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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5

    <345 – 날로 먹는 행정학부 강의>

     

    디스트로이어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곱씹으면서 이슈타르의 머릿속에는 다른 이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럴 리가 없잖아! 용사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은걸. 지역이벤트로 출몰하는 지역보스도 열심히 죽이러 다니고 마왕도 죽이고 황제도 죽여야 하고!

    -당신은 용사를 뭐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무인도 경매 6일차.

    여섯 번째 상품으로 <용사파티의 후견세력>이 올라오기 직전에 나누었던 짧은 대화에서 오크노디는 아주 섬뜩한 미래를 입에 담았다.

    용사인 자신이 제국의 황제를 죽여야 한다는 감히 상상조차 해본 적 없던 미래를.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했다.

    황제와 제국은 용사의 후견세력.

    당장은 아니라도 제국에서 공을 세울수록 가장 큰 지원을 하게 될 잠재적인 후견세력이다.

    실제로도 용사가 아카데미에 입학하기까지 황제가 붙여준 사무관과 기사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런 황제를 자신이 왜 적대해야 한단 말인가.

     

    디스트로이어의 이야기를 들은 지금.

    그 굳건했던 신뢰가 깨졌다.

     

    “황제가 지난날의 참상을 설계한 장본인…?”

    “그럴 필요조차도 없을 것이다. 제국의 군문을 찾는 병사는 많고 참모진이 된 책사들도 적지 않으니. 단지 하나, 수도에서 일어나는 일에 황제가 윤허하지 않은 일은 없을 뿐이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제국의 황제는 역대 용사들의 오랜 우방일진대…!”

     

    디스트로이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는 용사의 우군이지.”

    “그럼 어째서 혁명가의 누명 따위를!”

    “그래서 우군을 위한 제물로 써먹지 않았는가.”

    “…!”

    “골치 아픈 난민을 ‘유용하게 소모’하고 불순불자들을 엮어 정리하는 일련의 과정에 용사를 위한 공적을 제공한다. 황제와 용사만큼은 이 판 위에서 절대로 손해를 보지 않으니, 이 또한 우군으로서의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건, 그런 짓이, 어떻게…!”

    “용납될 수 있느냐고?”

     

    미숙한 용사의 끝마치지도 못한 말을 제 속의 말을 꺼내듯이 간단히 이어붙인 디스트로이어.

    때마침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처럼 그의 입가에 싸늘한 냉소가 지어졌다.

     

    “황제는 용사의 우군이며 백성들의 어버이다. 하지만 모든 어버이가 자식들에게 훌륭한 어버이는 아니지. 언젠가는 용사에게도 그럴지도 모르고. 니알라토텝이 벌인 짓은 용사의 적이 될지도 모를 황제에게 새로운 골칫거리를 안겨주고 시간을 번 것에 가깝다.”

    “…”

    “적어도 진상을 막 깨달았던 그 무렵의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럼 지금은, 지금의 선배님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전대용사에 대해서, 그리고 황제에 대해서.”

    “맞춰봐라. 2학기가 끝나는 날에 내놓을 너희의 답이 2학기 기말고사의 답이 될 것이다.”

     

    강의는 끝났지만 이슈타르와 헤스티아는 쉽사리 걸음을 떼지 못했다.

     

    “앗, 빨간점박이나비다!”

     

    오직 배낭에서 잠자리채를 꺼내 나비의 뒤를 쫓는 오크노디만이 해맑게 달려 나갈 뿐이었다.

    자신이 무엇의 뒤를 쫓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채집을 하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알고 즐기는 것처럼.

     

     

    * * *

     

     

    삼대거악은 누구의 기준으로 정해지는가.

    바로 제국의 기준이다.

     

    ‘제국에게 악으로 분류된다면 곧 세상에게도 악이라 불리지만 제국의 악이 진정 세계의 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1학년에게는 지나치게 심오한 강의군.’

     

    학생들과 디스트로이어 교수가 모두 떠난 뒤, 브론즈 교수는 느지막이 걸음을 떼었다.

    맹수의 앞에서 숨을 참다가 겨우 숨을 쉬는 사람처럼 그 행동에는 조심성이 배여 있었다.

     

    ‘그렇기에 이 강의, 본인에게는 확신을 주었다.’

     

    디스트로이어의 강의는 풋내기용사와 재단의 수석장학생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그들의 진정한 적이란 삼대거악이 아닌 제국의 황제가 될 수도 있다고.

    마치 삼대거악의 일원이자 재단의 총수, 재단이사장을 비호하는 것처럼 초점을 돌린다.

     

    ‘디스트로이어. 그래서 당신 정도 되는 남자가 재단의 편이 된 건가?’

