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화. 사람과 하늘 ( 4 )
그간 익숙해진 루드네 집 천장이 아니었다. 루드네 집안 천장이 많이 낡아서 금이 가 있기는 했지만, 누가 봐도 천장의 구색은 갖춘 모습이었으니까.
‘저게 천장이야, 그냥 널빤지를 걸쳐 놓은 거야?’
말 그대로 천장을 흉내 낸 수준에 그친 모습이다.
저걸 천장이라도 불러도 되는 걸까. 대충 걸쳐놓은 나무판자 사이로 검을 구정물이 떨어져 바닥에 웅덩이를 만들었다.
“우음…”
내 입에서, 정확히는 내 의식이 깃든 몸의 주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길게 하품했다.
‘가지가지 한다 진짜.’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다.
보이는 손목과 목소리로 판단하자면 열 살을 간신히 넘었을 것 같은 꼬맹이.
“…오늘은 운이 좋았네. 천장이 안 무너졌잖아.”
‘진짜 저게 천장이었어?’
몸을 일으킨 꼬맹이는 작고 더러운 공간을 능숙하게 돌아다니며 나름대로 무언가 외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거지인가?’
보아하니 가족이나 보호자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거지에 고아라는 콤보에 살짝 정신이 매콤해졌다.
아직 루드의 눈을 빌려 본 전쟁의 충격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고아, 그것도 어린 소녀 거지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너무나 가혹했다.
“오늘은 굶지 않도록 해주세요… 딱딱한 귀리 빵, 아니 곰팡이 핀 빵이라도 먹을 수 있기를.”
이름 모를 꼬맹이는 우둘투둘한 덩어리를 소중히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한참을 보니 무언가 익숙한 형상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설마 만신전의 표식인가? 저걸 직접 만들어서 기도한다고?’
이걸 기특하다고 해야 할지. 애잔하다고 해야 할지.
뭐라 말 못한 모습에 여러 감정이 밀려왔다.
“아! 엄마랑 아빠도 얼른 돌아올 수 있게 해주세요… 돈 많이 벌어서, 아니지. 그냥 무사히만 올 수 있게요.”
‘돌아와? 죽거나 도망친 건 아닌가 보네.’
기도를 마친 소녀가 어설프게 만든 두 개의 허수아비를 향해 인사하고는 맨발로 길을 나섰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산처럼 쌓인 쓰레기와 오물의 향연.
소녀의 집은 쓰레기 매립지를 파서 만든 작은 토굴이었다.
‘…’
작은 체구의 소녀는 매립지를 나선 이후 곧장 미로 같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걸었다. 모양새가 썩 익숙한 것이 이 근방의 지리에 익숙해 보인다.
“어이. 뼈다귀. 어디 가냐?”
들썩.
소녀의 몸이 거칠게 들썩였다. 곧바로 질척한 감정 하나가 피어오른다.
‘이건, 공포?’
“아, 어… 제이콥…”
소녀를 부른 것은 소녀보다 머리 두 개는 커다란 덩치의 소년이었다. 퍽 심술궂게 생긴 것이 학창 시절의 PTSD를 불러오는 면상이다.
“어디 가냐고 묻잖아, 어? 야, 너 오늘도 할당량 못 채우면 뒤지게 맞는 거 알지? 아저씨들한테 맞아 뒈지기 전에 나한테 먼저 뒤지고 싶어?”
“아, 아니야… 오늘 할당량 꼭 채워올게.”
“그래야지. 부모님도 버리고 도망친 재수 없는 년. 퉷.”
걸쭉한 가래침이 소녀의 얼굴을 타고 흘렀다. 소녀는 고개를 땅으로 향하고 묵묵히 침묵했다.
그러나 소녀의 내면은 격렬히 끓어오르고 있었다. 뜨거운 분노가 타오르고 있지만 소녀는 가만히 분노를 식히며 참았다.
‘부모님이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는 거구나.’
뻐억!
덩치 큰 소년의 커다란 주먹이 소녀의 배를 향해 꽂혔다.
“─캬학!”
‘크억!’
일순 소녀의 가벼운 몸이 공중을 가볍게 날았다가 툭, 떨어졌다. 동시에 내 의식을 강타하는 충격에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는 듯했다.
