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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6

    시간이 지나, 점심시간.

     

    급식실을 향해 우르르 몰려가는 학생들 틈에서, 서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마침내 약속된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점심시간, 옥상에서 예정된 싸움이 말이다.

     

    서드는 슬쩍, 자신의 상대가 앉아있던 자리를 슬쩍 바라보았다.

    어째서인지, 아침부터 보이질 않았다.

     

    ‘흐음, 그도 나름대로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인가.’

     

    서드에게 그건 이해하지 못 할만한 행동은 아니었다.

    피차 싸움에 앞서 최선의 행동을 취한 것만은 동일하지 않나.

     

    과연 그가 무슨 수를 취할 지는 모르지만, 자신 역시 최대한 만전을 기하기 위해 힘을 아꼈다.

     

    때문에 긴장된다는 느낌은 없었다.

    아니, 도리어 약간정도는 들뜨는 기분이었다.

    과연 자신의 살기를 간단히 받아넘길 수 있는 수단을 가진 인물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에게 임해 올 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딜런트의 사망과 그 후처리로 인해 반 강제적으로 뒷세계에서 벗어난 이후, 이런 본격적인 느낌의 싸움은 없었다.

    물론 호전적인 성격의 카를로스와 다니다 보면 아카데미 밖에서 종종 다툼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도 기껏해야 십대 청소년들의 주먹다짐 정도가 아닌가.

     

    과거 싸움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던 때의 기억은 이제는 거의 희미해지고 말았지만, 그 때의 감각 만큼은 여전히 남아 서드를 답답하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홀로 전투를 벌이던 지긋지긋하던 나날, 그 속에 있었던 때에는 그토록 분노할 수 밖에 없었으나, 평화에 찌들어버린 지금은 또 그 때의 공기가 그리웠다.

     

    어쩌면 이것이 사람 본연이 지닌 모순일지도 모르겠다.

     

    서드가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키자, 그를 따라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몇몇의 학생들이 보였다.

    아마, 점심시간에 옥상에서 있을 싸움을 구경하고 싶은 학생들로 보인다.

     

    ‘설마 구경꾼인가……. 귀찮군.’

     

    구경꾼은 여러모로 바람직하지 않았다.

     

    자칫하면 구경하는 것 조차도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싸움을 하다 보면 구경꾼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지만 곤란한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전투방식은 전형적인 뒷골목 스타일, 그러니까 자신에게는 ‘뒤’가 없다.

    한 번, 적어도 두 번의 합 안에 끝이 나지 않으면 도리어 자신이 패배할 수 밖에 없는, 그러니까 자신을 처음 만나는 상대에게는 극도로 효율적이지만 그것이 빗나가게 되면 파훼법이 명확한 종류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약점은 본래 뒷골목에서는 그런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야, 목격자가 전부 죽어서 사라지니 말이다.

     

    하지만 구경꾼이 있다면 말이 달라지지 않는가?

    아카데미에서 옛날처럼 목격자를 전부 죽여 입을 막을 수도 없고 말이다.

     

    뭐어, 과연 자신이 그런 수단까지 쓰겠나 싶기는 하지만, 그 잭이라는 남자가 어떤 수를 숨기고 있는 지 모르는 이상은 숨겨진 패가 있다고 나쁠 건 없다.

     

    서드는 그들을 향해 눈길을 보냈다.

     

    “따라오지 마라.”

    “……!”

     

    그러자 서드의 눈을 본 학생들은 일어나려던 자세 그대로 앉아버린다.

    이걸 보면 그 잭이라는 남자가 이 살기를 가볍게 넘긴 것이 확실해진다.

    다른 아이들에게 살기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으니까.

     

    그럼 대체 어떻게 그는 이 살기를 가볍게 흘려보낼 수 있었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그런 고민을 하며 서드는 교실 뒷문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가, 가지마.”

     

    서드의 길을 막은 조그만 여자아이, 유미르.

    그러나 그녀의 키는 서드의 눈높이에는 너무 작았고, 목소리또한 극도로 긴장한 상태라 너무 작았기 때문에 상념에 잠긴 서드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유미르를 서드가 자신을 못본 체 하고 있다고 생각해 다리를 붙잡아 막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가, 가지 마! 굳이 네가 싸울 필요는 없잖아?”

     

    원체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유미르는 아주 큰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유미르는 진심으로 서드가 옥상으로 가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사실, 아까부터 유미르는 꽤 초조한 상태였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일단 그 싸움부터가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다가, 싸움을 해서 서드가 이기든 지든 자신은 사실 얻을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드가 분명히 한 번 자신을 감싸주기는 했지만, 그 호의가 언제까지고 지속될 거라는 보장은 전혀 없었다.

