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44

       찰싹!

       

       앨리스는 가감 없이 내 입술을 저격했다.

       

       그러면 뭐하나. 이젠 아프지도 않은데. 

       

       기분이 조금 묘할 뿐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앨리스는 안절부절해하며 상황을 되짚었다.

       

       그래봤자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이것도, 저것도 무용지물이다.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포탈은 열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기능이 마비된 것 같은데.”

       “어떤 이유인지 동생은 알겠어요?”

       “추론 정도야 할 수는 있어.”

       

       잠시 생각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내 마법 때문인 것 같은데.”

       “마법 때문이요?”

       “엉. 자기장을 너무 강하게 걸었어. 언니도 알다시피 포탈은 마력으로 돌아가잖아? 엄청난 힘이 걸린 셈이니까, 순간적인 부하를 못 견디고 퍼엉… 터져버린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잘못인 것 같다. 인정하긴 싫지만, 과학적으로 따져 보니까 그래.

       

       “너무 부주의했어요.”

       

       앨리스는 나를 나무라진 않았다.

       

       다만 걱정할 뿐이다.

       

       “하아…. 못 돌아가면 밀린 일감은 언제 처리하지…….”

       “허어, 그러게.”

       

       당장 지금 한 일 말고도 해야 할 것이 산처럼 쌓여있다. 나도, 앨리스 언니도. 심지어 여신조차도.

       

       하루라도 쉴 날이 없는데.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가장 단순한 건 원래대로 복구될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포탈은 따로 고치지 않으면 쉽게 복구되질 않는다고요, 동생.”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이건 다른 문제지.”

       

       앨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추가 설명을 요구하는 제스처였다.

       

       “자기장이 포탈에 유도전류를 만들어서 이렇게 된 것 같은데. 이런 건 방전이 될 때까지 천천히 기다리면 될걸?”

       “바로 방전시킬 수는 없어요?”

       “그랬다간 손상이 더 심해질 거야.”

       

       정확히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앨리스가 포탈에 대해 알려준 게 있어야 말이지.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점이 있다면, 여기서 잘못했다간 일이 더 커진다는 것.

       

       “어스(Earth, 접지)를 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아. 포탈은 마나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방전 자체도 힘들 거야.”

       “자연 방전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사흘 정도?”

       

       포탈의 물성을 고려하면 그만한 시간이 걸릴 듯하다.

       

       그전까지 하계에서 할 짓도 없다. 정령의 업무 대부분은 ‘백엔드’에서 벌어지니까.

       

       나는 앨리스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언니, 이건 휴식이야.”

       “휴식…?”

       “그래. 열심히 일한 우리 자매를 위한 자체 포상인 셈이지.”

       

       쉽게 말해 이거다.

       

       땡땡이.

       

       그리고, 내 경우에는 만나야 할 사람도 있고 말이다.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렇게 된 이상 생존 신고라도 해야지.

       

       

       **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예요. 그럼….”

       

       클라이스의 선언과 함께 종이 울렸다. 학생들은 하나둘씩 가방을 싸서 일어났다.

       

       조금 전까지 로테가 배우고 있었던 과목은 ‘고급화계마도총론’. 화계마도사라면 반드시 배워야 하는 전공필수였다.

       

       “하아….”

       

       어렵긴 어렵다.

       

       클라이스의 수업은 난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그건 마왕군과의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예전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 클라이스가 수업 자료를 매우 꼼꼼하게 준비해 온다는 것 정도.

       

       공붓벌레인 로테에겐 좋은 일이었다.

       

       그래, 분명 좋은 일이어야 하는데.

       

       “…모르겠다.”

       

       왜 이리 세상이 어려운지 모르겠다.

       

       아니. 어렵다기보다는 허전하다.

       

       머리는 전공 지식으로 충만하건만, 수개월 전의 일 때문에 아직도 공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로테는 책상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나왔다.

       

       “끝났어?”

       

       복도를 거닐다가 불현듯 들려온 목소리.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하얀 머리카락을 지닌 소녀가 서 있었다.

       

       “교수님….”

       “교수라는 표현은 됐다니까.”

       

       소녀는 손을 내젓고는 로테의 곁에 딱 달라붙었다. 그녀가 로테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설핏 웃었다.

       

       “예전처럼 편하게 아카샤라고 불러.”

       

       로테는 작게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교수 일은 힘들지 않아?”

