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42

        

         “!! 용의자 탈출…! 불법 개조기기 이용, 혹은 락다운 모듈에 결함이 발견되었거나 신규 기술을 개발하여 대항력을 확보한 것으로 사료됨! 신병 재구속 실시, 절대 빠져나가게 두지 마라!”

         

         “예비 부대원 전원, 각자 역할을 잊지 마라! 저렇게 특징적인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다면 내부 서버에 무조건 흔적이 남았을 거다…!!”

         

         오호라, 겉으로는 허접한 선동가니 볼품없는 테러리스트니 폄훼하면서 실은 엘리시움 내부자 소행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저 내부 서버 얘기가 딥 웹 전체를 다 뒤지겠다든가 하는 현실성 없는 소리와는 거리가 멀 테니까.

         

         하긴 다른 유저들만큼이나 저들도 해킹잘모름을 연구했을 터,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열어두고 체포하러 온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긴 하지.

         

         그러나 정작 당사자가 빠져나갈 생각이 없다는 점에서, 저들이 급하게 구는 건 온갖 휴먼 에러를 야기하는 자충수에 가까웠다.

         

         에이, 아직은 안 도망가지. 적어도 밑밥은 다 깔아놓고 퇴근할 거랍니다? 물론 내가 힌트 같은 걸 뿌리다가 망하는 악당도 아니고, 그런 걸 구태여 알려주진 않을 거지만.

         

         파츠츳, 지지직—!!

         철컹. 철컥!

         

         눈앞에서 락다운 모듈이 산산조각나는 걸 봤다 한들 도주 경로를 풀어둘 수는 없기 때문인지, 이번에는 자신들까지 휘말려 드는 범위에 대규모 구속 필드가 펼쳐졌다.

         

         그리고 예의 없게 자기소개를 꿋꿋이 안 하는 탓에 센트리 팀이라 추측만 하고 있는 괴한들이 허공에서 잡아 뽑듯 꺼내든 건… 뭐야, 총? 더 정확히는 기동력에 이점을 주는 총길이가 짧은 불펍식(Bullpup; 기관부가 방아쇠 뒤에 위치한 총) 어썰트 라이플.

         

         지금도 방아쇠에 손가락 올라간 채 장전된 총구를 보면,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와서 가슴 쪽이 두근거리긴 하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실제로 일어났을 때 얘기지 이런 착각의 여지조차 없는 VR 세상에서 웬?

         

         “저기, 우리 친구들? 형님들?? 이런 싸움 경험이 없는 건 아니지만, 컴퓨터 앞에 앉은 것도… 다이브 상태도 아닌. 이런 애매한 환경은 어느 장단에 맞춰서 싸워야 할지를 잘 모르….”

         

         탕! 타다당!! 드가가가각—!!!

         

         “……그래, 사람 무안하게 계속 그러던가 씨발. 나랑 말 섞는 게 싫으면 그냥 몸으로 맞아가며 찬찬히 알아내지 뭐.”

         

         면피용으로 뒤집어쓴 가짜 아바타…라고는 해도, 미리 해둔 간섭 차단 설정이 무색하게 난도질당하고 바람구멍이 송송 뚫리며 그 충격으로 몸이 흔들리는 건 영 기분이 좋지 못했다.

         

         선글라스로 가려진 탓에 흔히 마음의 창이라 하는 눈동자가 안 보인다 하나, 인간 아닌 걸 보듯이 경계심을 끌어올린 건 손에 잡힐 듯 보였으니까.

         

         또 고통은 없을뿐더러 미묘한 세기로 진동만 약간씩 피드백 되었다지만 졸지에 범죄 시뮬레이션 주인공이 되어 사살당하는 경험은 좀….

         

         ……아니지? 단순 시뮬레이션 같은 게 아니라 엄연히 현장에서 적발된 현행범이 맞구나 나?

         

         – 효과 범위를 제한하는 타게팅 관련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것도 능숙하고, 작동 원리도 사용자가 인지하기 쉬운 소총 화기 형태로 띄게 렌더링했군요. 탄환 쪽이 외려 악성 코드를 내포한 유독성 공격에 가깝습니다. –

         

         ‘그런 식으로 따지고 들자면, 맞아서 뒤지게 아픈 주체가 총알인 건 현실도 마찬가지 아니야? 음, 그래도 대충은 알겠어.’

