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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4

        

         

       아잔덕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멍청한 새끼!

       머리통이 진짜라고 아주 온 세상에 다 알려서 떠들지 그러냐! 하고.

         

       아니나 다를까, 산적들이 눈에 띄게 동요하기 시작했으니 서로를 돌아보고 한 마디씩 던져댄다.

       진짜로 대주가 당했다고? 화경을 이겨먹은 년을 우리가 뭘 어떻게 하는데? 등등 불안한 수근거림이 번진다.

         

       청이 거기에 기름을 부었다.

         

       “정정당당하게 일 대 일 승부에서 제가 이겼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돌연 갑자기 싹싹 빌면서 살려달라고,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살려만 주시면 총채주의 목이라도 잘라 바치겠다면서 애걸을 하지 뭐예요! 사내새끼도 아닌 새끼 같으니!”

         

       “거, 거짓말 마라! 형님께서 그러실 리가 없다!”

         

       “애초에 화경이고 뭐고 몇 대 맞으니까 당황해서 강기는 쓰지도 못하던데요? 내가 봤을 때는 실전 부족이야. 맨날 고만고만한 만만한 양민들이나 조지다 보니 그냥 퇴물 다 된거지. 아주 병신이던데요?”

         

       “형님을 모욕하지 마라! 그럴 분이 아니시다!”

         

       “그래요? 그럼 초절정한테 진 건 어떻게 설명하실 건데요?”

         

       “네년이 비겁하게 기습을……!”

         

       “기습은 도우삼이 했지. 그런데 내가 그 위기를 벗어나서 오히려 한 대 쳤을 뿐인데 정신을 못 차리더라. 혹시 양산박대 소속이세요? 아실 텐데? 도우삼이 아주 은형술 하나는 기가 막히다는 거.”

         

       “그건……!”

         

       뻔한 소리지만, 역사는 승자가 쓴다.

       숨어서 역사 쓰지 못하게 잘 치워버렸을 때는 승자의 증언만이 곧 사실이 되는 이치라서.

       청과 도우삼 사이에 벌어진 일에 대해선 청이 말하는 대로 진실이 되는 구조였다.

         

       물론, 이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산적이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일이 뭐 그렇게 신기하겠는가.

       아무리 잘난 화경 고수라도 죽기 싫으면 애원해야지, 화경쯤 되면 모양이 빠지기는 하지 않냐? 그럼 죽을까?

         

       “자, 거기 채주님 계신가요? 사내 새끼가 숨지 말고 나와라! 사나이답게 한 판 붙자! 화경 뭐 별거 없더라!”

         

       일 대 일이면 해볼만 하다.

       그리고 안 되면 튀지, 뭐.

       일 대 일이면 도망치기도 쉽다.

         

       애초에 초절정 대 화경의 싸움이었다.

       거기서 초절정이 도망 좀 친다고 해서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것도 녹림 두목쯤 되는 거물과 싸우다 도망치더라도 흠결이 못 되는 것이다.

       되지도 않는 게 주제도 모르고 덤비다가 튀었다고 창피나 좀 당하지, 그걸 왜 정정당당하게 죽지 않았냐면서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반대로 말하자면, 화경 고수는 굳이 싸울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이기는 것이 너무 당연해서.

         

       지면 천하의 개병신이 된다.

       놓쳐도 병신쯤은 된다.

       화경씩이나 해먹은 절세 고수가 고작 초절정 하나 못 잡고 놓쳤느냐고.

         

       심지어, 이기기는 이겼는데 다치기라도 하면 그래도 병신이 된다.

       무슨 화경 고수가 초절정하고 일 대 일로 싸우면서 부상씩이나 입어?

         

       그러나 아잔덕에게는 가슴이 철렁하다.

         

       이 년이 뭘 믿고 화경을 내놓으라 마라 난리를 치지? 설마 경지를 숨겼나?

       하지만 이제 갓 스무 살 어린 계집이 그 이상의 경지를 가졌다는 게 말이 되나?

