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화. 사람과 하늘 ( 2 )
“이, 인간의 도리요?”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어 되물었다. 그런 나의 표정을 본 여자 무당이 아차 싶었는지 설명을 덧붙였다.
“그, 감히 능멸하거나 그런 의도는 없습니다. 허나… 지금 천존의 영(靈)과 백(魄), 육(肉)의 간격이 너무나도… 심각합니다.”
영? 백? 육?
모르는 단어가 우수수 튀어나와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다. 그런 내 표정을 봤는지 여자 도사가 천천히 풀어서 설명을 시작했다.
“영(靈)은 쉽게 말하자면 사람의 정신을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는 에너지입니다. 영은 생명이고, 숨결이며, 살아있음의 증거.
백(魄)은 사람의 두뇌에 저장되는 모든 것을 총칭합니다. 기억이라고 이해하면 편하시겠군요. 육(肉)은 말 그대로 육신을 뜻하는데…
지금 천존께서는 영이 한없이 드높아 하늘의 끝에 닿을 지경이지만, 백은 인간의 테두리 안에 머물고 있으며 육신은 인간의 한계 언저리에 있으니. 세 발 달린 솥의 다리가 각각 높낮이가 다른 꼴이니, 이것이 얼마나 기묘하고 위태로운 모습입니까?”
여자 도사가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대충 이해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지금 내 몸을 받치고 있는 기본적인 기둥들의 높이가 개판이 난 상황. 어느 것은 엄청 높고, 어느 것은 아주 낮아서 전부 무너질 상황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여기 찾아온 온 이유랑 지금 말씀하신 내용이 연관이 있을 것 같네요.”
나는 도사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이세계와 케넬름,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하고 적당히 각색했다.
“보, 본신을 보이는 것으로 차원을 부수셨다고요? 그런 존재의 힘을 4, 4할이나 흡수?!”
도사의 턱이 벌어져 닫히지 않는다.
한참이나 그러고 있다가 이내 정신을 가다듬으며 안색을 굳혔다.
“그건… 참으로 심각한 일입니다. 말씀하신 것이 사실이라면 본신의 힘은 그야말로 천외천, 하늘을 아우르고 삼라만상을 뒤덮는 존재일 터인데. 그러한 존재의 힘을 4할이나, 그것도 아무런 대비도 없이 한꺼번에 받아들이셨다면…”
“그런데 지금까지는 멀쩡했는데 얼마 전부터 자꾸 발작하면서 저도 모르게 힘을 쓰려고 하더라고요. 그것도 파괴적인 모습으로.”
“울결과 한(恨)은 만악의 근원이지요. 아마 그것이 촉진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기는 하지만, 결국 언제라도 터졌을 문제입니다.”
부적을 만지작거리는 도사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영은 드높으나 백이 인간의 것이니. 그 격차를 육의 뛰어남으로 견디며 천천히 균형을 이루려 한 모양입니다만… 4할의 힘을 한꺼번에 받아들이면서 한계에 이른 모양입니다.
하늘의 생명을 인간의 두뇌에 담은 샘이니, 당연히 잔이 깨어질 수밖에요.
그간 인간의 도리를 모르는 무정한 행동이나 폭력적이거나 즉흥적인 행동을 많이 하시지는 않으셨습니까?”
“마, 맞아요! 몇 번 그랬어요!”
초조함이 몰려왔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이토록 자세하게 나의 상황을 설명하고 풀어준 사람은 이 도사가 유일할 것이다.
“그러면, 혹시 방법이 있을까요? 지금이라도 회사를 그만두면 좀 괜찮아지나요?”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한번 끓어 넘친 냄비에 뚜껑을 닫는 것은 상황을 모른 척하며 미루는 일.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다는 말인가?
내 표정이 어두워지려 할 때, 깊게 고민하던 도사가 벌떡 일어나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책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잠시만, 분명히 여기 어디에서…”
무언가 중얼거리며 한참이나 낡은 책을 헤집는 도사. 슬쩍 엿보았더니 온통 한자로 가득한 곰팡내 나는 책들이다.
“찾았다! 그렇지, 분명 여기 있었군요.”
여자 도사가 어딘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헤지고 낡아 글씨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책을 내밀었다.
“천존이시여. 저의 먼 조상, 전우치 대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전우치라고 하면, 그 영화에 나왔던 정도밖에.”
명작이지.
아직도 심심하면 가끔 재탕하는 영화다.
