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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7

     어렸을 때.

     그러니까 매국의 날, 내가 10살이 되기 이전.

     회귀한 나로서는 벌써 까마득한 옛날이었던, 그러니까 누아르와 레타르가 태어나기도 이전.

     -아버지. 왜 우리는 협곡을 지켜야 해요?

     너무나도 어렸을 때,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것이 지브롤터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당시, 아버지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이의 질문이었지만, 당신도 당신의 아버지로부터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었다.

     -하루나 일주일 정도는 같이 어딘가로 갈 수 있는 거잖아요?

     수호자로서의 위치나 이런저런 정치적인 복잡한 관계에 대한 이해가 없는, 그저 4살 아이가-

     아. 

     정정.

     생각해보니, 4살까지는 아니었다.

     누아르가 자리에 없었지만 아마도 요람에서 잠들어있었을테니, 아마도 내가 한 6~7살 즈음 되지 않았을까.

     -그레이, 그건. 

     -아버지도 어머니랑 같이 기사들이랑 여행 다닐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렇긴 하지.

     아버지는 담담히 답했다.

     -그 이유는 말이다, 지브롤터는 항상 최전선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최전선이요?

     -너도, 언젠가 이해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

     아버지는 그 대답을 나중으로 미뤘다.

     수호자 지브롤터의, 노스트럼이 500년 동안 골백 번도 넘게 해왔던 가스라이팅에 가까운 의무와 책임감을 먼 훗날로 미뤄버리고 말았다.

     -그레이.

     어머니가 말했다.

     

     -조상님들이 대대로 이 지브롤터를 지켜왔던 것처럼, 백작님께서도 지브롤터를 지키려고 하시는 거란다.

     지브롤터의 역대 모두가 그랬다고.

     아이는 의문을 가졌다.

     조상님들을 비롯한 모두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당대인 우리까지 그래야 할 필요가 있냐고.

     그건 모든 지브롤터가 가진 의문이었을 것이며, 오직 그 의문을 가지지 않는 자만이 지브롤터에 남아 변경백이 되었을 테지.

     -그레이.

     아버지는 말했었다.

     -언젠가, 함께 여행을 가자꾸나.

     어린 아이의 끊임없는 질문공세를 끊으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걸 바라기에 했던 말인 건지.

     -언젠가 지브롤터가 더 이상 지브롤터로 나설 필요가 없는 날이 온다면, 그 때는 다 같이 여행을 떠나자꾸나.

     아마, 그 때의 아버지는 몰랐을 것이다.

     부모로서 해서는 안 될 약속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이것은 나의 기억이 아니다.

     백은에 취해있었던 당시의 내가 만들어낸 조작된 기억.

     -그레이 지브롤터.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지브롤터의 의무는 협곡을 지키는 것이다.

     역대 지브롤터들이 그렇게 말했던 것처럼, 지브롤터의 의무를 다하라는 말 뿐이었다.

     -영지민들을 이끄는 자로서, 지브롤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만이 우리는 그들이 바치는 곡식과 채소를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매국의 날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니 매국의 날 이후에도 아버지는 귀족의 귀감이었다.

     -우리는 기사다. 지키는 자다.

     아버지는 말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때때로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지브롤터는 왕국 전체의 안전을 위하여, 약간의 자유를 포기하고 있을 뿐이다.

     아버지의 말에는 자부심이 넘쳤다.

     아마도 그건 당대 지브롤터 변경백으로서의 책임감이나 조상들로부터 대대로 내려온 변경백의 책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버지 개인의 성정 또한 그러했기 때문이었겠지.

     -명심하거라, 그레이.

     매국의 날 이전.

     아버지가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노스트럼의 귀족과도 같았던 존재였을 무렵.

     -지브롤터를 지킨다는 것은, 곧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는 것과 같다는 것을.

     그 때의 아버지는 어린 아이가 이해하지 못할 말만 했었다.

     지금은 이해하고 있을까.

     잘 모르겠다.

     관문을 빼앗기고, 협곡이 빼앗기고, 아버지는 팔이 잘리고, 어머니는 실종된 지금.

     과연 지브롤터를 지킨다는 것이 소중한 것을 지킨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까.

     물어볼 이는 없다.

     하지만 나는 답을 알고 있다.

     어쩌면 극한 상황에 이른 지금에서야,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지브롤터를 지킨다는 것은 곧,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는 것.

     내가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내가 최전선에 나선다는 것.

     설령 그것이 폐허가 되어버리고 영지민들이 전부 사라진 지브롤터라고 하더라도.

     이 땅에는, 내가 있다.

     

     여기, 한 명의 지브롤터가 있다.