         

         치장 아바타 데이터는 파손되어 뻥 뚫린 구멍이 났어도. 그 밑에 맹렬하게 작동 중인 탓인지, 공식적으로 등록이 안 된 소프트웨어라 그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검은 연기 같은 형상을 띤 나와 제로만의 방탄복, 그라운드 제로 프로토타입의 방화벽은 완전 멀쩡했다.

         

         뭐, 무슨 공격이든 다 받아주면서 견뎌낼 것처럼 굴어놓고 치사하게 몰래 백신을 켰다고?

         

         에이~ 아무리 그래도 맨몸으로 프로 엘리트 집단의 해킹에 정면 노출되는 건 자신감이 아니라 객기에 가깝지. 미처 틀어막지 못한 빈틈으로 내 사이버웨어 정보라도 흘러 나가면 어떡해?

         

         어쨌든 막 상상력을 발휘하는 대로 원하는 구도를 만들 수 있는 편리한 싸움법은 아니고, 미리 준비한 수단을 바탕으로 효율적인 전투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렸다.

         

         [ script Parite : 웹 엔진에서 가동된 고위험 감염성 코드가 VR 환경 데이터로 위장하여 침투하려 했으나 실패하였…. ]

         [ 원 게시자 MyLittleDoom.exe로부터 시행된 서비스 거부 공격(Denial-of-Service, DoS attack)에 사이버웨어 처리량 폭증 및 시스템 리소스 감소 확인, 성능 저하 방지를 위해 무의미한 외부 데이터 패킷 차단 개시. ]

         [ Barisada.E라 명명된 웜 바이러스의 마스터 부트 레코드(MBR) 정보 오염 시도 탐지. 접근 경로 해석 중…. 종료, 패턴화 작업 돌입. ]

         [ 다변성 지능형 지속 위협(APT; Advanced Persistent Threat) 감지 신호 분류 중…. ]

         

         적대 주체를 숨길 이유가 없는 만큼,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기능 장애를 초래한다는 게 존나 무섭지만… 지금은 그런 점에 감탄하고 앉아있을 때가 아니다.

         

         눈앞을 가득 메우는 바로 이게 또 한 가지, 가상 현실이기에 발생하는 중대한 차이점.

         

         방탄복에 막힌 탄종이나 적이 쓰는 무기군을 알았다 쳐도 염두에 두고 싸우는 것 외의 대응책이 없는 실제와는 달리, 여기서는 이 사소한 정보 우위를 즉석에서 막대한 이점으로 써먹을 수 있다는 거다.

         

         날아드는 모든 변조 코드 및 간섭 시도에 대해 간단하게 ‘네, 반사요~’ 이러고 튕겨내 버릴 수 있다면 참 간단하겠지만, 실제론 순간적으로 처리하는 역설계 공정으로 인해 머리가 뜨끈해지고 뇌가 근질근질해지는 경우가 대부분.

         

         숫제 요새화하는데 성공한 백신이 데미지 입는 것 자체는 막아주더라도, 다짜고짜 그걸 이용해서 맞춤형 공세에 나서버리면 신나게 쏠 때는 재밌을지언정 두통이나 불면증 같은 후유증에 곧잘 시달리곤 했다.

         

         내 기술력이 아무리 상대적으로 우월하다 한들 해커 간의 정보전-진검승부-에서 연산 처리 속도가 적을 따라잡을 수 있느냐, 또 한계 효용 메모리가 어디까지 견디느냐는 절대적인 명제라는 셈이지.

         

         그래서 저 많은 전문가들이 막대한 수입을 첨단 장비나 최신 소프트웨어에 재투자해가며 숫자의 폭력을 극복하려던 건데….

         

         “…어때, 혹시 많이 힘들어?”

         

         – 전체 코어에서의 프로세서 이용률 합산 2.37%, 활성 프로세스에서 사용 중인 실 메모리 1.68%. 오버클럭은 아직 대기 중입니다. 각각 1%만큼의 리소스는 엘리시움 측에 사출한 네트워크 바이러스 수집에 할당 중이므로 여유롭습니다. –

         

         “좋아, 수집은 이만 중단해. 도중에 탄이 모자라면 내가 즉석에서 만들어내서라도 퍼부을 테니까.”

