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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3

   거리 어디에나 있을 법한 귀족의 모습으로 변장을 한 알새틴은 거리의 인파를 뚫어가면서 다급히 소울 아카데미 쪽으로 향했다.

   

   현재 그와 그의 스승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고객인 루시 알른에게 즉시 알려야 할 정보가 있었기 때문에.

   

   솔라딘 왕국의 1왕비가 왜 아카데미 종강 파티에 참여한단 말인가!

   

   건강이 좋지 못한 국왕 대신 모든 일을 처리하느라 쉴 틈이 없을 그녀가 어찌 이 곳에 방문한단 말이냐!

   

   수많은 정보를 규합하고 정리하는 것을 일상으로 삼던 알새틴에게 있어서도 이는 예상외의 사태였다.

   

   르네 솔라딘이 아카데미를 다닐 적에도 정무를 이유로 종강 파티에 참석하지 않던 1왕비다.

   

   그런 그녀가 자그마한 관심조차 주지 않던 두 아들의 핑계를 대며 이 곳에 올 것임을 어찌 상상하겠는가.

   

   덕분에 알새틴이 이끄는 이들 사이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왕국의 최중요인물 중 하나가 갑작스레 일정을 변경함에 따라 찾아올 여파 때문에.

   

   그리고 그들의 주요고객인 루시 알른과 1왕비가 만났을 때 어떤 참사가 벌어질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자야. 우리 고용주님은 국왕폐하께도 늙고 병든 돼지라는 소리를 했던 사람이야. 1왕비님을 모욕하지 않을 리가 있겠니?’

   ‘…또 한바탕 난리가 나겠군요.’

   ‘얼마나 속을 썩이면 베네딕의 위장에 구멍이 날지 궁금하긴 한데. 그 미친년이 우리 고용주님의 무례에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추측이 안 돼서 실험을 못 하겠어.’

   

   스승에게 루시와 베네딕을 데리고 오란 명을 들은 알새틴은 자신이 가기 전에 사고가 터지지 않기를 바라며 최대한 걸음을 빨리했다.

   

   알른 가문의 두 사람이 남긴 자취를 따라 움직인 알새틴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카데미 던전의 체험장에서 루시 알른을 찾아냈다.

   

   그건 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루시라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 서 있더라도 눈에 띄는 사람이었으니까.

   

   “안녕하십니까. 알른 영애.”

   

   알새틴이 짐짓 귀족다운 예의를 차리며 고개를 숙이자 루시가 미간을 찌푸린 채 수정구에서 눈을 뗐다.

   

   자신의 존재를 거슬려함이 훤한 표정에 알새틴이 다급히 손을 움직인다.

   

   루시 알른과 그들 사이에 합의된 동작.

   

   그걸 확인하고 나서야 루시 알른이 한 쪽 눈썹에서 힘을 풀었다.

   

   바꾸어 말하자면 그녀의 다른 쪽 눈썹은 여전히 짜증이 나 있었다.

   

   “눈이 멀기라도 했어? 나 지금 바쁜 거 안 보여?”

   “영애. 다급한 일입니다. 잠시만 시간을.”

   “몇 분 안 걸릴 테니까 기다려. 그럼 나중에 잘했다고 칭찬해 줄 테니까.”

   

   그럴 때가 아니라는 말이 절로 치솟았지만 알새틴은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그를 견뎠다.

   

   안 그래도 눈에 띄는 상황에서 소란까지 피울 순 없었으니까.

   

   도대체 저 수정구 속에 비치는 것이 무엇이기에 영애께서 눈을 떼질 못 하시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슬며시 시선을 돌린 알새틴은 기다란 복도를 1초도 걸리지 않고 주파하는 베네딕을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베네딕 경께서 던전을 공략 중이셨던 건가.

   

   스승의 권유로 루시가 설계한 던전을 공략해 보았던 알새틴은 지금 베네딕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

   

   꿈에서 깨어난 시점.

   

   0층으로 향하기 직전의 복도.

   

   저 속도로 내달리신다면 분명 머잖아.

   

   ‘안ㄴ…’

   

   콰아아앙!

   

   문을 열고 폐인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그의 얼굴에 베네딕의 주먹이 꽂힌다.

   

   만전의 힘을 지닌 폐인조차 반응할 수 없는 속도와 인간의 주먹질이라 믿을 수 없는 충격이 합쳐진 그 주먹에 폐인의 몸이 허공을 날아서 벽에 처박혔다가 바닥에 떨어진다.

   

   ‘미안하네! 내가 좀 급해서 말이야!’

   

   피를 토하느라 말을 잇지도 못하는 폐인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며 베네딕이 재차 팔을 움직인다.

   

   그리고 또 다시 수정구 너머에서 들려오는 충격음.

