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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4

       —감이 잡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뭐가 문제야?”

        

       이 실비아라는 소녀는 나와 지내면 지낼수록 마음을 놓아버렸는지, 이렇게 말까지 놓아버리는 지경까지 왔다.

        

       평소처럼 푹신하고 따뜻한 짚단 위에 앉아 실비아를 빤히 내려다보자,

        

       “배가 고프면 먹을 것도 주고, 주변도 푹신하고 따뜻하게 관리해주고. 애초에 여기 있고 싶어서 여기 있는 거 아니야? 편하게 살고 있으면 내 부탁 하나 정도는 들어줘도 되는 거잖아.”

        

       라는 소리를 했다.

        

       나도 모르게 콧김을 뿜어버리고 말았다.

        

       아, 물론 내가 얹혀사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먹는 것들도 전부 이 궁전에서 제공해주고, 내가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것도 여기서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귀가 있고, 당연히 귀동냥으로 듣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리폰 관련된 이야기는 유독 내 앞에서 나누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러니까, 이 애들이 나를 기르고 있는 것은 단순히 애완동물 기르는 생각이 아니었다.

        

       제국의 상징이자 이 제국의 황가인 ‘팬그리폰’의 상징인 그리폰. 그런데 이 그리폰이라는 존재가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데다 키워본 이는 더더욱 없는, 극히 희귀한 환수다.

        

       그러니 여기서 내가 지내는 것만으로도 제국은 그 그리폰을 유일하게 컨트롤하는 황가가 있는 나라라는 소리가 된다.

        

       생각해보면 그렇긴 했다. 내가 살던 세상에서도 가문명에 독수리를 박아두고 그 독수리를 실제로 키우는 이들은 없었잖아? 어깨에 훈련된 독수리를 앉힌 채 지내는 황제가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멋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굳이 그런 일을 하지 않았던 건 그게 몹시 귀찮고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나마 먹이 정도라면 준비할 돈이 있더라도, 그 독수리가 제대로 말을 듣게 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다. 독수리가 그럴진대 사자는 또 어떻겠는가.

        

       제국에서 나를 굳이 내쫓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내가 협조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아니, 애초에 나를 인정해서 여기 온 게 아니었냐고…….”

        

       내가 콧김을 내뿜는 것을 보고, 실비아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내가 좀 심했나?

        

       생각해보면, 실비아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러니까 그렇게 가까워 보이는 앨리스 앞에서조차 존댓말을 쓰는 아이였다. 그런데 내 앞에서 이렇게까지 편하게 말한다는 건, 사실 나를 그만큼 편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데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이면 기운이 빠질 만도 하지.

        

       “좋아, 그럼.”

        

       실비아는 나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원하는 걸 말해 봐.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들어줄 테니까. 대신 너도 내가 원하는 걸 하나 해줘. 이러면 꽤 공평하지?”

        

       음.

        

       내가 바라는 것이라.

        

       내가 바라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몸은 그리폰이지만, 내용물은 사람이다. 몇 번 말했듯 나는 그리폰이 얼마나 똑똑한 동물인지는 모른다. 사실 굳이 직접 찾으러 갈 생각도 없다. 괜히 찾아갔다가 진짜로 ‘짐승 같으면’ 여러모로 문제가 터지니까.

        

       짝짓기라던지…… 흠, 아무튼.

        

       그러니 이곳에 살고 싶기는 한데, 그렇다고 상대가 나를 존중해주지 않는 것도 싫다. 존중해주더라도 마냥 애완동물 취급하는 것도 싫다. 기왕이면 지금까지처럼 존댓말을 계속 써줬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내가 실비아보다 나이가 많을 테니까. 그리폰으로서가 아니라, 안에 있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당장 내 앞에 있는 얘는 소녀가 아닌가?

        

       문제는 그 말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라는 거다.

        

       좋아.