         

       어쩌면 진짜로 자신이 있을 수도 있다.

         

       천 번의 싸움보다 한 번의 생사결이 훨씬 도움이 된다고 하던가.

       도우삼이나 총채주나 생사결을 나눈 때가 언제일까.

       호각을 이루는 상대와의 싸움이 낯설도록 녹슬었더라도 이상하지는 않다.

         

       “산뇌 형님, 채주님을 모셔와야-”

         

       누군가 묻는 소리에 아잔덕이 기겁하여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버럭 소리를 지른다.

         

       “안 된다! 그래서는 안 돼! 그랬다간-”

         

       “서-문-청-!!!”

         

       그러나 이미 늦었다.

       아잔덕의 만류가 다 나오기도 전에, 그저 타오르는 증오로 맺힌 외침이 들려오는 통에 오장육부가 선뜩하니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다.

         

       일순 조용해진 때에, 모두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시퍼런 귀화를 피워올리는 안광이 척척 가까워진다.

       살기가 맺히다 못해 진정 마음으로 동하니 진기가 반응하여 줄기줄기 새는 것이다.

         

       그에 녹림의 산적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숙연한 표정으로 눈을 깔았다.

       대단한 위험 물질이라도 되는 양 좌우로 쩍 갈라진 산적들 사이.

         

       불길을 뿜는 눈 한 쌍이 다가온다.

         

       와, 저게 뭐야, 멋있게.

       화경 고수쯤 되면 눈에서 불도 나오나?

       서러워서 화경 찍든가 해야지, 멋있잖아.

         

       청이 제가 맨날 하는 모습인지도 모르고 남의 안광을 부러워했다.

       심지어 청의 안광은 천살의 흉험한 별빛으로 인간이 본능으로 알고 두려움을 참을 수 없는 종류임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원시 미개 고대 중원에 거울이란 귀한 물건일 뿐더러, 있다 해도 전투 중에 제 모습을 들여다볼 수도 없지 않겠는가.

         

       청의 감상은 그 정도였다.

       그러니 태연히 소리칠 뿐이었다.

         

       “귀 안 먹었거든요! 총채주님 되시죠!? 자. 이리 와서 제대로 한 판 붙어 봅시다!”

         

       “오냐! 녹림의 전 형제들은 들어라! 모두 저년을 잡아! 산 채로 데려와!”

         

       그때였다.

       따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산적 하나가 붕 날아서 나가떨어진다.

         

       “내가 돌 던지는 거 못 봤어요? 다 같이 몰려오기만 해 봐. 앞에 오는 순서대로 돌 던져서 맞출 테니까. 강 건너는 동안 몇 놈이나 죽는지 보자. 분명히 말했어요. 앞에 오는 순서대로 맞출 거라고. 여기 돌 많아. 깔린 게 다 돌이야.”

         

       그에 산적들이 주춤.

         

       이미 구경 중에 보았던 살인 돌팔매다.

       십오여 장 되는 강을 건너는 동안 돌이 몇 개나 날아올 것인가.

       심지어 앞에 오는 순서대로라고 하면.

         

       그러니 감히 발을 떼지는 못하고 서로의 눈을 흘낏거리며 눈치나 살살 살핀다.

         

       만약 이 광경을 보는 역사가가 있었다면 마땅히 감탄해 마지않았을 것이다.

         

       대협, 수많은 산적들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대적하니 마땅한 대협이라.

       돌맹이 한 개로 악적을 죽이니, 그야말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천벌, 돌멩이니까 벼락 말고 유성쯤 합시다. 같은 암석이잖아.

       유성을 던지는 대협! 대협유성탄!

         

       본래 강을 낀 원거리 투사는 인류의 태초로부터 있었던 유구한 전략이다.

       인류 역사상 어느 시대에도, 심지어 앞으로의 미래에서도 최고의 방어 전략으로 손꼽히는 것이다.

         

       녹림도들이 발을 뗄 생각을 안 한다.

         

       그에 대한 왕철군의 해법은 간단했다.

