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44

        

         벌집이 망가져 돌연 갈 곳을 잃은 벌떼가 이러할까, 깊은 굴을 들쑤신 순간부터 사방에서 솟아나오기 시작한 개미 무리가 저러할까.

         

         적어도 후자 쪽에 가까운 물량과 전자에 준하는 공격성을 보유했다는 점에서 골칫거리라는 건 이 광경을 본 누구나가 격하게 공감하리라.

         

         가상 공간에서 격발하여 인명 피해가 없었다곤 해도 그 명칭마저 화려한 폭탄 테러는 어디까지나 중범죄. 하지만 난 이걸 모 섬나라가 저지른 기습 선제 공격보다는, 전혀 다른 걸 연상하면서 허가했단 말이지.

         

         왜 그… 전쟁사에서도 큰 걸 빠바방! 터트려서 교전 지속 의사를 분쇄한 사례가 많지 않나?

         

         권투로 치면 맞은 다음 픽 쓰러지는 리버 블로우(Liver blow; 간장 치기), 다른 축구나 야구 같은 구기 스포츠로 치면 막판 점수 역전으로 놈들을 좀 조용하게 만들 셈이었는데.

         

         엘리시움 상층부 및 현장 센트리 팀은 아무래도 눈앞에 나타난 강적을 쓰러트리지 않는 한 비극이 몇 번이고 반복되리라는 다소 극단적인 결론에 도달한 모양이다.

         

         강습 전단이라는 내부 분류에 부끄럽지 않도록, 혹은 최초에 나를 안전하게 격리 확보하는데 실패한 걸 이제라도 어떻게 만회해보겠다는 것처럼. 정말 꾸준히 끊어진 접속을 복구하고 부족한 전력을 증원해가며 달려들고 있었으니까!

         

         “절대 손을 쉬지 마! 쓸데없는 잡생각할 여유가 있으면 그 정신머리까지 당장 연산에 할당하고!”

         “씨발놈의 망가진 전송 채널이랑 데이터 회선 연결 좀 0.1초라도 빨리 복구해!! 테크닉이 존나게 좋아 봤자 상대는 일개 해커, 어디에 서버실을 차려 놨는지는 몰라도 금방 한계에 봉착할 거다!”

         

         “그것 참 뒤지게 예리한 분석력이시네! 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부대 통신도 아니고 바로 앞에서 그렇게 공용 음성 채팅으로 지휘관인 티를 내셔야 했어??”

         

         – 적성 세력 간 순환형 데이터 교환(Data flow circulation) 포착. 목표물 추적… 타게팅 완료, 언제든지 사격 가능합니다. –

         

         전후좌우, 천지사방에서 덮쳐오는 오물 같은 악성 코드 덩어리와 그라운드 제로의 방화벽 성능을 갉아먹는 돌파 시도에 정신없는 와중일지라도 사냥감의 급소인 머리를 노리는 건 기본 중의 기본.

         

         더군다나 나는 전황을 대신 판단해줄 제로까지 붙어있는 판국이니, 이런 사소한 것조차 안 지키며 싸우면 보물을 가지고도 쓸 줄 모르는 무능한 인간이라며 욕을 먹어도 싸지. 암.

         

         “!! 에미, 진짜 좆 같…!”

         

         정면에서 소리치던 현장 명령권자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총구…가 아니라. 화력 투사 규모를 생각하면 이젠 숫제 포구라 불러도 손색없을 포대를 조준하자, 다음에 일어날 상황을 직감한 건지 썩은 표정과 함께 시끄러운 욕설이 날아들었지만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다.

         

         [ Code clustering process complete. ]

         [ 즐겨찾기 4번 파일로 등록된 ‘센트리 팀 공격용 데이터 크래킹 셋업’을 신원 미확인 아바타에게 강제 전송합니다. ]

         

         죽어라 방아쇠를 당기면서도 남은 잔탄을 수시로 걱정해야 하는 실제 전투와는 달리 사이버 정보전은 체력과 정신력만 잘 조절하면 되니 마음 쓸 곳이 줄어들어서 조금 편하다.

         

         뭐, 보통은 원본 바이러스 코드를 그렇게 마구 복제할 수 있지 않다고? 알 바야? 나나 제로만 얼마든지 할 수 있으면 됐지!

