는 것처럼. 맞닿은 부분에서 시작된 재해에 가까운 구조 붕괴로, 락다운 장벽 건너편에 아른거리던 센트리 팀의 신형이 점차 덩어리진 얼룩으로 전락하며 흐려졌다.

         

         세간의 용어로는 리버스 엔지니어링 테크닉(Reverse engineering technique; 역설계 기술)일지라도, 나에겐 그냥 전매특허 겸 오프닝 스킬이나 다름없는 불합리한 레벨의 카운터 어택.

         

         근래엔 이게 좀 평균을 아득히 상회하는 공학 기법이라는 걸 깨닫고 자중했지만, 이런 자리에서까지 내가 이 건방진 놈들 사정 봐 줄 필요가 있을 쏘냐.

         

         그나저나 여기도 최신 코드 트렌드는 뇌를 이용한 응용과학 기술인 모양이네? 마침 해킹잘모름이 보유한 악명에도 딱 들어맞는 사례이니 눈도장은 제대로 찍을 수 있겠다.

         

         “…에잇!”

         

         파장창!

         

         힘 빠진 기합과 함께 무너져 내린 시야 너머로 당황한 인간들의 모습으로 보건대, 같지도 않은 얼음 땡 놀이에 그만 어울리겠다는 내 의사는 확실하게 전달된 것처럼 보였다.

         

         자, 어디. 마음껏 더 해 보십쇼들. 놀란 만큼 정색하고 가진 걸 다 꺼내서 보여줘도 괜찮고.

         

         어차피 대 엘리시움 방어 프로그램을 잔걱정 많은 내 파트너한테도 전신에 둘둘 입혀주려면 견본으로 삼을 데이터나 원본 소프트웨어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마왕성 입구에서 용사들은 마왕과 마주쳤다! 일행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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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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