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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2

     까악, 까ㅡ악.

     

     노을진 하늘에 까마귀가 날아다니며 시끄럽게 울어댄다.

     합스베르크 황제는 하나의 문을 앞에 둔 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폐하…!”

     등 뒤에 따라붙은 제국의 기사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드디어, 이 문만 연다면…!”

     “이 앞, 노스트럼이 있다.”

     제 3관문.

     제국 역사에 이곳까지 밀고 들어왔던 적은 있었으나, 협곡을 지키는 지브롤터가 목숨을 걸고 지켜냈던 마지막 관문에서 적을 쫓아낸 역사는 한 번도 없었다.

     “황제께서, 지브롤터 협곡을 뚫어내신 겁니다! 황제 폐하의 무력으로!”

     최초였다.

     500년만에 일어난 최초.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돌아가신 선황 폐하께서도 크게 기뻐하실 겁니다!”

     “선황 폐하께서, 말이지.”

     “예…!”

     “테르시안 제국의 기쁨이 아닐 수 없겠어.”

     황제는 무미건조하게 말하며, 어깨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검상을 손으로 억눌렀다.

     “자네는 기쁜가?”

     “예?”

     “기쁘냔 말일세.”

     “그, 그건….”

     “제국의 일곱 소드 마스터가 모두 ‘기꺼이’ 희생을 하고, 황제가 이렇게 전신에 피를 흘리며 상처를 입고 나서야 얻어낸 승리. 전리품이 있다면 이 협곡의 관문 뿐.”

     “…….”

     기사는 뒤로 고개를 돌렸다.

     황제와 후작의 전투가 있었던 곳에 흥건하게 뿌려져있던 피는 어느새 정리되어 있었다.

     “승리가 개운하지 않군.”

     그걸 수습한 건 다름아닌 황제 본인.

     

     “이걸 돌려줄 때는, 완벽한 적이 되어버리는 건가.”

     황제의 손에는 부서진 반지 하나가 들려있었다.

     그 반지에도 검붉은 피가 진득하게 달라붙어있었고, 황제는 그 반지를 빤히 내려다보며 눈을 감았다.

     “지브롤터의 피. 협곡. …이것만 있으면 이 협곡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는 거겠지.”

     “폐하, 어서 진군 명령을-”

     

     서걱.

     기사의 목이 날아갔다.

     들뜬 표정 그대로 머리가 날아가, 피분수가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일주일 동안 이 협곡에서 휴식을 취한다. 본 황제 또한 치료를 해야 하니, 제국군은 지브롤터 협곡을 적으로부터 지킬 준비를 하도록 하라.”

     황제는 굳게 닫힌 마지막 관문으로부터 몸을 돌렸다.

     “모든 비행선은 착륙하도록.”

     황제의 명령에 따라, 협곡 사이를 날고 있던 비행선들이 일제히 협곡의 철도 위로 하나둘 착지하기 시작했다.

     

     * * *

     부ㅡ웅.

     지브롤터 성을 향해 달린다.

     

     성에서 나를 마중나온 사람은 누구도 없었으나, 나는 개의치 않고 마도바이크를 달렸다.

     성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그다지 크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불길이 치솟는 방향이 심상치 않다.

     ‘안전실.’

     

     불이 피어오르는 곳은 지브롤터가 피신을 하는 장소.

     캐롤라인 성으로 치면 어머니의 침실이기도 하며, 지브롤터 저택에 암살자가 들었을 때 지브롤터가 모이는 장소.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지브롤터의 사람이 안에 들어가면 밖에서는 누구도 그 문을 열지 못한다.

     

     전후좌우, 심지어 천장과 바닥도 전부 마법으로 결계가 펼쳐져있어, 그 누구도 저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지브롤터의 피를 가진 이가 아니라면, 절대로 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지브롤터의 피를 가졌다’라는 명제는 어떤 특정인에게도 유효하게 작용한다.

     

     아버지가 자신의 피를 반지나 어딘가에 보관할 수 있게 허락한 사람.

     그런 존재는 이 세상에서 단 한 명밖에 없다.

     

     “하.”

      

     조금은 안도했다.

     어쩌면 어머니는 위기 속에서 저 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 암살자로 추정되는 이로부터 농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잘 하셨네.’

     근처에 아버지가 없다면 가장 안전한 곳으로 떠나는 게 당연한 바.

     자식들은 말콤과 기사단을 붙여두기도 했고, 누아르가 인솔하며 지켰다.

     그냥 같이 도망을 치면 되는 거 아니냐, 왜 굳이 남아있었느냐라고 묻는다면-

     ‘책임감.’

     후작 부인으로서.

     지브롤터 성의 결계를 유지하여, 협곡 관문을 강화하기 위하여.

     제국과 전쟁에 나선 남편을 기다리는 부인으로서.

