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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5

       “안녕하십니까! 제 이름은 니카라고 합니다!”

         

       회색 머리의 소년이 씩씩하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엘라가 일어서서 단원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그러자 그를 향해 사방에서 환호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크하핫, 반갑네. 반가워. 이렇게 또 인연이 이어지는군.”

         

       일전에 그와 함께 마차를 타고 온 적 있는 미노바가 그를 보고 알은체했다. 루엘로는 뭔가 쑥스러운지 아빠의 뒤에 몸을 숨기고 그의 얼굴을 힐끔힐끔 훔쳐봤다.

         

       ‘니콜라 세르게예브나.’

         

       원더스타인은 니카의 본명을 상태창을 통해 확인했다. 키예프식 이름에 대해서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이름+부친의 이름+성 순으로 이름이 구성된다고 들었다. 이 경우 세르게이의 딸, 니콜라라는 뜻이었다.

         

       ‘니콜라……줄여서 니카인가.’

         

       아나이스는 니카의 몸에 밴 예법이 매우 자연스럽다고 평했었다. 이 세계에 건너온 지 1년도 안 된 원더스타인의 눈에도 그녀는 귀족 출신이 확실해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부칭 뒤에는 성이 없었다.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혼외자식인가 보군.’

         

       이 시대에 귀족의 성은 생물학적으로 아버지라고 마구 붙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원더스타인은 고위 귀족의 딸인 그녀가 왜 소수의 수행원만 데리고 밖을 나도는지 약간은 이해가 됐다.

         

       아마 집에 발붙이고 있기 힘든 불편한 사정이 있을 것이다. 3개월의 임시 동행이지만 서커스단에 합류하길 원한 것도 그런 일탈의 한 방법일지도 몰랐다. 그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니카를 바라봤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착각에 불과했다. 듀릭 왕조의 현 황제인 세르게이 2세가 황실 대례를 통해 인지한 자식은 어디까지나 아들인 ‘니콜라이 세르게예비치 듀릭’이었다.

         

       시스템은 니카를 아들이 아닌 딸로 인식했기에 정식으로 성을 부여받지 못한 자식으로 인식한 것이었다. 그 덕분에 황태자는 원더스타인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애써 남장을 고집하는 것도 무슨 사정이 있으려나.’

         

       원더스타인은 그녀에게 몇 가지 배려를 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무래도 여자인 몸으로 다른 남자 단원들과 같이 씻으면 불편할 테니 자신과 같은 방을 쓰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의 몸은 세면과 용변이 필요 없었기에 여자애 혼자 화장실을 편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에게 독방을 제공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현재 그들은 재정적인 긴축 상황에 돌입해 있었다. 당장 오늘부터 단장인 그마저 다른 단원과 합방을 해야 했다.

         

       발단은 엊저녁에 도착한 편지였다. 그것은 마리오 삼 형제가 보낸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작전이 부교주인 토끼 마녀에게 들켰음을 밝혔다. 그녀는 삼 형제의 실력으로는 원더스타인을 피해 아나이스를 데려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가 그들을 이용해 어떤 수를 쓸지도 훤히 내다보고 있었다.

         

       토끼 마녀는 그렇게 해서까지 아나이스를 감싸고 도는 원더스타인에 대해 심술을 부렸다. 그녀를 데리고 다니는 것을 봐주는 대신 상회에서 서커스단에 제공하는 지원금을 반 이상 줄이겠다고 통보해온 것이다.

         

       ‘뭐 이런 치졸한…….’

         

       덕분에 이제 과거처럼 풍족한 여행은 힘들게 됐다. 며칠 사이에서 서커스단의 식구가 크게 는 것도 한몫했다. 그저께 합류한 아나이스를 비롯하여 그녀의 일행인 집사 바텔과 그의 친구인 마사지사 칼슨, 그리고 오늘 입단한 니카와 그의 시녀 신분으로 따라온 제국 정보부 상급 요원 나타샤까지.

         

       그들은 대회 규정상 무대에 오를 수 있는 단원이 되지는 못했지만, 시스템상 단원으로는 인식되었다. 시스템이 받아들일 수 있는 단원의 수는 서커스단의 명성에 비례했고, 현재 명성은 300이 넘었기에 그들을 모두 받아들이고도 자리는 아직 몇 자리나 남았다.

         

       밥그릇은 늘었는데 쌀은 줄었다. 모든 분야에서 지출이 빠듯해졌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은 그들의 재정 문제를 정리해줄 전문가가 단원에 추가되었다는 것이었다.

         

       “단장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니카의 입단을 축하하는 자리가 끝나자마자 원더스타인은 서커스단의 새로운 재정 담당에게 불려가 꼼짝없이 잔소리를 듣는 신세가 되어야 했다. 잘 다린 흰색 셔츠에 검은색 조끼, 검은색 치마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여인이 손에 서류 뭉치를 몽둥이처럼 쥐고 나타났다.