    처음 자신을 감싸 준 한 순간의 변덕처럼, 후에 귀찮아진 서드가 또 한번 변덕을 일으키지 않으리라는 법이 있나?

    게다가 서드가 항상 자신에게 붙어 다니면서 잭이 자신을 괴롭히지 못하게 감시해 줄 것도 아니지 않은가.

    아마 서드의 눈이 닿지 않는 다른 곳에서 자신을 몰래 괴롭힐 것이 뻔하다.

     

    그렇다고 물론 서드가 싸움을 해서 진다면 당연히 자신에게는 최악이다.

    서드라는 최소한의 방패조차 사라진 자신에게 어떤 영향이 갈진, 안 봐도 뻔한 이야기다.

     

    결과적으로 그 두 가지 경우의 수 모두, 잭이 자신을 괴롭히는 강도는 강해질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 생각을 담아, 유미르는 간신히, 간신히 말을 이었다.

     

    “나, 난 괜찮아. 그냥 네가 한번 나서 준 것 만으로도 충분히 기쁘니까…….”

     

    그렇게 말하는 유미르는 울먹이고 있었다.

    어떻게 하든 안 좋은 상황 속에서,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 한심스러워서.

    그리고 한 순간이라도 자신을 감싸 준 서드에게 너무나 고맙고, 미안해서.

     

    하지만 서드는 너무도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약속을 했으니까.”

    “……어?”

    “약속을 했으니까 지킨다. 그냥 그 뿐이야.”

     

    서드의 말을 들은 유미르는 순간 벙찌고 말았다.

    약속? 무슨 약속?

    설마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으로부터 지켜주겠다고 했던 바로 그 약속 말인가?

    아니, 세상에 그런 달콤한 말이 있을리가…….

     

    “그러니까, 그까짓 걸로 울 필요는 없다. 힘 낭비야.”

     

    자신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며 그렇게 말하는 서드의 표정은 그 누구보다 결연했다.

    그에 유미르는 서드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응, 그러면……. 꼭 이겨.”

     

    어쩌면 서드는, 자신의 생각보다 더 멋진 소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여기서 서드가 말한 약속은 ‘점심시간에 옥상에 가겠다’라는 단순한 약속이었지만 말이다.

     

     

    ——–

     

    “좋아, 그럼 네가 내기에서 이기면 레시피의 값을 1.5배로 올려서 쳐 달라는 거지. 받아들이겠어.”

    “그게 정말인가?”

    “그래, 원한다면 계약서도 써줄 수 있어.”

     

    자신의 생각보다 순순히 내기에 응하는 케일라의 반응에 루크는 약간 의아한 표정을 띄었다.

    사실 1.5배는 그냥 지른 말이고, 케일라의 내기 조건을 보며 서서히 맞춰갈 생각이었는데, 첫발에 그대로 고개를 끄덕이다니.

    대체 무슨 조건을 걸 생각이길래 케일라는 이 조건을 흔쾌히 받아들였단 말인가?

     

    “설마, 그대는 내게 레시피 값의 할인을 요구하지는 않겠지?”

     

    물론 자신이 질 거라는 생각은 요만큼도 안 들고 있지만, 그렇다고 굳이 리스크를 짊어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렇게 되면 그냥 단순한 돈 내기가 아닌가?

    뭐어, 먼저 돈을 요구한 입장에서 할 얘기는 아니긴 하다만, 그래도 레시피 값은 여전히 사야 할 것들이 많은 루크에게 온전히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100% 이길 수 있으리라 장담하기에도 뭐한 것이, 현재 루크의 ‘불운’이라면 자칫하면 정말 내기에서 져버릴 가능성도 있었다.

    확신이 없는 한, 리스크를 피할 수 있다면 당연히 피하는 게 옳다.

     

    “에이, 설마. 내가 후배 레시피 값 적게 받아서 뭐하게? 혹시 후배 괴롭히냐고 엄마한테 혼나기나 할걸.”

    “그런가?”

     

    루크는 턱을 문지르며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돈이 아니라면, 대체 케일라가 자신에게 바랄 것이 무엇일까?

    케일라는 그런 루크를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며 입을 열었다.

     

    “너무 걱정하진 마, 아무리 그래도 10살 짜리한테 큰 걸 바라진 않을 거야.”

    “후우, 그건 참으로 반가운 얘기로구나.”

     

    그 말에 루크는 살짝 불안감을 거둬내며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것을 보면 ‘10살’이라는 것이 여러모로 많은 방패가 되어준다.