         

         속삭이는 작전 회의는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 관계로 짧게.

         

         현란한 불꽃과 조각난 파편으로 눈을 현혹하는 시야 데이터 따위가 아닌, 어렴풋한 끈만 남아있는 현실의 감각에 집중하면, 아까부터 내 양손을 부드럽게 감싼 드로이드의 서늘한 감촉과 든든한 경도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 이게 무슨 소년 만화도 아닐진대 근질근질한 우정이니~ 동료애의 힘이니~ 같은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고자 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저 두 상위 개체를 잇는 강고한 접속 라인이 이미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전해주려 한 것뿐이지.

         

         거들먹거릴 것도 없겠다. 후딱 이해하기 쉽도록 온라인 게임 계정에 한 번 비유해볼까?

         

         요란한 연설을 할 때도 그렇고, 얻어맞느라 바쁜 지금도 그렇고. 이 아바타의 조종자에 한정해서 본주인 나는 인간의 두뇌를 컴퓨터처럼 쓰는 초상 능력자, 부주인 제로는 꾸준히 부품을 사서 자가 업그레이드를 계속해온 초인공지능.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인공두뇌학)라는 협소한 분야에 한정해서 이렇게 효율에 미친 듀오가 세상에 또 있겠나? 객관적으로 봐도 각자의 탄생 배경이 비정상적인데?

         

         그야 민간과 블랙 마켓에서 구한 물건들로 엘리시움이 굴리는 슈퍼 컴퓨터와 최첨단 장비, 고가의 임플란트를 박은 특수 부대원 전체와 맞붙기는 힘들겠지.

         

         그렇지만 엘리시움 본사는 저기 다른 메트로폴리스에 있고, 회사라는 게 다른 업무에 매달리는 인력도 한둘이 아닌 만큼. 전력 투사도 아닌 이런 소규모 교전에서 정확한 파워 레벨을 알아차리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우리’를 이기려면 애 좀 먹을 거다…!!

         

         “……아니, 뭐?”

         “씨발, 저게 무슨…?”

         

         위잉…!

         

         극적 효과를 가미하기 위해.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끝내고 저장한 바이러스 대신 몸에 박힌 악성 코드들의 제어권을 강제로 빼앗아 공중에 띄우고 거꾸로 겨누자, 관중들로부터 말 그대로 좋아 죽는 소리가 났다.

         

         느긋하게 있을 때가 전혀 아니거늘, 별다른 악영향이 없어 보이는 내 모습이 충격이긴 했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받은 걸 그대로 돌려주고 대응을 관찰하면, 저들이 준비해둔 모범 방어법이나 올바른 가상 현실 전투 방식도 흡수해가며 길게 싸울 수 있으리라.

         

         그리고 연산만 제대로 한다면 굳이 손가락을 직접 걸칠 것없이 방아쇠를 당기기만 해도 되니, 금지당한 자기력 조종 능력자 흉내의 한을 풀 듯 제로의 메모리가 여유로운 한도 내에서 공중에 총과 중화기를 마구마구 로딩하기까지.

         

         “그렇게도 날 잡고 싶으면, 방금 그거의 백 배는 가져와야 거야. 센트리 팀 나으리들—!!”

         

         호기로운 대사와 함께, 저들이 쓰는 서버와 게이트웨이를 몽땅 터트릴 각오로 데이터 수식으로 이루어진 화력전의 포문을 열었다.

         

         어디, 아바타에 꽂힌 악성 코드와 물밑으로 은밀하게 날아든 해킹 시도를 다 개별 타격이라 치면 얼추 6, 7천대쯤 맞았나? 잠깐 사이에 사람을 아주 표적지 마냥 두들겨?

         

         만약 일반인이었다면 스크립트가 작동하기도 전에 사이버웨어 오작동으로 뇌가 녹아내렸을지도 모르는 수준의 과부하를 걸어주셨구만.

