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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2

    먼 과거, 전 대륙을 휩쓴 거대한 물결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마계와 물질계의 전쟁.

     

    그야말로, 서로의 세계와 명운을 건 대대적인 침략전쟁이었다.

    쇠퇴하여 멸망의 길을 걷기 시작한 마계를 떠나야만 했던 마족들, 그리고 자신의 터전을 지켜야만 했던 물질계의 종족들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한쪽이 반드시 멸망해야만 끝나는 싸움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들에게 ‘공존’이라는 말은 절대 있을 수 없는 말이었다.

    물질계를 이루는 ‘마나’가 그들에게는 독이었으며, 그들의 세계에서 흘러나오는 마기 또한, 물질계의 존재들에게는 치명적이었으므로.

     

    그에 마족들은 그들의 기술을 이용해 차원을 융합하려는 짓을 저질렀다.

    그 영향이 바로 ‘침식현상’이라고 불리우는 혼란이다.

     

    그 영향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터전에서 쫓아내어진 몬스터의 광폭화, 각종 ‘던전’의 형성, 침식에서 시작된 마기로 인한 흉작과 전염병…….

     

    이토록 ‘침식 지역’은 물질계의 존재들에게는 극도로 치명적이었지만, 반대로 마족들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안식처였다.

     

     

    그리고 그 침식현상의 상흔이 가장 깊이 아로새겨진 곳이 바로 이곳.

    5000년 전 마군의 전초기지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루크 이루시가 마계로 향하는 게이트를 열었던 곳.

     

    데이그란트.

     

    도시 형성과 마나생성을 위해 식물이 자라기 어려운 지역을 제외한 육지를 모조리 삼림지역이 되도록 작업을 한 현재까지도, 데이그란트는 여전히 풀 한포기 나지 않는 척박한 암석지대일 뿐이었다.

    물론 이 땅도 그런 전 대륙적인 녹지화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만약에 숲이 들어서기만 한다면 데이그란트의 지리적 위치는 꽤 괜찮은 편이었으니까.

     

    아직까지 정화되지 못한 마기에, 심은 나무마저 죄다 말라비틀어져 버리기에 결국 포기하게 되었을 뿐이지.

     

    그런 사정 탓에, 현재는 마계 연구원이나 역사학자를 제외한 그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고 다가오지 않는 불모지가 된 곳이 바로 이 데이그란트였다.

     

    말 그대로, 버려진 땅.

     

    하지만 지금은 ‘버려진’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모습은 아니다.

     

    마치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깊고 넓게 파고 내려간 구덩이 주변에, 각종 중장비와 시설이 빼곡하게 들어서서 바닥을 파내리며 바위를 부수고 옮기는 공사의 소음이 귀를 먹먹하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장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내려다볼 수 있는 구덩이의 끄트머리.

    한 남성이 간간히 불어오는 모래바람과 날카로운 바람을 온몸을 두르는 검은 로브 한장으로 막으며 중장비로 깎아지른 절벽 끝에 선 채 구덩이의 밑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의 수행원으로 보이는 자가 다가와 만류하기 시작한다.

     

    “마스터, 여기 계시면 위험합니다. 시설로 들어오시지요.”

     

    마치 건강이 걱정스럽다는 듯 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서 몸을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준비는?”

     

    수행원을 향해 고개만을 살짝 움직인 채 그렇게 묻자, 수행원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보고를 시작한다.

     

    “아티팩트는 예정대로 준비가 되었습니다.”

     

    준비가 되었다는 말을 들은 그는, 즉시 한 손을 내밀며 말한다.

     

    “가져와.”

    “지금……. 말입니까?”

    “…….”

     

    수행원은 반사적으로 그의 표정을 읽으려 했으나, 얼굴의 대부분이 로브로 가려진 탓에 표정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반문해도 돌아오는 말이 없다는 것의 의미를 아는 수행원은 즉시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 뜻은 ‘내게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는 의미였으니까.

     

    잠시 후, 수행원이 이번에는 작은 함을 들고서 돌아왔다.

     

    겉으로 보기엔 작은 보석함 정도의 크기에 불과하지만, 몇 중의 보호마법이 걸린 실드케이스.

    옆으로 내밀었던 손에 작은 상자가 올려지는 것을 확인한 그는 상자를 쥔 손을 천천히 자신의 앞으로 가져와, 그 함을 연다.

     

    과연 얼마나 대단하고 섬세한 보석이 담겨져 있길래 그 정도의 보호를 필요로 했던 것일까?

     

    -딸깍.

     

    허나 별다른 동작이 없었음에도, 너무나 손쉽게 함이 열렸다.

    게다가 그렇게 열린 함 안에는 보석은 커녕 평범해 보이는 정이십면체 주사위 하나가 덩그러니 담겨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그 자신이 바라던 것이었다.

     

    샤에흐가 바라던 기적, ‘위시’.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인챈트해 확률을 운명적으로 조작하는 아티팩트.