     그리고 만일 아버지가 협곡에서 완전히 퇴각하게 될 경우, 그 자신이-

     ‘아니야.’

     이건 너무 나간 생각이다.

     아버지가 패퇴할 상황이라고 한다면, 애초에 어머니도 함께 아버지와 함께 도망을 치는 게 당연지사.

     아무리 영지민들을 챙기기로 마음먹었다고 해도 아버지는 크림슨 지브롤터다.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자신의 아내를 챙겨 오로솔로 퇴각할 것이다.

     설령 이 지브롤터 전체를 적에게 내어준다고 하더라도.

     그러니-

     끼기긱!

     나는 바이크를 화단에 세워둔 뒤, 바로 정원을 지나 백작성 내부로 향했다.

     위ㅡ잉.

     핏빛처럼 붉은 결계를 통과한다.

     처음에는 약간의 이물감이 있었으나, 오직 지브롤터만이-

     “……?”

     이상하다.

     결계가 이런 식으로 쉽게 통과되어서는 안 되는데. 

     지브롤터의 피를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어느정도 절차가 필요한데, 나는 마음이 다급한 나머지 그 절차를 잠시 잊어버렸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지브롤터의 입장 절차를 밟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계를 들어와버렸다.

     마치 결계에 이상이라도 생긴 것처럼.

     콰ㅡ앙!

     다리에 마력을 불어넣어 그대로 뛴다.

     복도를 달리고 계단을 단숨에 뛰어올라, 안전실이 있는 방향으로 달린다.

     화륵!

     “큭…!”

     불길이 복도에 치솟는다.

     안전실 방향에서 흘러나오는 강력한 불길은 마치 무언가를 태우는 것처럼 불쾌한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쾌한 연기 속에서, 나는 그 이상으로 불쾌한 무언가를 감지했다.

     사람 타는 냄새.

     갓 죽은 사람, 혹은 살아있는 사람에 불을 질렀을 때 나는 그 특유의 불쾌하고 이질적인 냄새.

     “……!!”

     전방의 검은 연기를 그대로 뚫고 돌진한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지만, 매국노 그레이 시절 수십 번도 오다녔던 기억을 더듬으며 달린다.

     

     타닥, 타닥 타들어가는 소리.

     얼굴을 비롯하여 전신을 뜨겁게 달구는 불길 너머에서, 기묘한 소리가 들린다.

     사그작, 사그작, 사그작.

     문 앞.

     무언가가 마구잡이로 문을 긁고 있다.

     손톱과도 같은 무언가를 이용하여 문을 마구 긁어대고 있다.

     마치 감금된 밀실에서 불이 나는 바람에 피할 곳도 없어서 도망을 치려다가, 결국 문을 긁어대며 살기를 애원하는 것처럼.

     [크아아아아ㅡㅡㅡ!]

     곧, 내부에서 포효가 터졌다.

     나는 그 포효를 어디에서 들었는지 금방 떠올렸다.

     시간의 끝.

     황금신전.

     광물이 달아오른 산성물질에 부식되는 것 같은 그런 특유의 쇳소리를 내는 비명은 분명 그 자.

     ‘무능왕?’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내가 죽였다고 생각한 그 황금의 망령.

     “…….”

     문을 붙잡는다.

     동시에 칼을 빼들어, 문을 여는 자를 찌를 준비를 한다.

     그냥 찌르는 것도 아니다.

     나는 빠르게 칼로 내 팔을 긁은 뒤, 칼날에 피를 묻히고 그대로 문을 열었다.

     꿈틀, 꿈틀.

     문을 열자 안에서 강렬한 열기가 빠져나온다.

     불꽃과는 조금 다른, 이미 다 타버리고 난 뒤의 무언가가 안에서 터져나오는 것 같았다.

     쯔어어억.

     열린 문 앞으로 무언가가 흘러내린다.

     그것은, 녹아내리는 황금 사이에서 흉측한 얼굴만 보이던 그것은.

     무능왕, 세인트 지오.

     나는 본능적으로 아래를 향해 칼을 휘둘렀으나, 이미 그것은 살아있지 않았다.

     푸쉬이이.

     

     소멸.

     거짓된 황금이 지브롤터의 피에 닿자마자 분해되어 사라지듯, 세인트 지오의 문드러진 얼굴을 가지고 있던 거짓된 황금 덩어리는 그대로 잿더미처럼 바스라졌다.

     “…….”

     그리고 동시에, 나는 내부의 전경에 눈앞이 아찔해졌다.

     전부 다 타버린 실내.

     휴식을 위해 가운데 마련된 소파도 전부 불에 타버렸고, 수많은 집기들이 불에 타 잿더미가 되었다.

     그리고 벽에 붙은 침대.

     

     그곳에.

     “…….”

     아무것도 없었다.

     있어야 할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욱…!”

     침대의 가운데.

     -도련님, 레타르 아가씨는….

