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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5

   크라슈는 평소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타고나기를 허황한 이야기를 보며 감정 이입을 잘못하기 때문이다.

     

   크라슈가 꾸는 꿈은 단 하나.

   세계를 구하는 것뿐.

     

   그래서인지 소설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크라슈는 흥미 없이 보다가 덮는 편이다.

     

   ‘재밌네.’

     

   하지만 그런 크라슈가 세이랑의 신작을 읽고, 재밌다는 평가했다.

     

   소설의 흐름은 간단했다.

     

   저주받은 북부의 여주와 축복받았지만 축복 탓에 모든 걸 잃은 남부의 남주.

   여주와 남주는 약혼자로 처음 만났을 당시, 서로를 달갑지 않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서로의 단점을 해결해 주고, 서로에게 구원자가 된다.

     

   그리고 끝내 사랑에 빠진다.

     

   크라슈에게 들었던 비앙카와 크라슈의 이야기가 꽤나 들어 있는 내용이었다.

   이런 무척이나 간단한 이야기 구성이지만 세이랑의 필력이 남달랐다.

     

   ‘점성술 덕인가.’

     

   세이랑은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른 것 같다.

   크라슈는 사랑 이야기만큼이나 그 관점이 꽤나 흥미로웠다.

     

   문제는 관능 부분이다.

   

   ‘예전에 본 적 있긴 했는데.’

   

   당시, 세피라가 망한 뒤 세이랑의 방을 정리했던 건 크라슈였다.

   그렇기에 그녀가 썼던 관능 소설을 크라슈는 대충 훑은 적 있다.

   

   그때는 혹시나 중요한 자료였나 싶었으니까.

   

   ‘하드하네.’

   

   그때도 느꼈지만, 세이랑의 소설은 정신이 아찔할 만큼 농밀하고 자극적이었다.

   대체 그 얼굴로 이런 걸 어떻게 쓰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이러니 정체를 숨기려 하지.’

   

   만약 세이랑이 이런 소설을 썼다는 걸 알게 된다면 세간이 난리가 나리라.

   

   필력과 관능이 만나니 이런 게 탄생하는구나 싶다.

   

   ‘문제는 이게 내 이야기라서.’

   

   관능으로 쓰이고 나니 참,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든다.

   이거, 비앙카 만큼은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쨌든 결론은 재밌다였다.

   세이랑은 글재주가 확실히 뛰어났다.

   

   크라슈도 비앙카가 보고 싶어졌을 지경이다.

   

   그러나 크라슈는 알지 못했다.

     

   평소 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이 재밌다고 느낄 정도라면.

   그것을 미친 듯이 파는 사람은 더더욱 세부적이고 많은 걸 보게 된단 걸 말이다.

     

   “힉, 히잉, 흐이잉.”

     

   크라슈는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힐끔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소설을 읽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에벨아스크가 있었다.

     

   세이랑의 신작 소식을 듣자마자 흥분하더니 이제는 소설을 다 읽고, 펑펑 울고 있다.

   마지막 엔딩 부분이 꽤나 슬펐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눈물이 혹시나 신작에 닿을까 싶어 열심히 닦는 걸 보면 중증이다.

     

   “그렇게까지 눈물 나오냐.”

   “너야말로 이걸 보고도 어떻게 안 울어?”

   “미안, 나 눈물샘이 수련할 때 타서 없어졌어.”

   “뭐, 저, 정말?”

   “아니, 구라지.”

     

   크라슈는 에벨아스크가 휘두르는 주먹을 피했다.

   씩씩거리는 그녀를 보고, 크라슈는 짧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적어도 세이랑 님은 좋아하겠네.”

     

   자기 작품을 읽고 이토록 감명 깊게 울어준다면 작가로서는 가장 행복할 일이겠지.

   크라슈의 이야기를 들은 에벨아스크는 코를 킁하고 삼켰다.

     

   “당연하지.”

     

   크라슈는 손을 들어 에벨아스크의 머리를 툭 눌러주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려고?”

   “잠깐 숨 돌리려. 넌 마저 읽고, 감상평이나 작성해.”

     

   크라슈의 감상평보다는 에벨아스크의 감상평을 더 좋아할 테니 말이다.

   크라슈는 그리 말해두고, 에벨아스크를 둔 채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얼마 동안 밤공기가 새어 들어오는 복도를 걸었을까.

   크라슈는 인기척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었다.

     

   사내가 낀 귀걸이가 달빛을 받아 한차례 반짝거렸다.

     

   크라슈는 사내에 관해 잘 알고 있었다.

     

   천구성, 블라비.

   세피라 공주의 호위이자 크라슈가 노괴라 일컫는 구시대부터 살아온 사람.

     

   그는 크라슈와 눈이 마주치더니 입을 열었다.

     

   “세이랑 님과 어울려 주느라 고생했군.”

   “고생이라뇨. 오히려 받을 것만 잔뜩 받은 기분인걸요.”

     

   스킬 세이블을 사실상 공짜나 다름없이 받았다.

