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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3

       원더스타인은 이 순간만큼 자신에게 웃는 남자가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 적이 없었다. 만약 그게 없었다면 그는 그녀를 발견한 순간 놀라서 비명을 지르거나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다.

         

       그만큼 그가 목격한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아나이스는 누군가에게 절대 고개 숙이지 않는 여인이었다. 압도적인 재력과 타고난 명석함, 상회 일로 다져진 풍부한 경험, 그리고 빼어난 미모 덕분에 눈빛과 행동 하나하나에서 항상 자신감이 넘쳤다.

         

       물론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된 그녀에게서는 예전만큼의 자신감은 찾기 어려웠다. 항상 확신에 차 있던 눈동자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고. 늘 당당함으로 빛나던 얼굴에서는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일평생 쌓아왔던 모두 도둑맞았으니 사람이 크게 위축되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설마 이런 장면까지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현재 아나이스는 그녀보다 몇 살은 어려 보이는 어느 귀족 소녀에게 엉덩이를 흔들며 애교를 피우고 있었다.

         

       “옳지. 착하지. 그래그래.”

       “헥헥.”

         

       현재 그녀의 곁에는 타인의 호흡을 읽을 수 있는 니카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조금만 시선이 모이는 것 같으면 적극적으로 연기를 했다.

         

       상대 앞에서 뒹굴고 배를 보이는 것은 예사였다. 엎드린 자세로 엉덩이를 높이 치켜들고 좌우로 흔들거나 상대가 내민 손바닥을 핥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처음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거 같던 이 짓도 한 번 선을 넘고 나니까 점점 익숙해졌다. 니카랑 헤어진 덕분에 남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도 없는 것도 한몫했다.

         

       원더스타인은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건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의 몸에 부착된 이름표에 쓰인 단어를 읽은 덕분이었다.

         

       그는 그제야 니카가 왜 자신의 질문에 대답을 회피했는지 알게 되었다. 설마 개 흉내를 내서 직원들의 눈을 속였을 줄이야.

         

       그렇게나 똑똑한 두 사람이 내린 결정이었다. 아마 이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대로 그녀를 모른 척해 주고 싶었다. 그는 그녀가 눈치채기 전에 재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갔다.

         

       “유모, 나 결정했어! 얘를 데리고 가서 키울 거야!”

       “이미 키우고 계신 개와 고양이만 10마리가 넘지 않습니까.”

       “그중에 암컷 개는 없잖아. 얘를 데리고 가서 수컷 개들에게 줘야지.”

         

       아나이스는 그녀의 선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자신을 데려가겠다고? 수컷 개에게 주겠다고?

         

       그녀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려 했다. 그러나 그녀가 한 발자국 떼기도 전에 소녀가 그녀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가만히 있어 봐.”

         

       귀족 소녀의 뒤에 있던 중년의 하녀가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주먹 크기로 돌돌 말린 붉은색의 가죽끈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두 뼘 정도 되는 길이로 잘라내어 버클에 물리더니 그것을 소녀에게 건네주었다. 소녀는 그것을 받아 아나이스의 목에 채웠다.

         

       “자, 목줄도 했겠다. 너는 이제 내 거야!”

       “머, 멍멍!”

         

       졸지에 개목걸이를 하게 된 아나이스는 당장 그것을 벗어던지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이 목줄에 닿는 순간 귀족 소녀가 발을 휘둘렀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소녀의 구두가 아나이스의 복부를 가격했다. 그녀는 헉하고 숨을 삼키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사람이 낼 법한 비명은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저 끙끙거리는 소리를 흘릴 뿐이었다.

         

       “애가 착한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반항심이 있네.”

       “갑자기 목줄이 채워졌으니까요.”

       “교육이 필요하겠어.”

         

       그녀는 하녀가 건넨 끈을 그녀의 목걸이에 연결했다.

         

       “날 믿고 따라와. 친구들을 소개해 줄게.”

       “끼, 끼잉…….”

         

       아나이스는 그녀가 끌려가는 대로 가지 않기 위해 힘을 주고 버텼다. 이대로 끌려갔다간 그녀는 끝장이었다. 물론 평생 개로 살아야 할 리는 없었다. 이 이름표에는 효력의 제한 시간이 있다고 들었다. 자신이 떼지 않아도 알아서 인식 장애는 풀릴 것이다.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다른 개들과 같이 알몸으로 뒹굴다가 발견되는 일이었다. 그것만은 죽어도 피하고 싶었다.