“아무래도 세간에는 영화가 제일 유명하겠지요. 허나 저희 후손들에게 은밀하게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전우치 대사께서는 사실 조선 제일의 기적사로 불리며, 당대의 조선 팔도를 호령한 천년 구미호를 봉인하고ㅡ”
뭔가 잡소리가 길어진다.
“자, 잠깐만요. 그래서 지금 그게 내 상황이랑 무슨 소용인데요.”
“아, 큼, 흠. 실례했습니다. 아무튼 전우치 대사께서도 조선을 유람하며 요괴를 소탕하는 와중 천존님과 유사한… 물론 감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경우를 발견했다고 기록하셨습니다.”
대충 요약하자면 요괴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반요가 있었는데 나처럼 혼과 백, 육의 괴리가 심했다고 한다.
“아니… 그런데 도사님 앞에서 제가 할 말이 아니기는 한데, 지금 요괴랑 반요. 이런 게 다 실제로 있었던 거라고요?”
“예? 그럼 당연한 거 아닙니까? 나중에 집으로 돌아가시면서 가로등을 유심히 보시지요. 도깨비 한 놈 정도는 가로등인 척 하고 있을 겁니다.”
뭐랄까…
별빛이라는 괴상한 힘을 다루는 시점에서 할 말이 아니기는 했지만.
내가 모르던 또 다른 사회의 이면을 엿본 기분이다.
“아무튼. 전우치 대사께서는 그 반요에게 특수한 주술을 걸어 이를 해결했다고 하시는군요.”
“오! 그럼 저도 그걸로 해결할 수 있는 건가요?”
“그건… 확신할 수 없습니다.”
도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천존님과 반요의 경우가 비슷하기는 하지만 영과 백의 차이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조금 더 보완해서 주술을 쓴다고 하여도 이것이 통할지는…”
“어차피 지금 도사님 말고는 저한테 방법이 없어요.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저는 언젠가 미치게 생겼다고요!”
나는 어차피 뒤가 없다.
이미 타이머가 돌아가기 시작한 시한폭탄이 내 머릿속에 있는 셈이다. 그것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단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그게 썩었는지 안 썩었는지 알 것 아닌가.
내 절박함을 알았는지 여자 도사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소녀, 부족한 몸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천존님을 보필하겠나이다.”
여자 도사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마당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재료를 가져와 바닥에 문양을 새기고 부적을 새기며 무언가를 한참이나 준비했다.
그렇게 한나절이 지나서야 완성된 것은 마당을 넘어서 사방을 빼곡하게 덮은 기묘한 제단.
“후우…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부디 소녀의 기운을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소서.”
“예, 예!”
제단에 올라가 긴장된 기색으로 눈을 감았다. 이렇게 누워있자니 산 제물이 되는 기분이라 조금 묘했다.
“…”
“…끄으응, 오도일이관지(吾道一以貫之)하니 사방의 통제건곤(統制乾坤)이라.”
슬쩍 곁눈질로 살피니 여자 도사가 한 바가지 땀을 흘리며 웅얼웅얼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한 손 가득 쥔 부적이 미친 듯이 타들어 간다.
‘아까 나한테 무슨 기운을 거부하지 말라고 했었지?’
어떻게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의식을 활짝 연다는 느낌으로 집중하며 가만히 제단에 누워있었다.
이게 의식을 연다는 건가.
조금 휑한 느낌이 바바리맨이 된 것 같아 간질간질 기분이 묘하다.
“…”
“중얼중얼…”
15분 정도 지났을까.
얼굴이 하얗게 변한 여자 도사가 결국 입을 열었다.
“허, 허읍… 처, 천존이시여…! 부디 소녀의 기운을 내치지 마소서! 소녀의 깨우침이 부족해 천존의 시험을 통과하기에는 너무 부족합니다!”
“시, 시험이요?”
그게 도대체 무슨?
“…저는 아까부터 최대한 의식을 열고 있었는데요.”
“예?”
“…”
“…”
어색한 바람이 불어와 마당을 훑고 지나갔다. 누군가의 전력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몸풀기 수준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기분이 이러할 것인가.
“그, 그렇다면 혹시 조금만 더… 염치 불고하고 조금만 더 의식을 열어주셨으면 합니다…!”
“아, 네…”
눈을 질끈 감고 최대한 의식을 활짝 연다고 상상하며 집중했다. 그러자 아까보다 더욱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이 이제는 바바리맨이 아니라 전라로 활보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간질간질.
그제야 의식의 끝을 간질거리는 무언가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도사님이 말한 게 이건가.’
그런데 너무 작다. 나한테 도술을 걸기는커녕 툭 치면 날아가겠는데.
