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42

       나는 내 생각보다도 강했다.

        

       단순히 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단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사람들은 위압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이 세상에 그리폰이 나 말고도 아주 많을 거라 생각했다. 어쨌거나 어린 그리폰을 잡을 수 있다는 건 같은 종이 이 세상에도 꽤 많다는 소리니까.

        

       하지만 정작 내가 본 적은 없다.

        

       나를 데려다 두는 과정에서 교회 병력에 큰 손실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냥 극도로 위험한 야수 정도의 취급인 줄 알았는데, 주변의 반응을 보면 볼수록 이 세상에서 그리폰이라는 존재는 그 이상의 위상을 가진 모양이었다.

        

       눈앞에 사자나 호랑이가 나타난다면 기겁하는 것이 보통이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눈에 동경하는 감정이 담기는 일은 없다. 보통은 그냥 자기가 죽을 것을 두려워하여 거리를 벌리거나 도망가려 들거나, 무기를 들어 위협하거나, 그 야수가 자기한테 달려들기 전에 얼른 제거하려 들겠지.

        

       그러나 나를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위험한 것을 보는 시선과 동시에, 뭔가 동경하는 것 같은 시선이 섞여 있었다.

        

       실비아를 향한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전에 했던 가정에 이어서, 사자나 호랑이를 타는 존재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보통 신기한 시선을 보내거나, 뭐 저런 사람이 있냐면서 감탄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실력 좋은 사육사나 서커스 단원 이상의 취급을 받기는 어렵겠지.

        

       하지만 나의 등에 탄 실비아를 본 이후 사람들이 그 아이를 보는 시선은 그런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마치 신화 속의 인물을 보는 것 같은 경외심이 담긴 눈.

        

       고작 야생동물 등에 탔다고 그런 시선을 받지는 못 하리라.

        

       그러니 그리폰이라는 생물의 위상은 그냥 좀 위험한 야생동물보다는, 환수 취급이라는 것이 옳은 생각이리라.

        

       이런 판타지 세계관에서조차 말이다.

        

       *

        

       이쪽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하나의 통일 정부가 아니라는 것은 알 것 같았다.

        

       한창 날뛰던 와중에는 나를 공격하는 이들에게 똑같이 공격을 퍼부어주느라 잘 몰랐는데, 전투가 끝난 뒤에 그 교회 안에 쓰러진 적들과 나중에 지원하러 온 사람들을 보니 입은 옷이 다 달랐다.

        

       내가 물어볼 방법이 없었으므로, 일단은 대화하는 사람들의 말을 귀동냥으로 들었더니 그 세 개의 세력은 ‘여신교도’, ‘벨부르’, ‘제국’인 모양이다. 여신교는 말 그대로 이름 자체가 여신교인 모양이었다. 사실 이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갇혀있던 놈들이 여신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 정도는 몇 번 들었으니까.

        

       벨부르는 그 여신교도들이 지배하는 법국이라는 곳과 인접한 국가인 모양이고, 제국은 또 그 벨부르와 인접한 국가인 모양이다. 다들 그냥 ‘제국’이라고만 해서 정확한 명칭은 잘 모르겠다. 뭐, 이건 듣다 보면 언젠가 들을 수 있게 되겠지만.

        

       그리고 그 외에, 내가 아주 자주 들은 단어가 하나 있다.

        

       팬그리폰.

        

       이게 대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는데, 나와 실비아가 함께 있을 때는 엄청나게 자주 들었다.

        

       내가 그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가 내 등에 탄 실비아를 본 한 기사가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을 때니, 그 행위 자체와 연관된 말이겠지만……

        

       그리폰 등 위에 올라타는 행위? 그냥 그걸 뜻하는 말인가? 경외심이 담긴 표정을 보면 마냥 그 행위만을 뜻하는 단어는 또 아닌 것 같은데.

        

       흐음.

        

       일단 고민은 뒤로 치워두도록 할까.

        

       바닥에 뭔가 적어볼까 생각도 해봤는데, 생각해보면 나는 이쪽 세계의 문자를 모른다. 괜히 어중간하게 한글을 적었다가 이쪽 세계 사람들이 ‘그리폰의 문자’라느니 하면서 연구하려고 들면 어마어마하게 귀찮아질 게 뻔했다.

        

       겨우 탈출했는데 또 누군가에게 붙잡혀있을 수는 없지. 그럴 깡을 가진 이가 또 어디 있겠냐마는.

        

       *

        

       “…….”

        

       내가 걸을 때는 사람들이 주변에 하나의 원을 형성했다.

        

       나를 감시한다거나, 아니면 호위한다거나 그런 느낌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엄청 위험한 물질에서부터 거리를 두는 사람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원이 형성된 것이리라.

        

       내가 그렇게까지 무서울까?

        

       겉모습은 무섭더라도, 굳이 겁을 주려고 했던 적은 없는데.

        

       물론 피가 질질 흐르는 짐승을 통째로 씹어 삼키곤 하긴 했는데,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만약 구워서 줬다면 나는 그것도 잘 먹었을 테지만, 굳이 생고기를 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실비아는 나를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모양이다.

        

       법국으로부터 기차를 타고 벨부르의 수도, 루테티아라는 곳까지 왔다. 내가 탈출했던 그 성당이 있는 곳이었다.

