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41

     마스터와 마스터의 대결은 대부분 짧은 시간에 결론이 나온다.

      종이 한 장나는 실력 차이를 단숨에 죽음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 소드 마스터.

     특히 마스터로서의 실력이 그 극에 달하는 존재일수록 더더욱 단숨에 상대를 죽일 수 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두 마스터의 대결은 그런 종이 한 장보다도 더 얇은 차이를 보인다는 뜻.

     실수 한 번이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말과도 같으며, 약간만 집중이 깨져도 바로 목이 달아날 수 있다는 말과도 같다.

     

     먼저 지치거나 하는 쪽이 패배.

     둘 중 누가 이기든, 이기는 쪽이 상대 기사들을 전부 도륙낼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는 건 자명한 사실.

     그렇기에 지브롤터의 기사들과 제국의 병사들은 침을 꿀꺽 삼킨 채, 자신들의 마스터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흐하하하!”

     합스베르크 황제가 광소를 터뜨리며 검을 휘두를 때마다 그 검이 닿기를.

     “미친놈.”

     

     크림슨 후작이 나지막하게 모욕을 내뱉을 때마다 흩날리는 군청색 머리카락이 피로 이어지기를.

     카ㅡ앙!

     두 사람의 검이 크게 부딪친다.

     

     둘 다 동시에 뒤로 물러나며,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고 손에 묻은 땀을 닦아낸다.

     “미친 괴물이로다. 마스터 일곱, 아니 그 이상의 마나를 이 몸에 담고 있거늘, 그렇게 하고 나서야 간신히 닿을 수 있단 말인가.”

     “……인정하마. 나에게 상처를 낸 건 그대가 처음이니.”

     크림슨 후작은 자신의 어깨에 난 검상을 손으로 억눌렀다.

     “하지만 그뿐이다. 지브롤터에 상처를 낼 수는 있어도, 지브롤터는 무너지지 않아.”

     “흐흐흐, 내가 지금 여러 가지로 봐주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합스베르크 황제는 하늘을 가리켰다.

     이미 그곳에는 제국의 비행선 십수 대가 일렬로 줄을 지어 하늘을 날고 있었다.

     “내가 명령 한 번만 내리면 저 비행선은 즉시 지브롤터로 향하는 것이야.”

     그들이 2관문을 넘어서지 않는 것은 전부 합스베르크 황제의 지시가 없기 때문.

     “오래전부터 생각했지. 꼭 뚫어낼 필요가 있나. 하늘로 날아가면 그만인 것을.”

     “지브롤터에도 용기사단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하지만 그들이 이 모든 비행선을 막아낼 수는 없지. 일부만 후방에 안착해도, 지브롤터 크림슨 후작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해낼 수 있거든.”

     “어디 한 번, 그렇게 해보라고 전하라.”

     크림슨 크림슨 후작은 깊게 호흡을 내뱉으며 다시 검을 들었다.

     “합스베르크 황제가 크림슨 후작과의 1:1 전투에서 이기지 못할 것 같아 도망쳤다. 역사에는 그렇게 기록될 것이니.”

     “하, 하하…. 제국이 이길텐데, 그런 역사가 남아있을까?”

     “제국이? 어리석군. 진심으로 제국군이 이길 거라고 생각하나?”

     “…….”

     합스베르크 황제가 쓰게 웃는다.

     볼에 난 상처에서 피가 주룩 흘러내리고, 손목 아래로 흘러내리는 피땀을 반대쪽 손으로 억누르며 검을 한손으로 움켜쥔다.

     “이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애초에 전쟁을 일으키지도 않았어.”

     “그렇게까지 노스트럼이 싫었나?”

     “그대도 마찬가지였을텐데?”

     “…….”

     크림슨 후작은 눈을 감았다.

     “나는 노스트럼의 사람을 싫어했던 거지, 노스트럼 자체를 싫어한 게 아니야.”

     “나는 노스트럼이 싫다.”

     합스베르크 황제가 두 팔을 좌우로 벌리며 앞으로 터덜터덜 걷는다.

     “황금의 권능에 모든 걸 맡긴 채, 위기를 극복할 생각을 하지 않고 영웅의 등장만을 외치는 게 싫다. 지금도 제국의 위협 앞에서, 백성들은 초인이 나타나 자신들을 지켜주기를 원하고 있지. 안 그런가?”

     “당연한 것을.”

     크림슨 후작이 두 손으로 검을 움켜쥔다.