   

   내지르는 수가 뻔해서 그렇지 스펙 자체는 압도적이던 폐인이 반항 한 번 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광경에 알새틴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베네딕 경께서 경이로운 강함을 지니고 계시단 이야기는 몇 번이나 들었다.

   

   함께 전장을 누볐던 이들에게 동경이자 공포로 군림했다는 사실도 말이다.

   

   허나 소문으로만 들었던 무위를 두 눈으로 마주하게 되니 스스로의 상상이 얼마나 어설펐는지를 알게 되는 군.

   

   스승님의 말씀에 따르면 저것도 많이 약해진 상태라 하시던데. 도대체 전성기 때는 얼마나 강하셨다는 것일까.

   

   …용의 머리를 반으로 갈라버렸다는 그 소문이 진짜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드네.

   

   ‘젠장! 죽어어어!’

   

   베네딕과 폐인이 마주한 지 채 1분이 지나지도 않았을 무렵 폐인이 자신의 붉은 마력을 주변으로 흩뿌렸다.

   

   녀석의 마지막 발악.

   

   기록을 갱신하려는 이들에게 있어 가장 큰 어려움으로 다가왔던 필살의 일격.

   

   상대를 죽음에 이르게 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마법의 앞에선 베네딕은 느긋하게 어깨를 풀고는 자신의 주먹에 마력을 담았다.

   

   ‘고생했네. 이만 쉬도록 하게.’

   

   그것으로 끝이었다.

   

   베네딕의 주먹이 폐인의 붉은 마력을 분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깥으로 나가는 문이 나타난 것이다.

   

   던전의 입장부터 보스를 쓰러트리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단 2분 32초.

   

   여태까지 1등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던 루시 알른의 기록에서 몇 분이나 단축된 압도적인 숫자였다.

   

   자신의 무기조차 들지 않고 저 정도인데 메네스테일에서 보았던 대검을 드신다면 대체 얼마나 강해지는 것일지.

   

   “…하면. 아냐. 이걸론 무리야.”

   

   음? 영애께서 무슨 소리를 하고 계신 거지? 무리라니?

   

   “냄새 나는 폐인이 쓸데없이 질겨. 쯧. 썩은 고기면 좀 쉽게 찢어지면 안 되나?”

   

   그 뒷말을 들은 알새틴은 루시 알른의 혼잣말이 무얼 의미하는 지 깨달았다.

   

   베네딕 경이 세운 기록을 갱신할 방법을 찾고 계신 건가?

   

   도저히 넘어설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저 기록을?

   

   루시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알새틴이 크게 놀랐던 것은 그녀의 중얼거림이 막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녀는 분명한 계획을 지니고 베네딕의 기록을 깨기 위한 고민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비교할 수도 없는 신체적 격차를 자신의 능력으로 뛰어넘으려 하고 있었다.

   

   하.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는 건가.

   

   이러니 알른 가문의 핏줄에선 괴물밖에 태어나지 않는단 이야기가 나오지.

   

   알새틴이 루시가 들으면 기겁할법한 생각을 이어나가던 그 때에 저 멀리에서 거대한 발소리가 재빠르게 다가왔다.

   

   그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필요치 않았다.

   

   저토록 호탕하고 커다란 목소리를 지닌 사람은 세상에 하나뿐일 테니까.

   

   “루시이이이! 이 파파의 활약을 지켜봤니?! 파파 완전 대단하지?! 그치?!”

   “파파♡”

   “응?!”

   “딸 상대로 진심 다하고 자랑하는 거 완전 추해♡ 이런 사람이 파파라는 게 부끄러울 정도야♡”

   “그. 그런!”

   “다가오지 마♡ 기분 나쁘니까♡”

   “루시이이이…”

   

   방금 전까지 경외스러운 강함을 보여주던 이가 자신의 딸에게 제발 용서해달라며 비는 모습에 알새틴은 또 다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런 말을 해선 안 되겠지만 알른 영애께서 삐뚤어진 데엔 베네딕 경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흠? 그 쪽은 누구지?”

   

   베네딕이 한참을 빈 끝에 루시의 용서를 구한 후 그의 시선은 자연스레 옆에 서 있던 알새틴 쪽으로 향했다.

   

   방금 전 딸을 바라보던 애정 어린 눈빛과는 전혀 다른 차갑고 위압적인 분위기.

   

   정보상으로 지내며 온갖 인물들을 만나 보았던 알새틴이지만 베네딕이 주는 위압감은 그조차도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 정도였다.

   

   “육신을 보아 아카데미의 학생은 아닌 듯 한데.”

   “내 충견 중 하나야.”

   “…충견?”

   

   루시가 한 마디를 내뱉기 무섭게 베네딕의 주변에서 마력이 피어오른다.

   

   압박감만으로 질식해 죽어버릴 듯한 분위기 속에서 알새틴이 간신히 말을 짜낸다.

   

   “알른 백작. 무언가 오해를 하고 계십니다.”

   “오해. 오해라. 그것 참 재밌는 말이군.”

