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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2

        

         

       대한민국은 마치 폭풍이 오기 직전과 같았다.

       겉으로는 고요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했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언제든 폭발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국민.

       방송국.

       한국 정부.

       일본 정부.

         

       그 모두의 불만과 불안이 한데 엮이고 이리저리 뒤섞이며 기묘한 균형을 만들어냈다.

       작은 충격만 있으면 폭발해버릴 아찔한 균형을 말이다.

       외부에서 약간의 충격만 생기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며 사방으로 파편을 퍼뜨리며 터져나가게 될 것이고, 그 주위에 있는 사람은 피를 흘리고 비명을 지르는 혼돈의 장이 펼쳐지게 되겠지.

         

       그리고 균형을 깨뜨릴 망치는 준비가 되어있었다.

       아니, 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제순이라는 기자 한 명.

       신입치고는 재능이 뛰어나 대두되고 있기는 하지만, 원로 기자나 권력자에 비하면 한없이 모자라기 짝이 없는 미약한 존재.

       그런 기자가 손에 폭탄의 격발 스위치를 쥐고 있다는 것을 누가 믿을 수 있을까?

         

       게다가 그 폭발에 자신이 휘말릴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가능성은 아예 떠올리지도 못할 정도로 시야가 좁다고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굶주린 자에게는 보석이니 비단으로 만든 옷이니 하는 것보다는 음식이 더 가치가 있는 법.

       이제순은 수많은 나날을 굶주렸던 사람처럼 위로 올라가는 것을,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만을 욕망하고 있었다. 그 태도는 맹목적인 것을 넘어 광신의 영역에 가까웠다.

         

       하나의 목표에 눈이 완전히 멀어버린 상태.

       그리고 그 근간에는 주물이 있었다.

         

       그가 ‘직접’ 얻어낸 소중한 주물이 말이다.

         

       그 주물에 대한 믿음이 있는 한, 주물이 주는 정보로 승승장구를 계속하는 한 계속해서 성공할 것이라는 절대적인 믿음이 있는 한 그의 광기는 꺼지지 않으리라.

         

       그리고 그 광기는 점차 커질 것이고, 마침내 망치가 되어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는 균형을 후려쳐서 깨뜨려버리게 되리라. 후환이니 뭐니 하는 것은 걱정하지 않은 채, 오직 자신의 이득만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 행태는 분명히 어리석다 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욕망에 눈이 멀어 파멸로 나아가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요, 유구한 역사였으니 어찌하겠는가.

         

       그렇게 대한민국은 언제든 불이 붙을 준비가 된 화약고처럼 위태롭고 위험한 상황에 놓인 채, 고요하게 끓어올랐다.

         

       마치 태풍이 오기 전처럼.

       불길할 정도로 고요하게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불길함은 수면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는 말과 같다.

         

       그렇기에 대한민국 대부분은 평화로웠다.

       위태로움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평화를 한없이 만끽하고 있는 곳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학교였다.

         

       서울 이능 특성화 고등학교는 평화로웠다.

         

       그것도 모든 곳이 말이다.

         

       무인이 모여있는 건물에서는 언제나 그렇듯 곡소리와 훈련하는 소리가 흘러나왔고, 건물 어디에서나 짙은 땀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체력단련실에서는 3대 운동을 몇 치는지 내기하거나, 근손실을 걱정하는 헬스 중독자들이 기구가 빨리 자리가 비기를 기원하며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러시아처럼 서로를 마주 보고 서서 교대로 뺨을 때리면서 먼저 기절하는 사람이 지는 것이라는 무식한 내기를 하지도 않았고,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서 땀을 더 빼야 운동 효율이 높아진다면서 운동 한 세트를 할 때마다 보드카를 한 잔씩 마시지도 않았다.

         

       아주 건전한 면학 분위기였다.

         

       마법사들이 모여있는 곳은 더더욱 평화로웠다.

       모두가 눈 아래에 짙은 다크 서클을 달고 다녔고, 커피와 에너지 음료에 찌들어서 좀비처럼 걸어 다니고 있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사람 허리까지 쌓아 올릴 수 있을 정도의 공부량과 과제에 허덕이면서 밤을 새우면서 신경질적으로 변해있었으며, 연애같은 풋풋한 학창 시절의 추억은 내다 버리고 마도 과학의 ‘기초’를 위해서 뼈를 갈고 잠을 줄여가며 힘을 쓰고 있었다.

         

       참으로 흐뭇한 광경이지 않은가.

         

       다른 곳?

       평범했다.

         

       소환사들이 있는 곳은 소환수끼리 쌈박질이 붙어서 난리를 피우기도 하고, 갑자기 발작 버튼이라도 눌린 것처럼 소환수가 날뛰면서 깽판을 치기도 하고, 소환수끼리 눈이 맞아서 미성년자들이 가득한 곳에서 동물의 왕국 생명의 신비 편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보여주기도 했으며, 자기 소환수가 최고로 귀엽고 멋지다면서 자랑하다가 싸움이 나서 소환사들끼리 멱살을 잡고 싸우다가 학주한테 얻어터지고 끌려가기도 했다.

