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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3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한다.

       

       여태껏 여신의 말씀은 엘프들에게 꿀과도 같았다. 확실하고, 달콤하고, 종족 번영에 도움을 주는 그런 말뿐이었다.

       

       그렇다.

       

       으레 정치인들은 세계수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고상하고 감미로운 음악처럼 즐겨왔다.

       

       반복된 자극은 예측을 불러온다. 이번에도 듣기 좋은 노랫가락이 흘러나오리라. 정치인들은 그리 믿어 의심치 않았다.

       

       기대를 하니 배신당하는 것이다.

       

       [양심이 없네, 양심이 없어.]

       

       세계수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일변했다.

       

       “여, 여신님?”

       

       대통령의 표정이 곧 엘프들의 표정이었다. 하나같이 멍청한 얼굴이었다.

       

       여신이 엘프들에게 존대를 사용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여신의 목소리는 항상 푸근했다.

       

       그런데, 이건 무어란 말인가.

       

       플로반스에서 벌어진 소요를 잠재울 만한 신탁이 내려올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기대가 한순간에 박살이 났다.

       

       이어진 말은 더더욱 충격적이었다.

       

       [너희에게 자비를 베풀었던 것이 나의 잘못이었다.]

       

       엘프들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뭔가 싸하다.

       

       보통 싸한 것도 아니고, 얼어붙을 정도로 싸늘하다.

       

       [고작 세계수를 받아 관리하게 된 일을 가지고, 너희가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종족이라고 믿고 있었더냐?]

       

       신께서 말씀하신다.

       

       [웃기지 마라.]

       

       너희는 선택받은 종족이 아니라고.

       

       [교만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너희가 마왕이랑 다를 게 있느냐?]

       

       “신이시여! 저희는…!”

       

       [말대꾸하지 마라.]

       

       “…….”

       

       [주(主)는 너희를 창조할 때 평등함을 강조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보니 신앙심이라고는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구나.]

       

       몇몇 엘프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닙니다!”

       

       신앙이라면 차고 넘쳐난다.

       

       엘프들은 매년 여신에게 제를 지냈다. 공물을 바쳤다.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그 이름을 드높여 칭송했다.

       

       그런데 신앙심이 없다니?

       

       [신앙이란 곧 창조물에 대한 존중이다. 너희는 민주정을 택했건만, 너희 외 다른 종족에 대한 존중심이 없구나.]

       

       “아….”

       

       그제야 말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동물 귀가 달렸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눈동자 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엘프는 다른 종족을 차별해왔다.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것이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정의인 줄로만 알았다. 엘프는 세계수를 지닌, 여신에게 사랑받는 종족이니까.

       

       다른 종족을 차별해도 가당한 것이라고, 뿌리 깊게 믿어온 것이다. 자유주의 사상을 얻게 된 이후로도 말이다.

       

       “여신님.”

       

       이것을 가장 먼저 깨달았던 것은 세실이었다. 

       

       세실 총장은 세계수 앞에서 고개를 떨구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무릎을 꿇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여신님.”

       “여신님!”

       

       몇몇 엘프들이 세실을 따라 똑같이 무릎을 꿇었다. 머리를 조아렸다. 벌벌 떨면서 땅에 고개를 처박았다.

       

       열 명. 백 명. 천 명.

       

       숫자는 점점 늘어났다.

       

       “여신이시여,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이윽고 모든 엘프가 자존심을 내려놓았다.

       

       “여신이시여, 부디 노여움을 푸소서.”

       

       자존심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곧 오만을 버린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절대자의 존재 앞에서 권력 따위 알량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

       

       세계수로부터 이리도 쓴소리가 나온 것은 처음이라. 하여 천벌이라도 떨어질까 봐. 노심초사해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가진 것이 많을수록 두려움도 배가 됐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아이젠 대통령은 땅에 머리를 처박은 채로 재빨리 계산기를 두들겼다.

       

       바람의 정령왕이 직접 내린 세계수다. 모조품일 리가 없다. 허튼 거짓말을 했다간 큰 화를 면치 못하리라.

       

       그렇다고 저 말을 곧이곧대로 수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대로라면 국정 지지율이 땅구덩이에 처박힐 테니까.

       

       그렇다면.

       

       그렇다면….

       

       [혹시라도 허튼수작을 부리는 것들이 있다면 친히 천벌을 내리겠다.]

       

       ‘읽혔다.’

       

       생각을 관통당했다.

       

       [알겠느냐?]