숨, 숨이 안 쉬어져!
“오늘 할당량 못 채워오면 진짜 뒤지는 거야. 알겠어?”
“카, 커흡…! 아, 알겠… 아극!… 컥, 우윽!”
퍽! 뻐억!
소년의 무자비한 발길질이 소녀의 몸을 두들겼다. 밀려오는 고통에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씨바알… 조, 존나 아프네 진짜…!’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그 망할 애새끼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했다.
제이콥, 덩치 큰 뚱땡이. 넌 진짜 나중에 뒤졌어.
“더 처맞기 싫으면 오늘은 할당량 꼭 채워 오라고. 알겠어?!”
“우, 커흡… 아, 알겠. 꺼흐읍. 흐읍, 우엑!”
“꺼져 이제.”
소녀는 바르작바르작 바닥을 기어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 욱신거리는 몸을 부여잡고 절룩거리다가 커다란 길가로 향한다.
‘으, 우윽. 아파, 너무 아프다. 얘는 구걸하려는 건가?’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뒷골목의 고아들이 살아남는 몇 안 되는 방법의 하나가 구걸이라는 건 알고 있다. 거기서 좀 더 전문적인 범죄의 영역으로 가면 소매치기를 하는 거고.
‘얘는 덩치가 작아서 그런가. 소매치기는 안 하는구나.’
그나마 다행이다.
꼬르륵…
“우우… 배고프고 아파…”
‘아씨, 나도 배고프네.’
타인의 몸에 깃든 나는 말하거나 움직이는 것 등을 제외하면 다른 모든 감각을 몸의 주인과 공유했다. 허기짐, 피곤, 갈증은 물론이고 감정까지도.
킁킁.
소녀가 코를 킁킁거렸다. 홀리듯 걸음을 향한 곳에는 갓 구운 빵이 가득 진열된 빵집이다.
“…꿀꺽.”
소녀의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진다.
입 안에 군침이 고이고, 눈이 빵에 고정된다. 연신 입을 오물거리는 것이 빵을 먹는 상상이라도 하는 것일까.
“맛있겠다… 엄마랑 아빠가 돌아오시면 저것부터 사서 같이 먹자고 해야지.”
‘아, 아아! 빵! 존나 맛있겠다 진짜! 아, 한 입만! 딱 한 입만! 으윽! 배고파!!’
나도 배고프다.
“야이 거지 년이! 썩 안 꺼져?! 이 씨발 장사가 안되려니까 너 같은 거지 년이 꼬이냐! 두들겨 패기 전에 당장 안 꺼져?!”
우락부락하게 생긴 제빵사가 소리를 지르자 소녀는 힘없이 걸음을 옮겼다. 아까 봐뒀던 구걸 포인트로 향한다.
‘그나저나 여긴 도대체 어느 나라지?’
내가 모르는 풍경이 이어진다. 아무래도 내가 자주 봤던 나라는 아닌 모양.
어딘가의 작은 왕국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했다.
“하, 한 푼만 주세요… 배가 고파요, 한 번만 도와주세요…”
소녀가 자리를 깔고 엎드려서 구걸을 시작했다. 애절한 외침이었지만 오가는 이 중에서 눈길 한번 주는 이 없고, 동전 하나 떨어지지 않았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표정이 생각보다 밝네.’
시장치고 사람은 적었지만 적당히 생기가 넘쳤고,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 대화가 가득하다.
‘아까 루드의 시간에서 꽤 떨어진, 아예 전쟁이 끝난 미래거나 한참 과거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아주 다른 시간대일지도.’
여러 가설을 세울 수 있지만 아직 확실한 건 없다.
“……이래서는 오늘 할당량을 채울 수 없는데…”
동전을 하나도 받지 못한 소녀가 초조하게 중얼거렸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면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절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삐걱ㅡ
‘어? 여긴 또 뭔…’
소녀가 조심스럽게 시끄러운 술집에 들어갔다. 삐걱거리는 문과 퀴퀴한 꿉내, 술 냄새와 토사물의 악취가 뒤섞여 속이 매스껍다.
“우엑.”
