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45

       사실 내가 앉은 자리가 따뜻하고 좋은 자리이기는 했다.

        

       위하신 분 아이들이 다니는 아카데미답게, 건물의 설계부터 창문이 해 뜨는 방향 쪽으로 나 있어 오전부터 정오까지는 따뜻한 햇볕을 그대로 받을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그리고 창문 앞에는 화단도 있었고.

        

       ……내가 깔고 앉아서 망가져 버렸지만.

        

       그리폰의 튼튼한 몸이 이럴 때는 별로 좋지만은 않다. 분명히 화단을 구분하기 위해 튼튼한 철제 울타리가 있었는데, 내가 위에 앉으면서도 있는 줄도 몰랐다. 그저 다리가 푹신해서 편하네,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을 뿐이다.

        

       같은 반 아이의 말을 듣고 창밖의 나를 보자마자 밖으로 뛰쳐나온 실비아는, 내가 앉은 화단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도끼눈을 뜨고 말했다.

        

       “당신이 고양이입니까?”

        

       굳이 따지면 맹금류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하반신은 사자였지만, 몸을 차지하는 면적으로 따졌을 때 상반신과 날개까지 포함한 독수리 부분이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머리는 독수리 머리였고, 뇌도 독수리 머리에 들었으니 맹금류에 가깝겠지.

        

       안에 들어있는 건 사람이지만.

        

       나도 상황을 알고 있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생화를 가꾸는데 꽤 돈과 시간이 들어간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특히 이렇게 잘 가꾸어진 화단을 만들려면 솜씨 좋은 전문가를 구해야겠지.

        

       아니지.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 그리폰이다.

        

       안에 있는 나의 정체성은 사람이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그리폰 그 자체라는 말이다. 몸이 그리폰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대충 말을 못 알아듣는 척해도 별다른 문제는 없지 않을까?

        

       사람이나 돈이 얽힌 일이라면 대충 모른 척하면 되는 거 아닌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실비아는 한숨을 푹 쉬더니 이마를 짚었다.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했는데요.”

        

       싫은데.

        

       나도 축제 분위기를 즐기고 싶은데.

        

       뭐, 집에서 쉬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이렇게 보여도 직장에서 여러모로 시달리던 때가 있던 사람이라,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특별하게 시간을 보내는 날도 있어야지.

        

       먹을 것도 많아 보이고.

        

       그리폰 입에는 생고기도 맞았고, 가끔 먹는 구운 고기도 맞았다. 그렇다면 설탕 같은 것은 어떨지 궁금했다. 전생의 내가 대단한 미식가는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먹는 것은 좋아했었으니까.

        

       실비아와 앨리스가 잠깐 물어줘야 할 화단 가격에 관해 이야기하는 동안 모르는 척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더니,

        

       “너무 그렇게 부정할 건 없잖아? 그리고 얘도 이제 여기서 살기 시작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어. 네가 말했잖아. 나이도 어린것 같다고. 똑똑해서 몇 번 말한 건 다 알아듣고, 덕분에 처음 왔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얌전해졌잖아? 조금 더 시간을 주는 건 어때?”

        

       앨리스가 실비아에게 아주 훌륭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지만, 그랬다가는 이야기를 전부 알아듣고 있다는 것을 들킬 것 같아 일단은 가만히 있기로 했다.

        

       바로 조금 전까지 모르는 척 있었는데 인제 와서 알아들은 티를 내면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니까.

        

       “……그보다, 주변을 조금 봐주셨으면 하는데요.”

        

       이야기를 나누던 실비아가 문득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 주변에 사람이 몰려들고 있었다.

        

       만약 사자나 호랑이가 당당하게 학교 부지 안으로 들어왔다면 사람들은 혼비백산해서 여기저기 뛰어다녔을 거다. 설령 그 야수들이 공격성을 보이지 않았어도 마찬가지다. 동물과 사람은 근본적으로 대화가 통하지 않고, 그렇기에 아주 오랜 시간 교감하며 서로 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믿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별다른 제지 없이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닌 전적이 많았다.

        

       지난번에 한 번 혼난 뒤로는 남의 재산에 손대는 짓도 하지 않았고, 아카데미 안에 들어와서도 화단에 앉은 것 외에는 폐를 끼치지 않았다.

        

       특히 세간에서는 나의 ‘주인’으로 인식되는 실비아가 옆에 있고, 주변에 도망가라는 말도 하지 않았으니 나름대로 신뢰가 생겼겠지. 실비아는 주변에 꽤 인망이 있는 아이 같았으니까.

        

       “봐, 사람들도 별로 안 무서워하잖아. 그리폰도 딱히 공격할 것 같은 모습은 아니고. 조금은 마음을 놓는 편이 좋지 않겠어?”

        

       차기 황태녀는 역시 상황 파악이 빨랐다.

        

       나의 반응이나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내가 여기 있어도 별로 상관없는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을 보면, 아마 황제가 되고 나서도 분명 훌륭한 정책을 펼치는 선군이 될 거다.

        

       이렇게 보여도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좋단 말이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는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 쪽이 행동에 일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

        

       앨리스의 말에 실비아는 나를 한동안 올려다보더니,

        

       “알겠습니다.”

