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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3

    “후후후.”

     

    루크의 웃음소리였다.

     

    그 웃음은 사실, 단지 화장실을 제 때 도착해서 시원하게 용무를 보았다는 것에서 나오는 안도감이 섞인 웃음이 아니었다.

    그야, 화장실을 제 때 이용한다는 건 원래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니 고작 그런 것으로는 루크에게 이토록 즐거운 웃음을 선사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루크가 그토록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걸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텔레포트가 성공했다.’

     

    텔레포트는 공간의 마법, 그리고 그것이 성공했다는 것은 자신의 공간계 지배능력이 확실하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자신은 지금 확실히 ‘공간에 대한 지배’라는 8서클의 힘을 손에 넣은 셈이었다.

     

    사실 이번에 루크가 사용한 화장실은 아카데미의 화장실이 아니었다.

    그렇게 겨우 도착한 두번째 화장실조차 ‘공사중’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절망적인 상황에 더해, 마나로 붙잡는 것도 이제는 한계라는 최종적인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으니까.

     

    더 이상 몸을 움직이면 다른 층의 화장실은 구경도 해 보기도 전에 겉잡을 수 없는 결과가 나오리라는 것을, 루크는 깨닫고 만 것이다.

     

    이제 방법은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텔레포트를 쓰자.’

     

    사력을 다해 머리를 굴려 도박처럼 떠올린 수단이었는데, 정말이지 깔끔하게 수식이 맞아떨어졌다.

    루크는 자신이 그동안 준비한 모든 요소들이 마치 톱니바퀴처럼 얽혀서 ‘텔레포트’라는 엄청난 결과물을 성공적으로 낸 것이 그토록 기뻤던 것이다.

     

    “으흠-.”

     

    어찌나 신이 났는지, 콧노래까지 절로 나온다.

    정령인 파이가 들었다면 덩달아서 이러저리 씰룩거리지 않았을까싶을 정도로 즐거운 음율이었다.

     

    “아주 훌륭했어.”

     

    그래, 아무리 대단한 마법적 재능과 지식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5서클인 루크가 8서클인 텔레포트를 일으킨다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완전히 불가능했다.

    1계단 정도는 어떻게 무리하면 사용할 수 있고, 2계단 까지는 목숨을 건다면 운이 좋으면 한번은 끼워맞출 수 있는 정도이지만, 그 차이가 3이나 난다면 그건 불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루크에게는 다행히 서클뿐만이 아닌 클래스라는 현대식 마법시스템이 있었고, 공간이나 시간 등의 여러 현상의 방정식을 통합해 하나로 엮은 ‘통합방정식’이 있었으며, 아린세이아를 매개로하는 슈퍼컴퓨터도 있었다.

     

    그리고 그건, 너무도 확실하게 8서클의 역할을 해 주었다.

     

    “미리 컴퓨터와 휴대폰도 연결시켜 두길 잘했지.”

     

    현재 루크의 휴대폰은 휴대폰과 컴퓨터, 그리고 컴퓨터와 아린세이아라는 삼중 연결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덕분에 컴퓨터를 들지 않고서도 바로 텔레포트의 연산이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여러가지로 보완할 점이 있었다.

     

    예를 들면 기존에 이미 알고 있던 좌표값 이외에는 텔레포트를 시도조차 할 수가 없다는 점과, 필요한 마나가 너무 크다는 점.

    그리고 ‘역천의 모래시계’가 온전치 못한 상태인지라 시간가속으로 연산 딜레이를 삭제하며 즉발적인 텔레포트의 발동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은 하루에 한번이 최대라는 점.

    또 그렇게 한번 연산 딜레이를 제거하고 나면 컴퓨터의 성능이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져 원격 딜레이도 커지고 도저히 못 써먹을 수준이 되고 만다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함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어딘가?

    8서클은 웬만한 천재 마법사들에게조차 까마득한 경지.

    루크는 물질의 힘을 빌어 그 편린이나마 붙잡은 상태라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분명 후에 도움이 된다.

    심지어 바로 지금도 이렇게나 큰 도움이 되지 않았던가.

     

    그런 대단한 기술을 고작 화장실이 급해 이동하는 데에 사용했다는 점에서 약간 부끄러운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텔레포트의 성공이 기쁘다는 감정이 더욱 크다.

     

    그렇게 즐거운 마음을 안고 다시 동아리 실로 돌아온 순간, 루크는 케일라의 미묘한 시선을 마주하게 되었다.

    혹시 아까 전에 복도에서 밀친 것이 앙금이 남은 것일까?

    루크는 곧바로 그런 케일라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미안하다. 아까는 급해서.”