     “약자는 강자에게 의지하며, 강자는 약자를 보호하고 지킨다. 그것이 수백 년 전부터 내려온 귀족과 평민의 관계가 아니던가.”

     “그래, 흐흐. 그레이의 아버지라고 해도, 결국 노스트럼에서 태어난 존재라 이거지.”

     합스베르크 황제는 한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래. 애초에 이해받을 생각도 아니었어. 빼앗고자 하는 자가 이해는 무슨. 이해는 그레이만 해주면 되는 거지.”

     “미친놈.”

     “그래. 미쳤지. 내 피를 물려받아 태어나는 것들은 하나같이 성에 안 차는데, 노스트럼 땅에서 태어난 자가 나의 모든 것을 물려받아도 모자람이 없는 존재였으니.”

     손에 묻은 붉은 피가 전쟁터에 나서는 이들이 만드는 주술과도 같이, 얼굴에 붉은 손자국을 만들어내며 합스베르크 황제는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자를 질투해본 적이 있다면, 그대가 그레이의 아버지라는 것이다.”

     “…셜롯의 남자로서 질투를 받아본 적은 많지만, 그레이의 아버지로서 받은 질투는 나도 처음이다. 하지만.”

     크림슨 후작이 두 손으로 움켜쥔 검을 옆으로 눕힌다.

     “합스베르크 황제고 나발이고, 지브롤터의 적은 죽인다.”

     “그래. 어디 한 번, 이대로 가려보지. 누가 진정한 아버지인지.”

     사락.

     “이제와서, 약물이라고?”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는 게 내 신조라서.”

     하얀 종이봉투를 꺼낸 합스베르크 황제는 백은을 단숨에 입안에 털어넣었다.

     할짝.

     그리고는 자신의 팔뚝에서 흐르는 피를 이용해 가루를 들이마셨다.

     “후후후…. 그거 알고 있나? 혈통이 짙은 흡혈귀일수록 백은의 효과 또한 높다는 것을.”

     “알 필요 없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나?”

     “애지중지하던 최상급 백은을 마셨든 뭐든, 내게는 닿지 못하니까 알 필요 없다는 거다.”

     검으로부터 붉은 아우라가 흘러나온다.

     “네가 무슨 소리를 지껄이든, 나는 주저하지 않고 너를 베겠다. 그 뿐이다.”

     이미 실체화된 마나-오러가 이전보다 들끓기 시작하고, 살기를 드러내듯 붉은 오러가 타오른다.

     “그래? 그렇다면….”

     합스베르크 황제가 앞으로 발을 내딛는다.

     “무슨 짓을 써서라도 이기면 그만이라는 거지!”

     단숨에 앞으로 뛰며 검을 어깨 너머로 넘긴다.

     검에서 흘러나오는 군청빛으로 빛나는 오러가, 흡사 초승달과도 같이 휘어지며 크게 빛난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오러를 그대로 휘두르는 크림슨 후작.

     그 검을 향해 얼음장처럼 서슬퍼런 푸른 오러를 휘두르는 합스베르크 황제.

     

     두 물결이 파도치듯, 두 사람의 검이 부딪치기 직전.

     “□ □□, □□.”

     합스베르크 황제가 작게 속삭였다.

     누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오직 크림슨 후작만이 볼 수 있도록 아주 작게 입으로 속삭였다.

     “……!”

     크림슨 후작의 표정이 뒤틀린다.

     초승달의 궤적을 향해 태양처럼 크게 원을 그리며 휘두르던 검을 움켜쥔 손이 순간 움찔거리고, 그 궤적이 잠시나마 흐트러진다.

     그리고 동시에, 합스베르크 황제가 손목을 비튼다.

     베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던 검의 끝이 비틀리며 앞으로 쭉 미끄러지며, 크림슨 후작의 가슴을 향해 화살처럼 쏘아졌다.

     푸ㅡ욱.

     

     합스베르크 황제의 검이-

     “하, 미친.”

     크림슨 후작의 어깨에 닿았다.

     붉은 피가 흘러내리지만, 본래 심장을 찔렀어야 할 검은 어깨로 뻗어나가버렸다.

     검의 아래.

     “쌍검이라니.”

     “후.”

     어느새 손 하나를 당겨, 오러를 단검처럼 만들어낸 크림슨 후작은 황제의 검을 아래에서 튕겨올리며 검을 막았다.

     “단 한 번도, 쌍검을 들었다고 한 적이 없거늘.”

