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43

    <343 – 수상한 전직용사의 강의>

     

    빼도 박도 못할 증거가 나왔다.

    오크노디는 답안지를 얻었다.

    사다코 교수와 디스트로이어 교수에게서.

    둘 중 이런 수완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은 디스트로이어 교수.

    당대 최강의 도적으로 전대용사 <니알라토텝>이 이끌던 용사파티에서 활약했던 디스트로이어의 소행임이 틀림없었다.

     

    “놀랍군.”

     

    솔직히 이런 짓을 저지를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디스트로이어 교수가 무엇이 아쉬워서 재단의 손을 들어주겠는가.

    그러나 답안지의 존재가 말하고 있다.

    아무리 불가능에 가까운 가설이라도 이것이 실제로 벌어진 현실이라는 사실을.

     

    “응애.”

     

    침입자의 존재도 모르고 잔뿌리를 벽에 찔러 넣으며 뿌리를 단련하는 응애 만드라고라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답안지를 넘겨보던 손이 멈췄다.

     

    ━━━

    브론즈 교수님 과제 ②

    브론즈 교수님 과제 ③

    브론즈 교수님 과제 ④

    ━━━

     

    지난 번 강의에 제출한 첫 과제를 제외한 앞으로 주어질 과제들이 모두 적혀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진도에 따라 이런 과제를 내주겠구나 싶을 정도로 딱딱 들어맞는 과제들.

    제시하는 주제도, 그에 수반되는 정답도 모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만한 결과였다.

     

    ‘차라리 내가 만든 답안지를 훔쳤다면 그 수완을 인정해서라도 만점을 주었겠지. 하지만 이건…’

     

    정말로 오크노디 본인의 실력이 맞는가?

    그녀를 돕는 교수 디스트로이어의 솜씨이지 않은가.

    교수의 커리큘럼을 꿰뚫어보는 안목과 지혜.

    전대용사파티의 일원이 아니고서야 교수급이라도 쉬이 흉내 낼 수 없는 짓이다.

    만능의 도적, 디스트로이어.

    그의 수완일 가능성은 이미 확신범 수준으로 높아졌다.

     

    물론 글씨는 삐뚤삐뚤한 응애글씨체로 써져있다.

    아직 태어난 지 10년도 안 지난 응애 만드라고라가 펜을 들어서 대필한 것이 아니고서야 오크노디의 글씨체가 틀림없다.

    원본 답안지는 이미 모두 파기하고 받아쓰기를 끝마친 과제제출용 답안지였다.

     

    문제로 삼더라도 디스트로이어 교수가 발뺌을 할 여건은 충분하다는 뜻이다.

     

    “명호스님. 당신이 옳았어.”

    “허어. 믿고 싶지는 않았건만 정말로 그 사내가 재단에게도 손을 벌리다니.”

    “디스트로이어 교수가 재단의 뒤를 파헤치는 모습을 보였던 것도 결국은 눈속임이었다는 거겠지. 아니면 그 도중에 포섭을 당했던가.”

     

    명호스님의 얼굴에 수심이 드리웠다.

     

    “오크노디의 입지가 보기보다 위험했는가… 원시천존이시여, 소녀가 짊어질 운명이 너무나도 기구하지 않소이까. 부디 공덕으로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무슨 의미지?”

    “아카디아 세비체 1년생의 가문에 일어난 습격은 디스트로이어 교수의 소행이었소. 세비체 공작가문은 재단과 결탁했고 디스트로이어 교수는 오크노디와 아카디아가 지불한 대가를 받고 세비체 가문의 절멸을 막아주었고.”

    “그럼 좋은 것이 아닌가?”

    “디스트로이어 교수가 재단에 포섭되지 않았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었을 것이오. 허나 재단에 포섭된 지금은 습격 자체에 다른 의도가 느껴지오.”

     

    명호스님은 사건을 완전히 재구성했다.

     

    “재단에서는 오크노디의 주변인을 그 신분고하에 관계없이 언제든지 파괴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길들이기를 시도한 것이오.”

    “!!”

    “이런 짓을 저지를 사람은 재단의 이사장 제일 와이히엠하이밖에 없지. 요 근래 일어난 재단 산하조직 수인부흥회 일원의 피살사건도 오크노디 길들이기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보오.”

     

    브론즈 교수는 반성했다.

    땡중이라며 멸시해왔던 사내는 오크노디를 향한 깊은 걱정의 마음으로 집요하게 사건을 관찰하고 파헤친 끝에 진상에 도달했다.

    의적인 자신이라면 더욱 신속하게, 더욱 정확하게 도달할 수 있었을 진상에.

    이래서야 오크노디가 누구의 수제자인가.

    스승 된 입장에서 자존심이 구겨졌다.

     

    “애정 같은 얄팍한 감정을 키울 생각은 없었지만 조금은 눈여겨봐야겠네. 이 이상 엄한 놈들이 꼬리 치지 못하도록.”

     

     

    * * *

     

     

    ━━━

    목요일 4교시.

    디스트로이어 교수의 모험학부 전공강의.

