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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3

       마음 놓고 빈둥거릴 수 있다는 일은 좋은 일이다.

        

       사람은 계속 쉬다 보면 언젠가는 일하고 싶어진다고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전혀 믿지 않는다.

        

       일하고 싶어지는 게 아니라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거겠지. 자기 입에 풀칠할 돈이 떨어질 테니까.

        

       초등학교, 중학교만 나와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방학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것만으로 즐겁지 않던가? 대학생 때도 마찬가지였다. 휴강할 수 있는 시간을 맞추고 그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충족해지고 시간이 매우 빠르게 흐른다.

        

       오히려 수업을 듣거나 아르바이트를 할 때 시간은 더 느리게 흘렀다. 아르바이트하더라도 중간에 손님이 오지 않아 쉬는 시간이 훨씬 더 빠르게 흘렀고.

        

       유럽의 귀족들은 귀족이라는 것 자체가 직업이라고들 하지 않던가.

        

       수백 년 전 조상들이 사둔 부동산으로 잘 먹고 잘살면서, 돈이 너무 넘쳐서 어차피 직업이 없어도 되는 인간들. 오히려 직업을 가지는 것이 경험 쌓기라고 했던가.

        

       알고는 있다. 그 사람들이 정말로 아무것도 안 하고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쯤.

        

       하지만 가끔 참가하는 스포츠 친선경기나 자선사업, 친교를 위해 모이는 행위를 두고 우리는 ‘일’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건 그냥 취미 생활이지.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쉬다가 뭔가 다른 일을 해서 시간을 보내고 싶으면 잠깐 하면 된다는 소리다. 내가 굶어 죽을 상황만 아니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자괴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아, 그렇다고 심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는 아무래도 그리폰이었으니까.

        

       사람들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취미의 태반은 즐길 수 없다. 독서라던가, 일반적인 스포츠라던가…… 스포츠야 뭐 내가 원래 좋아하던 것이 아니니 그렇다 쳐도, 독서는 이쪽 세계의 문자를 모르는 이상은 그냥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외국어를 배우는데 그다지 열정적으로 임할 생각도 없고.

        

       그래서, 내가 이쪽 세상에서 가지게 된 가장 큰 취미는 바로 ‘비행’이었다.

        

       말 그대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다.

        

       태어나서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비행기를 타는 것은 내 날개로 직접 날아다니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애초에 비행기가 평소에 그냥 막 타고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해가 하늘 높이 떠 있을 때 나도 높게 날아오르면 세상 모든 것이 작게 보였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도 좋았고, 깃털이 휘날리는 것도 기분 좋았다.

        

       ……이런 식으로 말하자면 내가 너무 짐승에 가까워진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실제로도 그런데.

        

       당장 돌아갈 생각은 없다. 상상 이상으로 이 생활이 자유로워서, 나는 그 자체로 이미 만족하고 있었으니까.

        

       기왕 이렇게 된 거, 조금 더 지내다가, 실비아나 그 친구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다가 돌아갈 방법을 찾아봐도 될 것 같고.

        

       그나저나, 아직 개발이 덜 된 곳이라 그런지 제국에는 야생동물이 참 많았다. 늑대도 있었고, 숲에는 곰도 있었다.

        

       다만 이런 맹수들은 생김새가 여러모로 ‘먹으면 탈 날 것처럼’ 생겨서 사냥하는 것이 조금 꺼려졌다.

        

       하지만 개중에도 ‘먹어도 될 것 같이’ 생긴 녀석들도 있긴 했다.

        

       드넓은 초원을 한적하게 거닐며 풀을 뜯는 소나 염소 떼.

        

       주변을 한 바퀴 빙 돌아보아도 사람이나 울타리는 보이지 않았다.

        

       하긴, 야생동물이 이렇게 종류별로 있으니 소나 양, 염소 떼가 한적하게 거닐어도 이상할 건 없었다.

        

       판타지 세상이지 않은가.

        

       마침 하늘을 날다가 배가 고파졌던 나는, 그대로 아래로 낙하해서 소 한 마리를 낚아챘다.

        

       *

        

       판타지 세상이라도, 이상한 건 이상하게 여겨야 했다.

        

       생각해보면 소 떼도 양 떼도, 그리고 염소 떼도, 내가 알던 것들과 너무 비슷하게 생겼었다.

        

       바꿔말하자면 그런 짐승들은 ‘사람이 보기에도’ 먹기 좋아 보였다는 소리다.

        

       사람이 없고 울타리가 없는 이유는 목초지가 워낙 넓어서 그렇게 하기에는 돈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일부러 울타리 없이 소를 키우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 이유는 소들이 돌아다니다가 울타리에 몸을 박으면 가죽에 흠집이 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소는 딱히 먹기 위해서만 키우는 것이 아니었다.

        

       가죽을 위해서도 키운다.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신나게 사냥했던 소는—

        

       “다른 사람이 키우던 소라는 거지. 주로 가죽을 위해서. 참고로 주인은 유명한 가죽 공방이야. 주로 고급 증기차나 마차 내장용으로 가죽을 만들어서 납품하는 곳이고, 최근에는 어느 증기차 회사와 인수합병 이야기가 진지하게 돌고 있다더라.”