       

       창조주 앞에서 피조물이란 이렇게나 나약하다. 대통령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기다려야만 한다. 심판이 내려올 때까지.

       

       이윽고 신탁이 내려왔다.

       

       [플로반스에서 벌어진 일은 너희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단, 어떤 식으로 끝맺는지는 내가 직접 눈여겨보겠다.]

       

       “네…. 네!”

       

       [쉬어라.]

       

       뚝.

       

       그것을 끝으로 나무줄기에 흐르던 마력의 움직임이 멎었다.

       

       통신이 끊기자마자 세실은 뒤로 풀썩 넘어졌다. 지나치게 긴장한 탓이다. 다른 엘프들도 다르지 않았다.

       

       대통령이고 국회의원이고 할 것 없었다. 모골이 송연하다. 봄하늘의 햇살이 등줄기를 뭉근하게 볶아댔다.

       

       ‘사, 살았다.’

       

       대통령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유를 부릴 시간은 없었다.

       

       “…르네이 총장.”

       “네. 각하.”

       “플로반스의 일은 당신에게 전권을 위임하겠소. 여신님께서 내려주신 신탁대로 잘 처리해 주시오.”

       “…….”

       

       대답이 없다.

       

       “르네이 총장?”

       “…알겠습니다.”

       

       세실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인파를 헤쳐 나갔다.

       

       

       **

       

       

       세계수에서 통보한 대로, 엘프들은 플로반스 지역의 소요를 너른 마음으로 대했다.

       

       그야 그렇겠지. 성격 좋다는 세실 총장이 직접 내려갔다. 적어도 폭력으로 진압할 것 같지는 않았다.

       

       민중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불씨가 더 강해질 기미가 보이는 것도 아니다.

       

       철저한 교착 상태.

       

       플로반스의 일은 이제 묵인과 장기적인 시위의 형태로 변모하고 있었다.

       

       그래, 저 정도면 충분하다.

       

       “후우.”

       

       나는 한숨을 쉬며 뒤로 나자빠졌다.

       

       정령계 유지보수 작업에, 세계수에 마력을 넣어주는 일에, 이제는 대리 신탁을 내리는 일까지.

       

       어째 가면 갈수록 작업이 빡세지는 느낌이다.

       

       “아무나 하는 게 아니네. 신탁은.”

       

       신탁이란 여신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려운 일이고, 아무 정령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원래라면 대정령급이 해야 한다. 앨리스 언니라든지, 치녀… 가 아니라, 에어리얼이라든지.

       

       그러나 앨리스 언니는 이래저래 바쁘고, 에어리얼은 사람 말을 할 줄 모른다.

       

       특히 에어리얼.

       

       아니, 말 못 하는 건 컨셉인가?

       

       [도리도리.]

       

       아니란다.

       

       에어리얼은 손을 살랑살랑 흔들어 주고는 다른 일을 하러 바람처럼 사라졌다.

       

       눈을 깜빡이던 나는 침대와도 같은 초원에 발라당 누웠다.

       

       “죽겠네.”

       

       정령 숫자가 적으니까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럿이서 해야 할 일을 혼자서 다 처리해야 하니까.

       

       조금 전의 신탁만 해도 그렇다.

       

       원래 신탁은 여신이 직접 내릴 수도 있는데, 그런 여신조차도 업무 과다에 힘들어하고 있는 판국이었다.

       

       [root@Le’Cuiness:~# 잘래요]

       

       당장 정령들한테 보낸 마지막 메시지가 이것이다.

       

       “흐.”

       

       싱글 사이즈 침대에 누워있을 르퀴네스의 모습을 떠올리니 그만 웃음이 나왔다.

       

       “동생, 동생!”

       

       이런.

       

       바람의 정령왕이 가니까, 이번에는 전기의 정령왕이 나를 부르신다.

       

       쉴 틈이 없군.

       

       나는 땅딸막한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문제가 생겼어요!”

       “아이, 이번에는 또 뭔데?”

       

       다음 순간이었다.

       

       “어어?”

       

       앨리스 언니가 나를 번쩍 들어올리더니 곧장 달리기 시작했다.

       

       풍경이 휙휙 뒤로 밀려났다. 분홍빛을 띠는 심계가 끝나자, 맑은 하늘빛을 띠는 중간계가 나타났다.

       

       중간계에서 더 가면 포탈이 나온다. 이렌스 대륙과 정령계를 이어주는 워프 장치 말이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긴급 사태예요! 일단 가고 나서 얘기해요!”

