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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2

       사흘 후, 카우렐리아에 암울한 소식이 들려왔다.

       

       “펙튼 장군이, 죽었다고?”

       

       조사관은 말없이 그 자리를 지켰다.

       

       이내 그의 고개가 천천히 위아래로 흔들렸다. 긍정의 표시였다.

       

       대통령은 이마를 짚으며 물러났다.

       

       그리고 이날, 아이젠은 국무를 돌보지 않았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사적으로 친하다는 것쯤은.

       

       “사인은 교통사고입니다. 골렘을 타고 플로반스로 내려가던 중 산길에서 폭풍우를 만나 실종되셨습니다. 이후 신고를 받고 구조대를 꾸려 해당 산을 수색하여 펙튼 장군의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조사관은 현장에 있던 구급대원을 불러왔다. 그리고 브리핑을 시켰다. 총 세 시간 동안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고?”

       “네. 골렘을 몰던 운전사입니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나?”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현재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나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관료들은 얼빠진 얼굴이 되었다.

       

       “펙튼 장군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 같은 건 없었나?”

       “좆.”

       “뭐?”

       “좆, 이라고 하셨답니다.”

       

       그답지 못한 최후임과 동시에, 그다운 유언이었다.

       

       아무튼.

       

       청천벽력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사태가 급박합니다. 한시라도 빨리 플로반스 주에 전략급 마도사를 보내 폭도들을 저지해야 합니다.”

       “맞소. 그렇지 못하면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난리가 날 것이오.”

       

       제 밥그릇을 빼앗길까 봐, 관료들은 너도나도 몸을 떨었다.

       

       당연하지만 관료와 마도사는 다르다. 정치인은 돈과 인기가 있으면 되는 거고, 마도사는 학문적 재능에 군재까지 있어야 한다. 직업 난이도로만 치면 후자가 높지만, 만지는 돈은 전자가 더 크다.

       

       세실 르네이 총장은 전자의 사람들을 자기 잇속만 챙기는 겁쟁이라고 생각했다. 

       

       “르네이 총장. 이렇게 된 이상 당신밖에 없소. 계엄은 하지 않을 테니, 가서 폭도들을 잘 달래주시오.”

       “안 간다고 말씀드렸어요.”

       “총장!”

       

       행정부장관이 뿔테 안경을 벗으며 닭똥 같은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카우렐리아의 국운이 당신에게 달려 있소!”

       

       세실은 어이가 없어 웃었다.

       

       군사가 아무리 부족해도 그렇지.

       

       나라의 운명을 한 사람에게 맡길 정도로 치안이 박살 난 상황이라면 당장 나라가 무너지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

       

       그동안 카우렐리아가 국가 구실이라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세 가지였다.

       

       선거에 대한 기대감.

       

       금안족에 대한 증오.

       

       그리고 정령 신앙이었다.

       

       선거가 끝나면 상황이 다시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

       

       이 모든 원흉이 금안족이니, 금안족을 핍박하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라는 예측.

       

       우리 엘프는 선택받은 종족이니, 여신과 정령께서 보살펴 주실 것이라는 믿음.

       

       ‘전부 사라졌어.’

       

       이중에서 이젠 무엇도 남아나지 않았다. 선거는 지나갔고, 세계수는 에테리아에 있다.

       

       금안족에 대한 증오?

       

       이 시점에서 국민에겐 아이젠 정부나 금안족이나 똑같다. 둘 다 마왕군 잔당으로밖에 보이질 않는 것이다.

       

       “하아.”

       

       세실만이 한숨을 푹푹 쉬며 머리를 싸맸다.

       

       “알겠어요. 가면 되잖아요. 가면.”

       “정말이오? 고맙소!”

       

       수십 분에 걸친 입씨름 끝에 세실이 항복했다. 그녀도 카우렐리아가 망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으니까.

       

       저번처럼 수도를 비웠다가 일리야드 아카데미에 변고가 생기는 일만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품으며, 플로반스로 갈 준비를 마칠 무렵이었다.

       

       “바람의 정령왕께서 내려오셨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

       

       

       바람의 정령왕, 에어리얼.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그녀의 손에는 작은 나무가 들려있었다.