         

         환경이 가져다주는 유리함을 적극 확보하여 이용하는 것도 전략의 기초 아니겠어?

         

         투콰아아아앙——!!

         

         순수하게 화력과 폭발로 인해 존재가 지워지거나 하는 그런 드라마틱한 게 아니고, 단순한 기능 장애로 인해 정상적인 VR 아바타 로딩과 안정적인 연결 품질을 유지할 수 없는 여건이 되어 형체가 증발하는 거지만… 뭐 어쨌든.

         

         자잘한 흔적만을 남기며 박살 나서, 도트와 라인으로 이제 막 작업에 들어간 픽셀 아트처럼 변해버린 놈을 힐끗 보는 걸로 뒤로 한 채 곧장 다음 목표로 조준을 돌렸다.

         

         저래도 1분쯤 지나면 금방 또 좀비처럼 부활하는 만큼 한두 놈 잡았다고 쉴 틈 따위는 없다. 무슨 레이드 보스가 된 것 마냥 주변엔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센트리 팀과 엘리시움 소속 병력밖에 없으니까.

         

         사이버네틱스와 사이버웨어 분야도 세부적인 전공이 나뉘어 있다 한들, 실제 전선처럼 공병 따로 알보병 따로 완전 특기와 능력이 다른 게 아닌 직책과 직무가 내규에 따라 나뉜 수준.

         

         아마 오프닝 멘트에 곁들이 삼아 처박은 폭탄 피해 복구에 너나 할 것없이 할당된 소프트웨어 전문가 숫자도 만만치 않을 텐데, 이렇게나 나한테 들러붙은 인원이 많다니 참으로 영광이다. 음.

         

         딱히 수를 센 건 아니오, 개개인을 트래킹한 것도 아니지만 사실 이 정도면 상정했던 최악보다는 좀 적기도 하고.

         

         또 응당 이런 대접을 받아도 쌀 짓을 저지른 건 맞고, 거센 걸 넘어 격렬한 저항을 어느 수준까지 예상하긴 했는데… 막상 무수히 많은 인간들에게 짱돌 맞는 신세가 되니 엄청 거슬릴뿐더러 신경 써서 틀어막아야 할 보안상 허점도 이리 많을 줄이야.

         

         하긴 평범한 내가 떠올렸던 위장 신호나 세그먼트 패킷 내용물 바꿔치기, 서버 과부하로 장애 초래하기, 바이러스 폭격 등등의 아이디어를 저 엘리트들이라고 떠올리지 못했을 리가 있나.

         

         단지 그걸 얼마나 능숙하고 효율적으로 실전에서 시행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벌어질 뿐.

         

         그런데… 자꾸 공격에 노출돼서 엉망진창 너덜너덜해진 내부 포트를 직전에 고쳤는데, 거기다 허수 코드랑 다크 웹에 돌아다니는 해커 난수 방송인 척 구멍을 또 내려는 건 좀 너무하지 않냐??

         

         이 딥 웹 영역에 머무르려면 필수적으로 사용자와 네트워크 서버 간에 오가는 고유 SID(Security Identifier; 보안 식별자) 값이 몇 백 종류거늘, 일괄적으로 수신 거부 처리하기도 불가능한 그걸 다 일일이 확인하게 만드네!

         

         “진짜 겁나 귀찮게 굴기는…! 이쪽이 적당히 봐주고 있다는 걸 느꼈으면,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좀 강구하는 게 어때!!”

         

         저쪽 부대원들의 아바타 연결을 역으로 더듬어 들어가서 조종하는 오퍼레이터나 파일럿을 심정지 상태로 만들어버린다던가~ 하는, 상당히 극단적인 비장의 수가 남아있기는 한데 별로 고르고 싶은 선택지는 아니다.

         

         내 입장에서 이건 정색하고 임하는 싸움이라기 보단 즉흥적으로 실시한 일종의 해프닝, 가벼운 소요 사태.

         

         이런 촌극에 어울려 주시느라 바쁜 인터넷 공무원 겸 선생님들께 다짜고짜 사형은 언도하는 건 조금 가혹한 처사가 아닐까요…?

         

         나 정도면 그래도 나름 친기업적 성향의 해커인데. 우리 같이 따듯한 마음을 약간만 가져보죠. 예.

         

         …엉? 공무원은 그렇다 치더라도 왜 저들을 뜬금없이 선생님이라 부르냐고?