        

       내가 지내는 곳까지 친히 찾아온 황태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렇습니까.”

        

       앨리스 옆에 서서 그 이야기를 들으며, 실비아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 눈을 피했다.

        

       “참고로 죽은 소 말고도 다른 소들을 배상해달라는 이야기도 함께 올라왔어. 아무래도 네 그리폰이 사냥을 한 번에 성공했던 게 아닌 모양이야. 가죽에 길게 긁힌 자국이 난 소도 있고, 상처를 입었다가 나중에 죽은 소도 있다는데.”

        

       “……그렇습니까.”

        

       음.

        

       그게 그렇게 되었구나.

        

       내가 잡고 들어 올리려다 자세가 잘못되는 바람에 미끄러져 떨어뜨린 녀석이 있었다.

        

       쿵, 하고 좀 큰 소리가 나긴 했는데 죽을 줄은 몰랐네.

        

       “참고로 가격은 꽤 비싸. 가죽을 위해 키우는 소들이었고, 보통 가죽이 좋은 소는 육질도 좋은 법이거든.”

        

       “……그렇습니까.”

        

       실비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계속 뚫어져라 올려다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매우 많아 보이는 표정이었다.

        

       아니, 나도 잘못한 거 알고 있다니까.

        

       평소에 빳빳하게 들고 있던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고 있는 거 보면 모르겠냐고.

        

       그렇다고 내가 배상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우리 한 가지 확실하게 하자.”

        

       앨리스도 내 쪽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 사냥이, 그리폰의 본능인 건지 아니면 그냥 배가 고파서 그랬던 건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해. 안 그러면 우리가 먹이를 주는 것과 별개로 계속 사냥을 나가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며 돌아다닐 테니까.”

        

       그 말을 듣고, 나는 시선을 돌려 앨리스 쪽을 보았다.

        

       “……우리 말을 알아듣는 모양이네.”

        

       “그리폰의 지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사람 말은 알아듣는 모양입니다.”

        

       아니, 당연히 알아듣지.

        

       나도 실제 그리폰 지능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안에 있는 내가 사람의 지능을 가지고 있으니까.

        

       “내가 말로 한다고 알아들을까?”

        

       아는 척을 해야 할까?

        

       내가 여기서 쫓겨나지 않고 계속 지내려면 소통해야겠지만, 그렇다면 상대에게 내가 ‘알아듣고 있다’라고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까?

        

       고개를 끄덕이고 저으면 되려나.

        

       ……그런데 그건 조금…… 그러니까, 폼이 안 사는 것 같은데.

        

       바로 조금 전에 ‘그리폰의 지능’ 어쩌고 했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일단 지금 나는 그리폰이 아닌가.

        

       이야기를 주워듣기로, 제국의 상징이라고 했다. 실제로 황궁으로 오는 중 커다란 철문에 대문짝만하게 그리폰이 그려진 방패 모양이 달린 것도 보았다.

        

       이쪽 세상에서 그리폰은 존재 자체는 확인되었지만 제대로 본 사람은 거의 없는 환수라고 했다.

        

       그러니 나름대로 제국의 상징으로서 대우하려는 것 같은데…… 그런 내가 끄덕끄덕 도리도리 같은 것으로 대화를 나누면 좀 없어 보이지 않나?

        

       나는 고개를 치켜들고 앨리스를 내려다보았다.

        

       “……알아듣는 건가? 알아듣고 명령하지 말라고 하는 거야?”

        

       “그렇다기보다는 허세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만.”

        

       실비아가 나의 속셈을 단번에 꿰뚫어 보았다. 역시 주인공다운 안목이었다.

        

       앨리스에게 대답한 실비아는 내 쪽으로 한 발짝 다가오며 말했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야기를 알아들었다는 가정에서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실비아의 키는 앨리스의 키에 비해서 대단히 크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작은 편도 아니었지만, 굳이 따지자면 ‘평균 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게 작은 키의 실비아가 나를 올려다보는데도 마냥 작아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황태녀의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라면 실비아 쪽이 맞는 것 같은데.

        

       하지만, 뭐, 본인이 거절했다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여기에 머무는 것도, 머물면서 많은 것을 먹는 것도 어쩔 수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제국의 상징이라는 존재가 국민에게 위해를 가하면 황실의 위신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신에게는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그래도 처음 당신을 그곳에서 꺼내준 저를 봐서라도 저희의 이름을 지켜주지 않으시겠습니까?”

        

       “…….”

        

       실비아는 나의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나는 한동안 그런 실비아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뭐, 좋아.

        

       위신을 유지하면서 사과하는 법도 있긴 하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고개를 정중하게 숙였다.

        

       “알겠다면 그것으로 되었습니다.”

        

       실비아는 그런 나를 올려다보며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인 뒤, 지난번에 보여주었던 제국 식 인사를 했다.

        

       소통을 어떻게 하면 될지 조금 감이 잡히는 것 같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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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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