     그러니 이곳이 최전선.

     지브롤터는 협곡이다.

     

     내가, 적을 상대하는 최전선이 된다.

     내가 사랑하는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하여.

     * * *

     새벽.

     협곡을 제국에 빼앗긴 날로부터 닷새가 흘렀다.

     어머니가 실종된 날로부터 5일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내가 지브롤터 구 백작성에 도착한 날로부터 나흘이라고 해야 할까.

     아마도, 노스트럼의 많은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항복하라. 크림슨 지브롤터는 패배했다. 제국은 지브롤터 협곡을 점령했다.]

     저기, 하늘에 떠다니는 비행선들이 음성확성마도구를 이용해 떠드는 소리가 담은 내용-‘크림슨 지브롤터의 패배로부터 5일째’라고 표현하는 게 옳겠지.

     그래.

     크림슨 지브롤터 패퇴 닷새째.

     제국은 노스트럼 각 지역의 하늘에 비행선을 기어이 띄워 낮에는 아버지의 패배를 선전하고 있다.

     비행선을 이용한 선전 뿐만이 아니다.

     비전투요원이지만 이미 노스트럼 곳곳에 침투해있던 그림자들을 이용해 소문을 퍼뜨리기도 하고, 문을 걸어잠그고 농성하던 영주성에 투항문서를 보내며 그 정보를 끼워넣기도 했다.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아마도 시시각각으로 왕국 곳곳의 귀족들이 항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다 죽겠지만.’

     제국은, 황제는 철저한 존재다.

     세이레네 백작령을 전부 박살을 내놓았으면서, 노스트럼을 전부 죽이려고 하면서도 기어이 기존 전략을 이용하고 있는 자들이다.

     에르윈 황후를 인질로 잡아 엘프를 주저앉혔다.

     비행선을 노스트럼 곳곳에 보내 소규모 단위로 침투시켜 게릴라전을 펼치기도 한다.

     심지어 하늘에 떠도는 비행선을 용기사들이 비룡을 타고 날아가 급습하기도 했지만, 그곳에는 비행을 위한 마도엔진과 사방팔방으로 떠들기 위한 녹음된 선전용 음성장치 뿐이었다.

     그런 전술을 사용하고 있는 자가 ‘거짓항복’을 쓰지 않을 리가 있나.

     ‘아마도 곳곳에서 귀족만 썰린 채, 농민들은 안심하고 제국 병사들의 점령을 받고 있지 않을까.’

     기존 노스트럼 백성들의 상식을 이용하는 것.

     노스트럼에서의 전쟁은 기본적으로 영지전과 같이 명예롭게 싸우다가 항복한다거나, 적의 중심지에 깃발을 꽂는 걸로 여겨지기 마련.

     초토화 섬멸전이라는 것 자체를 생각하지 않는다.

     제국도 사람인 이상 귀족이나 저항하는 군사를 죽이지, 일반 평민 백성들을 죽인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본인들이 민간인인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제국이 민간인을 함부로 죽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라면, 그렇게 할 것이다.

     만.

     ‘다른 영지에서 어떻게 된다고 해도, 이미 방향은 정해졌어.’

     그에 대하여, 내가 지금 간섭할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지브롤터에 서 있는 것 뿐.

     지브롤터 영주성의 성벽 위, 협곡 방향에 있는 성벽의 위에서 지브롤터의 검을 들고 가만히 서 있는 것.

     “도련님.”

     멘테 경이 다가온다.

     갑옷이 아닌 기사단 제복 차림이지만, 나는 딱히 지적할 생각은 없었다.

     그것이 멘테 경의 ‘전투복’이었으니.

     “지시하신 것들은 전부 다 처리했습니다.”

     “도련님이라.”

     멘테 경의 호칭에 대하여, 나는 잠시 웃음이 나왔다.

     “꼰대같은 발언이 될 수 있겠지만, 도련님이라고 불릴 나이는 지났지 않습니까? 멘테 경?”

     “도련님께서는 제가 어떤 호칭으로 불러주기를 바라십니까, 지금.”

     “어린 아이이자 제자로서 위로를 해주시려고 하신다면 그 배려, 나중으로 미뤄두겠습니다. 지금은 그래요…대충 ‘변경백’으로 하죠.”

     “변경…백?”

     멘테 경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조금 어폐가 있지 않습니까.”

     “변경백이라는 건 단순히 변경을 지키는 백작이라는 게 아니잖습니까. 지브롤터를 지키는 자가 바로 변경백이죠.”

     “…….”

     “그런 의미에서 멘테 경도 변경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

     멘테 경이 피식 웃는다.

