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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6

       원래 내 계획은 이러했다.

       

       로테, 아카샤와 만난 뒤 그동안의 일을 설명한다. 이후 성령이 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말을 전하고 돌아간다.

       

       사실 계획이랄 것도 없었다. 어쩌다가 포탈이 고장 나서, 정말 어쩌다가 들르게 된 거니까.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전한 것만으로도 족하다. 친구가, 동생이, 피폐해 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 이 몸으로는 하계에 오래 있을 수 없다.

       

       정령의 신체가 마력으로 이루어져 있는 탓이다. 특히 어린 정령은 마력을 많이 담고 다닐 수 없다. 나 또한 몸에 문제가 생기면 정령계로 돌아가 쉬어야 한다.

       

       혹시 모를까. 계약을 통해 마력을 공유하게 된다면….

       

       잠깐만.

       

       마력을 공유하게 된다면?

       

       “너희 중 한 명이랑 계약하면 이 몸이라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거 아니야?”

       

       나는 생각의 흐름을 그대로 내뱉었다. 따지고 보면 이런 꼼수도 있지 않나? 싶어서.

       

       계약을 통해 마나 회로가 링크되어 있으면 계약자를 포탈 삼아 정령계를 드나들 수 있다. 실제로 인간 혹은 엘프와 계약한 정령들이 그런 식으로 정령계와 하계를 오가는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어린 정령이라도 되려나?

       

       “…안 되는 건 아니에요. 믿음직스러운 계약자를 가지면 포탈이 아니더라도 세계수에 돌아갈 수 있어요.”

       

       그렇군.

       

       그렇다면 잘된 일 아닌가?

       

       여기 있는 둘 중 한 명과 계약을 나눈다면….

       

       나눈다면?

       

       “아?”

       

       뭔가 잘못됐다.

       

       “에테르.”

       “테르야.”

       

       다음 순간. 나는 싸한 감각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로테와 아카샤. 두 소녀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슬며시 입을 연 까닭이다.

       

       “우리 베스트 프렌드 맞지?”

       “우리 가족 맞지?”

       

       이 시점에서 알아차리고 말았다.

       

       말실수했다는 사실을.

       

       “친구로서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어?”

       “내가 무슨 말 하려는 건지 테르도 알지?”

       

       아, 알다마다.

       

       로테와 아카샤, 이 둘은 지금 나와 정령 계약을 맺어 늘 함께 다니자고 동시에 제안한 것이다.

       

       당연하지만 복수계약은 할 수가 없다.

       

       “허어.”

       

       망했다.

       

       한 명하고 계약을 하면, 다른 한 명이 상처를 받고 말 것이다.

       

       두 명 모두 내겐 소중한 사람이다. 마음에 상처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다못해 아카샤나 로테, 둘 중 한 명이 양보라도 하면 모를까.

       

       지금은 전혀 그럴 것 같지가 않았다.

       

       “아카샤. 미안하지만 에테르는 나와 계약해야 해. 정령마도가 꼭 필요해.”

       

       로테는 손까지 모아가며 아카샤에게 고개를 숙였다. 다정하지만, 동시에 매정한 부탁이기도 했다.

       

       “테, 테르는 내 가족인데….”

       

       그래, 아카샤. 욕심부리고 싶겠지. 너를 정의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고, 나를 정의할 수 있는 것도 너뿐이니까.

       

       “살리에르… 가, 아니라, 로테. 정령마도를 다룰 땐 같은 계통끼리 하는 게 보통이야. 너는 화계고, 나는 전계잖아. 학문적인 목적이라면 너보다는 내가 계약하는 게 맞을걸?”

       

       아카샤의 말은 나름 합당했다. 실제로 계약자가 지닌 정령의 계통은 그 계약자의 눈 색깔과 관련이 있다.

       

       “내가 언니와 계약한 다음에, 너를 도와줄게. 그러면 되잖아.” 

       

       로테 선수를 맹렬히 쏘아붙이는 아카샤 선수. 논리로 밀려버린 로테 선수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러나.

       

       쓴웃음을 지을 줄 알았던 로테의 입가에는 미소가 어렸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새뜻하고도 아름다운 웃음이었다.

