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41

   크라슈는 무사히 라헬른 아카데미로 귀환했다.

     

   어느새 1월이 지나고, 2월이 다가올 무렵.

   라헬른 아카데미는 한창 휴식기에 접어든 상태다.

     

   물론 수업이 없을 뿐, 학생들은 훈련에 여념이 없다.

     

   최근 세계의 상황이 묘하다.

   세계 최강국인 제국이 세계 침식자에게 침공받았으니.

   자연스럽게 세계 전체가 전쟁 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라헬른 아카데미에는 귀족 집 자제가 많다.

   그러니 학생들 또한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았다.

     

   라헬른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세계 침식자와 맞서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학생들 사이에 은연중에 퍼졌다.

     

   그렇게 모두가 훈련에 전념하는 와중.

     

   크라슈는 어째선가 한 명의 여성 앞에 조용히 무릎 꿇고 있어야 했다.

     

   그의 앞에 앉아 있는 것은 백발의 긴 머리카락 소녀였다.

   머리에 꽂은 눈 장식 핀과 손에 낀 반지가 눈에 띄는 그녀는 조용히 크라슈를 내려다보았다.

     

   과연, 세상 사람 중 크라슈가 무릎을 꿇는 광경을 상상할 사람이 있을까.

   크라슈 또한 상상 못했을 일이다.

     

   하지만 크라슈는 오늘만큼은 반드시 무릎을 꿇고 있어야 했다.

     

   “하링 언니 말이죠.”

     

   비앙카가 입술을 열었다.

   그 말이 나오자 크라슈는 더더욱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은 얼마 전 결혼을 올렸다.

   그런 만큼 아직 한창 신혼이었을 때다.

     

   물론 비앙카와 크라슈는 지낸 시간이 있는 만큼.

   신혼이라고 해서 특별한 걸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세계의 흐름 자체가 그럴 상황이 아니다.

   비앙카 또한 이는 잘 수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신혼인 와중.

   크라슈가 하링과의 교제를 알려왔다.

     

   그래 놓고 포세우스 왕국 쪽 일에 불려 갔다 와 이제야 비앙카와 마주했다.

     

   비앙카 입장에서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당연히 열이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크라슈 님은 저로는 부족한가요?”

     

   비앙카가 무표정하게 물었다.

   그녀의 오늘 표정만큼은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럴 리가.”

     

   크라슈는 단연코 비앙카의 말을 부정했다.

   자신은 절대 비앙카로 부족하지 않다.

     

   크라슈의 말을 들은 비앙카는 잠깐 침묵했다.

   그 침묵은 크라슈로서도 상당히 긴장됐다.

     

   “애초에 제가 했던 말이니 딱히 지금 와서 뭐라 할 생각은 없지만요.”

     

   비앙카가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비앙카는 무릎 꿇고 앉아 있던 크라슈의 품에 쏙 하니 몸을 던졌다.

     

   크라슈가 비앙카를 받자 그녀는 크라슈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그냥 조금 심술부려 보고 싶었어요.”

     

   그래도 아내니까.

   아내로서 역할을 했다며 비앙카가 말하자 크라슈는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해.”

   “사과 안해도 돼요. 저도 크라슈 님이 최선을 다한 걸 아니까요.”

     

   크라슈는 그동안 비앙카 하나만을 보고 모두를 밀어냈다.

   실제로 비앙카가 허락하기 전까지 그는 매번 밀어내는 걸 반복했다.

     

   비앙카는 그 모습을 옆에서 똑똑히 보았다.

   분명 그는 자신이 자기 혼자만을 봐주길 바랐다면 이번에도 하링을 거절했을 것이다.

     

   크라슈는 무엇보다 자기 의사를 제일 우선하여 해주고 있었으니까.

     

   비앙카는 그걸 알고 있기에 다른 이와의 교제를 허락해준 것이다.

     

   “크라슈 님, 전에도 말했지만 저는 크라슈 님의 곁에 많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크라슈에게 엮이는 세계는 점차 더 위험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그의 곁에는 수많은 이들이 필요했다.

     

   크라슈는 스스로 위험을 향해 간다.

   그렇기에 그 위험을 함께 나아가 지탱해줄 이가 필요하다.

     

   마음 아픈 일이지만 비앙카는 자기 혼자만으로는 부족함을 안다.

     

   “그리고 저도 그게 사랑 만큼 가장 깊게 엮일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비앙카가 크라슈를 사랑하고 있기에 말할 수 있다.

   사랑만큼 상대를 위해 진심으로 모든 걸 다할 수 있는 건 없다.