   이는 세이랑에게 앞으로 갚아야 할 빚이다.

     

   “세이랑 님 주위에는 성녀님 말고는 또래가 없으니까. 한 명쯤 더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는 세이랑이 태어났을 때부터 지켜봐 왔다.

     

   세이랑의 부모는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이미 세피라의 일을 하느라 집에 있는 날이 드무니.

   세이랑을 줄곧 업어 키운 것은 블라비였을 것이다.

     

   ‘아버지 된 마음이라 이건가.’

     

   크라슈는 왜 세이랑이 세계 침식자에게 살해당했을 때 블라비가 그토록 분노했는지 깨달았다.

     

   자기가 키운 자식이 살해당했는데 분노하지 않을 부모는 없으니까.

     

   “오늘 찾은 건 천살성에 관해 하나 이야기해주기 위해서다.”

   “천살성 말입니까?”

     

   크라슈는 의아한 얼굴을 했다.

     

   천살성은 본디 블라비가 지니고 있던 것을 크라슈가 받아온 것이다.

     

   크라슈가 천살성에 관해 아는 것은 살의 욕구를 끌어 올리는 대신 육체 능력을 극단적으로 올려준다는 것.

   더불어 저주의 효과를 보다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 정도만 알아도 크라슈는 지금까지 문제없이 천살성을 다뤄왔다.

   오히려 이보다 더 다룰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천살성은 반신에 오를 때 신격화된 육체를 가장 강인하게 구성하는데 밑바탕이 되어준다.”

     

   그 말은 즉, 반신에 도달한다면 천살성은 육체를 구성하는 가장 좋은 재료가 돼준다는 소리였다.

   이건 정말로 몰랐던 이야기였기에 크라슈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나는 반신까지 오르지 못했다.”

     

   블라비는 반신에 오르는 대신 반로환동을 통해 젊음을 되찾았다.

   반신에 오르는 것은 그라고 할지라도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반신에 오른다면 천살성은 육체를 재구성한 구실로 나를 잡아 먹었을 것이다.”

   “반신에 오를 때 천살성이 육체의 주도권을 빼앗는다는 소립니까.”

   “그래, 천살성의 살의는 늘 호시탐탐 자신이 깃든 인간을 집어삼키고 싶어 하니까.”

     

   세피라가 그의 천살성을 눌러주기 전까지.

   블라비는 지금껏 계속해서 천살성을 억눌러왔다.

     

   그렇기에 그는 천살성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너라면 머지않아 결국 반신에 이르겠지.”

     

   크라슈의 성장은 블라비조차 놀랄 만큼 빨랐다.

     

   그는 아직 모르는 모양이지만 얼마 전, 전 세계에 새로운 천하십강이 이름을 올렸다.

     

   용왕, 크라슈 발하임.

     

   얼마 전까지 검룡이라 불렸던 그가 순식간에 용왕이라는 자리까지 오른 것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봐도 무척이나 파격적인 성장이다.

     

   덕분에 세계를 술렁이고 있다.

     

   17살의 최연소 천하십강의 등장은 세계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으니까.

     

   게다가 천하십강들 중 대부분이 그가 천하십강에 오르는 것을 찬성했다는 시점에서.

   크라슈의 강함은 천하십강에도 직접 인정받은 것이다.

     

   ‘언젠가 천상사강.’

     

   혹은 그 이상에 오르겠지.

   그때가 온다면 오늘의 조언이 도움 될 날이 올 터.

     

   크라슈는 블라비가 자신에게서 훨씬 더 먼 미래를 보고 있음을 깨닫고는 미소 지었다.

     

   “새겨두겠습니다.”

     

   반신.

   크라슈는 아직 꿈꿔보지 못한 경지지만, 정말로 언젠가는 닿을지도 모를 경지.

     

   ‘아니, 어쩌면.’

     

   크라슈가 반드시 닿아야만 하는 경지.

     

   그 경지를 떠올린 채 크라슈는 먼 산을 보았다.

   아직도 갈 길이 참으로 멀다.

     

     

   * * *

     

     

   세이랑과 크라슈가 다시 만난 건 그로부터 하루 뒤였다.

     

   세이랑은 집필을 끝내자마자 하루를 죽은 듯이 잠만 잤다.

   그렇기에 다음날이 되고 나서야 세이랑을 만날 수 있던 것이다.

     

   “여기 감상문입니다.”

     

   세이랑은 크라슈가 건네준 감상문을 받았다.

     

   이는 대부분 에벨아스크가 작성한 것이다.

   크라슈도 밑에 몇 마디 적어 놓긴 했지만, 에벨아스크에 미칠 수는 없었다.

     

   세이랑은 자리에 앉아 감상문을 차근히 읽었다.

   그러고는 모든 걸 읽은 뒤 천천히 입가에 감상문을 감싸 안으며 미소를 띠었다.

     

   “놀랐네요. 이렇게 소녀의 소설을 진지하게 봐주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세이랑의 얼굴에는 진심으로 기쁨이 묻어 나왔다.

