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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1

       쌓는 건 고달파도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라.

       

       [소비자 물가지수가 다시 한번 큰 폭으로 상승했습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마왕군과의 전쟁. 에테리아와의 갈등.

       

       [5년 이내 경제 반등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무너져가는 경제.

       

       세상에 영원한 나라는 없나니.

       

       카우렐리아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한스 데켈 박사는 우리나라의 경제 부진 이유를 두고 아이비 프로젝트를 주목했습니다. 아이비 프로젝트에서 철, 니켈 등 주요 금속이 다량 투입되어 전후 인프라를 재건할 원자재가 부족해진 것입니다.]

       

       [첨단산업도 고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스크롤 제작에는 마석이 필요한데, 이를 공급하던 마수들이 전부 자취를 감춘 탓입니다.]

       

       [특히 리튬과 베릴륨의 고갈이 심각합니다.]

       

       모든 언론사가 비슷비슷한 뉴스를 보도했다.

       

       “더는 못 살겠군!”

       “대선이 끝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상류층 빼곤 집도 제대로 안 지어줘. 옷도 모자라. 식량도 부족해. 선거만 끝나면 다냐고!”

       “금안족들은 왜 못 나가게 막아? 그런 놈들 없으면 조금이라도 살기 편해질 텐데.”

       

       먹고살기 힘든 엘프들은 자연스레 그 화살을 정부가 있는 곳으로 돌렸다.

       

       특히 빈민층이 그랬다.

       

       “우리가 많은 걸 바라냐? 먹고 잘 곳! 일할 곳! 그런 곳만 주면 되잖아! 뭐가 문제인데?”

       

       행정력이 부족한 지역을 중심으로 불온한 움직임이 생겨났다.

       

       “작전을 점검합시다.”

       

       남부 도시, 플로반스.

       

       어두컴컴한 지하실에 모인 수십 명의 엘프가 봉기를 도모하는 중이었다.

       

       “남부는 빈곤층과 야당 지지자가 많아 우리 뜻에 동조할 사람이 다수요. 식량은 넉넉하니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면 충분히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소.”

       “왜 아니겠습니까 동무? 동무가 다른 곳에 가 있던 사이 우리 동지들이 다 밑작업을 해놓았습니다.”

       “오오, 그거 든든하군!”

       

       이들의 눈동자 색은 제각각이었다. 그중에는 금빛 눈동자를 지닌 엘프도 있었다.

       

       “게릴라 준비는 문제없이 끝났습니다, 동무. 스태프와 스크롤이라면 차고 넘치지요.”

       “그렇다면 바로 시작할 수 있겠소?”

       “플로반스 주민들의 묵인만 있다면, 언제든지.”

       “좋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는 대로 시작합시다.”

       

       레니냐의 삼촌, 막시가 지도를 돌돌 말아 접었다.

       

       “국가 전체를 장악할 필요는 없지. 우선 행정력이 약한 곳부터 마비시키는 걸세.”

       

       그날 밤.

       

       플로반스의 외곽부터 시작해서, 붉은 깃발을 든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 우와아아!!

       – 차별주의 부패 정권 몰아내자!

       

       그 수만 물경 7백에 이르렀다.

       

       술에 절여진 채 혼곤히 잠들었던 경찰들이 깜짝 놀라며 서에서 뛰쳐나왔다.

       

       “무슨 소란이냐!”

       

       화르륵!

       

       소리쳤던 경관의 머리에 화염구가 휩쓸고 지나갔다. 경관은 그 자리에서 비틀거리다가 쓰러졌다.

       

       머리가 날아간 경찰의 모습을 본 빈민가 엘프들은 당황하기는커녕 낄낄거리며 웃기 바빴다.

       

       “조폭 끌어들여서 세금 착복하더니.”

       “꼴 좋다!”

       

       붉은 깃발을 든 혁명세력이 도시 중심가를 점점 장악해나갔다. 이들은 경찰서와 구청 등 공공기관을 타격했다.

       

       이를 보고도 지역주민들은 신고는커녕 휘파람만 불었다.

       

       묵인.

       

       혁명은 대중의 묵인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

       

       “동지들! 썩은 나라를 갈아치우고 우리도 제국인처럼 새 나라를 만듭시다!”

       

       이미 민심을 얻어 놓았기에 일은 순탄하게 풀렸다. 혁명세력은 낫과 스태프가 그려진 깃발을 들고 플로반스를 벌집 들쑤시듯 휘저었다.

