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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6

        

         

       대화라는 것은 서로가 주고받아야 하는 것.

       한쪽이 굳게 마음의 문을 닫고 있다면 제대로 대화가 성립되지 않는다.

         

       서로서로 경계하고, 서로의 말을 듣지 않은 채 상대방의 허실을 꿰뚫기 위해 노려보기만 할 뿐이라면 그것을 어찌 대화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맹수가 서로의 목덜미를 물어뜯기 위해서 신경전을 하는 것이지.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칼과 총이 오가는 것만큼이나 사납고 위험한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저러한 태도가 미덕이다.

       호감을 사되 언제든 약점을 물어뜯을 준비를 하고, 허점을 찾으면 거기를 푹 찔러서 자신의 이득을 얻으려는 태도.

       훌륭하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은.

       ‘이야기’를 하는 지금은 그것이 좋은 태도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진성은 기다렸다.

         

       남자가 호기심을 가지게 되기를.

       호기심을 가지고, 문을 빼꼼 열고, 고개를 내밀어 진성을 향해 관심을 보이게 될 때를 말이다.

         

       “자네는 걷는 것을 좋아하는가?”

         

       진성은 남자가 관심을 보이자 천천히 입을 열어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은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납치하고, 꿈에 사람을 던져놓고, 정신을 투영해서 앞에 나타난 것으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 질문의 하찮음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으레 취조를 하면 가장 묻는 것이 이름과 나이, 성별을 말하라는 것이었던가.

         

       그렇다면 방금 진성이 던진 질문은, 그것보다도 하찮고 하찮은…. 일상의 잡담과도 같은 것이리라.

         

       가랑비가 아니라 바람에 머금은 습기 수준의 질문이었으며, 문간에 발 들여놓기(foot in the door)이라고 생각해도 너무 하찮은 수준의 것이었다.

         

       그래.

       너무나도 하찮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방벽을 허물어뜨리고 정신을 쏠리게 되고, 머릿속에 그 답을 떠올리게 될 정도로 말이다.

         

       “별 미친 질문을 다 듣겠군. 그런 질문을 해서 좋을 게 뭐지?”

         

       하지만 남자는 머릿속에 떠올린 답을 진성에게 말하진 않았다.

       그 답을 말한다면 진성의 뜻대로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신 질문에 질문을 회답하는 것으로, 어느 대답도 하지 않은 제3의 선택지를 택했다.

         

       하지만 진성은 그러한 남자의 대답에도 무엇이 좋은지 흐흐 웃을 뿐이었다.

         

       “이렇게 질문을 던진 것은 다른 게 아니네. 그저 예전에 내가 겪었던 일을 말해주기 위함이네.”

         

       진성은 고개를 슬쩍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치 먼 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어느 날이었던가. 나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길을 떠돌고 있었네. 폐허가 가득한 도시를 지나 생명이 넘치는 숲속으로 향하였는데, 그 숲속에는 온갖 사악한 것들과 독성을 품은 것들이 한껏 존재했었지. 하지만 세금보다 무서운 맹수는 없고, 사람보다 무서운 재앙은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그 위험한 숲속에도 사람들이 머물고 있었고, 나는 한참을 떠돌던 중 그러한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었지.”

         

       그는 담담히 말했다.

         

       “위험한 장소에 있으면 어디 한 군데가 망가져도 이상하지 않은 법. 그곳에서 마주한 사람들은 한두 군데는 나사가 빠진 것 같은 작자들이었네. 그리고 그 나사 빠진 작자들은 작은 마을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었고, 그 마을은 사람은 많지 않으나 나름대로 구색은 갖추고 있었네. 심지어는 손님도 있었지.”

         

       “….”

         

       “그 마을에 양해를 구하고 머무르니 그 이상성이 보였지. 마을에 도착한 다음 날이었던가. 갓 성인이 되었을까 싶은 청년이 마을 어귀에 있는 나무 하나를 붙잡고 울고불고 떼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무에 머리를 퉁퉁 소리를 내며 박아대기도 했고, 가지를 보드라운 인형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심조심 쓰다듬기도 했지. 게다가 날벌레를 붙잡아 땅에 피어난 꽃에다가 비비고, 그 나무의 꽃에다가 갖다 대기도 하였네. 참으로 기이한 소행이 아닌가.”

         

       “….”

         

       “그래서 나는 그 청년에게 물어보았네. 지금 무슨 일을 하는 것이냐고. 그러자 청년이 무어라 했는지 짐작할 수 있겠는가?”

         

       “내가 어떻게 알아.”

         

       남자는 빨려들 듯 진성의 말에 집중했다가, 그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자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절대로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

         

       진성은 그러한 남자의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고는 말을 이어갔다.

         

       “그 청년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네. 옛날에 꼬마일 적 이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를 먹었는데, 그 맛이 너무 훌륭해서 지금까지 잊지를 못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게 되었고, 그 사실에 괴로워 이렇게 나무에 화도 내보고, 빌기도 하고, 혹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 씨가 없기 때문일까 생각되어 벌레에 꽃가루를 묻혀서 갖다 댄 것이다. 그리 말하였네.”

         

       “….”

         

       “자아. 자네는 나의 이야기를 들었고, 이 청년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네. 그렇다면 자네는 이 청년에 대해서 어찌 생각하는가?”

         

       진성은 그렇게 질문을 던지고 남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표정에서 답을 읽어내려 하는 듯 말이다.