     

   세이랑은 그동안 작가라는 신분을 다른 이들에게 숨기고 있었다.

   그런 만큼 당연히 자세한 감상평을 아는 것도 쉽지 않았을 터.

     

   그런데 웬걸, 아직 내지도 않은 신작에 이 정도로 진심을 듬뿍 담아 감상평을 써줬으니.

   그녀로서는 당연히 기쁠 수밖에 없다.

     

   “제가 읽기에도 재밌어질 정도였으니. 팬인 녀석에게는 당연하겠죠.”

     

   크라슈는 그녀의 소설 작성 능력이 만들어낸 결과라며 미소 지어 답하였다.

     

   “그분께는 꼭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예, 좋아할 겁니다.”

     

   지금도 시체쥐가 주머니에서 엉덩이를 씰룩거리고 있다.

   진성 독자다운 모습이다.

     

   크라슈가 그만 자리를 뜨기 위해 일어나자 세이랑이 입을 열었다.

     

   “세이블을 받아 간 성과는 이루셨나요.”

     

   그러고 보니 이에 관해 아직 말해 준 게 없었나.

   크라슈는 세이랑의 말을 듣고, 호기로운 미소를 그렸다.

     

   “성과를 이루다 못해 크게 얻었죠.”

     

   인내심 좋은 크라슈조차 이 힘을 사용할 생각에 손이 근질거릴 지경이다.

   당연히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성과였다.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네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인가 수정구가 하나 쥐어져 있었다.

     

   “크라슈 님, 그림자를 쫓고 계시죠.”

     

   크라슈가 멈칫하였다.

   그림자가 가리키는 것은 조디악 클로리아가 분명했다.

     

   설마하니 점성술로 알아냈나.

     

   “크라슈 님에 관한 점은 볼 수 없어도 주위 사람은 어떻게든 보이거든요.”

     

   그녀는 나름 요령을 알았다며 우쭐거리듯 가슴을 폈다.

   물론 크라슈는 여전히 세이랑이 점성술로 자신을 못 본다는 걸 온전히 믿지 못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세이랑이 구슬을 서서히 매만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그녀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크라슈 님, 그림자는 토끼와 함께 있는 거 같아요.”

     

   토끼.

   그 말을 들은 순간 크라슈가 연상 되는 건 하나였다.

     

   세계 침식자, 월묘.

   과거, 밤의 신의 힘을 탐했던 녀석이다.

     

   ‘월묘가 익시온과 손잡았나?’

     

   썩을, 이놈의 세계 침식자들은 가만 있는 걸 모른다.

     

   [ 흐음, 과연 세피라의 공주다운 점성술이구나. ]

     

   크림슨가든이 탐나는 점성술이라는 듯 반응했다.

     

   “세이랑 님, 토끼가 혹시 익시온과 연관된 인물입니까?”

     

   크라슈가 서둘러 질문하자 그녀는 구슬을 다시금 매만졌다.

   그러자 그녀의 손길을 따라 별가루가 흘러나왔다.

     

   주위를 환하게 비친 별가루가 지나간 후 세이랑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달라요. 익시온과는 연관이 없는 인물이에요.”

     

   이번에는 크라슈가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토끼가 익시온과 연관이 없다고?

     

   ‘월묘가 익시온과 손잡은 건 아닌 건가? 그렇다면 독단 행동?’

     

   점성술은 두루뭉술하게 알 수 있을 뿐, 모든 걸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는 일종에 미래를 보는 것도 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세이랑도 더 이상에 자세한 답변을 해줄 수는 없는 것 같았다.

     

   “죄송해요. 여기까지네요.”

     

   그녀는 점성술이 꺼트리며 숨을 가볍게 골랐다.

     

   “죄송할 것 없죠. 도움 됐습니다.”

     

   뭔지는 몰라도 조디악이 익시온 외의 다른 무리에게 쫓기고 있는 것 같았다.

   이는 조디악을 직접 찾아가 만나면 되겠지.

     

   “그림자가 있는 위치는 여기에요.”

     

   세이랑은 눈치 빠르게 크라슈에게 위치가 적힌 종이를 건네주었다.

     

   크림슨가든과 에벨아스크가 발을 벗고 나서도 아직 찾지 못했던 조디악을 한 번에 찾아줬다.

   이것만으로 그녀는 큰 도움이 됐다.

     

   “감사합니다. 세이랑 님 덕분에 금방 찾아갈 수 있겠군요.”

     

   크라슈는 종이를 잘 챙겨둔 채 고개 숙였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조디악이 위험한 마당.

   언제까지 시간을 여기서 보낼 수는 없다.

     

   그러니 크라슈는 세이랑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바로 떠났다.

     

   세이블을 통해 창제무신도 어느 정도 갈피가 잡혔다.

   이제는 정말로 익시온과 맞부딪칠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조디악 일을 끝내고 검존을 만나러 간다.’

     

   크라슈는 굳은 결심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세계를 구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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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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