       

       여기에 일반 주민도 합세했다.

       

       “여러분도 함께 합시다!”

       

       가도행진을 할 때마다 수백에서 수천 명씩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처음에는 수백 명 규모였던 폭동이 어느덧 수만 명 단위의 혁명으로 변하고 있었다.

       

       “대통령 각하, 플로반스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뭐요?”

       

       이변을 알아차린 중앙정부는 서둘러 군을 파견했다.

       

       하지만.

       

       늦었다.

       

       혁명세력은 플로반스의 경찰들을 전부 제압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죽이거나 포박했다. 플로반스는 이미 그들 손에 떨어진 지 오래였다.

       

       “조금 있으면 중앙군이 올 것이오, 동무. 빠르게 대응해야 하오!”

       “알고 있소.”

       

       혁명세력은 방어전선을 형성했다. 도시를 빠져나가는 일곱 출입구를 전부 봉쇄하고, 요지에 포대와 벽돌을 쌓았다.

       

       “놈들이 옵니다!”

       

       중앙군의 숫자는 얼마 되지 않았다.

       

       2천 명에서 3천 명 규모.

       

       그에 반해 혁명군은 주민까지 합해 최소 수만 명이었다.

       

       해볼 만했다.

       

       “종족차별주의자 새끼들!”

       “쳐라─!!”

       

       선공을 건 것은 혁명군이었다.

       

       골렘을 전열에 배치하여 모루 역할을 하게 하고, 화계와 공계를 다루는 엘프들이 매복해 있다가 측면을 공격했다.

       

       단순하지만 주효했다.

       

       남부까지 오느라 지쳐 있었던 정규군은 순식간에 허를 찔렸다.

       

       “으아악!!”

       “살려줘!”

       

       보다 못한 정규군 장교가 스태프를 빼들었다.

       

       “이 반란군 새끼들이…! 막아라! 우측을 막아야 한다!”

       

       장교는 도망치는 병사들의 멱살을 붙잡으며 측면에 세웠다. 울상이 된 병사들은 우왕좌왕하다가 마법에 맞고 픽픽 쓰러졌다.

       

       “젠장. 군대가 이래서야 되겠나!”

       “어쩔 수 없습니다! 마왕놈이 베테랑을 전부 죽여버렸단 말입니다!”

       “이 금안족 새끼들!”

       

       마왕군에 희생된 기존 9할의 전력.

       

       그 공백을 채운 건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들이었다.

       

       반면에 혁명군은 어떠한가?

       

       오래전부터 남몰래 전투기술을 익히고, 나라를 갈아엎는 일을 준비했다.

       

       이들은 정예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나라에서 기른 적 없는 베테랑. 또한 중용한 적도 없는 유능한 마도사들.

       

       그런 마도사들이 이를 갈며 스태프를 높이 들었다.

       

       “새 나라를 세우자!”

       “평등을 위하여!”

       “자유를 위하여!”

       

       파앗!

       

       밤하늘 위로 불꽃이 떨어졌다.

       

       사방팔방에서 마법이 쏟아졌다. 얼음 결정이 휘날리는가 하면, 땅이 종이처럼 접혀 뛰어오르기도 했다.

       

       격풍이 불고, 구름이 맞닿고, 자색과 금색의 섬전이 번쩍번쩍 튀긴다.

       

       “동무! 정규군 놈들이 물러나고 있습니다!”

       

       첫 승리는 혁명군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다음 날, 정규군의 후속부대가 들이닥쳤다. 여전히 베테랑은 아니었지만 쪽수가 많았다. 사주경계도 어느 정도는 하고 있었다. 당장 급습은 무리였다.

       

       하는 수 없이 혁명군은 주요 지점을 틀어막고 농성을 벌였다.

       

       혁명군은 지지를 끌어모으기 위해 지역 주민에게 자선을 베풀었다. 나누고, 나누고, 또 나누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서 혁명에 참여할 것을 종용했다.

       

       배고픈 자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일할 곳도 없는데 뭐가 두렵단 말인가? 굳은 결심을 한 엘프들은 혁명군에 들어가거나, 최소한 그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좋소. 정비하고 다시 싸웁시다.”

       

       카우렐리아의 법치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

       

       

       “각하, 플로반스 주가 혁명군의 손에 떨어졌습니다.”

       

       쾅!

