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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6

    <346 – 날로 먹는 행정학부 강의2>

     

    “강의를 시작하겠다.”

     

    스텐드 밀 교수는 젊은 신진교수들이 많은 기프트 아카데미에서도 비교적 고령에 속하는 깐깐한 인상의 노교수였다.

    쌓아온 세월만큼 늘어난 후회의 골이 주름에 스며들고 이를 외면하고자 억지로 붙든 신념이 경직된 입가로 굳은 것처럼 완고한 사내.

    누구도 그를 늙었다는 이유로 무시할 수 없는 강직한 기세와 기품에 학생들은 강의에 집중했다.

     

    “현 사회는 여신들이 인류에 허락한 재능gift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검사의 재능을 지닌 자는 검과 관련된 기능이 3배 빠르게 숙련되고 농부의 재능을 지닌 자는 농작과 관련된 기능이 3배 빠르게 숙련되지.”

     

    재능.

    쌓고 싶은 기능은 뭐든지 다 쌓는 플레이어에게는 걸림돌처럼 거추장스러운, 그래도 때때로 가고자 하는 방향과 지닌 재능이 겹치면 폭발적인 상승효과를 일으키기도 하는 밉지만 고마운 녀석이다.

    하지만 한 번뿐인 삶을 사는 NPC들에게 재능이란 그 자체로 벗어날 수 없는 천형이었다.

     

    “여기에 검사가 되고 싶은 농부의 재능을 지닌 자가 있다면 세상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에게는 검사의 재능이 없다. 자신의 재능을 썩히지 마라.”

    “…”

    “누구에게나 그런 경험이 한 번쯤 있겠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다를 때. 두 개 이상의 삶의 선택지의 기로에 놓이는 경험이.”

     

    노교수는 어린 학생들의 얼굴에 떠오른 옅은 고뇌와 상상의 시간을 보증하듯이 짧은 침묵을 유지했다.

    탕.

    그들에게 주어진 짧은 사색의 시간은 교단을 내리치는 그의 손바닥에 흩어졌다.

     

    “내 이야기에 흔들렸다면 너희는 최소 한 번 가족이나 지인, 사회에서 만난 이들에게 속은 것이다.”

    “!?”

    “농부의 재능? 정말로 그런 재능을 지닌 농부는 모든 농부를 통틀어 1%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농부의 재능을 지녔다고 이야기 듣는 이들은 실제 농부의 10%를 웃돌지. 그 이유를 가장 먼저 답하는 학생에게 가산점을 주겠다.”

     

    매스각키가 번쩍 손을 들었다.

     

    “그 사람에게 기대하는 진로를 강제하기 위해 재능이라는 이름으로 장래를 포장하는 것이 아닌가요 교수님~?”

    “정답이다. 매스각키 수강생에게 가산점을 주지.”

     

    대체로 1회차 뉴비 학생들에게 질문에 답할 기회를 한 번씩은 양보하는 편인 오크노디가 한 번 만에 정답을 말한 매스각키 황녀를 얄밉다며 쳐다봤다.

    매스각키 황녀가 베에 혀를 내밀며 놀렸다. 선홍빛의 길고 얄미운 혓바닥이었다.

     

    “제국은 노동계급이 투사계급으로 오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끊임없이 주장하지. 모험은 고되고 힘들다. 몬스터는 강하고 외지인은 두렵다.”

    “검 대신 쟁기를 들기를 원한다. 모험가가 되려는 자는 모두가 다 함께 비웃는 풍조를 만든다. 사회가 정해준 길을 따르지 않으면 누구나 놀림감이 되지.”

    “그럼에도 그 길을 벗어나려는 이들이 나타나거든 입문조차 어렵도록 해마다 정해진 시기에 <교육자격이수>를 강제하고 <자격시험료>를 징수한다.”

     

    배우는 사람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에게도 쉽게 가르칠 수 없도록.

    그렇게 검술은 사람들에게서 멀어진다.

