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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7

        

         

       그렇게 진성은 계속해서, 반복해서 남자의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선문답을 하는 것처럼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졌고, 답이 채 나오기도 전에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질문을 겹겹이 던지면서도 그 질문을 포기하지 못하게 대화의 완급을 조절하였으며, 나름의 해답에 대한 윤곽이 나올 때쯤에 또 다른 질문을 던짐으로써 짐을 늘려나가듯 그렇게 남자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렇게 남자는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처럼 몸이 흠뻑 젖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진성이 이끄는 대화에 끌려다니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끝에.

       끝내 남자는 진성의 뜻대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한쪽이 경계하고 한쪽이 말하는, 일방적인 것이 아닌 서로 말을 주고받는 지극히 평범한 대화를 말이다.

         

       “존재하기 위해 조건이 필요한 것은, 실존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유지하기 위해, 빛나기 위해 조건이 필요한 가치는 실제 존재하는 가치가 아니다. 그저 허상일 뿐이다.”

         

       “허상이라고?”

         

       “사막의 한복판에서 피어오르는 신기루는 풍요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높이 자란 나무도 있고, 파릇파릇하게 피어난 풀도 있고, 시원해 보이는 물도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실존한다고 여기지는 아니한다. 이는 신기루가 실존하는 오아시스를 투영한 환상이기 때문이다. 신기루는 분명히 실존하며, 눈에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실존하는 오아시스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으며, 다가가면 허무하게 사라져버리는 것을 진정한 의미로 실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신기루가 진정으로 오아시스와 같다고 생각하는가?”

         

       “흠….”

         

       “하지만 조건이 필요하되 신기루는 분명히 존재하며, 헛된 희망을 불러일으키지만 선한 영향력을 가지지 아니한 것은 아니다. 신기루는 실존하는 오아시스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으니, 신기루가 보인다는 것은 곧 진짜 오아시스가 주변에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니라. 그리하여 신기루는 실재하는 것은 아니되 실재하는 것처럼 희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신기루의 쓸모이리라.”

         

       완강하게 대화하기를 거부하던 남자는 서서히 진성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본격적인 대화라고 부르기에는 많은 어색함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 주고받는 모양새는 분명히 대화였다.

         

       “사람의 가치 역시 이와 같으니. 많은 이들은 사람에게서 가치를 찾기 위해 밖의 것들을 끌어온다. 집단의 휘광을 끌어오고, 걸어온 궤적을 그려오고, 숫자에 불과한 돈을 끌고 오고,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끌어온다. 그렇게 뼈대에 진흙을 덕지덕지 붙이는 것처럼 밖의 것들을 덕지덕지 붙이고 나서야, 사람은 그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기 시작한다. 이 사람은 이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저 사람은 이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저 사람의 가치는 이 사람의 가치보다 낮다, 이 사람은 저 사람의 가치보다 높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진짜 가치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겠지.”

         

       “한때 유명했던 광고 문구가 있었지. 넘버원보다는 온리원이 되라는 말. 이는 자신의 개성을 강조하라는 뜻도 있지만,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높이를 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가 되라는 뜻이 담겨있는 말이니라. 다만 이것이 그저 입바른 말로 끝난 것은, 말로는 쉽되 실천하기가 지극히 어려운 까닭이로다.”

         

       진성은 서서히 자기 말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남자에게 가치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나는 이 말을 실천하라 강요하지 않는다. 그와 같은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라 말하지도 않는다. 하늘에 떠 있는 달조차 태양의 빛을 받아 빛을 내는데, 어찌 사람이 홀로 빛을 내는 것이 쉬울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 사람은 태양과 같은 존재이며,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별과도 자웅을 겨룰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니라. 하여 나는 그 대신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 가치에 관한 이야기는, 남자의 교만함을 깨부수기 위한 것이었다.

         

       “앞서 나는 신기루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신기루는 허상이라고 말했고, 그 신기루의 쓸모에 대해 말하기도 하였다. 그것을 이어서 가치에 관한 것을 말하고자 한다.”

         

       “….”

         

       “뭇사람들이 사람의 가치를 평가할 때 밖의 것들을 끌고 온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네는 그것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대답하였다. 하지만 자네가 알아야 하는 것은, 사람이 모여서 만든 사회라는 것은 저것들로 유지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돈.

       명예.

       지위.

       권력.

         

       이것이 사람의 가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이것이 사람의 본질이 될 수도 없다.

         

       하지만, 저것이 가치가 없냐고 물으면.

       그렇지 않았다.

         

       “사회라는 것은 무엇이냐? 여럿이 모여서 만들어진 공동체다. 작은 공동체가 모여서 큰 공동체가 되고, 그 큰 공동체가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사회다. 그렇다면 당연하게도 그 안에서는 우열이 나뉘고, 부유함과 가난함이 나뉘고, 그들의 입에서 오가는 이름의 횟수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

         

       “학자들은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사회를 이루고, 무리를 이루는 동물의 모습은 어떠하냐? 우두머리가 있고, 우두머리를 돕는 자들이 있고, 그들을 따르기만 하는 자들이 있고, 보호받는 자가 있다. 그리고 이들의 역할에 따라 그들의 무리에서의 지위도, 힘도 차이가 난다.”