         

         그야 센트리 팀이 자각없이 선생님 역할을 해주며 여러 가르침을 내려준 덕택에, 공격 방식도 방어 수단도 점차 효율적으로 개조해가며 차츰 엘리시움 소프트웨어와 코드에 익숙해질 수 있었거든.

         

         이렇게 박 터지게 열심히 싸우고 있는 상대가 실은 이런 사이버 난투 초짜라 한수 배워가며 감탄하고 있다는 생각은 보통 안 하긴 하겠지.

         

         “!! 놈이 지쳤다! 이대로 복구하지 못하게 몰아붙여!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은 누적된 시스템 장애와 기능 오류로 인해 상당히 엉망일 거다!”

         

         “아오, 사람을 멋대로 가오 잡는 겉멋충으로 만들어버리는 거 맞아?! 피차 일 때문에 덤벼드는 건 이해하니까 쉬엄쉬엄 하자는 제안에도 태클을 거네!”

         

         이런, 티가 많이 났나?

         

         버르장머리 없이 저녁 먹을 시간에 나타난 흉악범을 체포하느라 수고가 많으신 분들은 내 앓는 소리마저 반가웠던 모양이다.

         

         저쪽의 예상처럼 미처 막아내지 못한 바이러스 공격으로 내부가 엉망진창이라던지, 메모리가 말랐다거나 용량이 아슬아슬하다거나 그런 쪽의 문제가 발생한 건 아니다.  

         

         슬슬 능력 과다 사용으로 머리 한구석에 뜨끈뜨끈한 느낌이 오고, 침투 패턴에 따라 도장 찍듯이 찍어낸 프로그램 때문에 피곤한 건 사실이지만!

         

         이제 그나마 다행인 점은 센트리 팀분들께서 방금 그 악다구니 교환에 힘을 얻어서, 공세를 늦추거나 손을 끊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한번에 확 밀어붙이고 진작 빠져나올 수 있던 전투를 여태 내가… 아니지, 나와 제로가 질질 늘어트려가며 끈 이유는 아주 명확하다.

         

         이 참에, 이번 난장판을 기회 삼아 아나스타샤 발렌타인이라는 사람과. 여지껏 있었던 행적, 그리고 앞으로도 가끔 일어날 모든 행동을 ‘해킹잘모름’이라는 익명(Anonymous) 해커. 즉, 허구의 가상 인물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한 포석.

         

         어디 보자, 그렇게 복잡한 배경 설명이 필요한 얘기는 아닙니다?

         

         그저 한 개의 아바타에 두 가지 의식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며 온갖 컨트롤을 병행하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VR 상식에 굉장히 반하는 경우이기에,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발생할 오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는 것뿐이지.

         

         캐릭터를 조종한다는 개념이 친숙해서 그런지, 아니면 육체로부터 자의식을 분리하는 어비스 다이브를 태생적으로 할 수 있는 몸이어서 가능한 건지는 몰라도. 원래라면 인식 장애나 뇌파 혼선으로 영구적인 신경계 손상 등의 후유증이 남아도 이상하지 않을 미친 짓이라고.

         

         ‘에게? 뇌에 영향주는 호르몬제를 시판 상비약으로 팔고, 세포 배양으로 인간을 키워내는 동네에서 겨우…?’라고 나도 생각은 했는데, 전자 세계에서의 상호작용은 기술적으로 훨씬 민감하다나 뭐라나.

         

         하여간 그 덕분에 락다운 모듈이 무력해진 시점부터 ‘너희들이 여태 상대한 건 내 그림자였다! 후하하…!!’ 같은 탈출이 가능해졌다는 얘기다. 뭐, 실제로는 그런 걸 일절 티 내지 않고 제로에게 스윽 통제권을 넘겨줄 속셈이다만.

         

         언제가 될지는 정확히 몰라도. 곧 현실에 오프라인 센트리 팀이 닥쳐와서 가상현실 접속을 끊어보라 할 때 난 협조적으로 로그아웃하고, 범죄자 녀석은 여전히 활발하게 날뛰고 있다면?

         

         미심쩍은 의심은 받을지언정, 내 개인 데이터가 유출되는 게 아닌 이상 어느 것도 공식적인 증거 같은 건 되지 못하지 않겠나?