         

       “얘가……! 매질이 좀 필요하겠는걸?”

         

       소녀는 하녀로부터 개들을 조련할 때 쓰는 채찍을 건네받았다. 아나이스는 그녀가 팔을 치켜드는 것을 보고 움찔 몸을 떨었다. 여기서 이름표를 떼고 정체를 밝혀야 하는 건가? 아니다. 어쩌면 자신이 몇 대 맞고도 고집을 부리면 그녀도 포기할지도 몰랐다.

         

       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소녀가 채찍을 휘두르기를 기다렸다. 조금의 희망이 있다면 거기에 매달려 봐야 했다. 이렇게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정체를 들킬 바에 그냥 좀 다치고 마는 게 나았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소녀의 채찍은 날아오지 않았다. 살며시 눈을 뜬 아나이스는 누군가 자신의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서서히 고개를 들어 그가 누군지 확인했다.

         

       검은색 정장, 긴 금발, 그리고 입가에 가득한 미소.

       아…….

         

       그녀는 쪼그려 앉은 그 자세 그대로 굳고 말았다. 그곳에는 지금 자신의 모습을 가장 보이기 싫었던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안심하라는 듯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주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이 개의 주인은 접니다.”

       “당신 개라고요?”

       “네.”

       “흠, 왠지 아닌 거 같은데……. 얘가 딱히 당신 보고 안 반기는데요. 오히려 겁먹은 거 같은데.”

       “그야 숙녀분이 채찍을 휘두르려고 했으니까요. 자, 아나이스, 이리 온. 착하지?”

         

       원더스타인이 무릎을 꿇고 아나이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마음 같아서는 그의 손길을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현재 그녀는 귀족 소녀에게 목줄이 붙들린 상태였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꼼짝없이 그녀에게 끌려갈 판이었다.

         

       그녀의 똑똑한 머리는 이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했다. 어차피 들킨 마당에 그의 도움을 거부하는 건 아무런 실익이 없는 행동이었다.

         

       “아나이스?”

       “멍멍!”

         

       그녀는 목줄을 거칠게 떨쳐내고는 그를 향해 네발로 달려갔다. 반가운 울음소리를 내며. 그녀는 자신을 쓰다듬는 그의 손길을 느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보셨죠?”

       “모, 몰랐어요! 다, 다음부터는 목줄을 하고 다니세요. 주인 없는 개인 줄 알았잖아요.”

       “목줄은…….”

       “선물로 드릴게요! 이런 공공장소에서 개를 그냥 풀어두는 건 예의가 아니에요!”

         

       귀족 소녀는 휙 돌아서서 그녀의 일행과 제 갈 길을 가버렸다. 뭔가 일이 터졌나 싶어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별일 아님을 알고 그대로 흩어졌다.

         

       이제 둘만이 남았다. 아나이스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고맙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이 상황에 대한 변명부터 늘어놓아야 할까?

         

       원더스타인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아나이스를 향해 속삭였다.

         

       “정원 구석에 사람 없는 곳으로 가죠. 거기까지만 부탁드립니다. 개 흉내.”

       “……네.”

         

       그렇게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목줄을 붙들고 이동을 시작했다. 개목걸이를 한 아나이스를 알몸으로 산책시키고 있다니. 그는 그저 그녀가 무사하기를 바라고 이름표를 건넨 것이었는데,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꼬였는지 모르겠다.

         

       원더스타인은 걷는 도중에 계속 그녀가 괜찮은지 확인하기 위해 그녀를 돌아봤다. 그러나 그녀는 도무지 고개를 들 줄 몰랐다. 그녀는 도저히 그와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단장님에게 들키고 말았어. 내 천박한 모습을. 귀족이라고 그렇게 고고한 척은 다 해놓고. 하지만 사실은 살기 위해서라면 몸뚱어리 따위 얼마나 굴릴 수 있는 천한 년이라는 걸 단장님도 이제 알게 됐어.’

         

       그녀가 지금 느끼는 수치심을 당장이라도 자살하려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그녀의 머릿속과 다른 자극에 떨려오고 있었다.

