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47

    “그러니까, 한번만 도와주세요. 저 형이랑 친하잖아요.”

    “흐음……. 글쎄다.”

     

     

    테너는 그닥 내키지 않는다는 모양새였다.

    그야 그렇지 않겠는가.

    점심 시간에 자기 대신 싸워달라는 부탁이 기분이 좋을 리 없다는 것은 당연하니까.

     

    그건 아주 귀찮고 피곤하면서 딱히 얻을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 뿐 아니라 최근에 테너는 나름대로 착실히 살기로 마음먹고 공부에도 다시 손을 대면서 보람을 느끼고 있는 와중에 그런 제안을 받은 것이니 그런 느낌은 더했다.

     

    예전이었다면 뭐, 자신의 힘에 취해서 그런 제안도 별 생각 없이 받아들였겠지만, 이제는 아니니까.

     

    그리고 그건 자신의 친구인 제이크에 대한 배신인 것 같기도 했다.

     

    싸움도 하지 않고, 애들의 돈도 빼앗지 않고, 여러가지 불량한 일들을 하지 않게 된 이후부터 그는 원래 친하다고 생각했던 아이들로부터 멀어지고 말았을 때, 제이크는 아직까지 자신의 곁에서 묵묵히 따라주는 좋은 녀석이었으니까.

    옛날에는 그저 부하라고 생각하여 막 부려먹기는 했지만, 자신을 변함없이 대해주는 그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야기는 약 1년 전, 이맘때 쯤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그는 과거 한 여자아이에게 무참히 박살나는 참사를 겪는다.

    말 그대로 무릎이 완전히 박살 날 정도로, 말 그대로 아주 끔찍하고 처참하게 말이다.

     

    그 이후, 테너는 자신의 파벌에서 힘을 많이 잃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다.

    고작 10살짜리 여자애한테 무참하게 박살 난 자신에게 무슨 신뢰가 생기겠는가?

    힘으로 쟁취한 자리는 원래 그런 법.

     

    다행이라면 그 녀석들 역시 그 여자애한테 맞아 실신해서 입원까지 한 사실이 있기에 부끄러움에 소문을 내지 않았다는 정도.

    어때, 꽤 꼴불견인 모습이 아닌가.

     

    그러나 그 때에도 제이크는 그런 자신에게서 멀어지지 않고, 그건 그 여자애가 이상했던 거라고, 너는 여전히 강한 녀석이라고,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착하게 살아보자고 응원하면서 독려해 주었다.

    심지어는 자신의 운동을 도와주면서 땀을 흘리는 것에 대한 기쁨과 몸을 가꾸어나가는 보람도 그 녀석이 먼저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변한 자신을 긍정하며 지금까지 곁에 남은 것도 그였다.

     

    그런데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마치 자신을 믿는 그를 배신하는 것 같아 너무나 찝찝하다.

     

    하지만…….

     

    “그냥 도와달라는 것도 아니라구요. 이번 일만 도와주시면 바로 40만길! 그 자리에서 바로 드릴게요. 어때요?”

    “…….”

     

    40만 길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 돈은 고아원에서 독립해 부모도 없고 사회적인 기반이 부족한 테너에게는 꽤 큰 돈이었으니까.

    게다가 최근엔 격투기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이것저것 돈이 나갈 곳이 빠듯한 테너에게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제이크, 미안하다. 이번만큼은 눈 감아줘라.’

     

    테너는 결국 몸을 일으켰다.

     

    ——

     

    그 시각, 서드는 먼저 옥상에 올라가 잭을 기다리고 있었다.

    옥상은 계절에 맞는 쌀쌀한 바람이 세차게 나부끼고 있었지만, 아마 그것이 싸움에 별다른 변수는 되지 않을 것이다.

    바람을 확인한 서드는 이젠 옥상을 살폈다.

    그것은 주로 어느 부분이 구조적으로 취약한지, 그리고 반대로 어느 부분이 힘을 충분히 가해도 부서지지 않을 만큼 튼튼한지 따위의것이었다.

    또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이곳에서 소리가 퍼진다면 어디까지 확산될 것인지에 대한 분석도 빼놓을 수는 없다.

     

    서드에게는 그 모든 것이 변수였으므로.

     

    그렇게 변수를 하나식 줄여나가고 있을 때쯤, 옥상을 향해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상했다.

    분명 싸우기로 한 녀석은 잭 한명이었을 텐데, 들려오는 발소리는 하나가 아니었으니까.

     

    “뭐지, 혼자가 아니군.”

     

    잭, 그리고 또 그 뒤를 따른 수많은 학생들.

    마치 패싸움이라도 준비한 것 같은 모양새에, 서드는 건조하게 물었다.

     

    “대체 이건 무슨 경우지?”

     

    그에 잭은 대답이라도 하듯이 제 옆에 있는 테너의 덩치를 위시하듯 대답했다.

     

    “뭘, 보면 알잖아.”

    “흠.”