   

   성인 남성의 머리를 가볍게 잡아 뜯을 것 같은 거대한 손이 알새틴의 귀를 스쳐 지나가며 그의 어깨에 올려 진다.

   

   “어디 한 번 변명을 해보겠나?”

   “그. 그것이.”

   

   메네스테일에서 스승님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죽음의 감각.

   

   숨이 막힌다. 식은땀이 흐른다. 머리가 새하얘진다.

   

   젠장. 마음을 다잡을 수가 없…

   

   “파파!♡”

   

   다행스럽게도 알새틴의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보다 루시가 목소리를 드높이는 쪽이 더 빨랐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설마 이딴 허접이 나랑 어울린다고 생각을 하는 거야?♡ 진짜로?♡”

   “아. 아니. 루시. 그게 있잖으냐.”

   “내 강아지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도 기분 나쁜데 나처럼 고귀하고 예쁜 여자애를 이런 떨거지랑 같은 선상에 올려두다니!♡”

   “이 파파는 널 걱정해서.”

   “완전 실망이야♡ 나 갈래♡ 기분 나쁜 파파는 따라오지 마♡”

   “루시이이이이! 내가 잘못 했다아아아!”

   

   지금 딸아이 앞에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 비는 사람이랑 방금 전에 날 협박하던 그 사람이 같은 사람인가?

   

   급격한 전개를 따라가지 못해 멍하니 그 광경을 구경하던 알새틴은 주변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느끼고는 다급히 루시와 베네딕 사이에 끼어들었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스승이 알려주었던 신호는 베네딕에게도 유효했다.

   

   *

   

   알새틴과 헤어진 후 베네딕을 데리고서 약속되어 있는 장소로 향하자 카리아가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안녕. 둘 다 오랜… 저기 고용주님. 얘 왜 이래?”

   

   ‘물어보지 마요.’

   “내가 어떻게 알아? 바보 아버님이 바보짓을 하고 있는 건데.”

   

   “훌쩍.”

   

   나보다 세 배는 클 것 같은 덩치가 훌쩍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절로 한숨이 샜다.

   

   알새틴을 보자마자 한 소리를 퍼 붇는 게 가만 내버려두면 나중에 더 심해질 것 같아서 강하게 나간 것이 잘못이었다.

   

   설마 그 후유증이 지금까지 이어질 줄이야.

   

   <네 던전에 대한 자부심에 흠집을 내서 짜증났단 이야기는 왜 빼먹는 게냐.>

   

   할배의 이야기를 한 귀로 흘린 나는 자꾸 내 눈치를 살피고 있는 베네딕의 앞에 섰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일의 진행이 안 될 것 같으니까.

   

   ‘아버님.’

   “바보 아버님.”

   

   “훌쩍.”

   

   …이 인간 못 들은 척 했어.

   

   삐졌다 그거야?

   

   아아악! 진짜! 알겠어!

   

   원하는 대로 불러주면 되잖아!

   

   “파파♡”

   “…루시이이.”

   “파파는 왕바보니까♡ 오늘 바보짓을 한 건 착한 내가 특별히 용서해줄게♡”

   “오오오. 루시. 정말 고맙구나.”

   “대신♡ 또 이런 짓 하면 그냥 집에서 나가버릴 테니까 그런 줄 알아♡”

   “알겠다! 이 파파는 루시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마!”

   

   용서해준다는 한 마디에 싱글벙글해진 베네딕을 보고 있자니 할 말이 많았지만 괜한 소리를 해봐야 방금 전의 재현이 될 게 분명해서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카리아는 베네딕을 한심하다는 듯 노려보다가 말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하아아. 시간이 없으니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 두 사람을 부른 건 오늘 종강 파티에 참석하는 인원 때문이야. 여기 정리해뒀으니까 한 번 읽어봐.”

   

   누가 오길래 카리아가 이러는 거지?

   

   여러 공작들이 참석해서 그러는 건가?

   

   아냐. 그 정도는 지금의 나라면 충분히 대처가능한 수준이야.

   

   위장이 좀 아프긴 하겠지만 큰 문제는 안 돼.

   

   페이비 때문에 교회 측에서 인원이 오는 건가?

   

   그것도 어지간한 수준이면 별 문제는 없는데.

   

   지금 난 어느 정도 신성을 감출 수 있게 됐으니까.

   

   …설마 2왕비가 오는 건가?

   

   그 노괴가 날 영입하기 위해 찾아오는 거야?!

   

   그건… 좀 많이 곤란한데.

   

   그 인간 앞에서 노괴라는 말을 내뱉었다가 어떤 꼴이 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종이를 넘긴 나는 맨 위에 적혀 있는 이름을 보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카바티 솔라딘’

   

   왕궁에 처박혀 있어야 할 중세 트럼프 년이 온다고?!

   

   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솔라딘을 다시 위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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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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