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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7

   루시가 처음 단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만 하더라도 조이는 순수한 감탄을 담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귀족 영애로 살면서 배운 온갖 미사여구들이 무의미해진 자리에 아름답다는 찬사만이 남는 그 경험은 조이가 주변의 시선을 잊고 멍하니 루시의 움직임을 쫓게 될 만큼 경이로운 것이었으니까.

   

   이전에 시연을 봤던 나조차도 할 말을 잃어버릴 정도인데 다른 분들의 감상이 어떨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겠네.

   

   후후. 내가 골라준 옷을 입은 영애의 모습이 모두의 기억에 남을 거라 생각하니 기쁘다.

   

   그 때 온갖 옷을 입혀보면서 최고의 옷을 선택한 보람이 있어.

   

   이러한 조이의 행복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단상 한 가운데에 자리한 루시가 입을 연 순간 이 자리가 모두의 기억에 다른 의미로 남게 될 거란 걸 깨달아 버렸으니까.

   

   알른 영애! 대체 뭘 하시는 건가요!

   

   여기는 저희들과 함께 있는 자리가 아니라고요!

   

   온갖 힘있는 귀족들이 모여 있는 자리란 말입니다!

   

   아무리 베네딕 경이라는 뒷배가 거대하다 하더라도 거기에도 한계가 있다고요!

   

   예전의 영애라면 모를까 지금의 영애라면 그 사실을 모르지 않으실 텐데 도대체 왜!

   

   “다들 표정이 왜 그러시죠? 내가 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아. 사실을 너무 강하게 말해서 마음이 아파진 건가요~ 이것 참 죄송해라~”

   “달라졌다는 소문을 들었다만. 아니었군.”

   “역시 루시 알른은 루시 알른인가.”

   “저런 아이가 언젠가 알른 가문을 잇는 것인가.”

   

   실시간으로 자기 친구의 평판이 내려가는 광경을 보던 조이는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아냐! 예전의 알른 영애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의 알른 영애는 좋은 사람이야!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질 수 있는 사람이고!

   

   다소 장난스럽기는 하지만 충분한 배려를 아는 사람인데다 자신을 향한 모욕을 무덤덤하게 넘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알른 영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당신들이 일면만을 보고 그렇게 평가해도 괜찮은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조이는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저들의 판단을 무어라 할 수 없음을 알았다.

   

   갑작스런 만남에서 보인 실수조차도 부족이 되는 것이 귀족간의 사교일 지언데 온갖 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만들어낸 참사란 한 사람을 규정하기에 충분한 자료이지 않겠나.

   

   “왜애애그러시죠? 내가 하는 말이 마음에 안 드시나요? 푸하핳. 그치만 말이죠. 절 이 자리에 세운 건 아카데미의 허접들인걸요. 이 자그마한 여자애보다 약해 빠진데다가 멍청멍청한 애들이 한 가득이라 지고 싶어도 질 수 없는 걸 어떻게 하나요.”

   “저. 빌어먹을.”

   “야. 옆을 봐.”

   “주변 분들만 아니었어도.”

   

   자신의 주변 영애들의 표정까지도 험악해지는 걸 본 조이는 부채로 가린 입술을 곱씹었다.

   

   상황은 최악이다. 알른 영애께서 입을 열 때마다 사람들이 과거의 영애를 떠올리고 있어.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모두들 영애가 달라졌다는 걸 믿지 못하게 될 거야.

   

   사람이라는 건 변화하지 않는다고.

   

   망나니는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망나니일 뿐이라고.

   

   “알른 가문의 수치가.”

   

   귓가에 말이 스며들기 무섭게 고개를 돌린 조이는 창백해진 얼굴로 입을 틀어막는 한 영애를 보고 이를 꽉 깨물었다.

   

   조이는 알았다.

   

   이미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왔으면 어떤 식으로도 수습을 하기 어렵다는 것을.

   

   참사가 일어나버린 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조이는 알았다.

   

   여기에서 자신이 나서는 순간 자기까지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걸.

   

   스멀스멀 올라오던 비난의 말이 강해질 것이라는 걸.

   

   훗날 사교계에서 다른 파벌을 만났을 때 이것이 비난의 시작점이 될 것이라는 것을.

   

   조이는 알았다.

   

   평범한 귀족의 사고대로라면 이 상황에서 나서지 않는 게 옳다는 것을.

   

   아무런 명분이 없는 상황에서 나서봐야 그 어떤 것도 되지 않을 것임을.

   

   “푸흐흫”

   

   그러다 조이와 단상에서 웃고 있는 루시의 눈이 닿았다.

   

   커져가는 불만의 목소리 속에서.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비난의 말 속에서.

   

   조이는 자신의 친구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가리던 부채를 내려놓았다.

   

   파트란 가문의 영애인 조이는 오래 전부터 공작 영애답기 위해서 노력을 거듭했다.

   

   누군가가 시켜서 한 것은 아니었다.