       

       보고를 받은 아이젠 대통령은 집무실 책상을 그대로 내리쳤다. 책상 내부에서 우지끈,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동자는? 금안족인가요?”

       “금안족도 있지만, 그들이 주도했다고 하기에는 폭동의 규모가 보통이 아닙니다.”

       “야당이나 에테리아에서 사주했을 가능성은?”

       “아직 정확한 건 알 수 없습니다.”

       

       대통령은 머리를 잡고 마구잡이로 긁었다.

       

       재집권 이후로 제대로 풀리는 게 없다.

       

       “금안족 때문이라고 선동하는 건….”

       “통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그들의 이민을 막지 않았습니까?”

       

       자충수.

       

       아이젠 행정부는 진퇴양난의 기로에 서 있다.

       

       “여신님께서 시련을 내리시는 모양입니다.”

       “시련이라니. 벌이 아니면 다행이지.”

       “최근 들어 억지스러운 일만 잇달아 터지고 있지 않습니까?”

       “됐고!”

       

       대통령은 손을 휘휘 저었다.

       

       “플로반스를 안정화하지 못하면 다른 지역에도 반란이 터질 겁니다.”

       “그렇습니다. 초기 진압이 중요한 법이지요.”

       

       대통령의 손짓에 별들이 촤르륵 모였다. 이 중에는 이미 은퇴했거나 아카데미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들도 포함됐다. 어쨌거나 아카데미는 사관학교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세실 총장도 부름을 받고 이 자리에 참석했다.

       

       곧바로 비상대책회의가 시작됐다.

       

       “계엄을 선포하도록 합시다.”

       

       행정부장관의 입에서 무시무시한 말이 떨어졌다.

       

       국방장관을 포함한 몇몇이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화들짝 놀란 세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안 됩니다!”

       “르네이 총장?”

       “계엄은 민간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조치입니다. 살기 팍팍한 민중이 주도하여 벌어진 소요인데, 계엄을 선포하면 불난 데 기름을 들이붓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세실이 그리 말해봤자 소용없었다.

       

       “르네이 총장. 말은 똑바로 합시다. 이번 건 소요 따위가 아니라, 반란이고 폭동이요.”

       

       행정부장관과 대통령은 이미 결단을 내린 상태였다.

       

       “내란을 진압하지 않는 것이,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보다 민주주의를 더욱 희생하는 것입니다.”

       “저기요!”

       “법이 그렇소. 공공질서를 위해 개인의 자유는 한시적으로 제한할 수 있습니다.”

       

       수행비서가 계엄령 선포 연설문의 초안을 작성했다. 동시에 플로반스에 누구를 사령관으로 보낼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아이러니하게도 후보군에는 세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만큼 그녀가 뛰어난 마도사라는 방증이었다.

       

       세실은 사색이 되어 도리질을 쳤다.

       

       “저는 안 내려갈 거예요.”

       “다른 게 아닙니다. 총장님 정도 되시는 분이라면 이번 갈등을 확실하게 중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중재?

       

       세실은 코웃음을 쳤다.

       

       “중재가 아니라 진압하라는 뜻이잖아요.”

       “그렇게도 말합니다.”

       “아카데미를 이끄는 입장입니다. 저는, 절대로, 안 내려갑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죠.”

       

       수만 명 규모의 소란을 단신으로 잠재울 수 있는 마도사.

       

       그런 이들을 아렌스 대륙에서는 ‘전략급’ 마도사라고 부른다.

       

       플로반스에서 벌어진 반란에는 전략급 마도사가 필요했고, 세실을 제외하면 남은 전략급 마도사는 당장 한 명뿐이었다.

       

       “펙튼, 당신이 가십시오.”

       “이런 씨발!”

       

       펙튼은 쌍욕을 씨불거렸다.

       

       “내일 요트 타러 가려고 했단 말이오!”

       “나중으로 미루십시오!”

       “참 나, 어이가 없어서!”

       

       게오르그 펙튼. 그는 세실과 스탠스가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달랐다.

       

       일단 그는 나라에서 까라고 하면 까라는 타입이었다.

       

       더구나 분쟁 아닌가?

       

       평화로운 시대라면 몰라, 싸움이 있는 곳에는 펙튼의 존재가 빛을 발한다.

       

       “알겠소. 가면 되잖아, 가면!”

       

       아무리 전쟁광이라도 같은 나라 사람을 죽이는 건 껄끄러운 모양인지, 펙튼은 침을 카악 뱉으며 회의실을 나갔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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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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