       

       앨리스는 인간계로 향하는 포탈에 몸을 던졌다.

       

       다시 한번 풍경이 바뀌고, 다른 세상이 나타났다.

       

       인간계였다.

       

       “뭐야. 나는 여기 오면 안 된다고 하더니.”

       “급한 일이 생겨서 그래요. 저기, 태양 있는 곳을 봐주겠어요?”

       

       언니의 말에 따라 고개를 들어올렸다.

       

       백색광을 흩뿌리고 있는 항성이 보인다. 아렌스 대륙의 태양 역할을 하는 천체였다. 편의상 태양이라고 부르자.

       

       어쨌건, 일반인 눈에는 평소 모습과 다름이 없는 모습이다.

       

       “엇.”

       

       하지만 전계정령의 눈에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항성 표면에서 벌어지는 핵융합 반응과, 자기장 밀도의 변화. 기본입자의 분포와 그것들이 지닌 모멘텀까지.

       

       물리적인 양이라면 전부 알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바로 정령의 심안(深眼)이다. 나 또한 정령으로 다시 태어났기에 이러한 심안으로 하계를 바라볼 수 있었다.

       

       당연히 이상한 점도 곧바로 눈치챘다.

       

       “이거 위험한데. 항성풍이 크게 한번 불 거야.”

       

       앨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크기가 아니에요. 저 정도면 아렌스 대륙이 만드는 자기장으로는 온전히 막아낼 수 없을 거예요.”

       

       쉽게 말해 방화벽이 못 버틴다는 소리다.

       

       “자잘한 현상이지만, 가끔가다 저렇게 오버플로우가 날 수도 있어요. 본래 이럴 때마다 여신님이 직접 나섰는데….”

       “알아. 지금 뻗으셨잖아.”

       

       여신님께서 많이 피곤하시단다.

       

       이렇게 된 이상, 뭐 어쩌겠는가.

       

       전계 대정령들이 대신 나서서 해결하는 수밖에.

       

       불행하게도 ‘(주)정령계’는 최근 구조조정을 겪은 이후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전계마도 대정령이 나와 언니밖에 없다고.

       

       “이번 일은 동생의 마법이 있어야만 쉽게 해결할 수 있어요. 부탁할게요.”

       “젠장.”

       

       이걸 안 할 수도 없다.

       

       태양풍이 잘못 들이쳐서 ‘지자기 폭풍’이라는 현상이 발생하면 너도 나도 암걸려 뒈질 운명이다.

       

       방사능 핫소스를 맛보고 싶지 않으면 강도를 조절하거나, 아예 태양풍을 막아버리는 수밖에.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언니, 보조 좀 맞춰 줘.”

       

       나는 아공간에서 스태프를 꺼냈다.

       

       아, 이 묵직하고도 서늘한 감각. 오랜만이군.

       

       근데 존나 묵직해서 두 손으로 들고 있기도 버거웠다.

       

       “윽.”

       “언니가 같이 들어주고 있을게요.”

       “하, 씨….”

       

       뜻밖에 억울한 일이 하나 더 추가됐다.

       

       얼른 빨리 자라든지 말든지 해야지.

       

       “간다.”

       

       [팔정도(八正道) 제3식(式)]

       

       [테슬라(Tesla)]

       

       촤아아악!

       

       스태프 끝날에서 나온 자기장의 무리가 대륙을 한 바퀴 휘감는다.

       

       심안으로 보니 확실히 알겠다. 대륙을 이루는 행성 자체의 자기 밀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엿가락처럼 뽑혀 나온 자장의 길이만큼 마력도 덩달아 빠져나간다.

       

       영체 대부분이 마나로 구성되어 있는 정령에겐 치명적인 짓거리였다.

       

       “흐어…!”

       

       힘이 쫙 빠졌다.

       

       보호막 설치를 끝낸 나는 그 자리에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고생했어요, 동생. 이제 집으로 돌아갑시다.”

       “으어, 그래. 빨리 가서 쉬고 싶어.”

       

       앨리스는 힘 빠진 나를 끌어안고 포탈로 들어갔다.

       

       들어가려 했다.

       

       “어, 어라?”

       “왜.”

       

       또 뭔데.

       

       “세계수에… 포탈이 안 열려요!”

       

       아.

       

       “지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쿨라다이아몬드 님, TS백과사전 님, 클라우드링 님, 1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블랙베리0 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후원 메시지에서 남겨주신 대로 시간이 되는 한 최대한 많이 연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 선작 2만 감사드립니다! 방금 알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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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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