        

       내가 보일 건 하나뿐이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오랫동안 앉아있어 찌뿌둥한 몸을 쭉쭉 펴서 풀어준 뒤, 실비아 앞에 당당하게 섰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실비아는 순간 내가 뭐 하는지 알아보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고분고분하게 허리를 숙여주었다.

        

       그래, 알아들은 것 같—

        

       “이러면 됐어?”

        

       —지 않네.

        

       하긴, 그냥 인사를 한 번 더 한다고 해서 상대가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

        

       그렇다면 이렇게 된 이상, 똑같은 것을 반복하는 거다. 실비아가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숨을 크게 내쉬고, 다시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조금 더 정성을 다해 인사했다.

        

       찡그린 채 나를 올려다보던 실비아는,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천천히, 내가 했던 것처럼 더 정중하게 인사해 보인 뒤 말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어?”

        

       하고 싶은 말이야 있지.

        

       구강 구조가 달라서 그 말을 못 전할 뿐이지.

        

       방법은 하나뿐이다.

        

       최대한 정중하게, 상대를 배려하고 높이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할 테니, 너도 이렇게 해라.’

        

       내가 가진 생각이었다.

        

       사실 내 쪽이 더 유리하긴 했다. 애초에 나는 반말이고 존댓말이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

        

       그렇게 몇 차례 서로 인사를 주고받은 뒤에야, 실비아는 스치는 생각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상호 존중하자는 소리입니까?”

        

       드디어!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허.”

        

       실비아는 어이없다는 듯 숨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그래도 자기 앞에 있는 내가 평범한 동물이 아니라는 사실은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잠깐의 망설임 끝에 그녀는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공손하게 부탁하면 제 부탁도 들어주실 생각입니까?”

        

       좋지.

        

       나를 존중해주는 상대라면 나도 기꺼이 들어줄 수 있다.

        

       뭐, 애초에 나한테 들어달라고 할 부탁이 그렇게까지 까다로울 수 없다는 걸 잘 아니까 하는 말이지만.

        

       나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듯 실비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

        

       실비아는 다시 한번 웃음소리를 내더니,

        

       “좋습니다. 그럼—”

        

       하고, 자기 요구사항을 말했다.

        

       *

        

       실비아의 요구사항은 간단했다.

        

       실비아와 앨리스, 그리고 그 친구들이 다니는 아카데미의 문화제에 참석해 하늘을 날아달라는 소리였다.

        

       하긴, ‘아카데미’라고 하니 그냥 고등학교는 아닐 것이다. 보통 그렇게 불리는 장소는 ‘이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교육기관’ 같은 소리를 들으니까.

        

       제국 중심의 교육기관이라면, 제국의 상징이 축하해주기를 바랄 수도 있겠다. 분명 교장도 엄청 높은 사람이 맡겠지.

        

       무슨 문화제를 한겨울에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잘 몰랐는데, 나는 의외로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 듯했다.

        

       사실 그건 내가 잘생기지 못했었기 때문인 것도 있다. 잘생기지 못했으니 오는 시선에 대단한 호의가 담겨있을 리 없고, 그러니 전생에 내가 받는 시선은 내가 엄청나게 부끄러운 짓을 저질렀을 때나 받는 시선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받는 시선은 동경의 시선.

        

       뭐, 대단한 미남이 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호의 섞인 시선이라면 받았을 때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퓌요오.”

        

       내가 만족감 섞인 소리를 흘리자, 실비아는 웃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엄청나게 차가웠다. 나는 조금 상쾌하게 느끼는 정도였지만, 실비아는 뼛속까지 시렸을 것이다. 그렇게 두꺼운 옷을 입고 있더라도 말이다.

        

       “원한다면 돌아가서 기다려도 좋습니다. 여기 있어 봐야 춥기만 하니까요.”

        

       내 등에서 내려온 실비아는 그렇게 말했다.

        

       뭐, 좋지.

        

       그 전에 구경 좀 할 생각이었지만.