‘내가 이 크기에 맞춰야 할 것 같은데. 그게 되려나?’
작아진다, 작아진다.
내 존재를 꾹꾹 누르고 압축해서 좁쌀로 만든다고 생각하니 아주 작았던 무언가와의 크기 차이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 거는 주술의 효과가 뭐예요?”
그러고 보니 제일 중요한 것을 못 들었다.
여자 도사가 한껏 집중하고 있는지 더듬더듬 힘겹게 입을 열었다.
“천, 존께서는… 영이 드높고 백이 낮으며, 육은 중간에 위치한 상황이십니다… 그러. 니… 이를 맞추기 위해서는, 백(魄)…! 그것의 수준을 최대한 끌어, 올려야… 합니다! 적어도 육(肉)과 비슷, 하도록!”
백(魄).
분명 사람의 두뇌에 기억되는 것을 총칭한다고 했지. 그런데 그걸 억지로 끌어 올린다고?
“어떻게요?”
“조금, 단… 순하지만 확실하게, 할 것입니다…!”
어쩐지 조금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뭔지는 몰라도 톡톡히 고생하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어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게 뭐냐고요! 그 단순하고 확실한 방법이 뭔데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단순하고 확실한 방법은 딱 두 가지 경우가 있었다.
하나는 막대한 재화를 바탕으로 단순하고 무식하게 해결하는 방법.
다른 하나는 단순하고 무식하게 몸으로 들이박아서 해결하는 방법.
“백은 기억…! 기억, 을… 때려 붓는 것입니다! 육신의 수준에 올라올 때까지! 끝없는 기억을 기억하고 또 실감하여, 백을 단련하는 것… 입니다!”
“……예?”
척 들어도 사뭇 불길한 단어의 연속에 재빨리 제단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꿈쩍도 할 수 없었다.
“───…!! 흡! 천존이시여!! 부디 그대의 뜻을 이루소서!”
“아니, 잠깐마아아아─…”
세상이 느리게 회전하며 들려오는 말이 저속 재생처럼 길게 늘어지기 시작한다. 이윽고 내 시야 한가득 펼쳐진 것은 푸른 하늘이었고, 그마저도 가물가물하며 어두워지다 문득 툭 끊긴 것이다.
“……이건 또 뭐야…”
낯선 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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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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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후우… 우웩!”
주술을 마친 도사가 돌연 입에서 검붉은 피를 왈칵 쏟아냈다.
허락하에 이루어진 일이었으나, 까마득하게 높은 존재에게 주술을 건 반동이 찾아온 것이다.
‘고작 이 정도로 역천(逆天)이 끝나다니. 참으로 다행이다.’
입가의 피를 닦은 도사가 굵은 땀을 뚝뚝 흘리며 거친 호흡을 다스렸다.
제단에 고이 누워있는 것은 겉보기에 무척이나 평범한 남성.
허나 그의 내면에는 거대한 별들의 무리가 수십억으로 가득했다.
그야말로 우주처럼 드넓은 영(靈)의 향연.
반면 이와 균형을 이뤄야 할 정신과 육체는 범부의 그것이거나, 인간치고는 뛰어난 수준에 그쳤다.
세 기둥이 균형을 이뤄야 올곧게 뻗을 것인데, 이토록 균형이 어긋났으니 이상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
너무 늦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선녀님. 노하지 마소서. 이는 천존님을 위해 필요한 일이었음을, 선녀님도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도사가 허공을 향해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말을 거는 모습은 미친 사람처럼 보였지만, 도사는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는 것처럼 어느 한 지점을 정확하게 응시했다.
“천지인.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이라. 땅에서 뻗어나 하늘을 우러르는 기세가 사람의 형상이니. 천존께서는 인간도 하늘도, 그렇다고 땅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셨습니다.”
…
“천존께서는 인간의 이치를 기억하셔야 합니다… 저 드높은 하늘이 무심하다고는 하나, 인간의 형상을 한 하늘이 무심하여 내키는 대로 행한다면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입니까.”
…
“…가셨구나.”
중얼거린 도사가 주섬주섬 주변을 정리하고는 털썩 주저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까마득한 선조의 대에서 사용된 주술이다.
소실되거나 알아볼 수 없는 부분이 많아 도사 본인도 이 주술이 무언가를 보여주며 깨우치는 종류라고 어렴풋하게 알고 있을 뿐, 뭘 보여주는지 그 내용은 알 수 없었다.
‘부디, 무사히 일어나시기를.’
무심하도록 하늘이 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