         

       학교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상 그 자체였다.

         

       그렇게 학교는 아주 평화로웠다.

         

       정말로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평화를 만끽하는 사람 중에서도 더더욱 평화로운 사람들이 있었다.

       평화롭지만 더더욱 격렬하고 완벽하게 평화로움을 만끽해야겠다며 몸부림치는 듯, 아주 유별나게 평온을 만끽하고 있는 사람들이 말이다.

         

       아나스타시아와 엘라, 이세린과 이아린.

       이렇게 넷으로 이루어진 무리였다.

         

       넷은 학교 한쪽에 자리를 잡은 채 꿀 같은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체육 시간에 주어지는 자유시간에 으슥한 곳으로 이동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증거로 넷은 움직이기 편한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체육 시간에 주어진 자유시간을 만끽하는 것치고는, 넷은 그 자유를 너무 격렬하게 만끽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그들이 있는 장소였다.

       넷은 운동장의 구석진 곳에 있는 커다란 나무를 아지트로 삼고 있었는데, 운동장 전체에 깔린 천연 잔디 때문인지 마치 소풍을 온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게다가 휴식을 더 편안하게 취하기 위함인지 나무와 나무 사이에 해먹을 걸어놓기까지 했다.

         

       게다가 그 해먹이라는 것이 참으로 절묘한 위치에 있었다.

       거의 나무의 꼭대기에 걸려있었다.

         

       너무 높은 위치에 있는 나머지 학생들에게는 ‘굳이 저기까지 올라가서 저걸 이용해야 하나?’,’ 너무 높아서 무서운데.’라고 생각하게 했으며, 선생들에게는 ‘어차피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아무도 이용 안 하는 거 같은데 귀찮게 올라가서 걷어낼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위치였다.

       그 덕분에 해먹은 그 누구의 견제도, 무단 이용도 받지 않은 채 한 여자의 전용 자리가 되어있었다.

         

       러시아에서는 퓨마라고 불렸으며, 한국에서는 야성과 본능이 강한 무인들 사이에서도 ‘쟤는 무공 때문에 짐승 같은 게 아니다. 짐승 같은 인간이 무공을 익혀서 사람처럼 된 것이다.’라는 평가를 듣고 있는 여자, 이아린의 것으로 말이다.

         

       흔들흔들.

         

       이아린은 높은 위치에 걸려있는 해먹에서 아주 편안한 자세로 누워있었다.

       그녀는 그늘이 만드는 잠자리에 들기 딱 좋은 온도 아래에서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를 자장가로 삼아서 눈을 감고 있었다. 해먹은 마치 요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좌우로 천천히 흔들렸으며, 얇은 무릎 이불을 배에 걸친 채 그렇게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렇게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그녀의 아래로는 세 사람이 있었다.

         

       그 세 사람도 범상치 않았다.

         

       아나스타시아는 나무의 중간 부분쯤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나뭇가지나 해먹 같은 것에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이상한 생물의 위에 앉아있었다. 마치 기다란 고무천을 늘여놓은 것처럼 생긴 그것은 나뭇가지 곳곳에 촉수를 뻗어 휘감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트램펄린을 보는 것 같았다.

         

       트램펄린에 쓰는 매트보다 훨씬 두껍고, 인형에 붙일법한 장난감 눈을 수십 배 확대한 것 같은 안구가 몸통 곳곳에 붙은 채 껌뻑거리고 있지만 않았다면 진짜로 매트라고 생각했어도 이상하지 않았으리라.

         

       아나스타시아는 눈을 수십 개나 가지고 있는 데다가, 실시간으로 ‘나는 살아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계속 눈을 깜빡거리고 있는 그 기괴한 무언가의 위에 앉은 채 편안한 자세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푹신해 보이는 빈백 소파…처럼 보이는 뭔가 기괴한 물건에 몸을 기댄 채, 매트로 사용하고 있는 기괴한 생물체가 만들어낸 촉수 위에 스마트폰을 얹어놓은 채 열심히 동영상을 관람하거나, 인터넷을 검색해서 재미있는 것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이세린과 엘라는 잔디 위에 의자를 만들어내서 위에 앉아 있었다.

       엘라는 위치크래프트를 이용해 식물들을 엮어서 그네 의자를 만들어 그 위에 앉아 있었고, 그늘 속에서도 반짝반짝 RGB 색상의 빛을 발하고 있는 오목눈이를 꼭 끌어안은 채 천천히 앞뒤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세린이 모래를 이용해 만든 의자에 앉아있었는데, 그 의자는 분명히 모래로 만들었음에도 폭신한 메모리폼 같은 느낌을 주었으며, 아주 아늑하게 이세린을 감싸 안아주고 있었다.

         

       마치 안마의자처럼 말이다.

         

       그렇게 넷은 편안하게.

       정말로 소풍이라도 나온 것처럼 자유시간을 한껏 만끽하고 있었다.

         

       하지만 말없이 고요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스마트폰을 가지고 노는 것이 질린 것인지, 나무 위에 있는 아나스타시아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말이에요. 은인- 진성 박은, 지금쯤 방송을 촬영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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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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