     

    “정말로 열정이 있는 강사와 학생이 아니고서야 검술을 가르치는 일도, 배우는 일도 드물어지지. 심지어 시험을 응시하고 시험료를 지불하며 많은 시간과 돈을 소모한 강사로서는 돈이 무척 많거나 자선사업을 벌이는 것이 아니고서야 수강료를 높이 측정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소비가 강제되니 배움에 돈이 뒤따르고, 가난한 자들은 어렵사리 동작 하나를 눈으로 베끼는 사이에 부유한 자들은 검술 하나를 몸으로 익힌다. 이것이 상위계급이 검사가 되기는 쉬우나 하위계급이 검사가 되기는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계급피라미드의 위에 있는 사람이 하위계급의 기술을 배우기는 쉽지만 계급피라미드의 아래에 있는 사람이 상위계급의 기술을 배우기는 어렵다.

     

    “제도화된 기술과 법령에 의해 강제되는 제약은 이렇게 한 나라에서 배출되는 검사의 수를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이것이 수많은 농민이 <혁명군>에 편입되는 시대에 혁명전사를 줄이기 위해 제국에서 취한 <기능교습소>를 탄생시킨 배경이다.”

     

    학생들은 까닭모를 숙연함을 느꼈다.

    무언가 잘못된 현실을 마주할 때, 그 앞에서 자신이 잘못됨을 바로잡을 방법도 용기도 낼 수 없는 막막한 심정에서 비롯되는 숙연함이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위계급의 어려움을 내가 알아야 하나?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귀족가 학생들의 오만한 시선도 반절 이상 있었지만 스텐드 밀 교수는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기능독점론 강의에서는 사회가 한 기능을 독점하기 위해 어떤 제도를 만들었는지, 예상되는 효과와 결과가 무엇인지를 배울 것이다.”

    “이것을 배운다고 당장 너희의 인생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지.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 하나는 달라지리라 보장한다.”

    “지금 너희가 누리고 있는 배움의 기회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자각하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실습교육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기프트 아카데미에서도 흔치 않게 이론 위주의 강의를 진행한 스텐드 밀의 강의에 학생들은 때때로 하품을 했다.

    그러나 오크노디와 매스각키 황녀같은 거물급 1학년은 물론이고 헥토르 왕자나 흑기사 모브, 암흑마나의 자쿠처럼 주목 받는 이들은 모두 집중했다.

    정말로 집중해야 할 이유를 아는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단지 두 사람이 집중해서 보고자하는 무언가를 자신들도 따라 보려는 시도나 흉내에 불과했지만.

    적어도 면학분위기만큼은 뛰어났다.

    스텐드 밀 교수는 강의가 끝날 때까지 그렇게 단 한 번의 실습도 없이 강의를 끝마쳤다.

     

    “지난주랑 딱히 다를 것도 없는데?”

    “오크노디나 새로 듣는 애들 때문에 복습도 했잖아.”

    “그래도 몸을 안 쓰니까 역시 지루하네.”

     

    불만족스러워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의구심을 드러내기는 모브도 마찬가지였다.

     

    “오크노디. 이 강의는 왜 듣는 거야?”

    “배우고 싶은 기능이 있거든요!”

    “배우고 싶은 기능…? 이 강의, 듣다보면 기능도 가르쳐주는 거야?”

    “음, 배울 수 있는 인원에는 한계가 있지만요!”

     

    기능독점론.

    하필이면 독점인가.

    모브는 무언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좋다고 오크노디의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가 전신갑옷에 비키니아머까지 덩달아 입게 된 뒤부터 발달된 <위기감지>의 효과였다.

    심지어 이번 위기감지의 경고수준은 비키니아머를 입게 되었을 때보다도 더 강력했다.

    크루즈선에서 개고생을 했을 때보다는 못하지만 아카데미 내에서 겪을 위기감지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위험한 수준!

     

    “이 강의, 내가 계속 들어도 될까?”

    “딱히 상관없어요! 몸이 힘든 강의는 아니니까요.”

    “휴.”

    “그래도 기억해두세요.”

    “뭐를?”

    “행정학부에는 명호스님처럼 온순한 교수님도 있지만 플라톤 교수님처럼 쌉지뢰 교수님도 있다는 걸요!”

    “!!!”

     

    아뿔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상급반 체력증진> 강의로 1학기 최대의 악명을 떨치는 교수님으로 손꼽혔던 플라톤 교수님.

