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42

   세계 침식 조사 집단, 세피라.

   그들은 세피라의 공주가 지닌 예언을 통해 세계 침식의 양상을 살피며 늘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렇기에 세계 침식에 관해 세피라만큼 제대로 된 지식을 갖춘 곳은 없다.

     

   그런 세피라에 도착한 크라슈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거기에 펼쳐진 것은 거대한 저택 하나였다.

     

   이곳은 세피라 본부.

     

   마황이 직접 텔레포트 시설을 만들어 준 만큼 세계 전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세피라 본부였다.

   이 본부를 통해 세피라는 세계 각지에 찾아가 정기적으로 세계 침식을 확인한다.

     

   “여전히 크구만.”

     

   말이 저택이지.

   사실상 성에 가까운 세피라의 본부를 보며 크라슈가 걸음을 옮겼다.

     

   크라슈가 저택의 정원을 구경하며 현관 쪽에 다가서자 곧이어 사람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세피라 전용 옷을 차려입은 이들이었다.

     

   허리 뒤로 손을 옮기고 고개를 치켜든 정갈한 자세.

   그런 그들의 앞에는 한 여성이 보였다.

     

   그녀는 크라슈에게도 꽤나 익숙한 얼굴이다.

     

   “미르비스 씨.”

     

   크림슨가든의 종이자 세피라에서 근무하는 이.

   미르비스.

     

   그녀가 그곳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크라슈와 마주치자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크라슈 님.”

     

   그녀를 본 크라슈는 짧게 웃었다.

     

   “어느새 2계급관이시네요.”

     

   처음 만나던 당시, 미르비스는 4계급관이었다.

   그러던 그녀가 3계급관에 오르더니 이제는 벌써 2계급관이 되었다.

     

   크림슨가든의 종이기 이전에 그녀의 능력이 무척이나 출중한 것이겠지.

     

   “예,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기에.”

     

   미르비스의 얼굴에 피로와 지침이 보였다.

   저 표정을 보아하니 이쪽도 어지간히 고생한 모양이다.

     

   “세이랑 세피라 님은요?”

     

   크라슈가 질문하자 미르비스는 안내를 위해 몸을 돌렸다.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크라슈의 주머니에서 시체쥐가 순간 꿈틀거렸다.

   자신이 좋아하던 작품의 작가와 만난다는 사실에 에벨아스크가 무척이나 들떴다.

     

   ‘부디 작가에게 가진 환상이 깨지지 않기를.’

     

   크라슈는 속으로나마 빌어주며 미르비스를 따랐다.

     

   세피라의 저택 내부는 바깥과 같이 상당히 정갈했다.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쓰지 않은 느낌이다.

     

   하긴, 세피라는 각 국가에서 지원금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

   괜히 다른 곳에 돈을 썼다간 국가들이 무슨 트집을 잡아 올지 모르니.

   세피라에서도 돈을 꽤나 엄중하게 관리하는 듯했다.

     

   ‘라헬른 아카데미 졸업생들도 세피라에 지원한 이들이 꽤 있었지.’

     

   그런 청렴결백한 이미지 덕분에 라헬른 아카데미의 평민 학생들 사이에서도 세피라는 인기였다.

     

   꼬박꼬박 월급을 제때 지급함은 물론 추가 지원금부터 시작해 퇴직금도 두둑하게 챙겨주니.

   귀족들 사이에 치이고 싶지 않은 평민들은 다 이쪽으로 몰린 것이다.

     

   그래서인지 세피라의 계급관들은 충성도가 높다.

     

   “여전히 세피라는 관리가 잘되어 있네요.”

   “예, 이번 연도에는 신입들도 많이 들어왔으니까요.”

     

   미르비스는 후배들을 떠올리며 미소를 머금었다.

   그녀 또한 세피라에 충성도 높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실상은 크림슨가든의 종이긴 하지만.

   크림슨가든 자체가 자신의 종이 살아가는 삶에 도움을 줄지언정 웬만해서는 손대지 않으니.

   그녀 또한 진심으로 세피라에 임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렇게 얼마 후 미르비스가 걸음을 멈추어 섰다.

   다른 곳과 같이 정갈한 문 앞에 서게 된 그녀는 노크를 두 번 하였다.

     

   “세이랑 님, 크라슈 발하임 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그녀의 노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크라슈도 아는 얼굴이 있었다.

     

   천구성, 블라비.

   과거, 크라슈에게 천살성을 주었던 인물이자 세피라 공주의 호위였다.

     

   크라슈가 노괴라고 부르고 있는 그는 크라슈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고는 평소 무표정인 그가 조금 흥미를 보였다.

     

   그 또한 한눈에 크라슈가 성장했음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천살성은 이제 잘 다룹니다.”

   “그런 모양이군.”

     

   크라슈가 넌지시 말을 전하자 블라비도 긍정했다.

   천살성으로 갖은 고생을 했던 그이기에 크라슈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알았다.

     

   크라슈는 블라비와 함께 안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볕이 잘 드는 방 안.