   

   대를 이어 줄 장남이 있기에 파트란 부부는 조이에게 네가 바라는 것을 하라며 이야기 해주었으니 귀족다운 귀족이 되기 위해 노력한 것은 어디까지나 조이의 선택이었다.

   

   ‘과연 파트란 가문의 영애세요.’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배신하기 싫어서.

   

   ‘어쩜 이리 우아하실까.’

   

   주변의 눈빛에 무시가 서리는 것이 두려워서.

   

   ‘정말 믿음직스러우세요.’

   

   모두가 바라는 영애가 되지 않으면 외톨이가 되어버릴 것 같아서.

   

   조이는 공작영애답기 위해 노력해왔다.

   

   달고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자신을 감췄다.

   

   여러 소설 속의 친구관계를 동경하던 스스로를 지웠다.

   

   여느 여자아이처럼 감정적인 마음을 억눌렀다.

   

   이러는 것이 옳다 믿었기에 이렇게 살아왔다.

   

   허나 루시를 만난 후부터는 아니었다.

   

   그녀는 모두가 어려워하던 조이를 얼빵영애라 부르며 웃었다.

   

   공작 영애인 조이가 아니라 한 사람의 친구로 대해줬다.

   

   외톨이가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감출 필요가 없음을 보여줬다.

   

   그래. 사교계가 뭐가 중요하겠어.

   

   주변의 영애들이 날 어떻게 보는지가 무슨 상관인데.

   

   다른 귀족들이 날 어떻게 여길지에 대해 왜 걱정해야 하냔 말이야.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난 조이 파트란이야.

   

   파트란 가문의 공작 영애고.

   

   여러 영애들의 불편함이 되는 사람이고.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얼빵하다는 놀림을 듣는 바보고.

   

   아카데미의 교수분께서 극찬을 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지닌 마법사고.

   

   루시의 친구야.

   

   “파트란 영애?”

   

   조이가 한 발을 앞으로 내딛은 순간 옆에 있던 어느 백작 가문의 영애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무얼 하시려는 건가요?”

   “설마 또 알른 영애의 편을 드시려는 건가요?”

   “안 됩니다. 영애.”

   “파트란 영애. 저희 파벌의 중심이라는 걸 기억해주세요.”

   “영애. 제발.”

   

   그 뒤를 잇듯 여러 영애들이 조이를 향해 이런 저런 말을 내뱉지만 조이는 그 어느 것도 귀에 담지 않았다.

   

   그 대신 평소 부채에 가려져 있던 특유의 살벌한 미소를 그대로 드러내며 그들에게 말했다.

   

   “닥치세요.”

   

   평소의 조이라면 하지 않을 말.

   

   누가 듣더라도 모욕의 의미가 분명한 말.

   

   뭇 영애들이라면 얼굴을 붉힐 말.

   

   허나 영애 중에서 조이에게 무어라 하는 이는 존재치 않았다.

   

   그녀의 주변에 자리한 차가움은 발을 들이는 순간 얼어 죽어 버릴 것처럼 냉혹했으니까.

   

   자신을 잡는 손을 떨쳐낸 조이는 자연스레 열리는 길을 따라서 발을 움직였다.

   

   …어떡하지?!

   

   순간 감정이 차올라서 저질러 버린 건 저질러 버린 건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물론 난 내가 저지른 일을 후회하진 않아!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해!

   

   속도 시원하고!

   

   나중에 저 분들이 무어라 그런다 해도 그래서 어쩌라는 답을 돌려줄 자신이 있어!

   

   그렇지만! 정작 이 상황을 수습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아!

   

   아아악! 멍청한 나!

   

   제발 생각 좀 하고 일을 저지르면 안 될까?!

   

   그러니까 당신이 알른 영애고 3왕자님이고 간에 얼빵 영애라고 불리는 거잖아!

   

   “조이.”

   

   무대를 향해 발을 움직이면서도 속으로는 비명을 내지르던 조이는 어느새 나타난 제프의 얼굴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오라버니.”

   “지금 무슨 계획 세운 거 있니?”

   

   조이는 물음에 답하지 못하고 입을 우물거렸다.

   

   “그럴 줄 알았어.”

   “오라버니. 어떡하죠?”

   “걱정 마. 넌 이미 네가 할 일을 끝마쳤으니까.”

   “…네?”

   “가주님께 네 의지를 비쳤잖아. 그거면 충분해.”

   

   이제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도 괜찮다는 말의 뜻을 조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해하게 되었다.

   

   “후하하!”

   

   회장 안을 가득 채우는 커다란 웃음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다.

   

   여섯 공작 가문 중에서도 제일이라 여겨지는 대 파트란 가문의 주인.

   

   험악한 소문들을 달고 다니는 왕국의 손꼽히는 권력자.

   

   수많은 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몇 없는 사람.

   

   파트란의 공작은 회장에 있는 모두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세찬 웃음을 흘리다 말을 이었다.

   

   “이것 참. 실례했군. 영애의 당찬 모습을 보니 즐거워서 말이야.”

   

   파트란 공작의 말에 회장 여기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난다.

   

   방금 전 루시의 모습은 어떻게 보더라도 당참보다는 건방짐에 가까웠으니까.

