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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5

        

       남자가 그것을 생각하기 무섭게, 그가 서 있는 풍경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화창하기 짝이 없던 하늘은 점차 어둑어둑해지며 검게 물들고 있었고, 어디서 지는지 보이지 않는 해는 노란빛과 주황빛을 사방에 퍼뜨리며 황혼임을 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황혼에 물드는 하늘 속 구름은 용암이 흐르듯 붉게 물들며 길을 만들었고, 주황색, 노란색, 붉은색으로 계속해서 색을 바꾸다가 종국에는 그 색을 모조리 뒤섞어버린 듯 새까만 어둠이 되어버렸다.

       그 어두운색은 분명히 하얀색이었지만, 어둠에 물들어 탁해 보이는 하얀색이었다.

         

       배경이 달라지면 거기 놓인 물건의 인상 또한 달라지는 법.

       구름의 색은 계속해서 하얀색이었지만 주위의 색에 따라 노란색으로, 붉은색으로, 주황색으로, 검은색으로 끊임없이 변화하였고, 종국에 하늘이 완전히 검게 물들었을 때 때가 잔뜩 탄 양털 같은 어수선함을 품은 채 하늘에 떠 있었다.

         

       그리고 풀 역시 마찬가지.

       아까는 초록빛을 뽐내며 흔들리던 풀은 어둠 때문인지 거뭇거뭇한 선이 되었고, 어두운 물 아래의 수초처럼 흐느적흐느적 움직이는 기묘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둠은 시야를 차단하였고, 빛을 차단하였고, 그들의 본질을 숨겼다.

       그렇게 본질이 어둠에 파묻힌 풀은 소름이 끼치는 머리카락이 되었고, 위협이 되었고, 사람의 마음에 불안을 일으키는 조형물이 되었다.

         

       그렇게 온 사방이 어둠으로 물들고, 남자는 어둠 속에 덩그러니 놓이게 되는 처지가 되었다.

       아까까지는 분명 광활한 초원에 있었건만.

       지금은 그 탁 트인 초원에서 느낄 수 있는 자유는 온데간데없어진 채,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에 대한 공포가 엄습해오는 것은 무엇인가?

         

       본질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 오직 변한 것은 시간과 색뿐이거늘, 어찌 마음은 이를 다르게 인식하고 다르게 받아들이는가?

         

       “그것이 바로 마음이기 때문이니라.”

         

       남자의 불안을 눈치채듯 그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쇠를 긁어내리는 듯한 끔찍한 소음을 연상케 하는, 기묘한 목소리가.

         

       남자가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 보인 것은 넝마를 뒤집어쓴 이상한 비렁뱅이였다.

         

       거지.

       다 낡고 해지고 때가 타서 걸레로도 쓰지 못할 것만 같은 천을 온몸에 뒤집어쓰고 있다.

       그것이 마치 로브라도 되는 것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것을 뒤집어쓰고, 치렁치렁한 소매를 구깃구깃 접어 팔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 손은 팔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바닥에 축 늘어뜨린 채 힘없이 흔들거리고 있었고, 다른 팔에는 어디선가 주워온 것 같은 볼품없는 나무 막대기를 지팡이로 삼아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거지는 천천히 남자를 향해 걸어왔다.

       풀을 밟고, 풀을 헤치고,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고, 지팡이로 풀을 밀어서 눕히고, 그렇게 천천히 남자를 향해서 걸었다.

         

       그렇게 남자가 걸어옴에 따라 남자는 거지의 모습을 더더욱 자세히 알아볼 수 있었다.

         

       거지가 입고 있는 천은 분명히 낡았다.

       하지만 그 낡고 구멍 난 곳 사이에는 고급 옷감으로 만든 것 같은 정장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고, 지팡이를 잡은 팔 안쪽에는 무언가 비싸 보이는 시계가 자리 잡고 있었다. 게다가 볼품없는 나무 막대기처럼 보였던 지팡이에는 군데군데 흑요석처럼 보이는 것이 박혀있었는데, 어둠 때문에 광택을 발하지 못할 뿐 그 고급스러움은 그대로 품에 안고 있었다.