       

       세계수의 묘목이었다.

       

       “에어리얼 님…!”

       

       브릴뤼움 섬에 모인 엘프들은 에어리얼을 똘망똘망한 눈으로 바라봤다. 에어리얼은 섬 위를 빙글빙글 날아다녔다. 그러다가 적당한 터를 찾아 땅을 파고 묘목을 꽂았다. 원래 세계수가 있었던 자리였다.

       

       “오오! 여신께서 우리에게 새 세계수를 내려주셨다!”

       “여신님 만세! 만세!”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에어리얼은 마력을 흩뿌렸다.

       

       대정령의 마력에는 세계수의 성장을 촉진하는 성분이 들어있다.

       

       세계수 묘목은 순식간에 성인 남성의 키 정도로 자라났다. 에테리아에 있는 것과 같은 크기까지 커진 셈이었다.

       

       “여신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관료들의 입에서 함박웃음이 터져 나왔다. 에어리얼은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쯧쯧 차고는 돌아갔다.

       

       모두가 기쁨에 겨워 웃고 박수쳤다. 사진도 잔뜩 찍어 기념했다. 언론들은 해당 사실을 카우렐리아 전역에 보도했다. 의문은 근심과 함께 내려가고, 잠시 카우렐리아에 평화가 찾아온 듯 보였다.

       

       그러나.

       

       오직 한 명.

       

       “……뭔가 이상한데.”

       

       세실 총장만이 떠나가는 에어리얼의 뒷모습을 보며 의심을 거두질 못했다.

       

       “왜 그리 얼굴이 어두우시오? 르네이 총장.”

       “아, 그게….”

       “세계수를 다시 받은 것이 혹 탐탁치 않은 것이오?”

       “그럴 리가요!”

       

       세실은 고개를 황급히 내저었다.

       

       최상급 정령 네 체와 계약한 그녀가 세계수를 보고 불온한 생각을 품을 리 없었다.

       

       다만, 걱정될 뿐이었다.

       

       이 은혜를 두고 정치인들이 어떤 식으로 선동을 시작할지.

       

       “아무튼… 자, 저 영롱한 묘목의 자태를 보시오. 아마 우리에게 주신 세계수가 진짜일 거요.”

       “에테리아에 있는 세계수는요?”

       “가짜일 거요. 마왕군 놈들이 만들었건, 아니건.”

       

       불길한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세계수는 세상에 한 그루만 존재하는 것이 정론]

       

       [에테리아의 세계수는 마왕군이 만든 모조품]

       

       행정부는 급보를 통해 사실을 날조했다. 에테리아의 것은 가짜. 카우렐리아의 것이 진짜.

       

       따라서 여신이 선택한 종족은 여전히 엘프.

       

       이를 통해 현 정부의 정치적 정당성을 강화했다. 정령 신앙에 중독되어 있던 엘프들은 그 말을 대개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이러는 와중에도, 세실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니. 사실은 포기했다. 지적을 해도 들어줄 것 같지 않아서.

       

       “허허, 저 정도 크기라면 신탁을 받는 것도 가능하겠군요.”

       “총장님께서 해보시겠습니까?”

       

       관료들이 다가와 세실에게 그리 물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최상급 이상의 정령과, 일정 수준의 마력.

       

       여기서 세계수를 통해 직접 정령계와 통신할 수 있는 사람은 세실 르네이밖에 없었다.

       

       “정말 그래도 되나요?”

       “각하께서도 허가하셨습니다. 한번 시도해 보라고 하십니다.”

       “그럼, 알겠습니다.”

       

       세실은 자신의 키보다 살짝 큰 세계수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대통령과 각처 장관들, 국회의원들, 그리고 국민이 지켜보는 자리였다.

       

       꿀꺽.

       

       세실의 목울대가 거칠게 들썩인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떤 내용을 물어보는 게 좋을까요?”

       “가장 급한 일부터 물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무엇 말씀이세요?”

       “이를테면 플로반스에서 벌어진 소요를 잠재울 방법 같은 것 말입니다.”

       

       세게수는 곧 신탁의 도구이다.

