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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7

       관 속에서 눈을 뜬 순간부터 지금까지.

         

       죽음을 맞이한 뒤, 송장 상태로 다시 깨어난 그의 머릿속은 누군가 검은색 물감으로 덧칠한 것처럼 모든 기억이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흐릿한 자아 속에서 떠오르는 것은 평생을 갈고 닦아온 무공과 제 주인의 명령.

         

       눈앞의 적을 말살하라.

         

       ‘내게 주인이 있었던가….’

         

       문득 떠오른 의문은 끊임없이 되새겨지는 주인의 명령에 흔적도 없이 파묻혀 사라진다.

         

       그래.

         

       지금은 그런 사소한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제 주인의 명령을 따르는 것.

         

       콰직!

         

       관짝을 호쾌하게 부수고 나와 주인이 말살을 명한 목표물의 얼굴을 본 순간.

         

       까맣게 칠해져 있던 기억 일부분이 멋대로 뚫고 나왔다.

         

       제 이름, 제 위치, 제 목적.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

         

       자신에게 죽음이라는 고통을 선사한 이의 얼굴과 이름까지.

         

       “백…우진…, 죽인다…!”

         

       모든 기억이 불타오른다.

         

       제게 패배를, 실패를, 죽음을 선사한 이에 대한 들끓는 원망.

         

       원수를 죽이지 않고서는 절대 사그라지지 않을 원념의 화신.

         

       독고천은 자신이 그러한 존재가 되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

         

       살아생전 제 앞을 지독히도 가로막고 있던 벽이 허물어진다.

         

       마치 존재하긴 했었냐는 듯이.

         

       새로운 기분으로 눈을 뜬 그는 보았다.

         

       제 손에 쥐어진 검에 그토록 바라던 검강이 덧씌워져 있음을.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음울하고, 탁하기 그지없는 색이었으나, 상관없었다.

         

       그토록 바라던 힘으로 놈을 죽일 수만 있다면.

         

       “죽…인다…!”

         

       살아생전 가득 쌓인 살기를 한마디 말로써 토해내며 몸을 내던진 결과.

         

       카아앙!

         

       챙강!

         

       단단한 검은 부러졌고,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르고 단단한 몸은 부서지기 일보 직전이 되었다.

         

       만약 제 주인이라는 인간이 나타나 틈을 만들어 도주하지 않았다면 자신은 원수에게 목숨을 두 번이나 내어주는 세상에 다시 없을 치욕을 떠안은 채 잠들었으리라.

         

       이미 죽은 몸뚱어리에 그러한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으나, 가까스로 살아남은 그의 지끈거리는 머릿속에 들려온 주인이라는 것의 한마디.

         

       “쯧…, 고치려면 상당히 오래 걸리겠어.”

         

       자신을 고친다는 말.

         

       고개 숙인 얼굴로 제 몸뚱어리가 보인다.

         

       거지들이 입고 다닐 법한 몇 번이고 기워 입은 누더기처럼 몸 곳곳에 제 몸 위로 무언가를 덧댄 듯한 바느질 자국이 가득하다.

         

       말인즉, 이 몸뚱어리의 단단함 그리고 강력한 힘과 속도는 주인이라는 것의 손에서 탄생한 결과물이라는 것.

         

       ‘더…, 강해질 수 있다.’

         

       화경에 오른 몸뚱어리는 느끼고 있다.

         

       생전 조금도 느끼지 못했던 백우진과의 격차를.

         

       까마득하게 높아 보이지 않았던 곳이 보인다는 것은 적어도 자신이 그의 자리를 올려다볼 수 있는 곳까지는 올라와 있음을.

         

       ‘더…! 강해져야만 한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이기에, 분노와 살의는 더욱 굽이친다.

         

       조금만 더 올라선다면, 그를 끌어내릴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죽일 수 있지 않을까.

         

       딸랑딸랑!

         

       “어서 뒤따르래도!”

       “크으으…!”

         

       종이 울리고 왕필이 명령할 때마다 몸뚱어리가 요동친다.

         

       그의 말을 따라야만 한다고, 그것이 제 삶의 목적이라고 머릿속에서 자꾸만 부추긴다.