     

    그러자, 케일라는 신경쓰지 말라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웃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어떻게, 잘 갔다 오긴 했나봐? 표정이 한결 편해진 것 같네.”

     

    남이사 화장실을 갔다가 오든 어떻든 대체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것인지, 루크는 뭔가 기분이 이상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 나이에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는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자신이 그런 안부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

     

    “……잘 갔다 오기는 했는데.”

    “그거 다행이야.”

    “…….”

     

    다행이라는 말에 루크는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물었다.

    다행이라니, 설마 케일라에게는 자신이 화장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실례를 할 만큼이나 급한 것처럼 비쳐 보였단 말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솔직히 할 말은 없었다.

    그때는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루크는 얼굴이 살짝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뭐, 그래도 그녀에게 무언가 악의가 있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기에 케일라의 옆자리로 걸어가 레시피를 연구하기 위해 테이블에 늘어놓았던 찻잎과 타피오카가 어지럽게 놓여져 있는 것을 정리하며 주제를 돌렸다.

     

    “아, 아무튼, 지금까지 시도해 본 레시피의 진척사항을 알려주도록 하지. 일단 지금까지 조합해 본 바로는…….”

     

    루크가 레시피에 대해 설명을 하려던 때, 케일라가 루크의 말을 저지하며 말했다.

     

    “으음, 일단 지금은 그보다 먼저, 이거.”

    “이게 뭐지?”

     

    케일라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루크에게 건네었다.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든 루크는 반사적으로 그 물체에게서 보여지는 마력을 읽어냈다.

     

    ‘이 수식은……. 흠, 열을 내는 아티팩트인가.’

     

    실제로 쥐자마자 손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따듯한 온기가 있었다.

    아마도 이건 추운 겨울, 종족들 중에서는 특히나 추위를 많이 타는 수인들이 자주 가지고 다닌다는 아티팩트.

    ‘손난로’인 것 같다.

    “손난로? 이걸 왜.”

    “어때, 따듯해?”

    “그래. 따듯하긴 하구나. 그런데 내게는 쓸모가 없는데.”

     

    하지만, 루크에게는 쓸모가 없는 물건이었다.

    루크는 마법을 사용해 마음대로 체온을 조절할 수 있었으니까.

    그냥 자체적으로 추위나 더위를 덜 느끼는 체질이기도 하고, 정 춥다면 옛날에 개조한 파이어를 써도 된다.

     

    “자, 도로 가져가라.”

     

    그렇게 루크가 케일라에게 받은 손난로를 다시 돌려주려고 했으나, 케일라는 오히려 받지 않겠다는 듯 루크가 건네는 손난로를 손바닥으로 루크에게 밀며 외쳤다.

     

    “안 돼! 일단 받아. 받아서 배에다 대고 있으라구!”

    “배에? 왜?”

     

    루크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묻자, 케일라는 루크의 곁으로 다가가 생글거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은 힘든 날이잖아? 그럴 땐 말이야, 배가 따듯해야 한대.”

    “그럴 때……?”

     

    루크는 케일라가 말한 ‘그럴 때’라는 단어에 귀를 기울였다.

    ‘배를 따듯하게 해야 하는 때’라니, 그게 대체 뭘까?

     

    잠시 고민해보던 루크는 문득, ‘그럴 때’의 의미를 깨닫고 말았다.

     

    ‘배를 따듯하게 해야 하는 때라는 것은 배탈을 이야기하는 거였나!’

     

    설마 그 정도로 자신이 급해 보였단 말인가?

    아니, 그 때는 급했던 게 맞기는 하다만, 배탈은 아니었다.

    루크는 케일라의 말을 정정하고 싶었으나, 큰 것이 아니고 작은거였다며 정정하는 것도 너무나 이상해 보여서 그냥 가만히 따라주기로 했다.

     

    그렇게 루크가 가만히 자신의 말을 따르자, 케일라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때, 많이 나아져?”

    “……기분은 좀 나아지는 것 같기도 하구나.”

     

    루크는 눈을 감고 온기를 느꼈다.

    평소 감기 같은 병마에도 노출되지 않는 루크에게는 정말 의미없는 행동이기는 하나, 루크도 일단은 생물이니 몸이 알맞은 온도로 따듯하면 자연히 기분도 좋아진다.

    케일라가 왜 갑자기 이러는 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에 필요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배에 느껴지는 온기는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봄날 한낮에 창문으로 내리쬐는 햇살이 좋다면.

    또 겨울철 벽난로에서 눈에 젖은 몸을 데우는 것도 좋다면.

    이 또한 당연히 좋아할 것이다.