       쾅, 진각을 밟아 모로 뛴 왕철군이 애먼 산적 하나의 대가리를 쪼갠 것이다.

         

       “감히 항명이냐! 잡아오라고 했다! 당장!”

         

       그러자 쐐액, 따악! 쐐액, 따악!

       두 놈이 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졌다.

       돌에 맞았는데 마차에라도 치인 듯이 붕 떠서 날아가니, 안 그래도 날아오는 소리 처맞는 소리 청각적 공포에 더해 시각적으로도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이었다.

         

       녹림도들이 다시 주춤.

       그러자 왕철군이 다시 싹둑.

         

       청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멍청한 산적 놈이 아주 떠먹여 주네?

       뭐지, 날 도와주려는 건가?

         

       이대로 여기서 죽이고 저기서 죽이며 씨몰살을 시키면 좋겠지만, 멀리 있는 초절정보다는 가까이 있는 화경이 더 두려운 법.

       결국에는 동시에 도하하여 밀어닥치리라.

         

       그러면?

       도망치면 되지.

         

       그리하여 청이 돌팔매로 일곱, 왕철군이 세 놈쯤 베고 나서야 와아아! 가자! 억지로 끌어올리는 함성이 오른다.

       돌진 개시의 신호였다.

         

       청은 도망쳤다.

         

       물 위를 뛰어 건너온 왕철군이 원수의 모습을 쫓았지만, 깜깜한 밤 원시림에 숨어든 청을 어떻게 찾겠는가.

         

       “으아악! 서문청! 서문처엉!!!”

         

       분노 가득한 외침만 밤하늘에 울릴 뿐.

         

       “크아악! 으아아악!!!”

         

       외침뿐만 아니라 모닥불을 차고 냄비를 뒤엎기도 해 보지만, 그걸로 분이 풀릴 것 같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터다.

         

       총채주가 그렇게 어쩔 줄 모르는 분노에 팔다리도 어쩔 줄 몰라 난동을 부린다.

         

       그리고 제법 시간이 지나서야 그래도 무공 좀 쓴다고 하는 놈들이 도하에 성공한다.

         

       너무 느리다고 욕할 수는 없다.

         

       십오 장이나 되는 강을 한 번에 뛰어넘는 일은 아무리 고수라 해도 쉽지 않다.

        사람이 무공 없이는 아무리 날래고 탄력 넘치며 다리가 말근육이여도 세 장 이상을 한 번에 건너뛸 수는 없다.

       무공을 익혀도 일곱 장 거리를 뛰어넘기 힘들고, 그게 가능해질 정도의 고수가 되면 물 위를 박차고 뛰어오르는 기예가 가능하기에 한 번에 넘을 필요가 없어진다.

         

       어쨌거나 그러고 나니 잡다한 놈들이 십일월 초입 겨울밤 얼음장같은 깜깜한 물을 겨우겨우 헤엄쳐 넘어오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나. 청은 이미 떠났다.

         

       “으아악!!!”

         

       왕철군의 분노만 소리를 높이다.

         

       그 소리를 들으며 녹림 산적들 역시 같이 분노가 치민다.

         

       씨발 그 씨발년때문에 이게 무슨.

         

       허나, 분노가 청에게만 향하지는 않는다.

         

       근데, 씨발, 왜 괜히 우리까지 고생인데.

       화경이라는 새끼가 일 대 일로 싸우자는 걸 무시하고 이 추운 밤중에 사람을 물속에 밀어 넣고는, 당연히 우르르 몰려들면 도망치지 가만히 기다리겠냐.

       안 도망쳐도 그래.

       양산박대주를 잡은 년을 우리가 무슨 수로 사로잡는데?

       죽이라는 것도 아니고 잡으라니, 잡으면 잡혀 주나?

       씨발, 더러워서 산적 때려치워야지.

         

       사기와 충성도가 수직으로 하락한다.

         

       아마도 이 밤이 지나면 도망쳐서 사라진 놈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인 이유는, 밤이 지나기 전에 청이 다시 나타났기 때문이다.