       게다가 풀과 어둠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던 그의 발에는 고급스러운 구두가 있었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구두가 말이다.

         

       거지는 자신의 옷차림을 관찰하는 남자에게 말했다.

         

       “본질이란 무엇인가?”

         

       거지는.

       진성은 남자에게 다가와 물었다.

         

       “멀리 있을 적 나는 어둠 속에 파묻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어둠에서 벗어났을 적 나는 넝마를 입은 거지였다. 가까이 다가갔을 때는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넝마를 위에 걸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묻는다. 본질이란 무엇인가? 본질을 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본질을 판단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본질이란 과연 어떠한 것인가?

         

       “바라보는 것에 본질이 있다면 나는 본질이 짧은 시간에 세 번이 바뀐 것이로다. 그렇다면 보이는 것이 본질의 다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 본질은 대관절 어디에 있고 어떻게 되는가?”

         

       진성은 말을 거기서 멈추곤 지팡이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지팡이가 들어 올려짐에 따라 하늘은 달빛이 비치기라도 하는 듯 차가운 빛이 맴돌기 시작했고, 그 빛은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지팡이에 내려앉아 흑요석에 머물렀다. 머무른 달빛은 차가운 기운을 머금고 흑요석을 한 바퀴 돌아 광택을 발했고, 번들거리는 검은빛을 내뿜고는 그대로 허공으로 사라져버렸다.

         

       터엉-!

         

       진성은 달빛이 머무르고 사라진 지팡이를 바닥에 꽂았다.

       지팡이는 공허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박혔고, 그와 함께 진성의 뒤쪽에 흙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흙이 솟아나고, 풀과 풀이 얽히고, 등받이가 만들어진다.

         

       그렇게 해서 훌륭한 의자가 만들어졌다.

         

       터엉-!

         

       지팡이를 한 번 더 내리꽂자 이번에는 남자의 뒤에 의자가 생겨났다.

       진성의 것과 똑같이 생긴, 흙과 풀로 이루어진 의자였다.

         

       진성은 지팡이를 그대로 놔둔 채 그대로 의자에 앉았다.

       얄미울 정도로 너무나도 편안하게 말이다.

         

       남자는 그러한 진성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니 입을 열었다.

         

       “…너, 그놈이지?”

         

       명백한 적개심이 담긴 말투였다.

         

       하지만 진성은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남자의 말에도 평온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러하니라.”

         

       “그리고 여기는 지금 꿈이고?”

         

       “그것 역시 맞느니라.”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진성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를 이리로 데려온 것이지?”

         

       남자는 적개심과 경계심을 감추지 않은 채, 그렇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진성은 적개심과 경계심 그 무엇도 드러내지 않은 채, 평온하게 말했다.

         

       “말하지 않았는가? 이야기를 나누어보자고.”

         

       하.

         

       남자는 진성의 말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까 지금, 이야기하자고 나를 납치해서 가두고. 꿈속에 나를 끌고 오셨다? 그리고 그 꿈속에 정신을 옮겨서 지금 내 앞에 아-바타(Avatar)를 만들어놓으셨다고?”

         

       “아바타라(अवतार)는 아니네. 다만 앞엣것은 옳으니, 그래. 나는 지금 자네의 꿈속에 나의 정신을 투영하여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네. 말하자면 꿈을 매개로 하는 통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라.”

         

       진성은 그렇게 말하곤 말을 멈췄다.

         

       그가 말을 멈추자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남자는 입을 꾹 다문 채 그를 노려보고 있었고, 초원에 부는 바람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은 채 간지러운 느낌과 차가운 감각만을 느끼게 해줄 뿐이었다. 게다가 흔들리고, 서로가 스치면서 소리를 내야 하는 풀은 흐느적거리면서도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았다. 마치 어둠에 이리저리 뭉개져 버린 머리카락 뭉치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고요의 중심 속.