         

       이러한 진성의 시선을 느낀 것일까.

         

       남자는 아까처럼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대신, 퉁명스럽게 말을 던졌다.

         

       “하, 누가 들어도 멍청한 놈이라고 생각할 거다. 그쪽도 같은 생각일 것 같은데 뭘 묻는지 모르겠군.”

         

       진성은 남자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이 남자의 행동은 분명히 어리석은 것이다. 이는 우리가 나무에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고 화를 내거나 비는 것에 그 어떠한 의미가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묻겠다. 이 남자가 교육받지 못하였다면, 나무에 그러한 것을 하는 것에 아무런 의미도 없음을 모르고 있었다면, 그 어떠한 주술적인 효과도 볼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면, 수분(受粉)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면. 그렇다면 어찌 생각할 것인가?”

         

       청년은 나무에 열매를 맺으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히 어리석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고 있기에 그렇게 한 것이라면.

       그렇다면 남자를 어리석다고 한 아까와 차이가 생길 것인가?

       만약 똑같이 어리석다고 생각한다면 그 어리석음은 전의 것과 똑같은 어리석음인가?

         

       “….”

         

       남자는 진성의 질문에 순간 말문을 잃었다.

         

       “자네는 그 청년이 멍청하다고 여겼지. 그렇다면 그 청년이 멍청하다고 여긴 것은 그 청년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그렇게 말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청년이 행한 행동만을 보고 그러한 것인가? 전자라면 청년의 모든 것을 알았으니 나오는 말일 것이요, 후자라면 청년의 단편만을 보고 말한 것이로다.”

         

       “….”

         

       “그렇다면 다시 묻는다. 단편만을 보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것인가? 본질을 꿰뚫어 봐야만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판단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판단에 필요한 것이 본질이라면, 사람은 살아가며 제대로 하는 ‘판단’이 몇이나 되는가?”

         

       진성은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졌다.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을.

         

       “본질은 본질로서 가치가 있다. 그렇다면 본질 외의 것은, 본질 일부는 가치가 없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를 쪼개고 또 쪼갠다 한들 그것이 일부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일부가 한없이 쪼개져 먼지처럼 변하고, 한없이 무(無)에 가까워졌을 때도 그 가치는 여전한가?”

         

       진성의 말은 남자의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자아. 다시 돌아가겠다. 나는 그 청년의 말을 듣고, 그 청년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소용이 없다는 말도 하지 않았고, 청년을 나무라지도 아니하였으며, 청년을 비웃지도 아니하였으며, 청년의 행동을 말리지도 아니하였다. 어찌 그러했을 것 같은가?”

         

       “…흠.”

         

       그 이유는 여럿이 있을 수 있었다.

       청년이 그런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 허구한 날 들었을 것이니 나 하나의 말을 추가한다 한들 바뀌는 것이 없으리라 생각한 것일 수도 있고, 지금까지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을 보니 고집이 쇠심줄 같아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말을 하지 않아도 곧 자기 행동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여 깨닫게 될 것이니 말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며, 그냥 단순하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말을 하지 않을 이유는 많고도 많았다.

         

       진성은 혼란스러워하는 남자의 얼굴을 보고는 씩 웃었다.

         

         

         

        * * *

         

         

         

       진성은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나의 가치는 얼마나 되겠는가? 옛날에 여행할 때 나는 사람을 보았다. 그 사람은 조각 같은 몸을 가지고 있었고, 자기 몸의 가치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떠한 보석보다도 찬란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하늘의 별도 자신보다는 빛나지 않을 것이라 여겼고, 태양의 빛은 자기 몸을 다른 사람이 모두 볼 수 있도록 빛나는 것이라 여겼고, 달빛은 자기 몸을 은은하게 비춰주며 매력을 발산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는 자신을 사랑했고, 자기 몸을 사랑했고, 세상 만물이 자신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여겼다.”

         

       그 질문은 하나같이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나는 기나긴 여행에서 그 사람을 다시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남자의 모습은 옛날과 달랐다. 조각 같았던 근육은 온데간데없었고, 툭 튀어나온 뱃살과 꼬질꼬질한 몸을 가지고 있었지. 몸에는 피부병이 가득했고, 다리 한쪽을 절고 있었으며, 몸 곳곳에 흉터가 가득했다.”

         

       “….”

         

       “그때 나는 그 남자에게 물었다. 옛날 이 길을 지나갈 때 나는 자네를 보았다. 그때 당신은 자신을 찬란하게 빛이 난다고 여겼으며, 이 세상의 그 어떠한 것을 주더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역시 그리 생각하고 있는가?”

         

       “….”

         

       “그때 남자는 나에게 이리 말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이 세상의 그 어떠한 것보다도 귀한 존재이며, 그 무엇도 나와 바꿀 수 없다. 다만 찬란하게 빛을 발했던 옛날과는 다르게 그 빛을 조금 잃기는 했지만, 그것은 내 가치가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먼지와 진흙이 묻은 것뿐이다. 보석에 먼지가 내려앉았다고 해서 가치가 사라지는 게 아닌 것처럼, 내 가치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

         

       “그렇다면 묻는다. 이 남자가 한 말처럼, 옛날과 지금의 가치가 동등한가? 동등하지 않다면 어찌 동등하지 않으며, 동등하다면 어찌하여 동등한가?”

         

       진성은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계속.

       계속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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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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