         

         

         

       계곡을 건너오기는 했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야간 수색은 의미도 없고 피해만 크다.

       그렇다고 여기 머물러 있더라도 딱히 할 일이 없고, 추운 밤에 옷까지 젖은 산적들의 상태도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니 어째, 돌아가야지.

         

       “분명 그년은 다시 나타날 겁니다. 내일 날이 밝으면 강안 뒤편으로 정예들을 매복시켜 놓으면, 아예 채주님께서도 함께 매복 하고 계십시오. 그러면 필히 그년이 이렇게 다시 나타날 테니 사로잡으시지요.”

         

       “이번이 마지막이다.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아잔덕.”

         

       “……죄송합니다.”

         

       아잔덕이 바짝 엎드려 용서를 빌었다.

       마음으로는 전혀 죄송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진채로 되돌아와, 젖은 옷 말리기 위해 크게 불도 피우고, 찬 몸 데워주기 위해 뜨거운 물과 데운 술, 마실 탕도 나누어 주고 하느라 진채가 소란이었다.

         

       그렇게 아주 밤이 늦어서야 다들 겨우 고단한 몸을 눕혀 잠자리에 드나 싶었는데.

         

       깡깡깡깡깡!!!

         

       “치사한 새끼들아! 너네들끼리만 물놀이 하고 나만 따돌리니까 좋냐! 나도 물놀이 좋아하는데! 나도 첨벙첨벙 좋아하는데!”

         

       청이 다시 불을 피우고, 찌그러지고 깨진 냄비를 마구 두들기며 소란을 피웠다.

         

       산적들은 피곤한 몸에 기절하듯 잠든 상태였다.

       그러다가 한 시진도 못 자고 깼다.

       아주 죽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데 어떻게.

       올 테면 와 보라고 무시할 수도 없고.

         

       그리하여 다시 강안에 집합.

       청만 쌩쌩하게 소리쳤다.

         

       “왕철군 나와! 일 대 일로 하자니까!? 초절정 한 명이 너무너무 무서워서 떼로 덤비겠다? 야, 씨, 고추 떼라, 좆 떼! 겁쟁이 새끼야! 자식새끼 복수한다는 새끼가 아주 이것저것 다 잴 것 같으면, 사실 뭐 그렇게 억울하지도 않지! 슬프지도 않지!?”

         

       “너, 네년이! 감히! 어떻게!”

         

       이번엔 일찌감치 나온 총채주가 부들부들 화도 나고 기도 막히고 말문도 막히고 손발 어디 한 군데 떨림을 주체할 수가 없고, 하는 말마다 다 심장을 할퀴러 긁히는데.

       그야말로 속이 뒤집어지고 이빨이 저절로 으드득 갈려나가는 극심한 분노!

         

       그리고 그 분노가 한계를 넘었다.

       오히려 싸아악 전신의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더니, 분노가 차갑게 얼어붙는다.

         

       “내 자식이 죽었다. 혹여 건들면 아플까 툭 치면 멍 들까 감히 건들지도 못했던 내 귀한 자식들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한 목소리.

         

       “자식 잃은 아비의 원한을 네년이 조금이라도 알까? 천하가 손가락질을 해도 좋다. 어떤 비겁한 방법이라도 좋다. 네년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게 죽어가도록, 아니, 끔찍하게 살도록 할 것이다.”

         

       곁에서 듣는 산적들의 간담이 서늘해지는 끔찍한 살의가 담긴 말이었다.

         

       청에게는 안 통했다.

         

       “오. 목소리 깔고! 왜, 목소리 깔면 좀 멋있는 것 같아요? 전혀 아니거든요? 그리고 궁금하면 정중하게 물어봐라! 너는 예절도 모르냐! 병신새끼들 잃어버린 병신새끼들 애비의 마음을! 거기 계신 고귀하신 대협께서는 혹시 알고 계십니까! 알고 계시다면 이 미천한 산적새끼가 고견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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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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