   호숫가가 보이는 곳에서 차를 한잔하고 있는 이가 보였다.

     

   왜 여식들은 방문하면 다들 이렇게 차를 마시고 있는 모습을 보여줄까.

   크라슈는 순수한 의문을 가지며 세이랑의 앞에 다가섰다.

     

   “오랜만이네요. 크라슈 발하임 님.”

     

   여전히 속을 읽을 수 없는 눈을 한 세이랑이 눈웃음을 지었다.

     

   세피라의 공주, 세이랑 세피라.

   크라슈와는 이미 앞에 몇 번을 걸쳐 면식이 있는 그녀였다.

     

   “아스트리아는 잘 지내고 있죠?”

     

   그녀는 아스트리아와도 친구 사이다.

   그렇기에 질문하자 크라슈가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전 성녀답네요. 하긴, 애초에 소녀도 아스트리아가 쉬는 모습을 본 적 없긴 하네요.”

     

   아스트리아는 세계 제일의 치료 능력을 갖춘 이다.

     

   그러니 그녀에게는 매일같이 환자가 들이닥친다.

   그것은 성녀라는 직함을 내려둔 뒤에도 여전했다.

     

   모두를 구할 수는 없지만, 구할 수 있는 한 최대로 구한다.

   그것이 아스트리아의 지론이었기에 그녀는 지금도 그것을 지켰다.

     

   “크라슈 님도 그 아이를 너무 혹사하지는 말아 주세요.”

   “명심하죠.”

     

   아스트리아에게 매번 신세를 지고 있는 만큼 크라슈도 긍정했다.

     

   “이번에는 무슨 일로 찾아오셨을까요?”

     

   세이랑이 의미심장한 얼굴을 했다.

   그녀는 예언 능력을 갖추고 있다.

     

   ‘내가 올 것도 대충 예상했겠지.’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여유로움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아는 만큼.

   크라슈는 의자를 빼 앞에 앉았다.

     

   “이미 알고 있을 거라 보지만, 세이랑 님의 스킬을 받아 가고 싶습니다.”

     

   세이랑이 마시던 찻잔을 멈췄다.

     

   그녀의 얼굴에 의미심장함이 담겼다.

   역시, 이미 예언을 통해 알고 있던 모양이다.

     

   “사정은 아예 모르지 않겠죠. 부탁드립니다.”

     

   다음 말을 이은 순간 세이랑은 조용히 찻잔을 내려뒀다.

     

   ‘모르는데요.’

   

   

   

   

     

   그리고 세이랑은 속으로 억울한 기분을 표했다.

     

   크라슈의 말대로 세피라의 공주는 다들 예지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는 세이랑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역대 세피라의 공주 중에서도 가장 예지 능력을 탁월하게 갖춘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늘을 수놓는 별자리를 통해 점을 쳐 상대의 미래를 예지하는 점성술.

   이는 세이랑의 특기지만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앞길이 안 보이는 이가 있다.

     

   그것이 바로 크라슈였다.

     

   ‘소녀가 분명히 예전에 말하지 않았던가요?’

     

   세이랑은 몇 번이고 지나가면서 크라슈에게 넌지시 크라슈의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점성술이 특기인 이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상당히 쪽팔리는 일인데.

   그것을 무릅쓰고 전했음에도 크라슈는 여전히 모르는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소녀를 놀리는 거 아닌가요?’

     

   세이랑은 살짝 속으로 울상을 지었다.

     

   겉모습은 늘 여유 넘치는 그녀지만, 안쪽은 꽤나 허당인 그녀였다.

   문제는 예지 능력과 겉모습 탓에 솔직하게 말해도 상대가 의미를 부여한다는 걸 그녀는 몰랐다.

     

   “크라슈 님, 소녀도 모든 걸 볼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건 그렇겠죠. 점성술도 만능이 아니니까요.”

     

   크라슈도 그에 관해서는 긍정했다.

     

   “네, 특히 소녀에 관련해서는 더더욱 보이지 않는 게 더 많죠.”

     

   그 말을 듣고, 크라슈는 그제야 이해한 표정을 했다.

     

   “하긴, 세이블 스킬은 세이랑 님의 것이니 이에 관해서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군요.”

     

   크라슈가 이해하자 세이랑이 속으로 안도했다.

     

   다짜고짜 스킬을 달라는 게 무슨 말인지 몰라 난처했는데.

   다행히 그가 설명해줄 모양이다.

     

   “그럼 일단 모르실 수 있는 부분까지 포함해서 이야기를 좀 하죠.”

     

   크라슈는 그 뒤로 지금 자신의 상황과 왜 이렇게 됐는지를 쭉 설명했다.

     

   처음에는 차를 마시며 여유롭게 듣던 세이랑이지만.

   그녀는 점차 자세를 고쳐가며 끝내는 거의 경악스러운 표정을 했다.