     

    드래곤교장이라면 분명 ‘재미있다’고 말하겠지.

    도움을 요청해봤자 달라질 건 없다.

    요청한다 한들 무엇을 바랄 것인가.

    디스트로이어의 본색을 알아차리고 배척하라고?

    재단이 황제를 견제하는 것을 막아 달라고?

    그도 아니면 황제를 시해하라고 부탁이라도 할까?

    전부 헛된 바람이다.

    한편으로 오크노디를 보고 깨달았다.

    역시 저 아이는 전부 알고 있었다.

    사건의 전말을 이사장에게 들었던 걸까.

    이사장은 대체 제국에 대해, 용사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이사장과 디스트로이어는 무슨 관계일까.

     

    ‘내게 이렇게까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다니, 당신 정말 나쁜 남자군.’

     

    나쁜 어른에게는 나쁜 아이가 꼬이듯이 나쁜 남자에게도 나쁜 여자가 꼬이지.

    브론즈 교수는 결심했다.

    오랜만에 나쁜 여자가 되어봐야겠다고.

     

     

    * * *

     

     

    최근, 모브는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오크노디의 교육을 받는 빈도가 점점 줄어들었다.

    관심이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심심하면 창문 위에 거꾸로 매달려서 어깨를 톡톡 두드리거나 수풀 속에서 왁 하고 튀어나오거나 멀쩡한 땅이 푹 꺼지더니 구덩이 위에서 고개를 들이미는 오크노디를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팔자에도 없는 행정학부 강의에 날 같이 데려온 거냐?”

    “남의 일처럼 태연한 척 굴기는. 자쿠 너도 오크노디가 신경 쓰이기는 마찬가지잖아.”

    “…그렇기는 하지. 그 녀석에게는 여러모로 신세를 졌으니까.”

     

    장난을 잘 치던 오크노디가 막상 장난을 치지 않고 오고가며 드문드문 수련의 진도만 묻게 된 것이 그리도 섭섭한 걸까.

    심지에 불이라도 붙은 양초처럼 더욱 이 악물고 수련하는 라이벌의 모습을 바보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쿠는 한편으로는 수긍이 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오크노디의 관심을 받는 일은 쉽지 않지. 빚을 갚는 것은 더욱 쉽지 않고.’

     

    크루즈선에 탑승했던 사람들은 모두 목숨을 빚졌다.

    배에서 얻은 이득과 이사장의 저택에서 얻은 이득은 또 어찌나 컸던가.

    품에 숨겨둔 +5강 압축그물총만 해도 방아쇠만 당기면 그물망에 적 하나를 가두어 허우적거리게 만들고 밖에서 창칼로 찔러 사람 하나를 담가버릴 수 있는 엄청난 무기다.

    오크노디의 ‘친구’로 초대에 응한 이들은 이런 보물을 최소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반대로 어설픈 보물 따위는 오크노디의 빚을 갚는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다 주웠다.”

    “아앗, 데굴데굴달팽이는 이미 수집했는데. 그래도 잘 받을게요. 생산학부에 가서 다른 몬스터랑 교환해야지! 히히.”

    “…….”

     

    길에서 우연히 찾아볼 수 있는 레어수집품으로는 성도 차지 않을 지경!

     

    ━━━

    목요일 5, 6교시

    스텐드 밀 교수의 행정학부 교양강의

    <기능독점론>

    ━━━

     

    그러니 과중한 강의에 치여 고생하는 오크노디를 강의에서 돕는다.

    지젤과 아카디아가 내놓은 계획을 돕고자 두 사람이 고른 강의가 바로 이 <기능독점론>이었다.

     

    -적당히 해둬. 오크노디는 우리 생각처럼 그렇게 도움이 필요한 상태는 아닐지도 몰라.

     

    모브는 강의실에 들어오기 전, 저녁식사 시간에 마주쳤던 헤스티아가 했던 말도 신경 쓰였다.

    물론 모브는 그녀의 말을 흘려들었다.

    내가 먼저 제자가 되었는데.

    나만 오크노디한테 가르침을 받았는데.

    그에게서 오크노디를 빼앗아간 다른 학생들 중에 한 명이 헤스티아였다.

     

    “오크노디의 곁에서 날 떼어놓으려고 저딴 소리를 하는 거겠지.”

    “…멍청한 녀석. 사내자식이 그렇게 집착만 하면 좋은 꼴은 못 볼 거다. 너에게는 제대로 된 명분도 있는데 그딴 소리만 입에 담고 다니지 마.”

    “명분이라니?”

     

    자쿠는 한심하다는 감정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제 라이벌의 딱한 꼴을 보는 것은 더 싫다는 복잡한 마음을 담아 조언을 해주었다.