    바로 그런 따스함이, 손난로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온기를 즐기고 있을 때였다.

    케일라가 아주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루크, 내가 다른 애들한테도 이미 다 얘기해 뒀어. 힘들면 집에 가도 돼.”

    “잠깐, 뭐라고?”

     

    루크는 케일라의 말에 눈을 번쩍 떴다.

     

    지금 케일라가 뭐라고 한 거지?

    설마 자기가 그토록 꼴사납게 화장실에 가는 걸 다른 부원에게 전부 이야기했단 말인가?

     

    “그걸 대체 왜 남들한테 얘기하나!”

     

    설마 아까 전에 복도에서 밀친 것에 대한 복수심인가?

    케일라의 입은 굉장히 싼 편이었다.

    일전에 루크에게 ‘작업’을 걸었던 휴마도 케일라의 소문을 통해 지금은 반 아이들에게, ‘10살짜리한테 작업건 변태’라고 놀림받고 있다.

    설마 이것도 그런 유치한 복수란 말인가?

    온 아카데미에 자신을 ‘똥쟁이’라고 낙인을 찍는 것이 자신이 한번 밀친 것에 대한 복수인 거라면, 당연히 화를 내지 않을 수 없다.

     

    케일라는 걱정하는 척 하면서 사람을 엿먹이는 걸 참 잘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고보니 케일도 마침 그런 걸 참 잘 했던 것 같은데.

    이제보니 이름도 비슷하고.

     

    어쩌면 케일라는 케일의 환생 같은 게 아닐까.

    물론 그는 이렇게까지 치졸한 수단을 쓰지는 않았다만.

     

    루크는 수치심과 분노에 얼굴이 온통 빨개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손난로를 쥔 손에 강한 악력이 들어가,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다.

     

    루크의 그런 표정을 본 케일라는 루크가 자신의 호의에 부끄러워서 그러는 거라 생각하고는 오히려 루크의 어깨를 토닥이며 더욱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야, 당연한 거잖아. 우린 ‘동료’니까.”

    “동료는 무슨!”

     

    루크의 외침과 함께, 손난로를 쥔 손에 강한 악력이 들어가 결국 손난로가 터져버린다.

    그러자 마석을 갈아 만든 열화 마나 더스트가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지고 만다.

     

    “케일라! 그대는 지금 선을 넘었어! 내가 화장실 가서 볼일 본 걸 왜 다른 사람한테 얘기하나! 아주 소문을 내려고 하는건가!”

    그러자 오히려 당황한 것은 케일라였다.

    “어? 화장실? 그게 무슨 소리야? 생리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었어?”

    “생리? 그건 또 무슨 소리지? 내가 도대체 생리를 왜 하나?”

     

    ——

    루크는 결국 케일라를 가만히 둘 수 없었다.

    오해는 풀렸지만, 루크는 케일라가 부원들에게 보내 둔 메시지를 해명하느라 더 큰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던 것이다.

    루크는 테이블에 공손히 앉은 케일라를 향해 물었다.

    “그럼, 이제 말해 보거라. 대체 왜 그런 오지랖을 부렸지?”

    “아니, 그건 그…….”

    그에 대답해야하는 케일라는 동공을 이리저리 흔들다, 이내 눈을 감으며 외쳤다.

    “으아!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 지 모르겠으니, 그냥 날 한대 때려!”

    “허, 한대 때리라니…….”

    그건 보통 남자들끼리 잘못한 경우에 꺼내는 사과방식이었다.

    원체 왈가닥인 케일라에게는 어울리는 벌칙이기도 했지만.

    아니. 어쩌면, 그렇게 하라면 혹시 못 할줄 아는 걸까?

    그도 아니면 10살 짜리 여자아이가 때리는 건 그리 아프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케일라의 그런 짧은 계산은 명백히 틀렸다고 할 수 있다.

    안 그래도 제 멋대로 행동하는 케일라에겐 어느정도 감정이 쌓여 있었던 터라, 살짝 감정을 담아 머리를 쥐어박았다.

     

    -빡!

    감정이 담긴 일격의 소리는 꽤 컸다.

    “우겍!”

     

    뒤늦게 테이블에 쓰러지며 괴상한 소리를 내는 케일라.

    루크는 그런 케일라를 뒤로 하고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하아, 이제 좀 속이 시원하군.” 

    뭐, 보기에는 막 때린 것 같아 보여도 타격과 함께 곧바로 치유까지 했으니 상처나 혹을 포함한 어떠한 후유증도 남지는 않으리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구도가 맘에 들어서 같은 삽화를 재활용했습니다!

    뭐어, 결국 오해는 풀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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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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