        

       나는 실비아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날아오른 나를 올려다보던 실비아가 다시 건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하늘을 빙글빙글 돌았다.

        

       *

        

       일본 만화건, 애니메이션이건, 게임이건 간에, 만약 이 세상이 그런 매체 안이고, 거기 아카데미라는 존재가 나온다면.

        

       당연히 문화제나 수학여행 같은 ‘컨텐츠’가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문화제라는 컨텐츠가 있다면, ‘메이드 카페’도 빼놓을 수 없지.

        

       없더라도 별 상관은 없다. 어차피 구경이나 하려는 거고,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이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내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의 축제에 온 것은 처음이었으니 구경이라도 제대로 하고 싶다.

        

       아카데미뿐만이 아니라, 그 분위기에 편승한 듯 주변 지역도 축제 분위기였지만, 일단은 학교부터.

        

       교실 안에 들어갈 수는 없으니, 일단 학교에 최대한 가까이 붙어서 안을 들여다보다가—

        

       나는 결국 메이드카페를 찾아버리고 말았다.

        

       화단 옆 창문으로 들여다보이는 교실에서, 아이들이 메이드복을 입고 열심히 일하는 중이었다.

        

       남자애들은 거의 다 짐을 옮기거나 청소하는 중이었고, 여자애들은 모두 메이드복을 입은 채 급사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오.

        

       만약 내가 사람 말을 할 수 있었다면 그런 소리를 냈으리라.

        

       메이드복을 입은 애 중에는, 실비아도 있었다.

        

       이런 컨텐츠에서 나오는 것처럼 위 가슴이 드러나거나 하는 메이드복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실비아 이미지에는 단아한 분위기의 메이드복이 무척 잘 어울렸다.

        

       실비아뿐만이 아니라 앨리스나, 미아, 샤를로트, 그리고 같이 있는 다른 아이들도 전부 어울렸다.

        

       역시 귀족가의 아이들인가.

        

       조금 더 잘 보려고 창문 쪽에 더 붙어 앉는데, 안에서 일하던 남자애 한 명이랑 눈이 딱 마주쳤다.

        

       그 애는 기겁하더니, 곧장 실비아한테 가 창밖을 가리켰다.

        

       실비아가 고개를 돌려 나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음.

        

       손이 없으니 날개라도 흔들어줄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엔마라자 님, 후원 감사합니다!

    이렇게 많은 돈을 후원해주시다니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ㅠㅠ 그만큼 저의 소설이 마음에 드셨다니 그저 다행일 뿐입니다. 한국에는 많은 웹소설 중 제 소설을 읽어주시는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처음 연재하기 시작한 연중성녀에서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쓴 소설들의 분량을 전부 합치면 그 양이 엄청나게 많을텐데, 그 모든 소설을 읽어주신 것이 정말 영광입니다. 시간이 흐르는게 참 빠르죠? 독자님의 시간이 흘렀듯 저의 시간도 흘렀습니다. 특히 글을 쓰기 시작한 뒤에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가네요. 정신 차려보면 하루가 끝날 시간이고, 그 사이에 저는 소설을 꾸준히 연재하고 있습니다. 한 편 한 편 쌓이는 속도가 느리다고 생각하다가도 정신을 차려보면 저도 모르게 수십화, 수백화씩 쓴 뒤이니 참 신기하죠.

    독자 여러분께서 읽어주신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에 여기까지 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후원까지 해주시고 저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독자님께서 읽어주실만한 글을 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차기작은 말씀드렸듯 TS녀 주인공과 남주인공의 연애이야기입니다. 아직 구상의 초기 단계고,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히로인과 주인공 모두 티없이 정의로운 인물로 가고 싶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두 주인공에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잘 구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독자님도 건강 조심하세요. 저도 별다른 관리를 안 하고 있다가 최근 들어서야 건강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열심히 관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기적으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도움이 되었네요. 부디 앞으로도 오래오래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큰 후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저의 소설을 읽어주시며 느끼셨던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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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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