     

    ‘눈을 속이는 주사위’.

     

    과거 여신과 함께 실전된 9서클의 대마법이, 현대 마법이론과 기술력으로 복원된 물건이다.

    연구실에서 실험적으로 만들어진 것 치고는 정말이지 대단한 완성도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주사위를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던 그는, 수행원에게 툭 던지듯 명령했다.

     

    “이제 가봐.”

    “허억, 헉. 예!”

     

    간이 시설까지 단거리 육상을 한 수행원은 거친 숨소리와 함께 대답한 뒤 다시 빠르게 자리에서 벗어나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게 필요했으면 처음부터 가져오라고 명령하면 좋았을 텐데.

    혹시 일부러 자신을 괴롭히려고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것이 자신의 일인 것을.

     

     

    수행원이 그렇게 자리를 비우는 것을 확인한 그는, 주사위를 꺼내 햇빛에 비춰보며 웃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하나 걸리는 점만 뺀다면 말이다.

     

    ‘루크 이루시라…….’

     

    이것의 토대가 되는 이론을 증명하고 응용할 수 있게 만든 장본인의 정보를 알 수 없었다.

    그는 그 이론을 정립한 존재를 포섭하고 싶었다.

    분명히 자신의 목적에 도움이 될 테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정보가 없었다.

     

    그나마 한가지, 알아낸 것이 ‘루크 이루시’라는 이름.

     

    ‘루크’가 흔한 이름이기도 한 데다 ‘이루시’라는 성도 찾아보면 은근히 있는 편에 속한다고는 한다만, 그 둘을 합친 이름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때문에 ‘루크 이루시’라는 이름을 지닌 사람들을 모조리 찾아내는 작업은 사실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가 찾아낸 ‘루크 이루시’들은 그런 대업이 가능할 만한 경력을 지닌 사람이 없었다.

     

    하나같이 어딘가의 농부, 혹은 은행원, 혹은 아카데미를 다니는 여학생이었다.

    허, 그나저나 여자아이의 이름으로 ‘루크 이루시’라니?

    정말 이상한 작명센스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름이 ‘루크 리스핀드 게네퍼 이루시’인 것으로 보아 부모와 아이가 함께 특이한 취향이었던 모양이다.

     

    ‘……가명이라도 쓴 것인가.’

     

    아무래도 석연치 않았다.

    뭔가 그 이름이 자신의 계획에 방해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할까.

     

    ‘뭐, 지금 그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지만.’

     

    그래, 그건 아무래도 좋다.

    지금은, 5000년 전에 꼬여버린 자신과 세계의 운명을 뒤집을 때니까.

     

    ———

     

    “으윽. 역시 무리였나…….”

     

    루크의 안색은 그리 좋지 못했다.

    그 이유는 바로, 케일라가 충동적으로 저지른 ‘사고’때문이었다.

     

    타피오카 밀크 티.

     

    그건 차도 아니고, 밀크티는 더더욱 아니다.

    애초에 음료라고 불러도 괜찮을지도 의문이다.

    그런데, 루크는 그것을 제대로 된 음료로 재탄생시켜야 했다.

    왜냐하면, 루크가 잘만 만들어낸다면 케일라가 그 레시피를 아주 비싼 값에 구매할 수 있다고 제안했기 때문이었다.

     

    ‘지적 재산권’이라고 했던가?

    케일라가 제안한 금액은 루크에게도 구미가 당길 수 밖에 없을 정도로 큰 돈이었다.

    게다가 ‘로열티’라는 개념으로 어떤 노동도 없이 가만히 있어도 돈을 지급해 준다니!

     

    루크는 그동안 레시피 자체가 그토록 큰 돈이 될 거라고는 사실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야 그럴게, 과거에는 레시피 자체를 사고파는 문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상단과 꾸준한 거래를 위해서는 레시피를 숨기고 더 비싼 값의 완제품만 판매하는 것이 당시에는 현명한 방법이었다.

     

    이렇게 유통업이 발달하기 이전의 과거에는 어차피 만들고 싶어도 재료를 구하기 어려워서 못 만드는 경우가 태반이었으므로, 레시피를 알아도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만드는 법만 안다면 주변에 넘쳐나는 상점에서 재료를 구매해서 집에서도 손쉽게 모든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대다.

    그야말로 대량 생산, 대량 유통의 시대.

    그만큼 ‘아는 것’이 중요해졌고, 자연스레 지식이 곧 힘이 되어버린 상황.

     

    그리고 그런 세월의 변화를, 루크는 ‘지적 재산권’이라는 단어에서 실감하게 됐다.

     

    ‘그래서, 할 수 있을까?’

    ‘그래! 내 책임지고 그 레시피를 개량해서 엄청난 음료를 만들어보도록 하지!’

     

    그래서 케일라의 제안에 응했다.

    타피오카를 넣어 식감을 살리면서도 차 본연의 맛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맛있는 음료의 레시피를 만드는 것 정도는 아주 쉬울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오산이었다.