     “저는 리프트 자작으로 충분합니다.”

     “호오. 리프트 백작이 될 생각은 없습니까?”

     “그건 제법 끌리지만, 딱히.”

     “그렇습니까.”

     “도련님!!”

     검은 갑옷을 입은 카를로스 경이 다가온다.

     “용기사단 전원 준비완료입니다. 지시하신대로,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습니다.”

     “여기도 도련님.”

     “그, 그게.”

     “괜찮습니다.”

     나는 카를로스 경을 향해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그 호칭이 썩 마음에 드니까요.”

     “예…?”

     “지키는 자로서는 변경백이어야 하지만, 뭐 변경백이라고 불려야 지브롤터 성을 지키는 마법이 발동되는 것도 아니고.”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도련님이라는 호칭말입니다. 20살이나 된 청년이 듣기에는 어딘가 어색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여러분들의 입에 붙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게….”

     “도련님!!”

     멀리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왔군.”

     “허억, 허억…!”

     “고생했네, 로버트 경.”

     “그, 그게….”

     아버지를 후방에 모셔다드리고 난 뒤, 다시 지브롤터로 돌아온 로버트 경.

     “자네만 기다리고 있었어.”

     “예…?”

     “정확히는 모여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나는 나의 뒤, 지브롤터 성 내부에 모여든 이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영지민들이 떠나고 불에 탄 폐허만 남은 곳에도, 지브롤터를 지키기 위한 기사들이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지 않은가.”

     “그, 그게….”

     지브롤터의 기사들.

     보육원의 고아들.

     리프트령의 흡혈귀 사냥꾼들.

     “명령을 내려서 이곳으로 온 이들도 있지만, 따로 명령을 하지 않았음에도 여기까지 스스로 온 이들이 있지.”

     

     그리고 바르셀로나에서 온 지브롤터의 기사들.

     “자네가 마지막이었다네, 로버트 경.”

     “예, 예…?”

     “아버지가 어떻게 되었는가, 묻지 않겠어.”

     나는 협곡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후작 부인, 실종. 후작은 패배. 그분이 지브롤터로 돌아올 때는 지브롤터의 안전이 확보된 뒤, 그 때 해결하면 돼.”

     “…….”

     “로버트 경. 내가 냉정해보이는가?”

     “…예.”

     로버트의 단언에 모두가 침을 삼킨다.

     “그렇기에, 더욱더 안심이 됩니다.”

     “어째서?”

     “…그 어떤 일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던 도련님의 평소 모습과 같아서.”

     “그런가.”

     나는 가볍게 내가 쥐고 있는 지브롤터의 검을 두드렸다.

     “20살 짜리 도련님일 뿐인데?”

     “제 앞에는….”

     로버트 경이 흉갑을 크게 주먹으로 두드린다.

     “지브롤터를 지키는 변경백이자 수호자이자, 저희의 희망이며, 저의 주인께서 계실 뿐입니다.”

     “…….”

     “명령을.”

     “하.”

     새벽.

     “고백을 하나 하지.”

     서서히 밤의 어둠이 물러나고 아침햇살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시각.

     “나는 사실 연설 같은 거 잘 못하는 성격이야.”

     나는 모두의 앞에 한 가지를 고백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것만큼 내가 못하는 게 없어. 딱 그거 하나 빼고는 나머지는 평균 이상, 아니 마스터급으로 얼추 잘한다고 보면 돼.”

     성벽의 난간 위로 올라선다.

     “그러니까 나중에 역사서에 기록될 때는, 그대들 중 누군가가 알아서 적당히 그럴싸하게 버무려주게.”

     몸을 돌려, 기사들을 내려다본다.

     “모든 이들이 왕도로 모인 이 때, 이곳 지브롤터에 있는 이들이 곧 지브롤터다.”

     기사들이 자세를 바로잡는다.

     “뭐.”

     만.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건 아니고.”

     그런 건 아버지가 잘 하시던 것.

     “우리가 모인 건 모두 가족을, 지브롤터를 지키기 위해서지.”

     나는 내가 제일 잘 하는 것만 맡으면 된다.

     “로버트 경. 최선의 수비란 무엇인가?”

     “공격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세상에서 남들보다 제일 잘 한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

     “제군.”

     지브롤터로서도.

     “지금부터 우리는 수호자가 아니다. 침략자다.”

     그레이로서도.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가 함께.”

     훗날, 역사가 어떻게 판단하든.

     “협곡을 뚫어, 제국으로 진격하여, 황도를 점령한다.”

     이것으로, 500년 노스트럼과 지브롤터의 역사는 막을 내릴 것이다.

     “지금부터, 황제를 죽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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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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