‘으, 씨. 무슨 냄새가…’
대낮부터 술에 취한 주정뱅이들이 시끄럽게 고함치고 웃고 떠들며 술을 마시고 있다. 그중에서는 이미 잔뜩 뻗어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잠든 이도 있었다.
“으하하하! 먹어 먹어! 먹고 죽어 이 사람아!”
“오늘의 태양을 위하여! 내일의 해를 위해 또 한 잔!”
소녀가 작은 손을 조심스럽게 뻗어 술에 뻗은 주정뱅이의 주머니를 뒤졌다. 두근두근, 작은 심장이 거세게 맥박친다.
절로 밀려오는 긴장감에 나도 덩달아 긴장했다.
“이런 젠장!”
쾅!
“히익!”
‘으씨 놀래라!’
누군가 거친 욕설을 뱉으면 거세게 탁자를 두들겼다. 소녀가 등을 펄쩍이며 작게 소리 질렀다. 다행히 들은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코가 빨갛도록 취한 사내가 암울한 표정으로 외쳤다.
“이, 이것 봐! 이것 좀 보라고! 내 손!! 이 망할 악마 새끼들이 또 전선을 밀고 들어와서 우리가 후퇴했다는 거 아니야!! 어! 또 악마 새끼들한테 우리가 졌어!! 또 졌다고!! 그 새끼들이 내 팔을 잘라서 먹었다고!”
사내의 한쪽 소매가 텅 비어 바람에 휘날린다.
“악마가, 마왕이 올 거야!! 우리 인간들은! 모든 종족이 죽을 거야 젠장!! 이대로 계속 지면 악마 새끼들이 우리를 전부 죽일 거라고!! 이런 젠장, 씨발!!”
사내가 쾅쾅 탁자를 부술 듯 두드리며 고함쳤다. 매우 심각한 내용이었다.
‘…전쟁이랑 악마. 여긴 루드한테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시간이구나.’
혹은 동일한 시간대일 수도.
‘음?’
문득 위화감이 들었다.
이 나라는 지금 전쟁 중이다. 나라의, 더 나아가서 대륙의 명운이 걸린 전쟁이 진쟁 중이었고 심지어 전선은 계속해서 밀리는 와중이다.
패전의 기색이 짙게 내려앉아야 할 터인데.
어째서 시장의 사람들은 그토록 활기가 넘쳤으며, 술집의 사람들은 왜 이렇게 걱정 없이 술을 마시는걸까?
“이 씨바아알!! 악마 새끼들이 전부 우리를 죽일 거야!! 내 손목처럼 모가지를 잡아 뜯을 거라고!!”
나는 당연하게도, 고함친 사내의 말에 동조하며 함께 악마를 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혹은 사내를 위로하거나.
허나, 뒤이은 반응은 전혀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으하하하하하, 흐흐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하하!! 아하핳! 으하하하!!”
술집의 모든 이가 고함친 이를 향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푸흡.”
심지어 소녀도.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도대체 왜 웃는 거야?’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사내가 외친 내용은 분명 웃을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주변의 모든 사람이 웃고 있다는 것에 기묘한 이질감마저 느껴졌다.
“푸흐흐흐, 하아. 자네 웃긴 말을 하는군. 그게 왜 그리 걱정인가?”
“너, 너어! 나를 바보 취급 하는 거냐!”
“아니지 친구! 아니야! 흐흐흐! 내 말은 자네가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야. 어차피 전쟁은 우리가 이길 거니까.”
‘…뭐?’
전쟁에서 이긴다니?
인간과 다섯 종족이 무언가 비장의 무기라도 숨기고 있었나?
척.
사내가 손가락으로 천장을, 그 너머의 하늘을 가리켰다.
“우리를 굽어살피는 위대한, 또 찬미해 마땅한 하나 된 분께서 계시는데! 무어가 그리 걱정이란 말인가!”
‘─!’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술이나 마시게! 마시고 또 마셔! 하나 된 분께서 망할 악마들의 대가리에 벼락을 떨구셔서 모두 잿더미로 만들 테니까! 우리는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 말이야! 흐하하하!”
그리 말하며 웃는 이의 눈빛에는 한 점의 의심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