    <은퇴한 전직용사와 세계의 거악들>.

    ━━━

     

    분명 지난주까지만 해도 수강생 0명의 망한 강의인 줄 알았던 디스트로이어 교수의 강의에 두 명의 수강생이 나타났다.

    한명은 직전학기 유일한 수강생이었던 오크노디였고 또 한 명은 학년차석이자 현역용사 이슈타르였다.

     

    “엥? 이슈타르가 여길 왜 와요?”

    “용사가 전직용사의 강의를 듣는 게 뭐 어때서.”

    “1학기에는 관심도 없었잖아요!”

    “…그땐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착각은 하지 마. 너와 같은 강의를 듣는다고 네가 포인트사기로 엿 먹인 일을 용서했다는 건 아니니까.”

     

    뱃놀이를 다녀온 후로 부쩍 강해진 것은 느꼈지만 용사에게까지 한 방 먹였을 줄이야.

    멀리서 몰래 염탐하던 브론즈 교수는 자신의 수제자가 벌인 짓에 제법 놀랐다.

    그러나 진짜 놀랄 일은 강의를 엿보면서 시작됐다.

     

    “전직용사가 세계에 창궐한 악을 멸하는 용사행에 나서면서 가장 먼저 직면한 적은 하찮은 몬스터였으나 가장 먼저 직면한 거악이라 부를 존재도 몬스터였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었지.”

     

    디스트로이어 교수는 과거의 모험담을 토대로 가르침을 주는 강의방식을 취했다.

    용사파티 일원이 아니고서야 누구도 모를 세계의 비화가 작은 강의실에서 묵은 기억을 헤집고 나타났다.

     

    “제국의 혁명가. 만신의 대리인. 결사의 총수. 그중 가장 먼저 용사파티와 마주친 존재는 제국의 혁명가였다. 13년 전, 변방의 마을들을 순회하며 감사패를 얻은 용사파티가 제도로 상경했을 무렵. 당시 제도에서는 대기근을 피해 몰려온 난민이 가득했지.”

     

    디스트로이어는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에 일어난 삼대거악과의 첫 조우를 이야기했다.

     

    “한정된 식량. 지나치게 많은 농민.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적은 양의 식량으로 최대의 이익을 보고 싶었던 한 상단주가 기묘한 의뢰를 걸었지. 난민들을 이용할 수익모델을 만들어주는 모험가에게 순수익의 1%를 나눠주겠다는.”

    “그 상단주가 삼대거악이었어요?”

    “상단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상인이었다. 하지만 우리 용사파티의 리더였던 니알라토텝은 용사활동의 활동자금을 벌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상인혼을 발휘하며 상단주의 의뢰에 도전했지.”

     

    니알라토텝은 정말 터무니없는 용사였다.

    기어이 대박을 쳤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정부에서 배급으로 푸는 식량에 비하면 상단주가 동원할 수 있는 식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니알라토텝은 한정된 식량을 생색 부리며 풀 수단을 기어이 찾아내고야 말았지.”

     

    파란색의 자그만 딱지.

    그것을 보는 순간, 브론즈 교수는 강렬한 혐오감을 느꼈다.

    한때 제국을 뒤흔들었던 거대한 사건이 바로 저 작은 딱지에서 비롯되었음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와! 파란딱지!”

    “알아보겠나?”

    “당연하죠. 모으면 유령들의 도시에서 아이템이랑 바꿀 수 있는 특수재화잖아요?”

    “…이건 식량카드라고 부르는 녀석이다. 3장을 모으면 한 끼 식량과 교환할 수 있었지. 유령들의 도시는 도대체 뭐하는 곳에 있는 녀석이냐?”

    “비밀이요!”

     

    이슈타르가 황당해하였다.

     

    “그걸 오크노디 네가 어떻게 알아? 제국에서 자란 나도 어릴 때의 일이라 기억도 안 나는데.”

    “비밀이야!”

    “확실히 이상하기는 하군. 오크노디의 나이는 11살 가량이 아니었던가. 태어나기도 전에 고작 반년 남짓 일어났던 식량카드를 알아보다니. 그것도 본래의 사용처와는 다른 기괴한 방식으로.”

     

    괜히 아는 척을 했다며 식은땀을 흘리며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오크노디.

    추궁하려면 할 수 있음에도 디스트로이어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분명 제국에서 <강화>와 마찬가지로 금기로 지정한 <식량카드>를 재단에서 모종의 방식으로 음지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오크노디는 그걸 경험해보았고.

    느낌은 더럽지만 당장 파헤칠 일도 아니고, 파헤친다고 순순히 대답할 오크노디도 아니었다.

    디스트로이어 교수는 강의를 계속했다.

     

    “니알라토텝은 상단의 일을 돕는 난민들에게 식량카드를 지급하기로 결정했고, 실제로도 얼마간은 성과를 거두었다. 쌀 한 톨과 밀 한 알도 귀한 시기에는 그조차도 절박한 사람들이 넘쳐났으니까. 아주 값싸게 노동력을 구할 수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제국의 금기로 지정된 기술이죠. 저는 어린 시절에 제도에서 살지 않아서 잘 모르는데, 블루카드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교수님?”