     매국노 그레이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침대 위에서 얌전히 죽음을 맞이했던 레타르와 같이, 침대에 두 손을 모으고 죽어갔던 레타르를 치웠던 뒤의 흔적과 비슷한 무언가가 내 앞에 펼쳐져있다.

     사람이 누워있던 흔적. 

     그 사람을 따라 불꽃이 침대를 휩쓴 흔적.

     오직 침대에는 사람이 누워있었다는 흔적만 남아있을뿐이며, 그 흔적의 형태는….

     “하.”

     입안이 바싹 마른다.

     여전히 주변에는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열기가 남아있지만, 나는 그 불꽃을 도무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 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든.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든.

     저 침대 근처.

     타들어가다만 금발의 머리카락 덩어리들은 내게 있어서 너무나도 익숙한, 어느 한 여인의 것.

     “…….”

     순간, 매국노 그레이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다행이라고 말씀 드리기는 조금 곤란하지만, 레타르 아가씨께서는 적어도 순결을 유린당하지는 않을 것으로….

     “우욱…!”

     눈앞이 아찔해졌다.

     맹렬히 돌아가는 머리가, 너무나도 끔찍한 상상만해대는 뇌를 당장이라도 멈추고 싶었다.

     그러나 눈은 실내의 정황을 쫓고, 코는 사람이 타들어간 냄새를 포착하고, 전신의 피부는 이 방 안에 미약하게 흐르는 마나를 포착하며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파악하려고 발악을 하고 있다.

     “불, 불….”

     불의 흔적을 찾는다.

     발화가 이루어진 시작점을 찾는다.

     외부에서 불을 지른 건지, 아니면 실내의 촛대가 쓰러졌다거나 그런 건지, 그도 아니면-

     “아.”

     찾았다.

     찾고 말았다.

     “왜.”

     불의 시작은, 침대.

     어머니가 누워있던 것만 같은 흔적의 근처.

     침대 위에 있던 이가 불을 질렀다.

     결계는 유지되고 있었기에,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황금의 망령은 유일한 출입구였던 곳을 마구 긁어대다가 사멸하고 말았다.

     그렇다는 건-

     “도련님!!”

     익숙한 목소리.

     “로버트 경, 자네가 왜-”

     “후작님께서-”

     나와 로버트 경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나는 로버트 경이 부축하고 있는 피흘리는 아버지를.

     로버트 경은 내가 바라보고 있었던 침대를 보았다.

     “그레이…. 미안하다, 내가-”

     그리고 창백해진 얼굴의 아버지가 고개를 들었고-

     “방심을 했.”

     아버지는 보고 말았다.

     

     침대 위.

     불씨만 남은 침대에 누군가가 누워있었던 흔적을.

     그 흔적은 불이 타들어가는 와중에도 죽은 듯이 누운 채 잠을 자고 있었던 것처럼, 혹은 죽은 채로 불을 뒤집어 쓴 것처럼.

     마치 누군가가 이곳에서 불타죽었다는 흔적을 말하는 것과도 같았으니.

     “…….”

     눈동자가 흔들리던 아버지는.

     털썩.

     “후, 후작각하?!”

     

     그대로, 옆으로 넘어지듯 쓰러지고 말았다.

     “…….”

     아버지는 오른팔이 없었다.

     “…….”

     아아.

     그렇구나.

     “로버트 경.”

     나는 떨리는 손을 꽉 움켜쥐며, 크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누구를 향한 질문인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으나,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아니. 그건…나중에.”

     답을 알고 있다면, 언제나와같이 처리할 뿐이다.

     “아버지를 모시고 오로솔로 즉시 퇴각하도록. 다른 이들에게 걸리지 말고, 은밀히.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말고.”

     “도련님.”

     “어서. 다른 건 몰라도, 크림슨 지브롤터가 쓰러졌다는 걸 노스트럼에 알려서는 안 돼. 설령 제국이 프로파간다로 설파하더라도, 근거없는 낭설이라고 말해야 하니까. 그 누구도 아버지가 팔을 잃은 걸 보지 못한 거다. 알겠나?”

     “도련님.”

     “입 닥치고, 당장 움직여.”

     나는 나를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깨무는 로버트를 향해 말했다.

     “그게, 그대가 해야 할 일이야.”

     언제나.

     죽은 뒤의 가족을 수습할 때와 같이 움직이면 된다.

     설령 마음 속에는 ‘죽지 않았을 수도 있다’라는 가능성을 지울 수는 없다고 해도.

     “전쟁이야.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그러니…자네가 지금 느끼는 혼란과 공포가 노스트럼 전체로 퍼지지 않도록.”

     언제나와 같이, 침착하게.

     “자네만 믿네. 로버트 경.”

     가족의 죽음에 대한 뒷수습은 나의 몫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디까지 저지를까

    고민이 많았습니다만

    이렇게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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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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