       “힘들어도 해야지. 어쩌겠어? 나 말고는 가르칠 사람도 없다는데.”

       

       아카샤는 얼마 전부터 틸레트 아카데미의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한데, 이번 학기부터 틸레트에 금안족이 다수 입학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노예로 부려졌던 이들. 돈이 없어 지원할 엄두조차 못 냈던 이들. 차별 때문에 은둔하던 이들까지.

       

       그 찾기 어렵다던 금안족이 슬슬 나타나 틸레트의 정문 앞에 나타났다.

       

       금안에 대한 보상을 추구하던 아카데미에선 이들에게 입학시험을 치르게 하여 괜찮은 이들을 학생으로 받았고….

       

       “그 결과가 이 꼴이지.”

       

       아카샤는 커피를 쪽쪽 빨며 눈가를 문질렀다. 아카샤의 눈매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져 있었다.

       

       “테르만 있어도 좋았을 텐데….”

       

       교수 한 명에, 금안족 학생 수십 명.

       

       맡은 과목은 최소 여섯 개에, 시간이 남을 때마다 로테 신경도 써 주어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이다.

       

       “나, 나는 이제 괜찮아. 그러니까….”

       

       그동안 아카샤는 로테가 우울 장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멘탈 테라피를 해주고 있었다.

       

       지금 로테와 붙어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자신이 에테르의 대체라도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로테는, 처음엔 그것이 좋았다.

       

       에테르와 똑 닮은 동생에게 위로받는 것이 조금은 안정감을 주었다.

       

       네가 죽인 게 아니라고.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거라고. 서로를 위해서 했던 일이라고.

       

       친구라면 마땅히 그래야만 했을 것이라고.

       

       한 마디 한 마디가 주옥같아서, 우울증이 심하게 왔을 땐 몇 번이고 되새겼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부담스러운 일이 되고 말았다.

       

       “허어….”

       

       아카샤가 이리 힘들어하고 있었으니까.

       

       “네 볼일 봐도 되는데…….”

       “아니. 나는 괜찮다니까. 진짜로.”

       “아니야. 너 안 괜찮아 보여.”

       

       제발 가서 좀 쉬라고 부탁해도 절대로 들어주지 않는다.

       

       ‘언니가 남겨준 친구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가 책임지고 돌봐야 해.’

       

       아카샤는 그리 생각했고.

       

       ‘에테르가 남긴 동생이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가 책임지고 돌봐야 해.’

       

       로테도 그리 생각했다.

       

       ‘이 아이까지 잃을 순 없어.’

       ‘이 아이까지 잃을 순 없어.’

       

       로테가 삶의 의욕을 가져 주었으면 하는 아카샤.

       

       아카샤가 자기 몸을 혹사하지 말아 주었으면 하는 로테.

       

       이렇듯 두 사람의 관계는 미묘하게 삐거덕거리고 있다.

       

       “그런데 말이야.”

       

       로테는 고민하다가 주제를 물 흐르듯 바꾸었다.

       

       “이번 주말도 세계수 있는 곳으로 같이 가줄 수 있어?”

       “아? 아…. 맞아. 그래.”

       

       세계수가 있는 곳이란, 에테르의 무덤이 있는 곳을 뜻한다.

       

       에테르의 묘비가 올려지던 날. 로테는 대성통곡하며 그곳에서 떨어지려 하질 않았다.

       

       이는 아카샤가 로테와 정식으로 교분을 나눌 무렵에도 똑같았다.

       

       로테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에테르를 찾았다. 시체조차 들어있지 않는 관 너머로 묘소를 다듬고 말을 걸어댔다.

       

       ‘그 탓에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였지.’

       

       이 증세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 주기가 처음보다는 훨 뜸해졌을 뿐, 로테는 여전히 에테르의 묘소에 찾아간다.

       

       일주일에 한 번? 두 번?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야.’

       

       아카샤의 피나는 노력에 대한 결과물이었다.

       

       “시간 없으면 안 와도 돼. 주변 정리는 나만 해도 충분하니까.”

       “아니, 아니야. 집 바로 뒤인데 무얼.”

       

       에테르의 묘소는 살리에르 저택의 뒤쪽 언덕 위에 있다.

       

       걸어서 10~15분 정도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

       

       죽어버린 언니와, 그런 언니가 남긴 친구를 위해 그까짓 시간 정도야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었다.