        

       마침내 수긍했다.

        

       하지만 실비아는 그것만으로 일을 끝낼 생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실비아는 나를 올려다보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하게 하고 넘어가도록 하죠. 만약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것 같은 장소가 있다면, 그 안에 있는 것을 함부로 밟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울타리 안에 있는 가축들이건, 꽃이건. 누군가의 노력으로 일구어진 곳일 테니까요.”

        

       음.

        

       “그리고 그런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다면, 저는 당신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서로 동등한 관계로 있고 싶다면 당신도 저를 존중하도록 하세요.”

        

       그 정도는 뭐 당연히 해줄 수 있지.

        

       사실 화단에 들어간 것도 일부러 무시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그냥 창 안쪽을 조금 더 자세하게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 사람들이 겁먹거나 패닉에 빠지는 건 곤란했으므로, 그들이 겁먹지 않도록 천천히 움직여 옆으로 갔다.

        

       그리고 햇볕은 잘 들되 내 발톱에 땅이 상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곳에 다시 몸을 앉혔다.

        

       실비아는 그런 나를 보고 다소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그래도 지금 집에 가기는 싫었다.

        

       적어도 솜사탕이라도 하나 사주고 그런 소리를 하던가.

        

       일단 내가 가서 하나 먹고 있으면 실비아가 돈을 내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는데—

        

       “황녀님?”

        

       실비아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거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아까 문화제 시작을 알리는 연설을 하던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교장이라는 모양이다.

        

       근엄한 모습의 할아버지였다. 만화에나 나올법한, 완벽한 각도로 꺾인 카이저수염을 한 할아버지였지만, 참 부담스럽게도 그 외모 그대로 나를 우러러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다못해 날카로운 눈이라도 하고 있었다면 좀 덜 무서웠을 텐데, 뭔가 어린 시절의 상상을 떠올린 동심에 빠진 얼굴이라 더 부담스러웠다.

        

       “제가, 혹시……?”

        

       실비아와 몇 마디 말을 나눈 교장은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아니, 허락받으려면 나한테 받으라고. 실비아가 아니라.

        

       나를 만지겠다는 거잖아.

        

       나는 실비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남자가 내 몸을 만지는 건 싫다. 조금 노골적이긴 하지만, 솔직히 이성애자 남자치고 할아버지가 자기 몸 쓰다듬는 걸 좋아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래서 얼른 그 손을 물려달라는 의미로 실비아를 한 번 보았다가, 할아버지의 손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실비아는 나의 행동을 보고 내 생각을 정확하게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실비아는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괜찮습니다. 착한 애니까요.”

        

       !!!

        

       경악해서 실비아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실비아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지만, 그 입술의 한쪽 끝자락이 살짝 올라가는 것을 나는 똑똑히 보았다. 주변 사람 중 눈치챈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기껏해야 앨리스 정도일까.

        

       “사람을 참 좋아하는 아이입니다. 사람의 손길 정도는 쉽게 받아주죠.”

        

       아닌데.

        

       “하지만 조금 전 보인 반응은……”

        

       교장도 알 수 있을 만큼 내 행동은 명확했다.

        

       “사람을 워낙 좋아하니까요.”

        

       실비아는 교장의 그런 말을 무시하고 곧장 그렇게 말했다.

        

       아니, 잠깐만.

        

       “그렇습니까?”

        

       당신은 납득하지 말라고. 누가 봐도 싫어하는 표정이잖아.

        

       하지만 자기 욕망에 굴복한 것인지, 교장은 나의 반응을 보고도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다시 실비아를 보았지만, 실비아는 그저 팔짱을 낀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메이드복을 입은 채 그런 태도를 보이는 실비아는 여러모로 엄청나게 깐깐한 메이드 같아서 참 잘 어울렸다.

        

       내가 도망가려고 몸을 움찔 움직이자, 실비아의 한쪽 눈썹이 슬쩍 올라갔다.

        

       아니, 진짜로?

        

       진짜로 나를 팔아먹을 생각이야?

        

       하지만 결국 교장 할아버지가 나의 몸을 쓰다듬고, 주변 아이들이 몰려와서 한 번씩 내 몸을 더듬을 때까지, 실비아는 주변 사람들을 전혀 말리지 않고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지막에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기까지 했다.

        

       너무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늦은 시간에 올리게 되어 죄송합니다ㅠㅠ

    그리폰 외전은 조만간 마무리하고, 다음 외전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은방울꽃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저의 소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살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역시 이렇게 글쓰는 것을 끝내 포기하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도중에 거의 포기한 것이나 다름 없는 시기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기회가 왔을때 이렇게 잡은 것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덕분에 여러분을 만날 수 있었고, 이렇게 매일같이 꾸준히 소설을 써서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들어 매일 느끼는 성취감에 살아가는 기분입니다. 다음 소설, 그 다음 소설은 무슨 내용으로 쓸지 고민하는 것도 즐겁네요. 이 모든 것이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 덕분이니, 오늘도 그저 감사하며 글을 쓸 뿐입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제 글을 선택하여 읽어주신 분들의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도록 노력하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