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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7

       

       

       

       주인공 일행이 지나치게 성실하다

       

       

       ~if 외전~

       

       

       어째서인지 지구로 돌아와버렸다.

       

       *

       

       생각해보니까 여신에게 대적했던 것 자체가 조금 잘못되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 상대는 ‘말 그대로’ 여신이 아니던가? 그것도 내 영혼을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끌고 가 자기가 만들어낸 몸속에 넣어버릴 정도의 힘을 가진 ‘여신’.

        

       그런 존재를 상대로 싸움을 걸었으니, 이쪽이 압도적으로 불리한 것이 당연한 일이다.

        

       “…….”

        

       딱히 처음 보는 것은 아닌 원룸 천장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그런 고민을 하다가,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이 전부 꿈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차라리 자연스러울까?

        

       그렇지 않은가. 자다 일어났더니 여자가 되어있고, 심지어 내가 깨어난 세상은 현실조차 아닌 이세계였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 시리즈의 세상 속.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기분 좋은 꿈을 꿨다고 생각하는 쪽이 더 말이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정신건강에 좋겠지.

        

       그곳에서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이 전부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거나, 내가 만들었던 인연들이 그냥 전부 사라져버렸다거나— 그런 생각을 하는 쪽이 훨씬 더 무거웠다.

        

       그냥 길고 좋은, 잊기 어려운 꿈을 꿨다고 생각하는 쪽이, 훨씬 나으리라.

        

       ……정작 그 꿈이 너무 길어서 정작 내가 당장 내일부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내가 자기 전에 뭘 하고 있었더라.

        

       아, 그냥 이대로 다시 잠들어버릴까.

        

       뭔가 허무해져서 그대로 눈을 감아버릴까 하다가, 이내 다시 몸을 일으켰다. 죽지는 않았으니 일단 정신 차리고 일부터 해야겠지.

        

       먹고는 살아야 할 테니까.

        

       비틀비틀 일어나서 화장실로 향했다. 지금 내 몰골부터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으니까—

        

       —그리고, 너덜너덜해진 황립 론다리움 아카데미의 제복을 입은 내 얼굴을 보았다.

        

       입고 있는 옷은 너덜너덜했고, 얼굴에는 이것저것 묻어있었지만, 상처는 없었다. 몸도 마찬가지였다.

        

       아, 그래, 맞다. 그리폰의 마법으로 상처가 완전히 나은 참이었지.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더듬더듬 만지다가, 몸을 더듬어보았다.

        

       헛것을 보는 건 아닌 것 같다. 내 눈에 보이는 나의 몸은 내 손에 짚이는 감각과 완전히 똑같았다.

        

       나는…… 원래 세계로 돌아와 버렸다.

        

       내 바뀐 몸을 가지고.

        

       “…….”

        

       이걸 좋아해야 하나?

        

       *

        

       그리고 나는 곧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도꼭지를 돌려봤는데 물이 나오지 않았다.

        

       가스레인지로 불을 켜보려고 했지만 틱틱틱틱, 스파크만 일어나고 불은 켜지지 않았다.

        

       가스레인지 불 뿐만이 아니었다. 방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전등을 켜보려 해보았지만, 전기가 끊어진 지 오래인지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먼지 쌓인 방바닥에 다시 앉아서 생각했다.

        

       좆됐다.

        

       내가 마지막으로 지내던 집은 전세였다. 만약 내가 시체로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계약기간이 끝나면 자동으로 내 집이 아니게 된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내가 여기 돌아온 시점이 언제인지 알아야 했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전기, 가스비가 끊어진 마당에 통신비, 인터넷 비용이 끊어지지 않았을 리가 없다.

        

       어떻게 집구석에 시계 하나가 없냐. 아니, 없을 만도 하지. 현대 사회에서는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으니까.

        

       그 스마트폰도 전기가 완전히 나가서 방전된 지 오래였지만.

        

       하나 있던 보조배터리도 마찬가지고.

        

       전기세나 가스비 연체료는 어떤 식으로 계산되더라? 아니 그보다, 사람이 생활하던 신호가 전부 끊어지면 어떤 조치가 취해진다고 했던 것 같은데.

        

       “…….”

        

       앉아서 생각하면 할수록 생각이 옆으로 계속 빠졌다.

        

       “일단 뭐라도 해결해야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 이쪽 세상으로 와버린 이상, 일을 해결해야 하기는 할 것이다. 살아 있으니 목숨을 연명하긴 해야지.

        

       일단 연체된 공과금부터 어떻게 하자.

        

       어차피 옷이야 집에 있다. 지금의 내가 입으면 사이즈가 잘 맞지 않겠지만, 허리를 꽉 동여매면 그래도 흘러내리지는 않을 거다.

        

       정 안되면 나가자마자 옷부터 살 수도 있고.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책상 서랍을 뒤졌다.

        

       *

        

       이상하기도 하지.

        

       놀랍게도 이 세상에서 나는 나였다.

        

       책상 서랍 안에는 내 지갑이 그대로 들어있었지만, 그 지갑 안에 들어있는 민증에는 ‘지금의 내 얼굴’이 있었다.

        

       만약 누군가가 나의 정보를 바꾼 것이라면 참 양심도 없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비아 팬그리폰의 얼굴은 누가 봐도 유럽계 백인이다.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깔이 까맣다고 동양인이라고 하고 넘길 수 있는 외모는 아니라는 말이었다.