     

   “크라슈 님의 곁에 모인 이들은 저마다 여러 방식으로 크라슈 님을 사랑하고 있어요.”

     

   크라슈를 가장 사랑하기에 주위 사람들의 사랑도 비앙카는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많은 걸 바라지 않았다.

   욕심을 부리면서도 무엇보다 크라슈를 가장 우선시해 줬다.

     

   비앙카는 그걸 알기에 그들 또한 자신과 같이 크라슈와 엮이는 걸 허락할 수 있다.

   크라슈의 곁에 모인 이들은 크라슈를 분명 지탱해줄 테니까.

     

   그리고 크라슈라면 그들을 전부 서운하지 않게 해줄 거란 것도 잘 알았다.

     

   “그러니 저는 그 사람들이 앞으로도 계속 크라슈 님의 곁에 있어 줬으면 좋겠어요.”

     

   사랑은 일방적이어서는 영원할 수 없다.

   결국 언젠가 주기만 하는 이는 지치기 마련이다.

     

   비앙카는 그들이 그렇게 되어 크라슈의 곁을 떠나기를 바라지 않았다.

     

   “하링 언니의 건, 찬성이에요. 잘했어요.”

     

   하링은 앞으로도 크라슈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링이 크라슈에게 품은 깊은 사랑은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크라슈를 배신하지 않는다.

     

   비앙카는 그걸 잘 알 수 있었기에 하링과의 교제를 환영했다.

     

   “크라슈 님이 자리를 비운 동안 하링 언니랑도 이야기했어요. 몇 번이고 사과하길래 괜찮다고 해뒀고요.”

     

   그랬었나.

     

   거기까지는 몰랐던 크라슈는 손을 들어 비앙카를 꽈악 안았다.

   그녀의 부드러운 머릿결과 몸이 달라붙자 크라슈는 안쪽이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고마워. 비앙카, 널 만난 건 내 행운이다.”

   “맞아요.”

     

   비앙카는 콧대를 높이며 당찬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고개를 들어 크라슈에게 입맞춤했다.

     

   “그러니까 소중히 해주세요. 전 크라슈 님만 있으면 되니까요.”

     

   소중히 하고말고.

   크라슈가 볼을 비비자 비앙카도 배시시 웃음 지었다.

     

   다른 건 몰라도 결혼만큼은 가장 잘했다고.

   크라슈는 누구에게나 자랑할 수 있었다.

     

   그 뒤로도 크라슈는 비앙카와 하루를 꼬박 보냈다.

   신혼임에도 해준 게 없으니 하다못해 하루 정도는 같이 있어 준 것이다.

     

   비앙카는 평소 못한 애정 공세를 잔뜩 했다.

   크라슈도 이를 전부 받아줬다.

     

   다음 날, 크라슈는 비앙카의 배웅을 받으며 나왔다.

     

   이제 또 라헬른 아카데미를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크라슈가 생각해도 참 저조한 출석률이다.

     

   하지만 세계 침식 조사 집단, 세피라로 향하며 크라슈의 머리는 조금 멍했다.

   왜냐하면 밤중에 크라슈의 품에 안긴 비앙카가 한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른 건 몰라도 아이는 제가 가장 먼저 가지고 싶어요.」

     

   아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주제였다.

     

   크라슈는 뒷머리를 자기 손으로 긁적였다.

     

   크라슈는 멸망을 지켜낸 후에 미래를 별로 떠올려 보지 못했다.

   당장 세상을 지키기 바쁜 만큼.

   미래를 떠올릴 시간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앙카의 말을 듣고 나니.

   크라슈는 아주 잠시 멸망을 지켜낸 후에 세상을 떠올렸다.

     

   어쩌면 정말 그런 세상이 올 수도 있을까.

     

   아직은 모르겠다.

   크라슈에게도 세계의 멸망은 트라우마다.

   그걸 넘어선 미래가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다.

     

   ‘그럼 보이도록 만들어야겠지.’

     

   크라슈는 주먹을 쥐었다.

     

   자기 아내가 원하는 일이다.

   무슨 일이 생겨도 이뤄줘야 하지 않겠는가.

     

   “바쁘게도 가는구나. 약혼자 얼굴 정도는 보러 와줄 것이지.”

     

   그 순간 크라슈는 자신의 가는 길에 나타난 이를 보았다.

     

   바다 빛의 머리카락 색과 호박색의 눈동자.

   크라슈는 그녀를 보자마자 이름을 떠올렸다.

     

   제국의 4황녀 시즐리 에파니아.