         

       분명 수치스러워야 할 상황인데도 그녀는 기이한 만족감을 느꼈다. 자신의 목줄을 쥐고 있는 사람은 자신을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인 동시에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었다. 그는 수치스러움의 원인인 동시에 안도감의 원인이었다.

         

       이러한 감정적 혼란은 신체에 착각을 유발했다. 그녀가 느끼는 긴장감은 곧 즐거움으로 해석되었고, 그녀가 느끼는 수치심은 곧 쾌감으로 인식되었다. 그녀는 가랑이 사이가 젖어오는 것을 느꼈다.

       

       

         

       ‘내가……흥분하고 있어?’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수치스러워하면서 기뻐하다니. 자신이 정말 이렇게 변태였던 걸까?

         

       그녀는 원더스타인을 올려다봤다. 엎드린 상태에서는 그의 위치가 까마득하게 높게 보였다.

         

       그가 자신을 좀 더 수치스럽게 하면 자신은 더 큰 만족감을 느낄까? 그가 애완동물처럼 자신을 쓰다듬어 주고, 그가 자신을 훈계하며 자신의 엉덩이를 때려주고, 그가 자신의 목줄을 당겨 굴종을 요구하고, 그가 자신을 길들이기 위해 채찍질을 한다면……?

         

       “흐읏……!”

         

       아나이스는 아랫배에 저릿한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상상만으로 이런 자극이라니.

         

       그러나 그녀가 즐길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얼마 걷지 않아 그들은 사람이 없는 정원에 도착했다.

         

       “이제 일어나셔도 좋습니다, 아나이스 님.”

         

       원더스타인은 오는 길에 훔쳐 온 목욕 가운을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 이제 더는 개 흉내를 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녀는 선뜻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이 이름표를 떼고 두 발로 서면 자신은 다시 아나이스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겪고도 그녀는 정말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자신의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다 알게 되었는데?

         

       필요하면 웃음과 몸도 얼마든지 팔 수 있는 천한 기녀가?

       자존심 때문에 목숨 걸고 자신을 보살펴준 집사를 사지로 보내는 비겁한 년이?

       살기 위해서는 적들 앞에 엎드려 알몸으로 아양이나 떠는 암캐가?

         

       그런 자신이 정말 아나이스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럴 리 없어.

       그런 게 나 아나이스 베르그송일 리 없어.

       작위를 가진 귀족이, 대상회의 회장이, 천재라 불리던 여자가 그런 짓을 할 리 없잖아.

         

       그녀에게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 그것은 간단했다.

         

       “단장님, 저는 아나이스가 아니에요…….”

       “무슨 소립니까?”

         

       그녀는 그를 올려다보며 바보처럼 웃었다.

         

       “헤헤, 저는 가짜예요.”

         

       그녀는 젖은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으읏……아항!”

         

       끈적한 애액이 손에 묻어났다. 그녀는 그것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이것 보세요. 단장님이 아는 아나이스 베르그송은 이렇게 남들 앞에서 알몸을 보이고 흥분하는 음란한 여자인가요? 에헤헤, 도플갱어는 자기가 진짜인 줄 안다고 하네요? 그동안 저는 자신을 속여 왔던 거예요. 집사도 제 연기에 깜빡 속은 거예요.”

         

       원더스타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진짜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진화 연구소를 통해 검증도 끝냈다.

         

       그가 보기에 그녀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연달아 겪은 정신적 압박에 잠시 이성을 잃은 게 틀림없었다.

         

       “정신 차리십시오. 당신은 아나이스 베르그송 자작입니다!”

         

       아나이스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는……저는……저는……멍멍! 멍멍!”

         

       그녀는 엎드린 자세 그대로 개 짖는 소리를 냈다. 그녀는 혀를 길게 내밀고 침을 뚝뚝 흘렸다.

         

       “헥헥! 저는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고 엉덩이를 흔드는 암캐예요.”

       “아나이스……!”

       “그러니까 있죠, 단장님. 이런 천한 년은 그냥…….”

         

       그녀는 그의 앞에 무릎 꿇었다. 그가 입으라고 가져다준 잘 개어놓은 목욕 가운 옆에 알몸으로 엎드려 고개를 조아렸다.

         

       “개처럼 따먹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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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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