       

       악의 따위 보이질 않는구나. 그래, 이런 이타적인 모습이야말로 진정 정령게 가깝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잠깐, 정말로?”

       “응. 정말로.”

       

       로테가 양보해 준다면야 나는 좋다. 오히려 미안해서 아카샤에게 늘 둘이 붙어 다니라고 말할 것 같다.

       

       “동생, 둘 중 누구와 계약할지는 정했나요?”

       “두 명이 합의가 됐다면 상관없어. 모두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니까.”

       “혹시 두 사람 말고도 계약할 후보가 있나요?”

       

       앨리스의 그런 질문에, 나는 엇 하는 소리를 내며 입을 다물었다.

       

       있다.

       

       내가 정령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계약하러 달려올 어마무시한 녀석이.

       

       “에이.”

       

       그렇다고 지금 당장 나타나지는 않겠지.

       

       그 아이에겐 미안하지만, 슬슬 몸에 부하가 걸린다. 한시라도 빨리 빨대 꽂지 않으면 위험해질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속으로 웃고 있을 무렵이었다.

       

       “언니이이이이이─!!”

       

       저 멀리, 언덕 아래에서부터 산드러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짜리몽땅한 소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플러 효과에 따라 점점 맵시를 높여오는 해당 소녀의 신형에선 청색 편이가… 아, 그냥 대가리가 푸른 거구나.

       

       “보고 싶었어요─!!”

       

       블루베리와도 같은 머리카락을 지닌 소녀가 달려와 내 앞으로 슬라이딩했다.

       

       “으아, 자, 잠깐!”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불초 로즈마리, 언니의 생사를 확인한 순간부터 모든 일을 팽개치고 화려하게 등장했어요!”

       

       로즈마리 타르케닐.

       

       내가 의매(義妹)처럼 대했던 금안족 소녀이자, 전(前) 타르케닐 왕국의 마지막 남은 핏줄이다.

       

       로즈마리는 내 볼을 쭈욱쭈욱 당기며 대성통곡했다.

       

       “으, 언니, 왜 이렇게 변했어요! 아이고! 아이고…!”

       

       눈물 콧물 질질 흘리는 모습이 지금 나보다 더 어린애 같았다.

       

       “왜 이렇게 귀여워진 거예요…! 깨물고 싶게에!”

       “됐고, 잡아당기지 좀 마라!”

       

       로즈마리는 한참이고 나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물리적인 집착만 따지면 세계 일등이다.

       

       그도 그렇겠지. 여태 이 아이가 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세웠던가?

       

       그렇게나 열심히 노력했는데, 막상 제 언니는 자신을 두고 떠나버렸으니 속이 곪아있었을 만하다.

       

       겨우 눈물을 그친 로즈마리는 내 머리를 툭툭 두들기며 푸흐흐 웃었다.

       

       “와, 나보다도 키가 작네. 아 참, 따로 말해 주실 필요는 없어요. 정령이 된 거죠? 스코프로 전부 보고 있었답니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다.

       

       “언니, 저랑 계약해요!”

       

       경쟁자가 늘었다.

       

       

       **

       

       

       그거 아는가?

       

       마왕군 전군을 통틀어서, 마왕을 제외하고 말발이 가장 뛰어났던 자가 바로 4석 로즈마리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한때 잠입에 특화된 마수였고, 세 치 혀만으로 나라 세 곳을 멸망시킨 전적이 있었다.

       

       심지어 제국도 그녀가 결정타를 날린 셈이다. 반타 토터스의 아카데미 습격이 결국 제국 멸망의 단초가 되었었지.

       

       아무튼, 이것이 정령 계약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나는 나의 의매, 로즈마리 타르케닐과의 인연을 생각하여 그녀와 계약한다.”

       

       산뜻한 빛이 나와 로즈마리의 주위를 감쌌다.

       

       다음 순간, 희미한 마력의 실이 나와 로즈마리를 이었다. 로즈마리의 입꼬리가 천장을 부술 듯이 올라갔다.

       

       “축하해요, 동생!”

       

       앨리스가 꽃잎을 뿌리며 후후 웃었다. 로테와 아카샤도 손뼉을 치며 흐뭇해했다.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된 것이냐.