         

         심지어 공신력 넘치는 엘리시움 코퍼레이션이라면 훌륭한 증인이 되어 주리라.

         

         열성적으로 해킹잘모름을 추적하던 이들은 물론이고, 기업들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뒤쫓게 만들기에는 딱 완벽한 목격자.

         

         조금 걱정되는 부분은… 내가 능청스러운 연기를 펼치는 동안 제로가 이 들러붙는 센트리 팀의 해킹 시도를 온전히 견뎌내야 한다는 점인데. 그걸 위해서 죽어라 역설계를 거듭하며 전용 프로그램을 만들어 줬으니까.

         

         혹시라도 혼자 감당하려다 사고 칠까 봐, 정 힘들거나 위기 상황이 닥칠 것 같으면 얼마든지 도와달라 말하라는 부분도 정말 연신 신신당부해 놨다.

         

         그러니 이제 남은 일은 패턴 입력을 통해 자동화된 프로그램들이 대부분의 공격을 잘 막아주고 있더라도, 마치 젖 먹던 힘까지 내고 있다는 혼신의 노력을 보란듯이 어필하는 건데.

         

         “크흠! 커흠!! 잘난 엘리시움도 생각보다 별 거 없잖냐!? 세련된 기술력은 이미 볼장 다 보여줬고, 고작 대기업 예산에서 나오는 물량이랑 힘으로 밀어붙이는 게 다냐 이 새끼들아!”

         

         ““!!””

         

         수갑과 저지봉 형태의 로그아웃 방해 코드를 떨쳐내며 짐짓 금방이라도 빠져나갈 것처럼 아바타를 뒤흔들자, 다 잡은 물고기를 눈앞에서 놓치는 광경을 환시한 엘리시움 직원들이 식겁을 하며 재차 달려들었다.

         

         자, 여기서 신중히, 천천히 제로에게 아바타 주도권을 넘겨주면서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

         

         선동 잘 하는 사이버 범죄자 따위보단, 마음대로 네트워크를 휘젓는 인공지능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는 게 엘리시움 본사가 네오 헤이븐으로 단체 출장 나오고도 남을 사안이니까.  

         

         안 들키게… 최대한 조심조심 어색하지 않게… 와장창!! …아니, 이게 뭐시여.

         

         주변을 크게 에워싸고 있던 격리 필드가 돌연 막대한 부하를 견디지 못한 것처럼 조각났다.

         

         더는 의미와 기능을 이루지 못한 문자 파편이 떨어져 딥 웹의 수면 아래로 삼켜져 감과 함께 나타난 건, 마리나와 로잘린의 아바타를 비롯해 뭔가 나름의 격전을 치르며 여기까지 온 듯 너덜너덜한 모습의 커뮤니티 친구들.

         

         그리고 그 너머에는 본격적인 이념 대립과 폭동으로 발전한 것처럼, 평소에는 이를 악물고 서로 싸우던 또라이 해커들이 손을 맞잡고 엘리시움 팀을 자기네 영역에서 몰아내고 있는 전쟁터 한복판 같은 모습이.

         

         “해킹잘모름! 너 괜찮냐!? 이 언니…가 아니라, 우리들이 도우러 왔다!!”

         

         ……아, 내가 그녀들에겐 엘리시움의 추적을 잘 따돌릴 계획이 있다고만 말했지, 정확히 어떻게 분신술을 써서 빠져나간다고는 설명 안 했구나.

         

         그래서 파티 끝난 이들을 물 흐르듯 해산시키는 대신 그대로 끌고 우리네 보금자리를 침범한 기업이랑 맞짱 까기로 마음먹으셨다…?

         

         ………시발.

         

         잠깐만, 얘 제로야. 메모리 지금도 남지? 예전에 합숙도 같이 했었으니까 나처럼 가상 인격 모방에 쓸 빅 데이터도 있고??

         

         마리나 아바타 비스무리하게 흉내 내서 바꿔치기 할 가계정도 얼른 후딱 만들자.

         

         현실에서 기동대가 대여점에 닥쳐오면 쟤도 동시에 같이 로그아웃 될 텐데, 여기서 대놓고 해킹잘모름을 옹호하던 열성 추종자랍시고 잡혀가면 어떡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 자식, 지금 부끄럼도 없이 유동 분신술을 자랑스럽게?

    많이 지각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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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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