         

       “물총 30자루? 1주일 전에 구매한 이 항목은 도대체 뭐예요?”

       “아, 그거요? 말 그대로 물총입니다. 온천에서 물놀이용으로 산 건데…….”

       “아니, 그따위를 사는 데 이 큰돈을 쓴 거예요?”

       “수압이 보통 물총이랑 달라요. 진짜 총싸움하는 기분을 낼 수 있는…….”

       “하, 그래서? 앞으로도 또 쓸 일 있어요?”

       “아마, 음, 여름에 바다에 갈 일이 있으면 또 쓰지 않을까요? 하하……죄송합니다…….”

         

       아나이스가 서슬 퍼런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자 그는 재빨리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는 이번엔 공연 수입 관련 자료를 넘기며 소리쳤다.

         

       “입장료 측정은 또 왜 이렇죠? 이 정도면 거의 무료 공연 아닌가요? 좌석별 차등 요금도 둘만 하잖아요? 아무리 상회의 지원을 받는다지만 어디 자선 행사 나가세요? 장미 풍차 카바레에서 무얼 배우셨어요? 지속 가능한 공연을 위해선 수입이 있어야죠!”

       “명성을 빨리 올리고 싶어서 싸게 표를 풀다 보니……아, 아니, 죄송합니다. 할 말이 없군요…….”

         

       그녀는 그렇게 몇 달 동안의 기록을 들춰가며 지금까지 그가 어떻게 방만하게 서커스단을 운영해 왔는지 조목조목 짚어냈다. 그때마다 원더스타인은 사과의 말과 함께 고개를 숙일 뿐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했다.

         

       아나이스의 지적은 날카롭고 정확했다. 그녀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크게 내쉬며 손부채를 했다.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자 두 사람을 지켜보던 단원들은 찔끔 놀라서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돈에 관해 논할 때는 그녀의 눈빛에는 범접하기 어려운 위염이 서려 있었다.

         

       “끝났습니까?”

       “아직이요! 하지만 단원들 앞에서 계속 이러는 것도 단장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죠. 따라오세요!”

         

       그녀는 돌돌 만 서류뭉치로 그의 가슴을 쿡 찔렀다. 원더스타인은 풀죽은 개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그녀의 뒤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방에 들어가는 순간, 그들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아무래도 원더스타인이 음향실 마법으로 소리를 차단한 듯했다.

         

       그도 단장으로서 체면을 지키고 싶을 것이다. 단원들은 목소리를 낮추고는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아나이스 님 정말 무섭다.”

       “단장님이 꼼짝도 못 하시네.”

       “어쩔 수 없지. 돈줄을 쥐고 있으니까.”

         

       단원들은 자신들의 단장이 당하는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감히 그사이에 끼어들 수 없었다. 사실 아나이스의 신분을 생각하면 원래 이런 관계가 맞았다.

         

       기존 단원들은 베르그송 자작과 두어 달 같이 지낸 적이 있던 터라 예전의 그녀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그녀는 원더스타인을 은인으로서 존중해줬다. 그러나 지난 몇 달 동안 못 본 사이 그녀의 마음이 많이 변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상회 일에 지쳐서 대리인에게 경영을 맡기고 집사와 함께 몇 달 휴가를 나왔다고 했다. 단원들은 그녀가 함께하면 예전처럼 호화로운 여행을 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서커스단에 들어오자마자 지원금을 절반 이하로 줄이더니 장부를 검토하며 원더스타인을 시도 때도 없이 갈궈댔다.

         

       단원들은 그녀가 원더스타인을 찾아온 목적이 무엇인지 이런저런 추측을 교환했다. 그중 가장 유력한 것은 후원자의 위치를 이용하여 그를 굴복시키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착한 순정녀 전략은 안 먹히니 돈과 권력으로 그를 휘두르겠다는 것이다.

         

       “그럴듯한데?”

       “그때 상처받은 자존심을 채우시겠다?”

       “단장님이 너무 철벽을 치긴 했어. 상대는 후원자인 데다가 귀족인데…….”

       “크핫핫, 나 정도 되는 남자도 후원자 앞에서는 찍소리를 못했는데, 우리 단장은 얼굴을 믿고 너무 뻗댔군!”

         

       미노바의 촌평에 단원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다섯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엘라, 마야, 유라크네, 레이나, 니카였다. 그들은 두 사람이 사라진 방 쪽을 노려봤다.

         

       ‘저런다고 저 인간이 당신을 좋아해 줄 것 같아? 저 악마는 다른 사람을 목적을 위한 도구 이상으로 보지 않는다고. 흥, 나만 빼면 말이지…….’

       ‘20살이면서 나랑 가슴 크기도 비슷한 주제에. 단장님 같은 분이 저런 여자에게 넘어갈 리 없어.’