     

    “으윽, 속이 안좋군…….”

    뭐가 잘못된 걸까.

    혹시 5번째 조합에서 자칫하면 배탈을 일으킬 수 있는 약초가 잘못되었던 걸까?

    아니면 9번째 조합에서 타피오카의 맛을 조금 더 낫게 하려고 추가한 약초가 문제였나?

     

    이상하다, 분명 독성은 모두 제거한 안전한 찻잎이었을 텐데.

    그것도 아니면…….

     

    “…….”

     

    다른 곳에서 이유를 찾던 루크는, 이내 포기하고 현실을 직시하기로 했다.

    사실 이유는 명확하니까.

     

    차의 샘플을 너무 많이 마셨다.

     

    아무리 루크가 다른 사람들보다 배 이상 먹을 수 있는 넉넉한 위장을 가졌다고 해도, 과식은 과식.

    일단 루크도 물리적인 법칙 아래에 놓인 생물인 이상 위장에 한계가 있는 법이었고, 도를 넘은 음식물의 섭취는 이런 결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그 때였다.

     

    “!”

     

    갑자기 오한이 들기 시작했다.

     

    찬 물을 뒤집어 쓴, 그런 느낌이었다.

    루크는 다리의 힘이 풀리려는 것을 테이블에 기대어 간신히 버텼다.

    이건 독의 작용은 아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었다.

    그동안 테스트를 한다고 엄청난 양의 밀크티를 마셨으니, 그야 당연한 일.

    집중에 방해가 된다고 미루던 생리현상이, 뒤늦게 파도가 되어 덮쳐온 것이다.

     

    정말이지 꼴사나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은 수업 시간이라 동아리실에 자신밖에 없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랄까.

     

    “으윽, 화장실…….”

     

    루크는 벽을 짚으며 천천히 일어나 동아리실의 문을 열었다.

    정말 루크에게 다행인 사실은, 동아리실 근처에 화장실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곧 루크는 화장실 앞에 걸린 팻말에 절망했다.

     

    -공사중.

     

     

     

    “어째서!”

     

    불행은 겹쳐 일어난다고 했던가?

    아무래도 그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분명 운이 좋은 줄 알았거늘……!’

     

    그릇인 자신에게 여신의 잔재가 남긴 축복 때문이든, 아니면 다른 요인 때문이든, 자신은 분명 운이 좋았다.

    그런데 대체 지금 이 상황은 뭔가?

    평소 운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 때문에 ‘행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루크였지만, 지금 이 때 만큼은 그 ‘행운’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축제를 앞두고 아카데미에서 가장 노후된 화장실인 별관 화장실을 보수하는 거라면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으나, 하필 루크가 드물게 일을 참다 사단이 난 그 불행한 날에, 화장실을 공사한다는 불행이 겹치다니!

     

     

    “허윽…….”

     

    루크의 안색이 더욱 파리해졌다.

     

    ‘그, 그럼 빨리 다른 층의 화장실을…….’

     

    루크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바로하고 몸을 일으켰다.

     

    아무리 자신이 곧 아카데미를 졸업한다고 해도, 복도에서 볼일을 본 녀석이라는 칭호는 절대 달갑지 않았다.

    뭐어, 그런 소문이 퍼진다면 남성들이 꼬이지 않는 데에 도움은 되겠지만, 자신의 명성과 가치를 크게 훼손하겠지.

     

    그 때였다.

     

    “루크, 안녕!! 나, 너 도와주려고 땡땡이 쳤어! 근데 왜 밖에서 그러고 있어?”

    “케, 케일라?”

     

    루크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케일라였다.

    원래는 수업이 있지만, 루크의 레시피 제작을 돕기 위해 땡땡이를 친 모양이었다.

    게다가 그냥 빈손으로 온 것도 아니고, 자기 나름대로 생각한 아이디어를 적은 노트도 양손으로 쥐고 있다.

     

    그건 평소라면 고마워했을 일이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나빴다.

     

    점차 해일이 몰려오는 오는 것을 느낀 루크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케일라를 밀쳤다.

     

    -탁!

     

    “비키게!”

    “으앗!”

     

    루크의 힘에 의해 밀쳐친 케일라는 속절없이 넘어지며 노트를 바닥에 흩뿌렸다.

    그에 케일라는 화난 듯 외쳤다.

     

    “갑자기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야! 나 꼬리 찧을 뻔 했잖아!”

     

    루크는 그런 케일라의 원망을 뒤로하고 냅다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타다다닥!

     

    “미안한데,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지금은 좀……!”

    “어, 어?”

     

    케일라는 루크가 배를 부여잡고 계단을 조심스레 오르는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 저거 그건가 보네.’

    그런거라면 어쩔 수 없지.

    축제 당일에는 나아지길 비는 수 밖에.

    그나저나, 10살 부터 저러면 되게 싫기는 하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루크의 행운버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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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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