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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3

        

         

       아나스타시아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심심한지 몸을 살짝 흔들었다.

       그러자 괴생물체가 그녀의 움직임에 맞춰서 위아래로 흔들렸고, 그녀의 몸을 통통 튀게 했다.

       진짜 트램펄린처럼 말이다.

       괴생물체는 눈동자를 또르르 굴려서 그녀를 바라보며 혹시라도 아나스타시아가 밖으로 떨어져 내리지 않도록 감시했고, 촉수를 스멀스멀 뽑아내서 아래에 자그마한 그물망을 만들어내었다.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해서 그녀가 떨어진다면 재빨리 받아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 지극정성은 분명 감동해야 할 장면이기는 했으나…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조금 징그러운 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세린과 이아린, 엘라에게는 익숙한 광경이었다.

       아나스타시아가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으니까.

         

       도리어 지금 그녀가 깔고 앉은 것은 그래도 봐줄 만한 것에 속하는 녀석이었다.

       ‘진짜배기’라고 불릴만한 것들은 정말, 밤중에 보면 비명을 빽 지르면서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아도 이상하지 않을 비주얼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악몽을 통째로 추출해서 살인마에게 조형을 맡겨서 만든 작품이라도 되는 것 같은 비주얼을 가진 괴물들의 그 형상은 정말…신화 속 괴물도 저것보다는 잘생겼다 싶을 정도의 끔찍한 모습을 자랑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그런 끔찍한 비주얼을 가지고 있는 것들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 정도일까.

       아나스타시아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을 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귀엽고 예쁜 것을 좋아하는 일반적인 취향 역시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녀가 주로 들고 오는 것은 묘하게 귀엽고 예쁜 물건처럼 생긴 무언가라거나, 복슬복슬한 털이 인상적인 인형이라거나, 위험하거나 사나워 보이는 무언가를 데포르메(déformer)를 해서 귀엽게 바꾼 것 같은 괴생명체 같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엘라가 품에 안고 있는 게이밍 오목눈이였다.

         

       사람 머리통만 한 크기의 거대한 오목눈이.

       게이밍 물품처럼 RGB 색상이 천천히, 화려하게 계속해서 바뀌어서 계속 바라보고 있자면 눈이 아픈 생명체였다. 하지만 눈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색이 변하는 RGB 색상은 묘하게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었고, 거기다가 뭔가 귀엽고 하찮아 보이면서도 묘하게 빠져들 것 같은 얼굴까지 합쳐지니 시선을 집중시키게 만드는 녀석이었다.

         

       “방송이라는 것이 그렇게 빠르게 진행되는 게 아니라고 들었어요. 아직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조금 기다리다 보면 방송이 나오지 않을까요?”

         

       엘라는 복슬복슬한 감촉의 게이밍 오목눈이를 꼬옥 안은 채 아나스타시아의 말에 대답해주었다.

       흔들거리는 그네에서 눈을 감은 채 그렇게 말하는 엘라의 모습은, 중세 귀족 가문의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영애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녀가 품에 안은 것이 자연스럽게 시선을 집중하게 만드는 게이밍 오목눈이가 아닌, 평범한 강아지나 고양이였다면 정말로 귀한 귀족 가문의 영애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았으리라.

         

       “이 언니는 기다리기가 힘들답니다…. 참을 수 없어요…!”

         

       아나스타시아는 나름 성실하게 답변해준 엘라의 말에 몸을 통통 튕기며 그렇게 말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떼를 쓰듯이 말이다.

         

       당연하게도 그녀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트램펄린은 위아래로 움직이며 아나스타시아를 더 높이 튕겨주었고, 그녀가 몸을 기대고 있던 빈백 소파 역시 모양을 이리저리 바꾸었다.

         

       꿈틀.

         

       이런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면 아나스타시아가 떨어질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일까?

       트램펄린은 촉수를 뽑아내 그물처럼 만들어 그녀가 떨어지지 않도록 벽을 만들었고, 빈백 소파는 몸을 쭉 늘려서 아나스타시아의 몸에 대각선의 줄 하나와 가로줄 하나를 걸치고 자신에게 딱 달라붙게 했다.

         

       안전띠였다.

         

       아나스타시아에게 안전띠를 채운 빈백 소파는 자신이 굴러떨어지지 않도록 몸을 쭉 늘려서 트램펄린의 촉수와 얽혀 몸을 고정했다.

       그렇게 아나스타시아는 과보호로 인해 안전하게 되었다.

       물론 그 반대급부로 몸을 통통 튕기는 일은 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냥 참으세요.”

         

       엘라는 슬쩍 눈을 떠서 이러한 아나스타시아의 모습을 보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더 이상 대답해주지 않겠다는 듯 그네에 몸을 기대고 앞뒤로 흔들며 자유를 만끽했다.

         

       그렇게 둘의 대화는 끝났고,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아까와 같은 평화가 말이다.

         

       저 멀리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축구를 하면서 노는 소리가 들려오고, 운동장의 스탠드에 모여있는 여자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백색소음처럼 울려 퍼진다.

         

       “그어어.”

         

       나무의 꼭대기에서는 이아린이 각도 때문인지, 피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코를 기묘하게 고는 소리가 풀벌레나 매미의 울음소리 대신 퍼지며 배경음악으로 깔렸고, 그 아래에선 아나스타시아가 스마트폰에 틀어놓은 동영상 사이트의 유머 동영상이 재생되는 소리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엘라는 그네 삐걱대는 소리와 함께 눈을 감고 있었고.