     

    서드는 잭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용병을 고용했단 말인가.

    보아하니 다른 녀석들은 잔챙이에 불과한 것 같지만, 잭의 앞에 선 그는 나름대로 단련이 되어있는 모양이었다.

    일단 내 수준을 좀 보겠다는 건가.

     

    그에 서드는 흔쾌히 응했다.

    무엇을 하던, 준비운동은 필요한 법이다.

     

    “좋다. 맘대로 해.”

     

    그렇게 말하는 서드의 기세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비록 제대로 싸울 사람은 없고 그냥 잭의 친구들이 싸움구경이라길래 따라온 것이긴 하다만, 그래도 이 많은 상대를 앞에 두고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다는 것이 굉장히 기묘하다 생각한 테너는 돌연 좋지 않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런 느낌은, 어디서 한번 느껴본 것 같은데.’

     

    저 당당함, 그리고 이 미묘한 공기.

    또 어쩐지 오싹오싹한 이 느낌…….

     

    그래, 딱 1년 전.

    그때 그 여자아이에게 느꼈던 느낌과 얼추 비슷했다.

     

    ‘정말 그 소문이 헛소문인거 맞아?’

     

    서드의 악명은 아무리 그런 쪽에서 손을 뗀 테너라고 해도 들을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야 서드의 존재는 아카데미 내에서도 굉장히 독보적인 상태였으니까.

    그를 둘러싼 무서운 소문들에, 잭은 이렇게 대답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까 저 녀석, 직접 싸우는 걸 제대로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아마도 허풍이겠죠. 분명히 별 거 아닌 녀석일걸요.’

     

    확실히,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이었다.

    자신 역시 혼자 5명 정도와 싸워서 이긴 이야기가 어느새 17대 1의 전설이 되는 것을 이미 직접 경험해 보기도 하지 않았던가.

    아마 많은 과장이 섞여있으리라.

    서드가 정말로 강하다면 그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싸웠는 지에 대한 소문도 퍼지는 것이 정상이니까.

    서드의 저 어두운 인상과 분위기가 겹쳐져서 소문에 살이 붙어서 불어난 것이겠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테너는 자신이 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육체, 그리고 기술은 애들 삥이나 뜯던 예전에 비하면 완전히 진화했다고 보아도 문제가 없다.

    그러니 어느 정도는 자신감을 갖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래, 그 여자애 같은 경우가 어디 흔하겠냐.’

     

    그에 테너는 그 정체 불명의 불안감을 지우며 주먹을 들어올렸다.

    적당히, 스파링이라고 생각하자.

     

    테너는 주먹을 쥐어 들어올리며 격투의 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미안하다. 진심으로 할게.”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야.”

     

    -팟!

     

    말이 끝나기 무섭게, 테너는 자신의 눈 앞에서 서드가 사라지고 어느새 차가운 돌바닥이 나타났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마치 1년 전의 그 악몽이 그대로 재현된 것 같지 않은가?

     

    ‘이게 뭔……?’

     

    테너는 당장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파악하고자 했지만, 안타깝게도 생각은 그리 길게 이어질 수가 없었다.

    그는 곧 정신을 잃어 얼굴을 바닥에 처박고 말았으니까.

    찌릿거리는 뒷목의 통증과, 마비된 것 같은 몸. 그리고 마치 멈춰버린 것 같은 순간 속에서 테너는 경악할 따름이었다.

     

    -콰당!

     

    테너의 거구가 차가운 옥상의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나서야 다시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듯, 여기저기서 뒤늦게 경악한 목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어?”

    “방금 뭐였는데?”

     

    너무나 순식간이었다.

    서드가 움직이는 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들의 시야에는 그저 너무나도 무력하게 쓰러진 테너와, 살기등등하게 자신들을 바라보는 서드의 모습이 보였을 뿐이다.

     

    “그럼, 다음은 너희들인가?”

     

    그리고 이 순간 잭과 그의 친구들은 깨달았다.

     

    서드가 직접 싸우는 걸 제대로 봤다는 사람이 없는 이유는 그저, 정말로 서드가 제대로 볼 수도 없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녀석이었기 때문이었음을.

     

    ‘하하, 진짜 좆됐네.’

     

    ——-

     

    “뭐어, 일단은 그런 내기를 했는데 말이지.”

    “흐음.”

     

    집에 돌아온 루크는 케일라와의 내기에 대한 이야기를 케이트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케이트는 루크의 품에 안겨서 꽤 흥미롭다는 듯이 그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골렘인데다 마법사적인 사고가 탑재된 케이트가 아카데미에서 뭘 하는가 따위에 흥미가 있을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케이트가 흥미롭게 루크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그저 오랜만에 느끼는 주인의 품 속이 굉장히 포근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머리를 쓰다듬어지는 손길도 굉장히 기분이 좋았고 말이다.

     

    비록, 케이트의 본 모습은 아니었지만.