   제국과 발하임이 멋대로 진행 시킨 약혼녀 되시겠다.

     

   시즐리와 마주한 크라슈는 어정쩡한 표정을 지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뜬금없이 들이밀었던 입술이 떠오른 탓이다.

     

   “너.”

     

   시즐리는 크라슈를 마주 보자 자기 입술을 살짝 누르며 미소 지었다.

     

   “왜 또 하고 싶더냐?”

     

   크라슈는 꿀밤을 먹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원한다면 백 번이고 해주마. 하지만 그건 원할 때의 이야기로 넘겨두고.”

     

   시즐리는 크라슈의 앞으로 걸어왔다.

     

   “세피라로 갈 생각인 게지?”

   “그래.”

     

   이미 이쪽 정보를 입수했는지 크라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크라슈를 본 시즐리는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세피라의 공주, 세이랑 세피라와 좋은 거래 수단이 있다. 그걸 알려주러 왔으니 받아 가거라.”

     

   그러고는 시즐리는 편지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것을 본 크라슈는 눈을 깜빡이고는 이내 편지를 받았다.

     

   잠깐 편지를 내려보던 크라슈는 슬쩍 시즐리에게 물었다.

     

   “혹시 이거 세이랑이 쓰는 소설 이야기냐?”

   “음? 알고 있었느냐?”

     

   크라슈의 말에 시즐리도 놀란 얼굴이 됐다.

     

   알다마다.

   이걸로 이미 거래까지 했으니 말이다.

     

   설마하니 크라슈가 이미 알고 있을 줄은 몰랐던 시즐리는 아쉬운 얼굴을 했다.

     

   “기껏 괜찮은 정보라 생각해서 냉큼 가져왔건만. 이미 알고 있다면 별 쓸모 없게 됐구나.”

     

   그래도 이쪽을 생각해서 정보를 가져와 준 건가.

   크라슈는 조금은 고마운 기분을 느꼈다.

     

   “본래라면 쓸모 있는 정보긴 하지.”

   “하긴, 세피라의 공주가 관능 소설인 ‘후회, 집착, 피폐.’의 작가인 줄 누가 알았겠느냐.”

     

   쿵!

     

   그 순간 크라슈의 주머니가 갑자기 난동을 부렸다.

   시즐리도 그쪽을 바라볼 정도로 난동 피우는 주머니.

     

   그것을 본 크라슈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들어 올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뒤집힌 시체쥐가 있었다.

     

   에벨아스크의 시체쥐였다.

     

   “찍, 찌익…….”

     

   시체 쥐가 자기 몸을 파르르 떨었다.

     

   “에벨아스크?”

     

   크라슈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시체쥐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이내 크라슈를 올려다보며 울부짖었다.

     

   “왜, 왜, 진작 안 알려 준 건데!”

     

   에벨아스크가 내지르는 소리에 크라슈는 귀가 아팠다.

   무슨 시체 쥐로 저 정도 발성을 내는 건지.

     

   크라슈가 찌푸린 얼굴로 시체 쥐를 보고 있자 시체쥐가 파르르 떨렸다.

     

   “후, 후회, 집착, 피폐 작가님이 세피라의 공주였다니…….”

     

   그러고 보니 에벨아스크는 애독자였다.

   특히, 관능 소설 또한 상당히 즐겨 읽는 편에 속했다.

     

   그리고 그녀가 읽던 관능 소설 중 하나가 아무래도 세이랑이 작가였던 모양이다.

     

   그녀는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파들파들 떨었다.

     

   “여, 여자란 건 알았는데. 내가 얼마나 재밌게 읽었는데…….”

   [ 쯔쯧, 관능 소설에만 읽으니 관능 주머니가 자꾸 커지지. 그냥 직접 하면 될 것을. ]

     

   크림슨가든이 아무렇지 않게 성희롱하는 건 크라슈는 그냥 흘려들었다.

     

   “에벨아스크, 그러면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던가.”

     

   딱히 일부러 안 알려준 것도 아니니.

   크라슈는 기왕 세이랑을 만나러 가는 거 직접 대화해보라 했다.

     

   그러자 시체쥐가 벼락 맞은 듯이 굳었다.

     

   “힉, 익, 으, 아, 자, 작가님 영접.”

     

   무언가 망가진 듯이 삐꺽거리는 시체쥐를 보던 크라슈는 대충 주머니에 넣었다.

     

   “갔다 온다.”

   “으음, 잘 갔다 오려무나.”

     

   시즐리는 손을 흔들어 크라슈를 배웅해줬다.

     

   세피라로 향할 시간이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