         

         허면 저쪽은 딱 봐도 인원수만 수십이 가뿐히 넘어가는 데다가, 안티 바이러스 프로그램이 자체적으로 막아내고 보조 AI가 서포트하며 백업 컴퓨터 같은 게 대신 받아내는 것도 계산하면 대강… 어….

         

         저기… 제로? 미안한데 알아서 힘 조절 좀 해 줄래?

         

         충분히 강력해서 증원을 더 불러야겠다는 마음은 들지만, 즉각적인 사망자는 나오지 않는 수준으로?

         

         이 공간 자체가 무분별한 데이터 확산이 일어날 수 있는 네트워크인데, 괜히 내가 초장부터 신규 바이러스를 제조했다가 방어 관통이라도 터져서 2차 불가사리 사태가 일어나면 좀 곤란하잖아.

         

         – 확인했습니다. 대 엘리시움 인터셉트 프로젝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가동. 초탄初彈, 총 173,652,874종의 멀웨어를 압축한 초고용량 더티 밤 일발 장전. 현재 정면에 있는 특작부대의 플러그인을 통해 엘리시움 네오 헤이븐 지사 네트워크에 투하합니다. –

         

         “어.”

         

         ————!!! 삐이이이—…….

         

         그건 약간 오버킬이 아니냐고 미처 만류할 틈도 없었다.

         

         폭음, 섬광. 그리고 흡사 분진처럼 흩날리는 조각난 VR 데이터들과 왠지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재생되는 이명.

         

         정렬, 조준, 발포. 서로 한 번씩 주고받았다…고 표현하기도 민망하게, 무수한 총구가 일시에 불을 뿜은 결과 방금 전까지 막 탄도 방패 비슷한 물건에 숨은 사람들이 우글우글하던 일면이 그대로 쓸려 나갔다.

         

         피와 내장이 쏟아지는 일은 당연히 없었지만, 대신 으스러진 딥 웹 데이터와 센트리 팀의 아바타 파편이 뒤섞인 풍경은 여러모로 살벌하기 그지없네요. 허어.

         

         …십, 안 되는데? 이대로 해킹잘모름의 분탕을 억제할 별동대가 사라져버리면 내 완벽한 알리바이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고!

         

         “크윽, 크헉! 크어어억…!!”

         “씨이…팔! 방금 눈앞이 하얘졌는데 이게 대체 뭔….”

         

         ‘오…?’

         

         어떻게, 간절한 마음의 응원이 조금은 도움이 된 걸까.

         

         몇 초 지나지 않아 화면을 되감기 하듯, 거의 분해되었던 요원들이 하나둘 다시 원래 형태를 되찾았으며.

         마치 벌집을 들쑤신 것처럼 외형은 비슷하지만 더 질 좋은 프로그램으로 무장한 요원들이 빛무리와 함께 마구 넘어오기 시작했으니.

         

         과연 제로의 판단이 맞았다. 여태까지 싸워본 상대와는 체급이 다르네. 와우.

         

         예전 엑사테크 내전 의뢰 비스무리한 게 연구소 지부 하나의 병력을 상대한 것이었다면, 이들은 소대 규모의 특수 부대여도 엘리시움 지사와 본사의 가상 리소스를 얼마든지 끌어올 수 있는 호스를 장착한 잠수부.

         

         다른 말로, 그걸 일부러 안 자른 채 장기전으로 가면, 오래오래 괴롭히면서 어그로를 끌 수 있다는 뜻이고!

         

         이야… 부족했던 실전 데이터는 오늘 아주 원 없이 얻겠네 이거~

         

         …….

         

         로그아웃 불가 대책은 대강 마련했으니까, 일단 추적 방지에 존나 신경 쓰면서 싸우자.

         

         나, 이렇게까지 시비 걸어놓고 실수로 누구인지 특정 당하면 평생 어디 사막으로 도망쳐서 숨어살아야 할지도 몰라. 진짜 농담없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올해의 사이버 전범 : 해킹잘모름

    익명을 희망하시는 독자님의 105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무려 후원 개인 메시지 시스템이 돌아왔다고 하시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매번 후원 감사 인사를 드릴 때마다, 열심히 그 의미를 추측해서 적는데 혹시라도 너무 성의 없다고 느끼실까 봐 내심 식은땀이 줄줄 났거든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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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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