     “그 누구도, 여기까지 닿은 적 없기에.”

     크림슨 후작은 피식 입꼬리를 비틀었다.

     “인정하마. 너는 나를 죽일 수 있었-”

     파직.

     크림슨 후작의 왼손, 약지에 끼워져있던 반지가 깨졌다.

     “……!!”

     순간적으로 오러가 크게 흔들렸고, 합스베르크 황제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쯧…!”

     크림슨 후작이 다급히 흐트러진 오러를 다듬으려고 했으나, 이미 합스베르크 황제는 한 쪽 손을 위로 높이 치켜든 채ㅡ

     콰ㅡㅡ앙!!

     자신의 오러 블레이드의 위로 주먹을 내리쳤다.

     서걱.

     무언가가 날카롭게 잘리는 소리.

     그와 동시에 크림슨 후작이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나고-

     콰ㅡ앙!

     “멘테 경!”

     “네가 들어! 내가 막는다!”

     단숨에 성벽 위에서 다가온 그림자 두 개가 크림슨 후작을 잡고 뒤로 달린다.

     “…멘테 리프트. 그레이가 찾은 마스터 중 하나.”

     합스베르크 황제는 아래에 툭 떨어진, 어깨부터 잘린 팔을 내려다보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일주일의 시간을 주지.”

     “뭐…?”

     “이런 승리는 바라지 않았거늘. 나도 속물이군.”

     합스베르크 황제가 어딘가 허탈한듯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 스스로 쟁취한 승리가 아닌 걸 알면서도, 나는 그렇게까지 이기고 싶었던 건가. 황금룡이 만들어준 기적에 의한 혜택을 누리면서까지.”

     

     그 목소리에는 자괴감과 자조감이 섞여있었다.

     

     그 어디에도.

     우오와아아아아ㅡㅡㅡㅡㅡ!!

     등 뒤, 제국 병사들이 환호성을 내지른 것과 같은 기쁨은 느껴지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그레이 지브롤터에게 가서 전해라.”

     합스베르크 황제가 눈을 감으며 말했다.

     “무슨 일이 있든 그것은 결과적으로 노스트럼…황금룡의 기적 때문에 일어난 일. 모든 원흉은 노스트럼이기에, 그렇기에 더더욱 노스트럼을 지워버려야 한다고.”

     “무슨….”

     “돌아가면 알게 될 것이다.”

     합스베르크 황제가 몸을 돌렸다.

     “삼가, 애도를 표하지.”

     바닥.

     반으로 쪼개진 결혼반지가 붉은 피 속에 잠겨있었다.

     * * *

     -아스타시아. 누아르와 동생들을 부탁합니다.

     -그레이.

     -부디.

     부ㅡㅡ웅.

     

     나는 아스타시아에게서 마도바이크를 건네받은 다음, 전력으로 페달을 밟았다.

     마도엔진이 내 남은 마력을 뽑아갈 때마다 캐롤라인을 몸 속에 들이부으며, 나는 지브롤터 성으로 달렸다.

     지브롤터에서 오는 이들에게 일일이 물어볼 시간은 없었다.

     차라리 지브롤터에 있었으며 어땠을까.

     왕도고 뭐고 노스트럼이고 뭐고, 오직 지브롤터를 지키는데 주력했다면 어땠을까.

     그런 후회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매국노 그레이 시절, 아스타시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이.

     그렇기에 불안했다.

     언제나 이런 불안감은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어졌기에.

     

     ‘제발.’

     매국노 그레이 시절에도 기도했었지만, 나는 노스트럼인들이 모두 믿는 황금룡 신앙을 부정했었다.

     ‘제발 아무런 일도 없기를.’

     회귀의 기적을 받고도, 그게 황금룡이 노스트럼 왕실에 주는 기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황금룡에게 기도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다.

     황금룡 크로노스트럼이 무슨 기적을 주든, 결국 인간은 기적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주어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이번만큼은.

     만일 황금룡이 신과도 같은 권능과 기적을 가지고 있다면.

     그 존재가 지금도 모두를 지켜보며, 우리 지브롤터가 모두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해온 모습을 봐왔다면.

     적어도 이번만큼은, 그 기적을 우리에게-

     “아.”

     저 멀리.

     지브롤터-구 백작성.

     “불…?”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그리고 그 붉은 불꽃의 너머.

     붉은 결계가 반짝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지브롤터가 가장 위험할 때 펼치는 결계가.

    다음화 보기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