       

       나와 로즈마리가 계약하게 된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 살리에르, 당신과 우리 언니는 둘도 없이 친한 사이에요. 세상이 평화로워지면 둘이서 같은 마을에서 살자고 약속했을 정도라면서요? 그러니까 굳이 정령 계약을 하지 않더라도 괜찮을 거예요. 그렇죠?

       

       일단 로테에겐 이런 식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고.

       

       – 작은 언니도 그래요. 둘이 가족이잖아요? 정령 계약을 딱히 할 필요 없어요. 어차피 혈연이라는 실이 있는데 뭐 하러 실을 또 만들어요? 그렇죠?

       

       그 말에 아카샤도 꼬리를 내려버렸다.

       

       – 그에 반해 저는 뭔가요? 열심히 노력했는데 보상이 없어. 그렇다고 작은 언니처럼 피로 맺어진 관계도 아니야. 저는 어떻게 돼도 좋다는 말이죠? 에테르 언니의 절친도 아니고, 진짜 가족도 아니니까!

       

       역시 입 하나는 잘 터는구나.

       

       수백 살 먹은 애늙은이 공주의 생떼는 가히 수준급이었다. 로고스와 파토스, 모든 걸 갖춘 장엄한 연설이었다.

       

       딱 하나, 로테와 내가 혈연관계가 아니라는 허점이 있기는 한데.

       

       로즈마리는 그것도 굉장히 간단하게 해결해 버리고 말았다.

       

       “그럼, 지금부터 절차를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로즈마리와의 정령 계약을 끝마친 뒤, 우리 일행은 기본적인 정보를 갱신하기 위해 시청에 들렀다.

       

       “당연하지만 먼저 가족 구성원의 합의가 필요합니다. ”

       “그건 문제없어요.”

       “그러면 서류제출만 해 주시면 됩니다.”

       

       공무원은 서류 몇 장을 내밀었다.

       

       [입양허가 및 가정조사 신청서]

       

       “양자가 될 사람의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등본이 필요합니다. 다행히 두 분은 여기서 끊으실 수 있군요. 저희 쪽에서 처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좋아요. 다른 건요?”

       “양친이 될 분의 범죄경력조회 회보와, 입양대상확인서, 혼인관계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등본도 필요합니다. 이 과정을 끝내면 양친가정조사서와 입양동의서를 발급받아 최종 절차를 밟으실 수 있습니다.”

       

       뭐 이리 복잡해.

       

       나와 아카샤가 해롱거리는 사이, 로테와 로즈마리는 능숙하게 깃펜을 들고 절차를 밟아나갔다.

       

       “아카샤, 그리고 집정관 각… 크흠. 실례했습니다. 로즈마리 타르케닐 씨는 크롬웰 살리에르 씨의 동의만 있으시다면 그분의 양녀가 되실 수 있습니다.”

       

       크롬웰 살리에르는 로테의 아버지다.

       

       즉, 로즈마리와 아카샤는 로테 집안의 사람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과정도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우리 딸이 좋다면 아빠도 좋단다.”

       

       딸바보인 살리에르 백작은 흔쾌히 허락했고.

       

       “전 백작께선 인품이 훌륭하신 분입니다.”

       

       의례 차 했던 살리에르 가정조사에서도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어이쿠, 갑자기 딸이 넷으로 늘어났네. 아닌가? 다섯인가? 허허허!”

       

       로테와 나, 아카샤, 로즈마리. 그리고 아직도 대륙 순회 중인 이름 모를 로테의 언니까지.

       

       살리에르 백작은 순식간에 딸 다섯을 둔 아버지가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 모두 가족이야.”

       

       로테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흡족해하며 우리를 끌어안았다.

       

       그럴 수밖에. 아카샤와 로즈마리가 로테의 집안에 들어오면서 나 또한 패밀리 네임이 ‘살리에르’가 되어버렸으니.

       

       에테르 살리에르. 아카샤 살리에르. 로즈마리 살리에르….

       

       그 누구의 반대도 없었다.

       

       법적인 문제도 없었다.

       

       이렇게 되면 모두가 행복한 결말이었다.

       

       잘됐네. 잘됐어.

       

       “잠깐, 그런데…. 뭔가 잊어버린 것 같지 않아?”

       “아.”

       

       맞다.

       

       꼬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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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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