    난생 처음으로 남성에게 ‘작업’을 당했을 때에도 그 말로 간단하게 거절할 수 있었고, 익숙하지 않아 어쩌다 민폐를 끼쳐도 적당히 귀엽게 넘어가 주기도 하고 말이다.

    지금도 루크는 본의아니게 그 10살이라는 신분을 아주 알뜰하게 써먹고 있는 셈이었다.

     

    “헌데, 그럼 그대에게는 너무 불리한 내기 아닌가? 이러면 내가 좀 미안해지는데.”

     

    루크는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케일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케일라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미안해할 거 없어, 주기로 한 돈에서 더 넣어주는 건 보너스지만, 떼어먹는 건 횡령이야. 아무리 내기여도 그건 당연한 거니까.”

     

    케일라의 말에 루크는 살짝 충격을 받았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 보았다.

    그녀는 보기와는 다르게 굉장히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고용주였다.

    “대신, 내가 내기에서 이기면 네 귀랑 꼬리를 좀 핥아봐도 돼? 요즘 좀 쌓여 있어서…….”

     

    취소한다.

    케일라는 머리가 이상했다.

     

    “뭐어어어?! 이, 이걸 대체 왜 핥느냐!”

     

    굉장히 변태적인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이 화들짝 놀라서 꼬리를 안고 몸을 피하는 루크.

     

    만지는 것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실제로 내어줄 수도 있다.

    자신도 가끔은 빗질을 하다가 감촉이 좋아 무의식적으로 쓰다듬고는 하는 데다가, 실제로 헬레나에게는 종종 꼬리를 내어 주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핥는 건 전혀 다른 영역이 아닌가!

     

    루크는 마치 범죄자를 보는 듯이 케일라를 바라보며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케일라는 오히려 그런 루크가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뭐야, 너 집에서 부모님이랑 그루밍 같은 거 안해? 10살이면 아직 한창 할 때 아닌가?”

    “뭐어? 그, 그루밍? 그루밍이라고?”

     

    그루밍, 영장류나 포유류 등의 털이 난 짐승들이 자신의 혀, 또는 손을 사용해 털을 고르는 행위를 일컫는 단어다.

     

    그 본능적인 특성은 당연히 수인인 케일라에게도 남아있었는데, 온 가족이 순수 고양이계 수인인 케일라의 가정에서 그루밍은 또한 너무나 당연한 행위였다.

     

    최근 케일라는 평소 친밀하게 그루밍을 하던 9살짜리 남동생이 이제는 부끄럽다는 이유로, 또 다른 집에서는 누나랑 그루밍 안 한다는 이유로 케일라의 손길을 거부하는 탓에 상당히 쓸쓸해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같은 고양이 수인이면서 귀여운 루크를 보고서 ‘핥아주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내막을 알 리 없는 루크에게는 그저 황당하고 남사스러운 이야기에 불과했던 것.

     

    루크가 당황하며 되묻자, 수인 부원들이 케일라의 말을 거든다.

     

    “그런데 그건 부장의 엄마가 고양이시니까 그렇죠, 루크는 아닐 수도 있잖아요? 아무래도 혼혈이니까. 그리고 10살이면 부끄러워서 안 하는 집도 많고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 그건 몰랐다.”

     

    전혀 몰랐다는 듯 깨달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케일라.

    그러니까, 케일라는 지금 그 성적인 행위는 전혀 배제된, 그저 본능적인 행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 모습에 루크는 정말 자신이 이상한 것인가 하는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확실히, 나는 수인의 문화나 가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고양이 수인들에게는 어쩌면 그것이 일상이었을지도…….’

     

    혹시나 자신이 문화적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서 실례를 범한 것이 아닌가 곰곰히 생각하고 있을 무렵, 한 부원이 루크의 곁에 다가와 귀띔했다.

     

    “루크야, 그래도 저건 부장이 이상한 거 맞아.”

     

    아무리 루크가 그루밍을 하고 싶을 정도로 귀엽다지만, 그래도 루크는 가족이 아니라 남이 아닌가.

    큰 실례다.

     

     

    결국, 케일라의 내기조건은 ‘내기에서 이긴다면 하루종일 루크를 맘대로 쓰다듬기’정도로 타협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설마 이게 그 그루밍 성범죄?(아님)

    수인계에서 그루밍이라면 목욕 같이 하는 느낌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네요.

    —-

    요즘 진지하게 당분간 연재주기를 바꿔볼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만약 주 5일 연재를 한다면 언제를 쉬는 게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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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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