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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5

       아카샤는 제 귀를 의심했다.

       

       ‘내가 지금 잘못 들었나?’

       

       분명히, ‘블루베리 치즈’라는 단어가 들렸는데.

       

       심지어 목소리가 아카샤와 판박이였다. 

       

       이 때문에 로테도 놀랐다.

       

       아카샤가 눈을 멀뚱거리고 있던 사이, 로테는 뒤를 돌아보며 아카샤의 입 모양을 확인했다.

       

       “…너야?”

       

       도리도리.

       

       자신이 말한 게 아니라며 고개를 내젓는 아카샤.

       

       로테는 질문을 바꿨다.

       

       “방금 그 소리… 들었어?”

       “응. 너도?”

       

       역시.

       

       환청인 줄 알았건만,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음료는 커피로. 가능하면 카우레리카노로 주는데, 샷은 반만 넣어서.”

       

       다시 한번, 묘비 앞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첫 번째는 우연이지만, 두 번째부터는 필연이다. 로테와 아카샤는 서로를 붙잡으며 꺅 비명을 질렀다.

       

       “귀, 귀신인가? 아니겠지?”

       “바보야. 과학적으로 생각해. 귀신 같은 게 있을 리가……!”

       

       그때였다.

       

       스르륵.

       

       비석 뒤에 놓인 무덤 위로 어린애의 신형이 나타났다.

       

       “흐음. 여전하네.”

       

       밤하늘처럼 새까맣고 기다란 머리카락에, 달빛처럼 은은한 눈동자를 지닌 소녀였다.

       

       나이는 인간 기준으로 다섯에서 여섯 정도일까? 아무리 성장이 빨라도 여덟을 넘기지는 못할 체구였다.

       

       그런 소녀가 피식 웃으며 다리를 흔들었다.

       

       차분하지만 호기심 많은 일국의 공주처럼 고고한 분위기였다.

       

       “어, 아, 어…….”

       

       그런 소녀를 마주 본 아카샤의 언어가 토막 났다.

       

       마치 날카로운 커터칼로 기억이라는 필름을 조각낸 것처럼 사고가 돌아가질 않는다.

       

       아.

       

       그래.

       

       이건 환각이다.

       

       너무 오랫동안 잠을 못 자서 그런 거야. 그릇된 걸 보고 있는 거다. 눈앞에 있는 건 틀림없이 헛것이리라.

       

       왜냐하면.

       

       왜냐하면….

       

       “테, 테르는 죽었어.”

       

       자신의 가족은 죽었으니까. 이젠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 그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세상에 기적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여신이라는 자가 실존하긴 하지만, 아카샤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자신뿐만이 아니다. 언니도 그랬고, 로즈마리도 그렇다. 아마 금안족 태반이 그럴 것이다.

       

       ‘여신이시여’, 라고 매일 빌어도 돌아오는 건 차별과 멸시뿐이었다. 신 따위, 기적 따위. 없어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테르는, 죽었, 을, 텐데.”

       

       어째서?

       

       “하아, 카샤야. 만나자마자 반응이 격렬하네. 그래. 너는 네 언니 어릴 적 모습도 잘 알지?”

       

       금빛 눈동자가 맞닿았다. 눈에 담긴 것은 틀림없는 자신의 쌍둥이 언니였다. 그것도 어째서인지 어릴 적 모습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카샤는 그 자리에서 석고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반면에.

       

       “에테르야, 역시. 살아있었어.”

       

       로테는 넘어졌던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그쯤에서 에테르도 무덤에서 폴짝 내려왔다.

       

       “아, 아하하….”

       

       주르륵.

       

       뺨을 타고 미끄러지는 눈물이 한 줄기, 두 줄기. 마른하늘에 비 내리듯 고적하게 떨어진다.

       

       “내가 맞았어.”

       

       로테는 킥킥 웃었다. 울면서 웃었다. 눈물 때문에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

       

       “내가 맞았다니까….”

       

       남들은 다 정신병이라고 생각했겠지.

       

       에테르의 무덤 앞에서, 몇 번이고 혼잣말하는 자신을 보며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냐고 생각했을 테지.

       

       사실은 물의 정령왕의 말을 굳게 믿었던 것뿐인데.

       

       제 친한 친구가 죽지 않았다고.

       

       아니, 설령 죽었다고 할지라도. 여신님께서 굽어살피시리라는 신앙을 가지고 기다렸다.

       

       각오했던 일이었지만 심적으로 힘들었다.

       

       믿음이 몇 번이나 부정당했는가. 포기하라는 말을 몇 번이고 들었다. 그만 보내달라는 애한 섞인 소리도 있어서.

       

       하지만, 결국 자신이 옳았다.

       

       참된 신앙심을 가졌고, 오늘에 이르러서야 그 결실을 보았다. 이제 이렇게 된 이상 그 무엇도 상관없는 것이다.

       

       “로테야.”

       

       아카샤보다 약간 높은 목소리. 그럼에도 지난 몇 년간 꾸준히 들어왔던 친구의 목소리가 공기를 타고 진동했다.

       

       로테는 그 미묘한 차이를 정확히 짚어냈다.

       

       꿈이 아니다.

       

       현실이다.

       

       그리 속삭이는 듯하다.

       

       “네 눈앞에 있는 이 꼬맹이가 누구인지 알겠어?”

       “당연, 하지.”

       

       로테는 꼬마 에테르를 번쩍 들어올렸다. 덧없이 가벼웠다. 에테르의 입에서 허어, 하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러면 너는, 네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겠어…?”

       “당연하지.”

       

       로테의 눈앞에는 에테르가 있다.