   

   허나 파트란 공작도. 루시 알른도. 여러 자잘한 소리에는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알른 영애?”

   “왜 그러시나요. 허술 공작님?”

   “푸흐흐. 이것 참 여기서도 허술 공작이라고 불러주는 건가? 고맙군.”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걸 보고 회장의 귀족들이 숨을 삼킨다.

   

   그 파트란 공작을 허술 공작이라 모욕하는 루시 알른의 모습에. 그리고 모욕을 듣고서도 유쾌하다는 듯 웃는 파트란 공작의 모습에 경악한 것이다.

   

   “그러니 한 가지 주의를 주지. 그대에게 못 미치는 학우들에게 실망했음은 이해하네만 그 감정을 겉에 드러내선 곤란해.”

   “…허접들한테 허접하다 말하는 게 잘못인가요?”

   “본질적으로 종강파티의 연설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니 그 정도 말은 할 수 있지. 허나 지금 이 곳에 자리한 이들은 학생 뿐만이 아니다. 보거라. 아직 그대가 뛰어넘지 못한 수많은 별들이 있지 않나.”

   

   파트란 공작은 그리 이야기를 하고는 자신의 마법을 이용해 루시의 뒤편으로 이동했다.

   

   “우선은 1왕비님이다. 솔라딘의 역사에서 손꼽을 만큼 강한 여기사이자 왕국에 평안을 가져오신 위대한 분. 저 분께서 왕비로 간택되었을 때 수도기사단에서 몇 달이나 곡소리를 냈단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야기의 대상이 된 1왕비는 슬쩍 파트란 공작의 눈을 살피고는 눈웃음을 지었다.

   

   “몇 달은 너무 과장이네요. 기껏 해봐야 한 달이었어요.”

   “왕비님의 앞이니 그랬지요. 다른 자리에선 계속 투정을 부렸습니다.”

   “어머나. 시켈 저 말이 진짜인가요?”

   “저 뿐이 아닙니다. 1왕비님. 부기사단장께선 여전히 술자리에서 왕비님의 무위를 기리고 계십니다.”

   “정말요? 전혀 몰랐네요.”

   

   호위의 말을 들은 1왕비의 웃음소리를 따라서 재차 파트란 공작이 말을 꺼낸다.

   

   “2왕비님께서는 또 어떻고. 한 때 저 분의 무위는 여러 아카데미 학생들의 공포였다.”

   “공작. 칭찬하는 거 맞으시죠?”

   “하하! 베드퍼 가문의 깃발이 휘날리던 때의 든든함을 아는 저입니다! 어찌 칭찬이 아니겠습니까!”

   “하여간.”

   

   2왕비까지도 피식하는 웃음소리를 내자 파티회장의 분위기가 서서히 누그러든다.

   

   “솔라딘의 검술이 지닌 자존심. 켄트 백작도 있다. 전성기의 네 아비와 검을 맞대 버틸 수 있는 자는 저 녀석밖에 없었어.”

   “그건 버텼다기보단 붙들고 늘어졌다는 표현이 옳을 듯 합니다만.”

   “허허! 겸손하긴! 아! 우리 루흐텐 공작도 빼먹을 순 없지! 저 녀석이 망치로 거인이 던진 투석을 박살낼 때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언제적 이야기를 하는 거냐.”

   “네가 부서진 돌에 얻어 맞아 성벽에 굴러 떨어졌을 때의 이야기다!”

   “내가 그 일 꺼내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하는가!”

   

   파트란 공작은 파티장에 참석한 이들 하나 하나를 호명하며 그들이 벌인 일화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것은 누구라도 탄성을 내지를 경외스러운 업적이었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웃음을 흘릴 즐거운 이야기였고.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비밀스러운 이야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 파트란 공작은 루시 알른의 눈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알른 영애. 그대의 재능은 네 아비가 그러했듯 경이롭다. 시간이 지나 대성하면 분명 대륙 최고라 불릴 정도로. 허나 지금은 아니다. 아직 그대는 어리고 약하다.”

   “우회하지 않고서는 말을 전하지 못하시나요? 전 쓸데없이 이야기를 빙빙 돌리는 걸 싫어한답니다. 허술공작님.”

   “겸손함을 지녀라. 솔라딘의 미래여. 그대의 재능을 질시하게 하지 말고 동경하게 만들어라. 네 아비가 그러했던 것처럼.”

   

   가만 공작을 바라보던 루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무대에서 떠나갔다.

   

   그것은 분명한 무례였지만 파트란 공작이 피식 웃고 넘겨버렸기에 그걸 지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1왕비님. 서투름이 많은 솔라딘의 미래를 대신하여 축사를 해주시겠습니까?”

   “어쩔 수 없네요. 자. 여러분들. 모두 잔을 들어주세요. 솔라딘의 미래를 위하여!”

   ““솔라딘의 미래를 위하여!””

   

   비난과 분노로 가득 찰 뻔 했던 파티회장은 어느새 귀족들의 자부심으로 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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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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