     

    “행정학부는 다른 학부와는 수강생들이 다르다. 기사학부는 무력을, 마법학부는 마법을, 생산학부는 생산직 기능을, 모험학부는 그밖의 다양한 기능을 배우지. 하지만 행정학부만큼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그럼 오크노디는 행정학부 강의를 굳이 왜 찾아와서 듣는 건데?”

    “높으신 분들의 자제들이 때가 되면 내정된 자리에 앉는 것. 그것이 관직의 실체다. 고된 다른 학부에서 구르느니 맘 편히 제 몫의 자산을 누리겠다는 녀석들이 행정학부 수강생들이다.”

     

    요컨대 저런 것처럼.

    자쿠가 가리킨 곳에는 수많은 여학생들의 동경어린 시선을 받는 미남자가 있었다.

    그 얼굴을 본 모브가 시큰둥하게 물었다.

     

    “저게 누군데?”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아닌 척 해도 귀를 열어두고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남학생도 미간을 찌푸렸다.

    자쿠가 대답하기도 전에 남학생의 곁에 자리했던 추종자가 대신 언성을 높였다.

     

    “트로이 왕국의 정명한 왕위계승자 헥토르 님에게 무례를 범하다니, 제정신이냐? 왕자님을 무시해도 정도가 있지!”

    “그만. 데이포보스. 소국의 왕자를 몰라보았다고 윽박질러봤자 이 넓은 아카데미에서는 면목이 없는 행동이다. 하물며 그 다크프린세스의 흑기사라면 소국의 왕자 따위, 더욱 안중에도 없겠지.”

     

    말리는 행세를 취하지만 네가 약소국의 왕자라고 깔보려는 의도를 안다는 듯이 말하는 헥토르의 뉘앙스에 다른 학생들도 표정이 곱지 못해졌다.

    험난한 다른 학부에 들어가지 않아도 신분 하나로 편하게 행정학부에서 꿀 빤다는 인식은 행정학부 학생들도 모두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들의 약점을 놀리듯이 들리는 흑기사 모브의 행동이 그들에게는 아니꼽게 보였다.

     

    “…자쿠. 어쩌지?”

    “아무 짓도 하지 마라. 네가 말이나 더듬어가며 반박해봤자 제대로 된 화술을 배운 왕가의 자식에게 이겨먹을 가능성은 없으니까.”

    “맞아요! 말싸움은 잘하는 사람이나 하는 거죠.”

    “오크노디!”

    “저 때문에 굳이 강의를 하나 더 들었다니, 다들 왜 이렇게 기특한 짓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히히.”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등장한 작은 키의 소녀 오크노디가 이토록 든든할 수가 없었다.

    화색을 보이는 모브와 달리,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는 벌써부터 표정이 굳었다.

     

    “왕자님은 방학 동안 뭐 하셨어요?”

    “세력을 늘리고 단련을 했다. 방학동안 단체로 던전을 하나 깨기도 했지.”

    “고작 그 수준에요? 아하.”

     

    오크노디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랭크 던전에서 소꿉놀이 하고 오셨구나!”

    “보자보자 하니까 이게 정말!”

     

    헥토르의 추종자 데이포보스가 검을 뽑아들기 무섭게 책상 사이로 날아든 가시가 검면을 땅 두들겨서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시끄러♡ 촌동네 왕자의 충복 주제에 제국황녀의 쉬는 시간을 방해하지 마♡”

    “허억. 제, 제국 2황녀 매스각키…!”

     

    매스각키는 허접에게는 관심도 없다며 눈길조차 주지 않고는 오크노디를 향해 도발적인 시선을 보냈다.

     

    “귀족들이나 듣는 강의에는 무슨 바람이 들어서 왔어~?”

    “허접황녀야말로 마법학부 수강생이면서 여긴 왜 왔어요?”

    “교양은 아무리 쌓아도 부족하니까♡”

    “저도 마찬가지예요!”

     

    1학년 강자들 사이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한 두 학생의 신경전에 헥토르는 뱀 앞에 선 쥐 꼴이 되었다.

    간편한 학점벌이용 행정학부 교양강의라 생각하고 도전한 강의에 거물급 1학년이 둘이나 맞붙다니.

    이 강의, 어쩌면 행정학부 학생들은 성적에 큰 관심이 없으니 학점과 포인트를 쌓기 유리하다는 생각과 다르게 굉장히 어려워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듣는 강의가 너무 많아서 스토리가 강의실에서만 진행되는 모범생 오크노디…

    강의 한 바퀴 로테이션 돌리고 나면 진행속도가 빨라집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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