       

       에테르의 눈앞에는 로테가 있다.

       

       이것이 로테의 환각일지, 에테르가 꾸는 꿈일지에 대해선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

       

       아카샤라는 제3자가 두 소녀의 재회를 관찰하고 있었으니까.

       

       아카샤가 있었기에, 로테는 오히려 안심할 수 있었다. 동시에, 에테르도 모든 상황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웃음 하나에 함축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내 베스트 프렌드.”

       “내 베스트 프렌드.”

       

       모든 안개가 걷히는 순간이었다.

       

       

       **

       

       

       물리학에서 ‘에테르’란, 빛의 매질을 뜻한다.

       

       세상에 빛의 매질이 없다는 건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빛의 실체인 전자기파는 전달 매개체를 갖지 않는다.

       

       그러나 로테의 우주에는 있다. 빛의 매질이.

       

       그 매질은 한때 사라지기도 했지만, 결국 소녀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마치 주기적으로 지구를 떠났다가 다시 찾아오는 핼리 혜성처럼.

       

       오랜만에 돌아온 에테르 혜성은 달가운 정보를 싣고 있었다.

       

       “……그랬구나.”

       

       에테르의 이야기를 들은 로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이 된 거야?”

       “그런가 봐.”

       

       작디작은 손을 꼼지락거리는 에테르. 그녀가 손목을 까딱거릴 때마다 따끔따끔한 번갯불이 튀었다.

       

       “덕분에 여신의 전속 따까리… 가 아니라.”

       

       에테르는 말하다 말고 눈을 광어처럼 흘겼다. 그녀의 곁에는 쓰읍, 하고 입술을 달싹이는 전계정령이 있었다.

       

       에테르의 언니이자 정령 선배인 앨리스였다.

       

       “말을 순화해서 하세요, 동생. 제발. 부탁이니까.”

       “…아, 아무튼. 여신님의 선의로 이렇게 되었다 이거지.”

       

       그제야 앨리스는 만족스러운 듯 주억거렸다.

       

       “우리 동생은 아직 어린 정령이에요. 세계수 근처를 벗어나면 안 돼요.”

       

       앨리스는 로테와 아카샤에게 이와 같은 주의사항을 몇 가지 알려주었다. 특히 아카샤는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수가 정령이 되다니….”

       

       일반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중세 시대 성녀라고 불렸던 여인조차도 정령으로 둔갑하지 못했는데, 이 정도면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정령이 되는 기준이 따로 있나요?”

       

       아카샤가 묻자 앨리스는 입술에 검지를 가져갔다.

       

       “쉿. 그건 기밀이랍니다.”

       

       정령들 외에는 알 수 없는 비밀. 만약에 알려진다면 세상에 큰 파란을 몰고 올 천기누설.

       

       공교롭게도 로테는 그 천기누설의 내용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순결할 것. 온고지신하며 올바르게 살아갈 것. 대륙에 큰 파장을 몰고 올 과업을 세울 것.’

       

       왜 시큐엘이 그 뒤로 모습을 보이지 않는지 알겠다.

       

       자신의 남은 생을 대가로 로테에게 정령이 되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다.

       

       에테르는 한때 마수였지만 세 가지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일단 처녀… 인 것 같기도 하고. 늘 자기주장이 확고했으며, 마법에 관한 일이라면 늘 새로운 걸 익히고자 무던히 노력했다.

       

       심지어 마왕을 쓰러뜨리는 업적까지 이루었으니.

       

       ‘중세 시대 성녀라고는 해도 그만한 대업은 이루지 못했겠지. 아니, 오히려 수인이나 금안족 차별에 앞장섰다던 사람도 있었으니까.’

       

       여신은 종족 차별을 증오하는 것처럼 보였다.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약속은 지켰어.”

       

       에테르가 티케이크를 냠냠 베어 물며 고개를 까딱였다.

       

       “약속…?”

       “마왕과의 전쟁이 끝나면 로테랑 이것저것 하면서 안락한 삶을 누리기로 했거든. 그렇지?”

       

       로테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라도 빨리 에테르와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

       

       겸사겸사 그 경험을 바탕으로 큰 업적을 세우고 싶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서… 성령이 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요?”

       “으음. 아마 2년 정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살리에르 양이 딱 졸업할 때쯤이면 성령이 되겠네요. 그때가 되면 동생은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좋아요.”

       

       기다릴 수야 있다.

       

       하지만 아쉬웠다.

       

       “아, 이렇게나 귀여운데!”

       

       로테는 참지 못하고 꼬마 정령 에테르의 머리를 마구잡이로 쓰다듬었다. 에테르는 애새끼 취급하지 말라고 발악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앨리스에게 입술을 맞고 얌전해진 건 덤이다.

       

       “다른 사람들한테도 보여주고 싶어요. 에테르가 살아있다는 걸요.”

       

       “그건….”

       

       앨리스는 에테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아직 작고 유약한 동생. 지금으로선 자신을 지킬 힘도 거의 없다.

       

       혹시라도 악의를 지닌 이들을 만나 일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어떡할 건가?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 되어버린다.

       

       ‘유일한 혈족입니다. 두 번이나 잃을 수는 없죠.’

       

       그런 앨리스의 마음을 에테르는 아는지 모르는지, 커피만 쭉쭉 빨아대며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기에 바빴다.

       

       “아. 그러고 보니.”

       

       에테르가 입을 열었다.

       

       “너희 중 한 명이랑 계약하면 이런 몸이라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거 아닌가?”

       

       그 말 한마디가 시발점이었다.

       

       로테와 아카샤가 서로를 흘겨보며 얼굴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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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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