       

       여신과 정령이 모든 답을 내려주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갈등을 중재하고 분쟁을 매듭지을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는 있다.

       

       그동안 엘프들은 위기 상황이 있을 때마다 정령을 의지해왔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렇다.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현재 플로반스에서 벌어진 일은 카우렐리아의 위기였다.

       

       “한번 여쭈어 보십시오.”

       

       세실은 고개를 끄덕이며 세계수에 손을 댔다.

       

       “어떻습니까?”

       “…쉿. 잠시만요.”

       

       세실은 마력의 흐름을 세세하게 느꼈다.

       

       라디오 주파수 대역을 조절하는 것처럼, 느긋하게. 그러면서도 정밀하게. 흐름을 읽고 정령의 기운을 찾아낸다.

       

       찾았다.

       

       세실은 해당 마력 파수에 해당하는 부분에 오감을 링크했다.

       

       [허어.]

       

       곧바로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한숨 소리인가?

       

       세계수는 일반 나무와는 달리 속이 살짝 비어있다. 이 부분 때문에 통화가 시작되면 ‘내부’에서의 소리가 울린다.

       

       즉, 세실 뿐만 아니라 근처의 모든 사람이 세계수에서 흘러나오는 신탁을 들을 수 있었다.

       

       “여신님이신가?”

       “여신님일 거야!”

       “여신님이다! 여신님이야!”

       

       엘프들이 환호하며 두 손을 모았다. 그러더니 무릎을 꿇는다. 전형적인 기도 자세였다. 일부는 머리를 박고 흐느끼기까지 했다.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인사들도 고개를 숙이고 예를 갖추었다.

       

       “여신 르퀴네스 님과 그 휘하의 사도님들이시여. 당신들의 지고한 은총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외람되오나 여쭈어볼 것이 있습니다. 들어주실 수 있으신지…….”

       

       [말해 보세요.]

       

       세실은 위화감을 느꼈다.

       

       생각보다 어린 목소리였다.

       

       하지만 의심할 게 뭐가 있나? 바람의 정령왕, 에어리얼이 수여한 세계수다. 그런 세계수에서 나오는 목소리이니, 필히 신탁이다.

       

       엘프들은 대대손손 세계수의 말을 따라왔다. 복종했다. 그것을 통해 부귀영화를 누려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실은, 엘프들은 이번 일에 대해 방도를 구하면 조국이 붕괴하는 것을 멈출 수 있으리라고 내심 기대했다.

       

       그렇기에 묻는다.

       

       “현재 우리는 경기가 좋지 않습니다. 잠재적 적국도 생겼고, 이런 마당에 플로반스에서는 민중 봉기까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이 고난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 부디 길을 내려주소서.”

       

       대답이 내려오면 무조건 따를 생각이다.

       

       아니, 따라야만 한다.

       

       어떤 정부든 똑같다. 정령 신앙은 정치에 도움이 된다. 반대로 말하자면, 여신의 신탁을 따르는 것이 권력에 유리하다.

       

       […….]

       

       잠시간의 침묵.

       

       그리고 얼마 후.

       

       [양심이 없네.]

       

       상상치 못한 대답이 들려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딩딩딩님, 1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300하고도 42화를 썼습니다. 최종장 진입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360화 마무리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러다가 더 길어지는 것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최근 들어 슬럼프도 찾아오고 있습니다. 이게 글이 안 써지는 것이라면 모를까, 잘 써졌다가 안 써졌다가를 반복하더군요. 아마 글에 몰입하는 시간이 뒤죽박죽이 되어서 그런 듯합니다.

    덕분에 비축 없이 다시 라이브로 달리고 있습니다. 몸이 피곤하면 머리도 피곤해지는군요. 이제 주말이니 다시 한번 비축분을 만들어둘까 합니다.

    후일담은 금방 끝날 겁니다. 어떻게든 다음 주까진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정 안 되면 연참해야죠 ㅎㅎ

    이후 ‘진짜’ 외전에 대해선 여러모로 고민이 깊습니다. 이걸 어디까지 진행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요. 일단 아이디어가 나오는 대로 전부 써보고 매듭짓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평안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AiBi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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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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