         

       ‘아니, 아니야.’

         

       맹목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그 속삭임도, 지금의 독고천에게는 와 닿지 않았다.

         

       그의 목적은 단 하나.

         

       제 삶을 끝장낸 이에게 복수하는 것.

         

       이 몸뚱어리로 더 이상 예전의 삶을 살 수 없음은 안다.

         

       그딴 것은 이제 바라지도 않는다.

         

       원하는 것은 그저 제 삶을 이곳까지 끌어내린 이 또한 같은 눈높이에 존재하게 하는 것.

         

       그것이면 족했으니.

         

       죽은 자신을 일깨운 이의 목을 거머쥔 독고천이 본래의 음색과는 전혀 다른, 쇳덩이를 마구 긁어대는 듯한 꺼림칙하기 짝이 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나를…, 강하게 만들어라.”

         

       지금보다 더.

         

       훨씬 더.

         

         

       * * *

         

         

       길을 찾으니 지금까지의 답답함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

         

       해남파를 필두로 똘똘 뭉친 문파들에 의해 해남 일대가 빠르게 정상화되는 것은 확인한 뒤, 백우진은 조원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경공은 굳이 사용하지 않았다.

         

       걸음 또한 그리 날래지 않았으며, 빠르게 지나쳐 가기만 했던 풍경들을 모조리 눈에 담았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신예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우리 이렇게 느긋하게 걸어도 되는 거야…?”

         

       한껏 기분이 좋았던 백우진은 그녀를 향해 쾌활한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지금까지 고생했는데 이 정도 여유는 즐겨야지.”

         

       그녀는 그것이 너무나도 좋았다.

         

       오랜만에 백우진의 쾌활한 미소가 제게로 향하는 것도,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에게 여유가 생긴 것도.

         

       “헤헤…, 그렇지, 응.”

         

       지난 몇 달간 백우진과 그의 뒤를 따른 조원들은 커다란 명성을 거머쥐게 되었다.

         

       정무학관 출신의 누구와 견주어도 모자람 없는 실력을 지녔으나, 좀처럼 두각을 드러내지 않던 신예화에게도 ‘명화(明花)’라는 별호가 생겼다.

         

       피와 절규로 얼룩진 전장에서도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에 빛이 스며드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그들의 이름은 중원 전역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백우진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혈교의 본거지를 찾는 것이지, 명성을 드높이려는 것이 아니기에.

         

       한동안 잃고 있던 밝은 미소를 되찾은 그가, 신예화는 그저 좋았다.

         

       “그럼 우리 이제 어디로 가는 거야?”

       “으음, 글쎄.”

         

       백우진은 제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더 이상 서두를 필요가 없어졌다.

         

       전쟁은 여전히 치열했지만, 위태로운 곳은 존재하지 않는 상황.

         

       급박하게 돌아가는 전장이 아니라면 굳이 찾아가 조원들의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는 조금 다른 것들이 보고 싶어졌다.

         

       앞서 걸어가던 백우진이 걸음을 멈추어 뒤따르는 조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경치가 아주 좋은 곳으로 가자.”

       “응?”

       “갑자기…?”

         

       갑작스러운 제안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조원들.

         

       그도 그럴 것이, 당연히 어디 또 상황이 긴박한 곳으로 가겠구나 생각하고 있었기에.

         

       전쟁이 한창인 와중에 경치 좋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자는 말은 썩 어울리지 않잖은가.

         

       그러나 백우진은 더없이 진심이었다.

         

       “그래, 경치가 좋고 날씨가 아주 맑고 푸른 곳. 그러면서도 뭐랄까…, 아주 탁 트인 곳.”

         

       말하자면 나들이 가기 좋으면서 누군가 매복하거나, 암계(暗計)를 꾸미기 좋은 곳.

         

       그들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다.

         

       온통 새빨간 피로 얼룩진 전장으로 인해 더럽혀진 심미안을 정화할 아름다운 경치와 느긋한 휴식이.

         

       “우리가 아무리 힘써도 이런 식으로 전쟁을 끝낼 순 없어.”

         

       그들 하나하나가 뛰어난 전력이기는 해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하던가.