         

       진성이 걸치고 있는 넝마 안에서 소리가 났다.

         

       바스락.

       바스락.

         

       작고 단단한 것이 스치는 듯한 소리였다.

         

       파드득.

         

       그리고 이윽고 그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멈추고, 진성의 소매 안에서 자그마한 불빛이 튀어나왔다.

         

       손톱보다도 작은 빛.

       불씨를 연상케 하는 작고 여린 빛.

       이리저리 유선을 그리며 움직이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그것.

       날갯짓 소리와 함께 뒤꽁무니에 빛을 발하며 허공을 헤엄치는 벌레.

         

       반딧불이였다.

         

       반딧불이는 이리저리 헤엄치다가 착지하듯 땅에 내려앉았고, 자신을 불사르듯 빛을 강하게 발하더니 한 줌의 불씨가 되었다.

         

       화르르.

         

       그리고 그 자그맣게 만들어진 불씨는 곧 등대가 되었고, 북극성이 되었다.

         

       파드득.

         

       진성의 소매에서 수많은 벌레가 튀어나와 그 등대로 향하기 시작했다.

       몸이 불꽃으로 이루어진 나방이 날아올라 불씨에 몸을 던져 불씨를 불꽃으로 만들었고, 일반적인 반딧불이와 다르게 꽁지에 불씨를 품고 있는 반딧불이가 나서서 몸을 던져 기꺼이 장작이 되었다.

         

       타닥.

       타다닥.

         

       그렇게 벌레가 달려들며 불은 점차 커져 나갔고, 그렇게 커진 불은 옆으로 번지고 위로 솟구쳐 오르며 모닥불의 형상이 되었다.

         

       벌레를 연료로 삼아 몸을 부풀리고, 곳곳에 널린 풀에 뿌리를 뻗어 흡수하며 몸을 유지하는 모닥불이 말이다.

         

       흔들거리는 모닥불을 사이에 둔 채, 진성은 남자에게 말했다.

         

       “이곳은 꿈. 시간은 넉넉하네. 그러니 이야기해보세.”

         

         

         

        * * *

         

         

       남자는 진성을 경계했다.

       하지만 아무리 경계하고 적대하여도 진성은 이야기를 나누자는 말만을 되풀이할 뿐이었고, 이야기를 다 나누기 전에는 결코 이 꿈에서 나가게 해주지 않겠다는 의사를 피력하였다.

       그렇기에 남자는 진성의 뜻대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마음의 문을 꽉꽉 닫은 채 말이다.

         

       “너는 지금 무슨 목적으로 이런 짓을 한 거지?”

         

       “이야기하기 위해서.”

         

       “왜 나를 공격하고 납치했지?”

         

       “앞서 말하였듯이, 이야기하기 위해서네.”

         

       “그 이야기가 뭔데?”

         

       “허허, 이야기란 이야기이네. 한 사람이 말하고, 한사람이 답하고. 그것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면서 이어가는 것. 그것이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그럼 내가 묻지. 너는 누구냐?”

         

       “자네의 이야기 상대일 뿐이네. 그저 그뿐이지.”

         

       하지만 그 이야기는 쉽게 이어지질 않았다.

       진성의 신상이나 목적에 대해서 캐물어 보려고만 하면 ‘이야기가 바로 나의 목적이다.’,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이번 주제에 걸맞지 않은 것이다.’ 등의 말로 답하는 것을 피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반대로 질문이라도 던져주면 좋으련만.

       진성은 철저하게 남자의 물음에 답만을 해주고 있었다.

       질문을 던질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진성의 태도에 남자가 이상함을 느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너는 왜 나에게 질문을 하지 않지?”

         

       진성은 이러한 남자의 말에 답했다.

         

       “그 질문을 원했기 때문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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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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