    상급반이 아닌 학생들마저도 강의가 끝날 때마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쥐어짜내며 간신히 휴게실이나 기숙사로 향하는 상급반 학생들을 보며 느꼈다.

    진짜 더럽게 빡센 교수님인가보구나!

    기사학부 교수들조차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사람의 힘을 물에 젖은 수건 쥐어짜듯이 짜내는 교수님에게는 당연히 공포가 생길 수밖에 없다.

    자신이 그런 무시무시한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니 이제는 없던 공포심마저 들었다.

    …진짜 이거 들어도 되는 거 맞아?

     

    “그런 정신머리라면 수강포기를 하는 게 나을 거다.”

    “윽. 자쿠 넌 쫄리지도 않아?”

     

    오크노디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자 자쿠는 코웃음을 쳤다.

     

    “몸이 힘들지 않으면 머리가 힘든 강의가 되겠지. 독점이라 하면 한정된 자원을 두고 자원을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싸움이 일어날 테고.”

    “오.”

    “높은 확률로 강의시간에 배운 내용을 응용해서 기능쟁탈전을 벌여 독점에 성공하거나 장시간 독점한 학생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서 점수를 얻는 방식일 거다.”

     

    모브는 솔직하게 감탄했다.

     

    “너 정말 똑똑하구나? 그걸 강의 한 번만 듣고도 단숨에 알아차리다니.”

    “이딴 건 아무것도 아니다. 그 교수의 말처럼…”

    “?”

    “…아니다. 네게 말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겠지.”

    “아, 왜. 좀 알려줘.”

     

    모브의 재촉에도 자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정말로 재능을 지닌 상위 1%.

    그렇지 않으면서도 하위계급의 기능에 재능이 있다고 평가 받는 상위 10%.

    1%는 오크노디 같은 존재들의 영역이다.

    10%는 모브 같은 존재들의 영역이다.

    자신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나머지 90%.

    국가가 재능이 없다고 내려치기 한들, 실제로 재능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격차를 실감할 수밖에 없는 둔해터진 둔재의 몸이다.

    그런 둔한 자신이라도 기능을 독점할 수 있는 입장에 올라서서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자신보다 강한 자들이 검을 쥐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벼락같은 깨달음이 자쿠의 머리를 스쳤다.

    기능독점의 진정한 의미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둔재가 천재를 죽이기 위한 방법.

    세상 그 어떤 천재도 재능을 자각조차 하지 못하고 사용할 기회마저 앗아가면 재능이 피어나지 못한다.

     

    ‘분명 검술교습소는 제국에서부터 각 왕국에 전파된 개념이었지.’

     

    일개 교습소에서 시작해서 유망한 검사들을 배출하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검사길드로 거듭난다.

    막무가내로 칼질을 하는 모험가들과는 격이 다른 강함을 지닌 검사들.

    그렇기에 값비싼 수강료를 지불할 수 있는 상위계급에게만 허락된 검사의 길.

     

    ‘제국과 왕국의 통치자들은 대체 무얼 두려워하기에 이렇게까지 기능을 독점하려 애쓰는 거지?’

     

    오크노디 같은 상위 1%의 천재들이 두려워서?

    눈이 트이니 보이는 경치가 있다.

    그럼 기프트 아카데미는 뭐지?

    제국과 왕국이 쌓아올린 교육의 장벽을 강제로 뛰어넘는 재능 있는 아이들의 성소.

    이건… 제국과 왕국의 독점을 거스르는 이단아들의 소굴이나 다름없다.

     

    ‘제국은… 아카데미는… 재단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깊어지던 자쿠의 상념이 어디선가 날아든 종이비행기에 머리를 맞고 깨졌다.

     

    “미안, 1학년! 그거 좀 주워서 날려줄래?”

     

    자쿠는 아쉬움을 느끼며 비행기를 집었다.

    그리고 손으로 종이비행기를 펼쳐 품에서 꺼낸 필기구로 서명란에 사인을 했다.

     

    “!?”

     

    종이비행기를 던진 벨로카시오가 씨익 웃었다.

     

    “드디어 건졌네. 쓸 만한 1학년 노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선배가 후배를 날로 먹는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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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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