         

       개미도.

       사자도.

       새도.

       물고기도.

       벌거숭이두더지쥐도.

         

       모두가 같다.

         

       계급이 존재하고, 역할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동물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간은 무리를 짓고, 역할을 나누고, 계급을 나눈다. 위와 아래를 구분하고, 위에 있는 이들은 권력을 얻고 아래에 있는 이들은 부림을 받는다. 다만 거기서 그쳤다면 인간은 그저 다른 짐승과 똑같았을 것이나,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는 점이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리라.”

         

       사람은 동물이다.

       그렇기에 동물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동물보다 훨씬 앞서나갈 수는 있었다.

         

       그것이 바로 생각하는 힘이었다.

         

       “사람은 짐승처럼 제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 목숨을 소비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자신의 가치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그렇게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또 남기기를 거듭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기록이 모이고 모여 별처럼 빛나 지금의 성세를 이루었으니, 이것이 바로 인간의 힘이라.”

         

       진성은 다시 남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자네는 인간이며, 인간의 한계에 얽매여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생각해야만 한다. 자신의 가치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겹겹이 쌓아 올려진 기록은 마치 신기루처럼 허상을 비추어 사람을 헤매게 할 수 있으며, 별처럼 빛나는 인간의 기록은 스스로가 빛을 발한다고 착각하게 할 수 있음이니라.”

         

       그것은 분명히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불빛에 비쳐 거대해진 그림자를 보고, 자기 몸이 그 그림자만큼이나 거대하다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말이다.

         

       “그것이 바로 교만이니라.”

         

         

        * * *

         

         

       “사회는 나름의 평가 기준을 제시하였고, 그 기준으로 사람의 높낮이를 재단하기를 원하였다. 이는 시대마다 다르게 변해왔다. 어떤 시대에는 혈통을 그 기준으로 삼았고, 어떤 시대에는 전투 능력을 기준으로 삼았다. 어떤 시대에는 지식을 기준으로 삼았고, 어떤 시대에서는 돈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 기준은 마치 화려한 옷처럼 사람의 몸에 겹겹이 쌓아 올려지게 되었고, 그에 따라 사람은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는 몸보다도 더 화려하고 더 부푼 상태로 돌아다니게 되었다.”

         

       “….”

         

       “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껴입은 옷을 자기 몸으로 여기고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일 것이다. 자신을 한없이 높이고, 높여진 자신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교만이 아니라면 무엇이라 하리오?”

         

       “….”

         

       “자신의 가치를 찾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준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돈을 치우고, 명예를 치우고, 지위를 치운다. 사회가 생각하는 가치를 제 몸에서 제외하고,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버리고 비우며 덕지덕지 붙은 살을 깎아내야만 한다. 그리고 그렇게 깎고 또 깎았을 때,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 바로 가치라.”

         

       “….”

         

       “그 가치를 보고 나서야 자네는 어떤 것이 오롯이 자신의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며, 어떤 것이 옷에 불과한 것인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한다면 자네의 행보와 인식이 달라질 것이며, 세상을 더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게 되겠지.”

         

         

         

        * * *

         

         

         

       남자의 어색함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줄어들었다.

         

       “자네는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어떠한 이유인가?”

         

       “내가 음양사이기 때문이다.”

         

       “음양사는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가?”

         

       “음양사는 음양술을 업으로 삼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묻는다. 주술을 업으로 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주술은 그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술을 농부가 사용하던, 주술사가 사용하던 그것을 사용해서 밥을 먹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 둘에 우열이 있는가?”

         

       “그것과는 다르다. 농부는 식물을 키우고, 자신의 영달에만 사용하겠지만 음양사는 음양술을 모두를 위해 사용하기 때문이다. 음양술의 대가를 기꺼이 감내하며, 모두를 위해 사용할 각오가 되어있는 자들이다.”

         

       “대가를 감내하고 모두를 위해 고생과 희생을 자처한다면 그것은 진정 고귀한 것인가? 그렇다면 인생을 바쳐서 세상을 더 좋게 바꾸려는 시민단체 역시 그와 같지 않은가?”

         

       그리고 그 대화 속.

       진성은 남자를 조각하기 시작했다.

         

       남자의 비대해진 자아를 깎아냈으며, 집단에 소속됨으로써 얻는 자부심을 오려내었고, 집단에 대한 충성심 대신에 자립심을 끼워넣기 시작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진성의 앞에 있는 남자는, 갓 주술사가 된 애송이었으니까.

       심지어 일반적인 주술사처럼 확고하게 자아를 확립한 존재가 아닌, 무르고 무른 두부 같은 정신 상태를 가지고 있는 애송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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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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