     

   크라슈의 이야기는 어지간한 미치광이가 아니고서야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누가 혼자 익시온에게 대항하기 위해 마곡으로 뛰어 들어가 거기에 존재하는 힘을 몸이 부서지라 흡수하는가.

     

   ‘원래도 독종이신 분인 건 알고 있었지만요…….’

     

   세이랑과 크라슈의 첫 만남은 8성급 침식종 아가레스 때다.

   그때도 크라슈는 어린 나이에 자기 몸을 불사르며 아가레스와 맞섰다.

     

   그렇기에 그의 독종적인 면은 진작 알고 있는 이야기였으나.

   지금 한 이야기는 세이랑조차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아스트리아는 이 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은 걸까요.’

     

   솔직하게 말해 이런 사람을 좋아한다면 마음이 조마조마해서 버티지를 못할 거 같다.

     

   특히나 아스트리아는 크라슈의 부상을 가장 먼저 마주하는 입장인데.

   세이랑은 솔직하게 아스트리아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다음에 만나러 가든가 해야겠네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한 번 해보든가 해야지.

   신경이 쓰여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알았어요. 크라슈 님의 이야기는 이해했어요.”

     

   세이랑은 크라슈의 눈에 담긴 진심을 읽었다.

     

   그가 한 말은 거짓이 아닐뿐더러.

   그는 순전한 개인의 욕심으로 세이랑의 스킬을 받고픈 게 아니다.

     

   “익시온과 맞서기 위해서라면 소녀도 기꺼이 도울 수 있죠.”

     

   익시온은 세계에서 특히나 큰 골칫거리다.

     

   얼마 전 제국이 관리하던 금역을 폭주시키는 것만 봐도.

   세피라 입장에서는 최우선으로 제거해야 하는 이들이다.

     

   세피라의 공주인 세이랑도 이를 도울 수 있다면 기꺼이 무엇이든 할 작정이다.

     

   그런 익시온을 처치하는 데 자신의 스킬이 도움 된다면.

   세이랑은 거리낌 없이 내줄 수 있다.

     

   “하지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는 법.”

   “무언가 원하는 게 있군요.”

     

   크라슈도 처음부터 냉큼 세이블을 그녀가 내어줄 거란 생각은 안 했다.

     

   오히려 이쪽이 더 깔끔하니 환영이다.

     

   “말씀하시죠.”

     

   크라슈는 예전에 세이랑의 목숨을 구해주겠다고 약속해 놓은 게 있다.

     

   그때, 그걸 카드로 써버린 만큼.

   크라슈는 세이랑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알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크라슈 님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랍니다.”

     

   세이랑은 싱글벙글 웃더니 고개를 슬그머니 돌렸다.

     

   “블라비, 크라슈 님과 둘이서 이야기하고 싶으니 잠깐 비켜주세요.”

     

   블라비는 세이랑과 눈이 마주치더니 이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방 밖으로 걸어 나갔다.

     

   크라슈가 세이랑과 단둘이 있다 해서 문제 끼칠 인물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블라비가 나가자 세이랑이 짧게 숨을 내쉬었다.

     

   크라슈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러나 보고 있으니.

   세이랑이 고개를 들었다.

     

   “크라슈 님, 크라슈 님은 소녀가 소설을 쓰고 있다는 걸 알고 계시죠?”

     

   크라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크라슈가 예전에 세이랑을 상대로 사용했던 카드기 때문이다.

     

   그걸 왜 인제 와서 묻냐는 반응을 보이자 세이랑이 주저했다.

     

   “그게 말이죠. 최근에 신작을 쓰고 있는데. 영 잘 안 풀려서요.”

   “신작을 쓰고 계셨습니까.”

   “소녀는 작가인걸요. 늘 마음속에 신작 하나쯤은 있답니다.”

     

   이미 숨길 게 없어진 만큼 세이랑은 당당하게 굴었다.

     

   “그래서 말이죠. 크라슈 님의 연애 이야기를 들려주셨으면 해요.”

     

   크라슈는 눈을 깜빡였다.

   지금 스킬과 자신의 연애 이야기를 교환하자 이건가.

     

   수지 단가가 맞는 이야기인지 의문이다.

     

   “물론 크라슈 님 본인의 이야기 말고, 아시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쪽도 해주시면 좋구요. 뭐든 정보는 필요하니까요.”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서 놀랐네요.”

   “소녀에게는 중요한 일이랍니다. 소녀가 글을 쓰는 건 다들 모르니까요.”

     

   알리지를 않았으니 글을 쓸만한 정보를 얻을 구석이 없다 이건가.

   크라슈는 그제야 긍정했다.

     

   “좋습니다.”

     

   이야기한다 해서 손해 볼 것도 아니고.

   크라슈는 기꺼이 응해주기로 했다.

     

   “그, 그리고 말이죠.”

     

   세이랑은 살짝 주저하면서 한 가지 더 청했다.

     

   “소녀의 신작이 완성되면 읽고, 평가를 좀 해줬으면 해서요.”

     

   크라슈의 주머니 속 시체쥐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