       ‘단장님도 저 여자에 대해 불만이 많이 쌓이시겠지? 토로하러 오면 다 이해한다는 듯 가슴에 얼굴을 푹 파묻게 해서 토닥거려 드리는 거야. 분위기가 좋으면 또 잠자리로……꺄악!’

       ‘고작 돈으로 엮인 사이라니. 경계할 필요 있을까? 단장님과 내 유대 관계는 키르쿠스도 저주의 형태로 인정한 평범한 부녀 이상이니까.’

       ‘고백했다가 차였다고? 풋, 웃기는 여자일세. 그거 가지고 그렇게 가까운 척했던 건가? 황태자 앞에서도 당당했던 인간이 돈 몇 푼에 휘둘릴 리가.’

         

       그들은 아나이스의 시도를 비웃으며 마음 속에서 불안감을 지우려고 애썼다. 그때, 구석에 앉아 있던 도스빌 남작이 나른한 목소리로 빈정거렸다.

         

       “그럼 저 인간이 후원자님에게 굴복할 때까지 우리는 가난한 여행을 계속해야 한다는 건가? 쳇, 그냥 부잣집 아가씨랑 놀아준다고 생각하고 몇 번 자 주면 일이 좀 더 편하게 굴러갈……아, 아니다…….”

         

       그는 자신을 노려보는 여인들의 살벌한 시선을 느끼고는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에 다른 단원들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두 사람이 들어간 방안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아마도 밖에서 벌어졌던 일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실제로 방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그들의 상상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아나이스의 사무실은 서커스단이 빌린 숙소에서 가장 크고 좋은 방이었다. 그런데 현재 그 방의 주인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는 원더스타인이 그녀가 업무를 보는 책상 위에 다리를 꼬고 걸터앉아 그녀가 작성한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잔뜩 긴장한 그녀의 눈빛에는 방금까지의 당당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그의 표정을 살피며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주인의 눈치를 보는 강아지와 비슷했다.

            

       “흠, 일단 명령한 목표량은 달성했군요.”

         

       원더스타인은 손에 든 서류 뭉치를 바닥에 내던졌다. 종이들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그것들은 아나이스가 밤새 정성스레 정리한 것들이었다. 그녀는 그가 자신의 노력을 함부로 여기는 것에 상처를 받음과 동시에 가랑이를 사이를 타고 오는 저릿한 쾌감을 느꼈다.

         

       그녀는 겁먹은 눈동자로 그를 올려다봤다. 그의 표정은 아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입가에는 여전히 변함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평소와 똑같이 친절해 보였지만, 아나이스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는 저런 표정으로 얼마든지 쌍욕을 내뱉으며 경멸을 표할 수 있다는 것을 며칠 간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장님, 저, 자, 잘했죠? 단장님이 시킨 대로 재정이 낭비되는 구석을 모두 찾았어요. 그, 그리고 단원들 앞에서 전부 제가 주도해서 한 것처럼 연기도 했어요……. 단장님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질 일은 없을 거예요…….”

         

       원더스타인은 빤히 그녀를 바라봤다. 아나이스는 불안감에 전신이 떨려왔다.

         

       혹시 그가 실망한 거면 어쩌지? 재정을 충분히 확보 못 하면 내게 창녀 일을 시킨다고 했잖아. 손님들을 받게 한다고. 한 번에 몇 명씩 상대하게 시킬 거라고…….

         

       그녀의 몸 떨림이 눈에 띄게 심해지는 순간, 원더스탄의 손바닥이 그녀의 머리를 덮었다. 그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따뜻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잘했어요, 아나이스.”

         

       그녀의 입에서 바보 같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가 칭찬해줬다. 그가 자신을 인정해줬다. 그것만으로 그녀는 행복감을 느꼈다.

         

       “에헤헤.”

         

       그녀는 자신을 아랫사람처럼 다루는 그의 손길을 즐겼다. 그녀의 그런 행동은 원래의 그녀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새우냥 님, 10코인 후원! 태그에 대해 조언해주신 점 감사합니다. 사실 이 글에 태그가 많이 부족하긴 하죠. 후회, 피폐, 집착은 말할 것도 없고, 최면순애, 조교순애, 퇴행순애, TS순애, 능욕순애, 부녀순애, 남매순애, 하렘순애에 NTL, BSS, 여장 등등. 태그를 추가하자면 수십 개는 더 갖다 붙여도 될 것 같습니다.

    다만, 국밥 같은 글을 지향하는 입장에서 태그 어느 하나가 이 글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최소한으로 줄이게 되었습니다.

    —-

    생각보다 분량이 늘어나서 자르게 되었습니다. 아마 오늘 안에 마지막 편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미 반 이상 썼습니다.

    23시 추가
    그러려고 했느데 체하고 열까지 있습니다. 죄송한데 한숨 자고 새벽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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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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