       

       ‘…벌써 넉 달이 지났나?’

       

       생각해 보니 그렇다.

       

       에테르가 죽은 지 딱 4개월이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잊기엔 아직 이른 시간. 하지만, 털어내고 일상으로 돌아가기에는 그럭저럭 적당한 시간.

       

       때문에 가장 많은 추억을 떠올리게 되는, 애잔한 시기였다.

       

       ‘로테가 빨리 털어버렸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느새 주말이 되었다.

       

       로테는 이날, 평소보다 더 일찍 저택에서 나왔다. 그녀의 옆방에서 지내던 아카샤도 허둥지둥 옷을 갈아입고는 뒤를 따랐다.

       

       이날따라 새벽안개가 짙게 끼었다.

       

       아침 공기를 들이마신 로테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있을 거야. 그래. 분명히 있을 거야.”

       

       로테는 그런 말을 반복하며 산기슭을 올랐다. 상당한 속도였다. 뒤따라가는 아카샤는 다리 근육이 찢어질 것 같았다. 더불어 마음도 찢어질 것 같았다.

       

       “날씨가 좋아. 오늘이라면 에테르를 볼 수 있을지도 몰라.”

       

       “…….”

       

       그래. 이것 때문에 아카샤가 로테를 못 놓는다.

       

       가끔가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데, 어떻게 떨어져 있냐고.

       

       이건 마음의 병이다. 로테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생긴 병. 평소에는 티가 나지 않더라도, 묘소에 올라갈 때마다 발현되는 이상증세인 것이다.

       

       아마 에테르가 돌아오지 않는 한 영영 낫지 않겠지.

       

       아카샤는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며 언덕에 올랐다.

       

       야트막한 언덕 위로는 에테르 및 선대 살리에르 백작들의 묘비와 함께 3m가 조금 넘는 크기의 세계수가 있었다.

       

       결계가 쳐 있는 세계수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로테는 에테르의 묘비 앞으로 슬라이딩하듯 앉았다.

       

       “일주일이나 안 봤더니 머리가 헝클어졌어.”

       

       그러더니 잡초를 하나씩 뽑기 시작했다.

       

       “예전에도 얘기했잖아. 머리 좀 다듬으라고. 응?”

       

       아카샤는 저것이 비유적인 표현인지, 정말로 저 묘비를 살아있는 에테르라 여겨서 하는 일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만큼 혼란스러웠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지 않은가?

       

       죽은 사람은 돌아올 수 없다. 

       

       그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을 텐데도, 로테는 묘소에 올라오면 같은 일을 반복한다.

       

       잡초를 뽑고, 물을 주고, 아랫마을에 내려가서 언니가 좋아하던 음식을 포장해 오고…….

       

       게다가.

       

       “잘 지냈지?”

       

       저렇게, 묘비에 말을 걸기도 한다.

       

       한두 번도 아니고, 올 때마다 저런다. 벌써 수십 번은 본 것 같았다.

       

       그냥 몇 마디를 들어보면 확실히 마음의 병이 깊다고 생각할 법하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빨리 돌아와. 나, 너 보고 싶으니까.”

       

       가끔 저런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기도 한다.

       

       평소 아카샤는 로테가 에테르의 죽음을 인지하고 있으나, 필사적으로 부정하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언제쯤 오려나? 때가 되면 말해줘. 티케이크를 준비해 놓으려고.”

       

       저런 대사는 명백히 다르다.

       

       상대방이 죽었으나, 곧 부활하여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

       

       그런 견실한 신뢰에 근거하여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 않은가.

       

       ……혹시?

       

       ‘아니야.’

       

       그럴 리가 없다.

       

       아카샤는 제정신을 차리고 두 손을 한곳으로 모았다. 마치 제를 지내는 사람처럼.

       

       로테를 기다린다. 로테가 이번 주 미련을 모조리 털어낼 때까지 기다려 줄 것이다.

       

       설령, 이 시간이 버틸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촉박하더라도.

       

       “…그럼, 오전 수업 듣고 다시 올게.”

       

       토요일이지만 오전에 전공 수업이 있다. 그걸 듣고 난 뒤 오후에 먹거리를 싸 들고 다시 이곳에 올 요량이었다.

       

       “이따 봐.”

       

       로테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이었다.

       

       “올 때 티케이크. 블루베리 치즈 맛으로.”

       

       묘비에서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