         

       [ 안타까운 일이로구나. 지금 그 방송의 미래는 불투명한 것을 말이다. ]

         

       이세린의 옆에서는 그녀만 볼 수 있는 낙타가 귓가에 말을 속삭이고 있었다.

       권능을 통해서 알아낸 ‘비밀’을 말이다.

         

       그레모리는 혀를 날름 움직여 자기 입 주변을 닦았고, 바닥에 배를 깔고 앉아있는 상태로 목을 길게 늘였다.

         

       [ 계약자야, 귀여운 계약자야. 저 꿈속에서 노는 것을 즐겨하는 기묘한 마녀와 같이 호기심이 충만한 나의 계약자야. 너는 알고 있지 않으냐? 호기심 때문에 이것저것 알아보았으니 말이다. ]

         

       ‘응.’

         

       이세린은 그레모리의 속삭임에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 아주 대단한 비밀이었지. 그래, 말 그대로 ‘비밀’이라고 할법한 일이었단다. 어찌 한국의 땅에서 원수의 물건이 튀어나왔으며, 그 원수의 얼굴의 이름이 떡하니 거기에 박혀있을 수 있을까? ]

         

       ‘…놀라운 일이었어.’

         

       [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 안에는 비밀이 있었다는 것이다. 함부로 들여다보려 했다가는 신체에 위해가 가해질 정도의 끔찍한 비밀이 말이다. ]

         

       이세린은 그레모리의 말처럼, 권능을 사용해 방송에 대해 알아본 적이 있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식사 시간에 갑자기, 이양훈의 입에서 성인이 되자마자 집을 나간 오라비가 TV에 출연할 수도 있다고 말을 하는데 그걸 어떻게 참을 수 있단 말인가?

       당연히 궁금증이 들었고, 호기심이 들었고, 그것을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궁금증이 들었으면 해소를 하고, 호기심이 든다면 확인해야 한다.

       상식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이세린은 움직였다.

       박진성이 출연하는 방송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말이다.

         

       그녀의 행동은 즉시 이루어졌다.

         

       물론 방송국은 들어가지 못했다.

       방송국에 직접 들어가서 자료도 보고, 편집 자료도 보고, 몰래 숨어서 회의도 지켜본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이 없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방범 장치니, 아티팩트니 하는 것들이 쫙 깔려있었다.

         

       본래도 삼엄했던 방송국의 경비는, 생방송 뉴스 시간에 난입해서 ‘내 귀에 도청 장치가 있다.’, ‘미국의 모 IT 부자가 베리 칩을 만들어 사람들의 몸에 심어서 세계를 정복하려 한다.’, ‘세상은 평평하며, 달 역시 평평하다. 구체 형태라고 떠들어대는 것은 매스컴의 세뇌에 불과하다.’, ‘아니다. 요즘 달이 평평하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사실 달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보는 달은 환상일 뿐이다.’ 등의 헛소리를 지껄이는 사건이 몇 차례 일어나면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삼엄해졌다.

         

       아직은 그레모리의 권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이세린으로서는 그 삼엄한 방송국의 경비를 뚫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사용한 방법은 방송국 밖에서 스태프들의 대화를 엿듣는 것이었다.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방송국 내부라면 모를까, 방송국 외부의 식당에 그 정도의 경비가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이세린은 스태프들의 대화를 엿들어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고, 그렇게 정보를 쉽게 알아내었다.

         

       그런데…. 그 정보가 예사롭지 않았다.

         

       과할 정도로 대박이 터져서 방송에 내보낼 수 없을 거라느니, 방송국 윗선에서 커트 당했을 뿐만 아니라 국정원 직원들까지 나왔다느니, 스태프들의 스마트폰에 국정원이 이상한 어플을 설치했다느니….

         

       누가 들어도 이상한 정보들이었다.

         

       고작 방송인데.

       고작 방송일 뿐인데 국정원이 왜 나오고, 이상한 어플 얘기는 또 왜 나온단 말인가?

         

       당연히 이세린은 이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좀 더 깊숙이 그 비밀을 탐구하였고….

         

       ‘…방송 못 나가도 어쩔 수 없어.’

         

       미성년자인 그녀조차도, ‘어 이거 지금 상황에서 방송되면 큰일 나겠는데?’ 싶은 비밀을 알아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방송의 미래가 불투명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하지만 그리 실망할 일은 아니었다.

       이양훈이 말하기를, 박진성이 방송을 세 개 정도 출연할 것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중 한 개가 취소되었을 뿐이다.

       고작 세 개 중 하나가 말이다.

         

       그리고 말이 세 개지….

       반응만 좋다면 그 이후에도 방송에 출연해달라는 연락이 끊이지 않을 것이고, 그것을 수락하기만 한다면 TV에서 계속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궁금하긴 한데….’

         

       취소되었을 방송이 궁금하기는 했지만….

       이세린은 그것까지는 크게 집착하지 않았다.

       탐사보도 프로그램에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 않았으니까.

         

       이세린은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다가 문득, 궁금증 하나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오빠…는 지금 뭐 하고 있을까? 다른 방송을 찍고 있나…?’

         

       첫 번째 방송 제작이 무기한 연기된 지금.

       그녀의 오빠, 박진성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말이다.

         

         

         

        * * *

         

         

         

       “이것은 앎의 과정이다. 걸어가는 것을 잠시 쉬고, 멈춰선 채 몸을 돌려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것이다. 추상적인 발자국을 바라보아 형상과 크기를 재고, 그 방향과 모양새를 살펴보아 옳았음을 알아보는 회상이다.”

         

       어두운 방.

         

       진성은 삼매(Samādhi)의 불꽃을 횃불로 삼아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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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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