        

       게다가 내 지갑 안의 ‘대한민국 민증’에 등록된 이름은 무려 ‘팬그리폰 실비아’였다. 그렇다. 굉장히 억지스럽게도 내가 다른 세상에서 쓰던 이름이 그대로 들어있었다.

        

       생각해보면 한국에 귀화해서도 이름을 그대로 유지중인 외국인이 있다니, 이런 이름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리라.

        

       생년월일도 바뀌어있었다. 계산해보니 만 18세를 갓 넘은 나이로, 아슬아슬하게 성인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이쪽 세상의 실비아 팬그리폰’이 된 걸까?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이 방은 원래 내가 살던 그 전셋집이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오래된 빌라 5층에 있는 방.

        

       게다가 이쪽으로 돌아온 내가 입고 있던 옷은 여기저기 찢어지고 구멍 난, 바로 직전에 바닥을 마구 굴러다녔던 옷이었다.

        

       그건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내 배에 났던 구멍 그대로 구멍까지 나 있었고, 빨래로는 지우지 못한 피가 여전히 검붉게 남아있었다.

        

       뭐, 좋아.

        

       그렇게 나오시겠단 말이지.

        

       아무리 세상을 구하고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 클리셰라고는 하지만, 나는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쪽 세상에도 친구들이 있기는 했지만 내가 저쪽에서 이루어놓은 것들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더러워서라도 돌아가고 만다.

        

       일단은 공과금부터 처리하고.

        

       *

        

       의외로 밀린 세금 같은 건 없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공과금 대부분을 자동 납부로 해두었고, 당연히 내가 이쪽 세상에서 사라졌더라도 그 돈은 내 통장에서 알아서 나갔을 것이다.

        

       그런데도 전기와 가스가 끊어져 있는 것은 여신의 배려이기라도 한 것일까.

        

       말 한마디 섞어본 적 없는 여신이지만, 생각해보면 이것도 어떤 ‘질서’ 중 하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우.”

        

       내 지갑 사정이 생각보다 심각하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별다른 문제 없이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다는 것에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몇 년 만에 돌아온 한국은 익숙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워낙 오래 살았던 곳이었고, 시간이 어떻게 흘러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이곳에 있었을 때와 비교해도 1년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기에 거의 모든 것이 내 기억 속 그대로였다.

        

       하지만 내 기억 속 그대로였다고는 해도, 한참 동안 하지 않은 것들을 다시 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건널목 앞에 서서 기다리는 것이 조금 어색했고, ATM 기계 앞에 서는 것이 이상했다. 터치패드로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현금을 뽑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뽑아 든 현금을 들고 핸드폰 가게로 가 핸드폰을 재개통하는 것도.

        

       그 과정에서 내 ‘한국 이름’이 ‘팬그리폰 실비아’라고 하는 것도 좀 많이 쪽팔렸고.

        

       그 모든 것을 끝내고 피시방에 가서 자리를 결제하고 앉는 것도 그랬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나한테 와 꽂히는 시선이 몹시 부담스러웠다.

        

       저쪽 세상에서도 시선을 받기는 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시선은 아니었다. 그곳에서는 내가 ‘같은 인종’이었으니까.

        

       아무리 한국이 세계화되었다고 하고, 외국인이 많이 와서 산다고 해도, 여전히 ‘다른 인종’의 비율은 몹시 낮다.

        

       게다가 무지막지하게 예쁘고, 한국어까지 유창하게 잘한다면 주목받기 쉽겠지. 사실 굳이 인종이 다른 걸 제외하더라도 시선 모으기 좋은 외모이긴 했다. 아제르나에선 내 주변 아이들의 미모도 모조리 수준급이라서 내 외모‘만’ 튀어 보이는 일이 없었을 뿐.

        

       피시방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충전하고, 공과금을 처리하기 위해 홈페이지에 가서 이런저런 해결을 하는 와중에도 나를 흘끗거리는 시선은 계속 존재했다.

        

       ……빨리 집이나 가자.

        

       해야 할 일을 얼른 끝마쳤다.

        

       피시방을 나와 마트에 가서도, 마트에서 일용할 식품을 사서 계산하는 와중에도 내 얼굴에 와닿는 시선은 떨어질 줄 몰랐다.

        

       이게 예뻐서인지, 한국어 잘하는 외국인이 신기해서인지.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식량을 찬장에 넣어두고, 먼지 쌓인 집을 청소하기 위해 청소도구를 꺼내던 때—

        

       펑!

        

       “으꺅!?”

        

       허공에서 뭔가가 폭발하는 소리에 기겁해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동시에 그 뭔가 폭발한 허공에서 나를 향해 떨어지는 물체가 두 개.

        

       한쪽은 빛나는 황금색, 다른 한쪽은 윤기 흐르는 청색의, 나와 몸집이 비슷한 무언가였다.

        

       “언니!?”

        

       “실비아!”

        

       그리고 나를 바닥에 처박은 두 물체는 그렇게 외쳤다.

        

       ……이건 또 어떻게 된 일이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f소설이니 한번 이런 것도 써보았습니다.

    현실로 돌아온 실비아에게 뭘 시키는 것이 좋을까요?

    역시 두 자매 앞에서 자기가 나온 게임을 플레이 하며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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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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