     

    현재 케이트의 모습은 루크와 동일한 모습, 그러니까 ‘허수아비’상태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과거, 루크가 달그림자로 공간을 가르기 위해 몰래 숲속으로 향할 때 숲지기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 케이트에게 인챈트해 두었던 기능이었다.

     

    처음 갑작스럽게 그 기능을 점검한다는 말에 케이트는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머릿결을 따라 빗어내리듯 쓰다듬는 루크의 손길이 케이트에겐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본 모습인 인형인 상태에선 느낄 수 없는 감촉이니 말이다.

     

    “어때, 기분 좋으냐?”

    “동의, 역시 본 객체의 제작자. 주인은 기분 좋은 곳을 확실히 잘 이해하고 있음.”

    “하하하, 그거 다행이로구나.”

     

    루크는 긍정적인 케이트의 반응에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이건, 루크에게는 일종의 보험이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 내가 내기에서 진다면 하루종일 쓰다듬어져야 한다.

    그 말은 즉, 하루를 통째로 여학생에게 쓰다듬어지면서 날려버리게 된다는 얘기다.

     

    그리고 루크는 케이트의 기능을 그 때에 사용해볼까 했다.

     

    만일 그 때 케이트를 안겨두면, 자신은 하루를 온전히 쓸 수가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케이트의 반응은 매서웠다.

     

    “거절함! 그런 걸 위해서 있는 기능이 아님!”

     

    케이트는 그렇게 곧장 루크에게서 벗어나 짐짓 화난 표정을 지으며 루크에게 대들었다.

    그에 루크는 당황하며 물었다.

     

    “왜 그러느냐? 뭐가 문제지?”

    “허!”

     

     

    전혀 모르는 듯한 루크의 반응에, 케이트는 코웃음을 치며 자신의 모자를 푹 눌러쓰며 일어섰다.

    그것은 마치 머리를 더 이상 쓰다듬지 말라는 나름의 의사표현인 듯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가서 안기라니!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님! 주인은 본 객체를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것? 본 객체가 아무한테나 안기는 그런 인형으로 보임?”

    “으, 응? 뭐라고? 그건 대체 무슨 말이냐?”

     

    케이트의 말에 루크는 마치 자신이 무슨 큰일 날 이야기라도 꺼낸 것 같아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케이트가 일목 요연하게 따지듯 말했다.

    “주인은 내게 아주 모욕적인 말을 했음. 본 객체는 골렘 이전에 인형임. 주인은 아린세이아의 시간부터 계산시 본 객체를 무려 4323시간 23분 02초 이상 안아주지 않았음! 예전에는 항상 수면 시 품에 안고 있었으면서. 이는 본 객체에게는 명백한 방치임. 아니, 오히려 노동만을 명령했으니 이것은 학대임.”

     

    과연, 그제서야 루크는 이해했다.

     

    녀석은 인형적인 특성과, 과거 인챈트를 효과적으로 벼리기 위해서 꽤 오랫동안 잘 때 품에 끼우고 자고는 했었다.

    그런데 이후 성공적으로 인챈트가 되고, 마땅히 그래야 할 이유가 사라진 다음에는 딱히 신체를 접촉한다는 필요성은 느끼지 못해 소홀해진 것이었다.

     

    때문에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기는 하나, 최근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 아니. 아린세이아 때에는 내가 수면을 안 하고 작업만 했으니 어쩔 수 없지 않나.”

    “시간을 낼 순간은 아주 많았음. 그럼에도 시간을 내지 않은 건 주인. 때문에 주인의 그 명령은 거부할 것.”

    “…….”

     

     

    순간, 루크는 케이트에게 너무 높은 지능과 판단력을 부여한 것이 잘 한 짓이었는지 고민되기 시작했다.

    반항하는 골렘이라…….

    그보다 자신의 얼굴로 저렇게 말하니 굉장히 미묘한 느낌이 든다.

    자신은 화를 내는 얼굴조차 이리 귀엽단 말인가.

    ‘나는 귀엽지 않으려면 대체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모르겠구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기다리셨을 독자님들께 죄송합니다.

    그런데 제가 여러분께 오늘은 엘든링을 켜지도 않았다고 말하면 믿으실까요?

    너무나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해 왔고, 평소 학교폭력물을 보지도 않은 작가는 불량학생 파트는 쓰기가 너무 어렵네요.
    처음엔 막 떠올리는대로 썼는데 아무리 봐도 좀 이상해서 수정에 수정을 더하다보니 결국은 이렇게 오래 걸리고 말았습니다.

    진지하게 쓰자면 이 골때리는 상황이랑 안 맞는 것 같고, 그렇다고 막 밝게 쓰자니 뭔가 유치한 것 같고.
    착각 개그 학폭물(?)은 합치면 이렇게나 어렵네요.

    저 태그를 갖고 ‘폭풍의 전학생’이라는 대단한 작품을 그려내신 강냉이 작가님이 새삼 대단하게 보이는 하루였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