        

       거기까지 오는 와중에도 팬그리폰이라는 단어의 뜻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지만, 적어도 그 팬그리폰이라는 단어가 제국 황실의 가문명이라는 것은 알아낼 수 있었다.

        

       실비아, 앨리스, 그리고 황제인 아서, 라고 했던가. 그 외에도 그의 아이들이라는 다른 포로들의 풀네임을 부를 때도 ‘팬그리폰’이라는 이름이 딸려 나왔다.

        

       그렇다고 그 이름만으로 “팬그리폰……!”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여전히 좀 너무 과장된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름에 얽힌 신화나 뜻이 또 있는 모양이지.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부를 때마다 그렇게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진 않을 거 아니야.

        

       내 앞을 가는 마차에는 두 황녀가 있었다. 크고 화려한 마차였고, 마치 오픈카처럼 윗부분이 없었다. 아예 뚜껑을 닫는 기능 자체가 없는 것 같다. 아마 이렇게 화창한 날에 쓰라고 만들어진 것이겠지?

        

       산들바람에 검은 단발머리가 부드럽게 흩날렸다.

        

       그런 평화로운, 다소 나른한 분위기에서 두 사람이 탄 마차를 멍하니 따라가고 있는데—

        

       빰—!

        

       깜짝이야!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전혀 그리폰답지 않은 태도로 흠칫 놀라버리고 말았다.

        

       앞발을 번쩍 드는 대참사가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분명 론다리움 안으로 들어가던 나를 보던 사람들이 알아차렸을 정도로 큰 동작이었다.

        

       어마어마하게 큰 나팔 소리.

        

       그 나팔 소리를 묻어버릴 듯한 환호성.

        

       위에서 쏟아지는 작게 자른 색지와 꽃잎.

        

       게다가 루테티아는 특유의 20세기 유럽 도시 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그 분위기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우리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밝았다.

        

       내가 이 세계로 와서 처음 보는 분위기였다.

        

       환영받고 있다. 배척받고 학대하려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잠깐 멈춰서서 주변을 둘러보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앞에서 가던 마차가 멈춰 서 있었다. 조금 앞으로 나아가다가 내가 멈춰 행진이 통째로 멈췄다는 것을 알고 멈춰선 모양이었다.

        

       실비아가 이쪽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팬그리폰이라고 했지?

        

       순간 다소 장난기가 동했다.

        

       실비아는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부터 뭔가 알아차렸는지, 조금 기겁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이미 앞으로 달리고 있었다.

        

       주변에서 비명이 들렸다. 기사들이 당황해서 내 뒤를 따라오는 소리도 들렸다. 저 멀리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이지 않은 모양인지, 여전히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실비아의 뒷덜미를 물어 그대로 들어 올려, 실비아를 내 등에 앉혔다.

        

       주변이 정적에 휩싸였다.

        

       고개를 돌려 실비아 쪽을 보니, 실비아는 얼른 내 등 위에서 제대로 자세를 잡고 앉아 등을 꼿꼿이 세웠다.

        

       그와 동시에, 다시 주변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마차에 혼자 남은 앨리스는 여전히 놀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지만, 나는 당당하게 고개를 세웠다.

        

       그리고 천천히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마차의 뒤를, 위풍당당한 자세로 걸었다.

        

       ……사실 조금 과장된 자세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어떻겠는가. 나는 그리폰을 본 적이 없는걸.

        

       게다가 여기 있는 사람들도 모두 그리폰은 처음 보는 사람들일 거고.

        

       그러니, 당연히 그리폰 걷는 것도 처음 보리라.

        

       내 걷는 자세가 조금 이상해도 알아볼 사람이 없다.

        

       걸으면 걸을수록, 저 멀리 보이는, 지난번에 내가 날아오를 때도 언뜻 보았던 그 궁전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지르는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가슴이 뛰었다.

        

       여기 있는 모두가 나를 환영해주고 있었다.

        

       물론 나 혼자만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나를 미워하고 욕하는 이도 없었고, 가두려 들거나 학대하고 싶어 이를 가는 이도 없었다.

        

       그저, 기쁨의 함성.

        

       이쪽 세상으로 와서 겪은 몇 년간의 부정적인 감정이 아직 다 씻겨 내려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아마 앞으로는 그런 일을 겪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다가, 등에 탄 실비아와 눈이 마주쳤다.

        

       실비아의 눈이 아주 잠깐 나를 노려보았지만, 이내 ‘뭐, 됐다.’ 하는 표정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얘 덕분이지.

        

       처음부터 나를 이용하려고 하지 않았던 얘 덕분이다.

        

       만약 나와 마주했던 그 순간, 그 보석을 부수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 마지막까지 인간들을 증오했을 텐데.

        

       뭐, 좋아.

        

       빚이라면 확실하게 갚아주도록 할까.

        

       갚는 김에 먹을 것도 좀 얻어먹고.

        

       나는 고개를 꼿꼿하게 세우고, 양 날개를 팔짝 펼친 채 위풍당당하게 앞으로 걸었다.

        

       내 날개를 보고 사람들의 환호성이 더 커지는 것을 듣고, 나는 처음으로, 이 세상에 와서 즐겁다고 느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폰 외전은 앞으로도 몇 편 정도 더 이어지고, 그 이후에는 다른 외전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