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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7

        

         

         

         

       “보다 큰 목표를 품어보려 합니다.”

       “큰 목표?”

       “저는 제르베르의 황실 마법사를 목표로 삼아왔어요. 그렇다면, 황실 마법사가 되어 뭘 이루고 싶었는지. 그 목표를 황실 마법사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이뤄보기로 했습니다.”

         

         

       “좋은 생각이네.” 따위의 맞장구를 쳐주자 카야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지금 내 신경은 카야의 고민이 아니라 책상 밑 앨리스에게 온전히 쏠려 있었다.

         

       능숙한지는 알 수 없었다. 손가락이라 기분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그 뇌쇄적인 혀 놀림이 내 머릿속을 온갖 야릇한 상상으로 들어차게 한다는 점이었다.

         

       그 수많은 상상은 날 미치게 했고, 그 모든 상상엔 앨리스가 있었다.

         

       앨리스도 필시 그런 의도일 것이었다.

         

         

       ‘성욕을 참아온 게… 이렇게 위험한 짓이었나?’

         

         

       그동안 참아왔던 성욕이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다.

         

         

       “회장. 왜 그래?”

       “뭐가요?”

       “왠지 얼굴이 빨개진 것 같아서.”

       “제가요? …추워서 그런가?”

       “빙제가 추위를 타…?”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패착이었다.

         

       도로시는 사람 감정을 읽을 수 있으니까.

         

       지금 내가 강한 성욕을 느끼고 있다는 걸 훤히 내다보고 있을 것이었다.

         

         

       “일단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도로시 선배, 이따 얘기해주면 안 돼요?”

       “이따? 난 지금 하고 싶은데….”

       “이따 선배 방에서요.”

       “…내 방?”

         

         

       이렇게 된 이상, 도로시에게 보이는 걸 이용하기로 했다.

         

         

       “괜찮죠?”

       “어…?”

         

         

       지금 도로시 선배를 보며 욕정하고 있다고, 그녀가 여길 수 있도록.

         

       도로시는 헛숨을 집어삼키더니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잡고 배배 꼬며 눈을 내리깔았다.

         

         

       “내 방이면… 좋을 것 같기도…? 그래, 그게 좋겠네! 내 방에 정보가 많고 그러니까…. 응, 아주 좋은 판단이야!”

         

         

       과하게 웃는 도로시.

         

       그녀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내 상태와 내가 한 말을 토대로 그녀 나름대로 유추한 것 같았다.

         

       다행히 예상대로 흘러갔다.

         

         

       ‘그 와중에 또 귀엽네.’

         

         

       잠깐 앨리스가 만들어준 상상 속이 도로시로 가득 찰 만큼 귀여운 모습이었다.

         

         

       “카야도. 나머지 얘기는 이따가 하자.”

       “네. 실례했습니다, 아이작 님.”

         

         

       카야는 꾸벅 상체를 숙였다.

         

       그녀는 밝은 미래를 내다보고 있는지 매우 열의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회장, 이따 봐!”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도로시와 카야는 내게 인사하며 집무실을 떠나갔다.

         

       쾅. 문이 닫혔다.

         

         

       “쭈읍…. 후아….”

         

         

       책상 밑, 앨리스가 내 손가락 핥기를 멈추고 진한 숨소리를 내뱉었다.

         

         

       “너 진짜….”

       “좋았니?”

         

         

       내 다리 사이로 고개를 내밀며 능청맞게 웃는 모습이 얄미웠다.

         

       

       “애기 반응 재밌던데.”

       “장난 그만해라…. 평소엔 받아줄 수 있는데, 오늘 만큼은 자제해.”

       “왜에?”

       

         

       앨리스는 몸을 일으키더니 내 복부에 뺨을 대고, 내 허리를 껴안았다.

         

         

       “뭐 때문에? 내가 이러면 안 될 이유라도 있니?”

         

         

       나를 올려다보는 앨리스.

         

       …사랑스러워서 돌아버리겠다.

         

         

       “아, 진짜 그만….”

       “여보.”

       “제발…. 푸훕!”

         

         

       앨리스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애교를 부리는 모습에 그만 웃음이 튀어나왔다.

         

         

         

       ……

         

         

         

       ‘떨린다….’

         

         

       악신 네피드를 잡을 때도 이렇게 떨리지 않았거늘.