     

    어린 용사의 호기심이 기꺼웠는지 디스트로이어가 역으로 질문했다.

     

    “맞춰봐라. 세 사람 모두 기회는 한 번. 정답이면 강의를 째거나 몰래 엿듣고 다녀도 한 번은 봐주지.”

     

    세 사람이라니.

    설마 날 말하는 건가?

    설마 이 정도의 거리에서 기척이 들켰나?

    이건 좀 무서운데.

    주변을 둘러보던 브론즈 교수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발자국.

    그녀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발자국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보였다.

     

    “아참. 교수님은 알고 계셨지?”

     

    세 사람이라는 말에 찔리는 기색을 드러낸 오크노디가 반지를 문지르자 반지에서 인형처럼 단아한 차림새의 여자아이가 스르륵 모습을 드러냈다.

     

    “유령!?”

    “공격하지 마! 교수님들한테 데리고 다녀도 된다고 허락도 받았어.”

     

    디스트로이어는 시큰둥한 얼굴로 재촉했다.

     

    “그래서 답은?”

    “제가 먼저 나서죠.”

    “말해봐라, 이슈타르.”

    “지급할 식량이 다 떨어졌는데도 상단 측에서 욕심을 부려 블루카드를 계속 시중에 풀어서 식량을 얻지 못한 난민들이 폭동을 일으켰다거나?”

    “10점이다.”

     

    이슈타르가 주먹을 쥐며 기뻐했다.

    봤냐?

    뻐기듯이 오크노디를 향해 턱을 치켜들며 여유를 부리는 그녀에게 디스트로이어가 매정히 말했다.

     

    “100점 만점 중에.”

    “풉.”

     

    오크노디가 입가에 손을 가져다대고 웃었다.

    가짜여동생 린도 그 모양새를 보고는 오크노디의 흉내를 내며 똑같이 비웃었다.

    두 배로 놀림당한 용사의 얼굴이 수치심에 빨개졌다.

    얼굴이 빨개져서 입을 꾹 다문 이슈타르 대신 오크노디가 손을 들었다.

     

    “제 차례죠?”

    “말해봐라, 오크노디.”

    “블루카드의 제작에 사용되는 원재료를 입수한 경쟁상단에서 같은 카드를 시중에 대량으로 풀어서 상단을 파산시켰을 것 같아요! 저라면 그럴 듯!”

    “…누가 다크프린세스 아니랄까 봐 정말 악마 같은 생각만 떠올리네.”

     

    이슈타르의 핀잔에도 정작 디스트로이어 교수의 표정은 썩 나쁘지 않았다.

     

    “50점이다.”

    “힝. 반만 맞췄구나.”

    “마지막이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지?”

     

    오크노디의 유령친구가 입을 뻥끗거리며 대답해야 하나 당황했지만 디스트로이어 교수의 시선은 유령에게 닿지 않았다.

    유령이 아니다.

    그가 대답을 요구하는 세 번째 학생은 따로 있었다.

    브론즈 교수는 이번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눈치 챈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 전에 알아차렸으니까.

    유령은 발자국이 없다.

    의적은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그럼 다른 사람일 수밖에.

     

    “…어떻게 아셨습니까?”

     

    투명망토를 벗고 모습을 나타낸 헤스티아가 몹시 당혹스러워하였다.

     

    “그 망토를 쓰기엔 네 덩치가 너무 크다.”

    “그래도 제대로 몸을 웅크려서 썼는데…!”

    “자세가 구겨진 만큼 걸음에 체중이 실렸지. 발자국은 깊어졌고 흔적을 지우지도 못했으니 족적만으로도 네 존재와 위치, 체구는 모두 파악했다.”

    “과연… 교수님의 눈은 속일 수 없겠군요. 몰래 숨어들어온 점은 사죄드립니다.”

    “수강신청이라면 정면으로 찾아와도 될 것을 뭘 노리고 숨어들었지?”

     

    헤스티아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쭈뼛거리다가 대답했다.

     

    “오크노디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안 그래도 너무 많은 강의를 듣는데 제 수련까지 봐준다고 하니 몰래 강의 도중에 도움이라도 주려고 생각해서…”

     

    누가 누굴 도와준다는 건지.

    디스트로이어 교수와 브론즈 교수, 용사 이슈타르 모두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오크노디 본인조차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헤스티아의 마음은 고맙지만 괜한 수고였어요! 과제는 딱히 어렵지도 않은걸요.”

    “정말이야?”

    “투명망토도 제대로 쓰려면 한 장을 더 구해서 사이즈를 업했어야죠.”

    “양면띠지의 방에 기록된 히든피스가 숨겨진 장소에는 망토가 하나밖에 없었는데?”

    “다른 망토소유자를 습격해서 망토를 빼앗아야죠!”

    “…”

     

    브론즈 교수도 괜히 왔나 싶을 정도로 아무리 봐도 걱정이 필요한 아이가 아니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