         

       “결국 혈교의 본거지를 찾지 않으면 끊임없이 되풀이될 뿐이지.”

         

       망나니처럼 날뛰는 혈교도들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자, 혈교주.

         

       그를 잡지 않으면 혈교는 무너지지 않는다.

         

       잠깐 전쟁이 끝날 수는 있을지언정 놈들은 어느 때고 나타나 다시 중원을 위협할 터.

         

       전쟁과 짧은 평화를 오가는 악의 순환을 끝내려면 연결된 고리 자체를 끊어내야 하는 법.

         

       백우진은 이를 위한 초석이 제게 깔려 있음을 안다.

         

       “그러니 당분간은 휴식이야. 인적 드물고, 경치 좋은 곳에서 당분간 편히 쉬자고.”

       “하, 하지만….”

         

       구왕수가 무어라 말을 꺼내려 하자, 당선영과 제갈연지가 돌아서서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거기서 한마디만 더 꺼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무언의 협박.

         

       “헙.”

         

       그들 틈바구니에서 실력보다 눈치를 먼저 기른 구왕수는 재빠르게 입을 닫았다.

         

       이곳의 실세는 백우진이 아니라, 그의 곁에 붙어 있는 여인들이라는 것을 다년간의 고생 끝에 알아차린 그였다.

         

       “으음…, 좋은 생각이야. 바쁘게 일했으면 그에 따른 휴식도 있어야 하는 법이지.”

         

       잠시 비어버린 틈을 노려 도경이 치고 들어왔다.

         

       빠른 걸음으로 백우진의 옆에 선 그녀가 조심스레 팔짱을 끼며 말했다.

         

       “전 가가께서 좋다면 뭐든 좋아요.”

         

       당선영과 제갈연지에게 여성스러움을 차근차근 배워가는 중인 그녀의 나긋한 말투.

         

       거친 면모가 사라지자, 그녀에게선 묘한 색기가 풍기기 시작했다.

         

       그것이 사내로 자라야 한다는 강박을 떨쳐낸 도경이 갖고 태어난 본연의 미색이었다.

         

       사내의 음심을 자극하는 이러한 기색을 느낄 때마다 백우진은 그녀가 지금껏 사내인 양 자라온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나와 맺어질 일은 없었을 거야.’

         

       만약 그녀가 지니고 태어난 기색을 발휘하며 여인으로서 자라났다면 그녀를 차지하기 위한 사내가 중원 한 바퀴를 돌리고도 남았을 테니까.

         

       “그럼 출발할까?”

       “네에!”

       “어서 가요!”

       “이번에는 정말 푹 쉬는 거예요?”

       “나들이도 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여인들이 백우진의 곁에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백우진은 그런 그녀들의 말 하나하나에 대답해주며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잠깐 찾아온 이 여유를 만끽할 때다.

         

       혈교의 본거지를 찾을 수고는 잠시 덜어도 될 터다.

         

       그곳을 찾아낼 실마리를 손에 쥔 이가 제 발로 자신에게 찾아올 테니까.

         

       독고천.

         

       이제는 강시가 되었으니 독고 강시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백우진은 느긋하게 기다려줄 생각이다.

         

       만반의 준비를 끝마친 원념의 칼날이 제 목에 들이밀어지는 순간까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_ _)

    어제 약속 끝마치고 집으로 와서 글을 쓰는데 좀처럼 잘 풀리지도 않고 갑작스럽게 두통이 심하게 찾아오더군요.

    그래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글을 마저 쓰니 이 시간이네요.

    공지라도 미리 올렸어야 했는데 그 와중에 또 집에 오기 전에 들른 무인 상점에 카드를 꽂아두고 오는 바람에;;

    나중에 온 손님께서 다른 물품 결제하려다 바코드 찍고 그게 또 꽂혀 있는 제 카드로 바로 결제가 돼서 그분도 놀라시고,

    저는 저대로 카드 사라진 걸 그제야 깨닫고 놀라서 막 부랴부랴 쫓아가고 하는 해프닝도 조금 있었습니다.

    모자란 부분은 최대한 벌충할 수 있도록 조만간 원기옥 한 번 준비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주말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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