         

       다리가 이토록 후들거리는 건 정말 오랜만에 겪는 일이었다.

         

       언제든 차분함을 품을 수 있는 [빙제]의 [얼어붙은 영혼] 효과와는 무관하게, 가슴속을 요동치는 설렘이 내게 떨림을 안겨주고 있었다.

       

       자, 진정하자.

         

       밤하늘에 총총 박힌 소금 같은 별들을 바라보며 감정을 추슬렀다.

         

       오늘은 중요한 날.

         

       모두에게 고백하는 날이었다.

         

       이를 위해 일부러 황궁 옥상을 분위기 좋게 가꾸었다.

         

       여러 아름다운 구조물들과 꽃가지를 마련했고, 푸른색 얼음 마나로 반짝이도록 만들었다.

         

       분위기가 좋으면 사람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누그러지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신하들의 도움을 빌려, 옷도 가능한 한 멋지게 차려입고 머리도 한층 꾸며놨다.

         

       내 손엔 고백을 위해 마련해둔 다섯 송이의 꽃이 들려 있었다.

         

       예전에 염동 마법을 배워두긴 했지만, 굳이 그 마법을 쓰지 않는 까닭은 내 손으로 꽃을 전해주고 싶어서였다.

         

         

       ‘온다…!’

         

         

       대마법사의 경지.

         

       마력 감지 능력이 발휘된다.

         

       다섯 명의 여성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녀들은 한 명씩 차례대로 옥상 출입문을 열고 나왔다.

         

       도로시, 앨리스, 루체, 카야, 화이트 순서였다.

         

       그녀들은 예쁘게 꾸며진 옥상을 보고 감탄했다.

         

         

       “아이작?”

       

         

       루체가 의문 어린 얼굴로 내 이름을 불렀다.

         

       [심리 간파]를 쓰려다가 말았다.

         

       여기서 괜히 그녀들의 심리를 읽었다간 힘이 빠질 것 같았으니까.

         

       [심리 간파]를 쓰는 건 적어도 고백 이후로 미루자.

         

       다섯 명의 여자들은 나를 앞에 두고 멈춰 섰다.

         

         

       “왔어?”

         

         

       아, 이거….

         

       막상 눈앞에 상황이 들이닥치니 오글거림이 고개를 치들었다.

         

       문득 3군단장 아자벨이 했던 조언이 떠올랐다.

         

         

       ─ ‘주군! 그냥 ‘너, 내 여자 해라’ 이 말 한마디면 끝나는 겁니다! 주군을 안 따를 여자가 세상에 어딨겠습니까?!’

         

         

       이 세계의 감성에 맞추지 않고, 쓸데없이 로맨틱함을 챙기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예쁜 걸 싫어할 여자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그녀들에게 진심이었다.

         

       전부 사랑했다.

         

       그러니 정성과 진심을 쏟아, 결혼하자는 고백을 꺼내기로 한 것이었다.

         

       심지어 상대는 다섯.

         

       만만치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오글거림? 어떻게든 억눌러야지.

         

       여기서 나는 최고의 하렘 로맨티스트가 된다.

         

         

       “도로시, 앨리스, 루체, 카야, 화이트.”

         

         

       그녀들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이름을 불렀다.

         

       심리를 읽지 않아도 그녀들이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훤히 느껴졌다.

         

       당연했다.

         

       그녀들도 내가 왜 옥상을 예쁘게 꾸며놓고 전부 불렀는지, 그리고 왜 다섯 송이의 꽃을 들고 있는지 눈치챘을 테니.

         

         

       ‘하긴, 모르는 게 더 이상한가.’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입가에 미소가 흘러나왔다.

         

       꽃을 주기 전부터 서로 마음을 확인한 기분이 들었으니까.

         

         

       “너희들 보고 모이라고 한 이유는, 아마 너희들도 알아챘을 거라고 생각해.”

         

         

       한쪽 무릎을 굽히고 다섯 송이의 꽃을 내밀었다.

         

       각각의 꽃잎 안에서 반지가 염동력으로 떠올랐다.

         

       그 다섯 개의 반지는 고요히 회전하며 푸른 마나 빛에 반짝였다.

         

       앨리스를 제외하고, 나머지 네 명의 여성은 모두 놀란 눈치였다.

         

       자, 숨 깊게 들이마시고.

         

       긴장감을 몰아내며 고백을 내뱉었다.

         

         

       “너희 다섯 모두, 좋아해. 나와 결혼해줘.”

         

         

       순식간에 화끈거림이 몰려왔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휙 숙였다.

         

       지금 내 얼굴이 얼마나 붉게 달아올랐을지 짐작도 안 갔다.

         

       분명 얼음의 마법사라는 명칭과는 안 어울리는 얼굴을 하고 있겠지.

         

         

       ‘너무 찐따 같았나…?’

         

         

       멋이 없었을까?

       

       그냥 아자벨의 조언대로 ‘내 여자 해라’하고 상남자처럼 갈 걸 그랬나?

         

       모르겠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죽을 것 같다…!’

       

       

       납처럼 무거운 침묵이 내 가슴속을 짓눌렀다.

        

       다섯 사람의 얼굴을 볼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제발 누구라도 반응해주길 바랐다.

         

       제발.

         

         

       “…푸훗!”

         

         

       이윽고, 구원의 손길처럼 앨리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곧 꽃이 하나씩 내 손을 빠져나갔다.

         

       마침내 다섯 송이의 꽃이 모두 내 손에서 벗어나자, 나는 천천히 눈을 뜨며 고개를 들었다.

         

       뺨을 붉힌 채 꽃송이를 들고 있는 다섯 명의 사랑스러운 여자들이 보였다.

         

       도로시는 어색하게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루체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내 시선을 피했다.

         

       카야는 동그랗게 눈을 뜬 채 꽃을 내려다보았다.

         

       앨리스는 여유롭게 웃으며 내게 미소를 건넸다.

         

       화이트는 몹시 놀란 기색을 보였다.

         

         

       “회장.”

         

         

       도로시는 나와 눈을 맞추려다가, 흠칫 고개를 떨더니 마녀 모자의 챙을 내리며 눈가를 가렸다.

         

         

       “뭘 이런 거까지 하고 그래? 어차피 뭐…, 조금 소박하게 해줘도 좋았을 텐데….”

       “별로인가요?!”

       “아니! 그럴 리가! 더 기쁘단 거지!”

         

         

       도로시는 당황하며 황급히 손사래 쳤다.

         

         

       “아하….”

         

         

       기쁘다니…. 다행이었다.

         

       긴장감을 털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각 꽃송이 위에 띄워진 반지를 집고, 다섯 사람의 왼손 약지에 하나씩 조심스레 끼워주기 시작했다.

         

       도로시는 쑥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앨리스는 아련한 미소를 머금었다.

         

       화이트는 “선배….”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날 불렀다.

         

       카야는 “흐아아….”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곧 그녀의 머리 위로 연기가 피어올랐으나, 본래의 인격이 퇴장하고 악식의 인격이 나서며 연기가 잦아들었다.

         

       마지막으로 루체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왼손을 잡아 올리자 흑해 여제의 반지가 보였다.

         

         

       “루체.”

       “응.”

       “우리, 미래에도 함께하자고 약속했던 거 기억나냐?”

         

         

       루체는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에게선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다시 말할게. 평생 같이 살자. 내 곁에서.”

         

         

       루체는 온화한 웃음을 만면에 띄웠다.

         

         

       “…내 대답은 항상 같아, 아이작.”

         

         

       내 입가에도 미소가 흘렀다.

       

       루체의 약지에도 반지를 마저 끼워주자, 그녀는 나를 꼭 껴안았다.

         

         

       “회자앙!”

         

         

       도로시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소리치며 루체 옆에 달라붙어 내게 껴안겼다.

         

         

       “아이작 님, 사랑해요.”

         

         

       카야는 내 팔을 꼭 껴안았다.

         

       앨리스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상기된 얼굴로 흐뭇하게 날 바라보고 있었다.

         

       잇달아 화이트도 내게 다가왔다.

         

         

       “아이작 선배애….”

       “넌 또 왜 울어?”

       “그냥, 너무 좋아서요오….”

         

         

       화이트는 감동이라도 받았는지 울먹이며 내 남은 팔을 껴안았다.

         

       괜히 긴장했던 내가 우습게 느껴졌다.

         

       날 한가득 껴안은 그녀들에게 고개를 묻었다.

         

       다들,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하렘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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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AWBDLH,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
Score 8.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possessed the weakest character in my favorite game’s Hell Mode. I want to survive, but the way the main character is being controlled is atrocious. It can’t be helped. I have to stop the bad ending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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