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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7

    <347 – 넘치는 정의감>

     

    믿었던 데드캣도 오크노디에게 발린 이후, 1학년에게 손대는 건 포기했던 계약사기꾼 벨로카시오.

    그가 돌아왔다.

    상급반 학생도 아닌 자쿠에게 손을 대면서.

     

    “당신… 정말 대단하군. 어떻게든 노예계약을 성립시키려고 변장술까지 쓰다니.”

    “하하. 핑크베리 교수의 <변장술의 기초와 이해> 강의를 듣지 않는 학생이라면 틀림없이 당할 거라고 생각했지. 철저한 사전조사의 승리다, 1학년이여.”

    “허탕이야. 난 당신 생각처럼 유능하지도 않고 쓸 만하지도 않아.”

     

    다른 노예를 구하라는 자쿠의 말에도 벨로카시오는 피식 웃었다.

     

    “소용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1학년 조직의 조사. 오히려 너처럼 남들의 이목을 덜 받는 1학년이면서 똘똘한 녀석이 필요하지.”

     

    자쿠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 녀석, 설마 <오크노디와 놀아주는 조직>에 대해 알아내려는 건가!

     

    “네가 조사할 조직은 <카멜라 사단>이다.”

    “…”

     

    다행히 오크노디의 조직은 아니었다.

    사실 그랬다면 벨로카시오는 제 명줄을 재촉하는 꼴이 되었으리라.

    오크노디와 놀아주는 조직도 넓은 의미로는 재단의 하부조직.

    뒷배도 없는 일개 2학년이 파헤쳐서 무사할 조직이 아니었다.

     

    “그놈들은 자기들끼리 얌전히 지내는 걸로 아는데. 뭔가 사고라도 쳤나?”

    “얌전히 지내는 게 문제다. 내 것을 데리고 제 영향력을 늘리니 아니꼽잖냐.”

    “당신이 뭘 가졌었는데?”

    “노예.”

    “…황당할 정도로 뻔뻔하군.”

     

    벨로카시오 입장에서는 카멜라 사단을 조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행위였다.

     

    “내가 힘을 키운 비결은 계약사기. 본래라면 1학년이 2학년에게 손을 대는 일을 허락할 리가 없었겠지만 오크노디와 지젤, 아카디아의 견제를 받아 세력이 약해졌다고.”

     

    소위 말하는 억까 스노우볼로 자신의 세력은 크게 줄었는데 암흑상회가 흡수하지 못한 잔챙이들을 엉뚱한 카멜라의 세력이 낚아채고 심지어 그 수법도 자신과 같은 계약사기였다.

    벨로카시오의 입장에서는 제 것이어야 할 노예들을 빼앗아간 카멜라에게 화가 난 것!

     

    ‘악덕노예지주 같은 선배야 둘째 치고 오크노디에게도 필요한 정보이기는 하겠군.’

     

    한 번 격파한 벨로카시오의 세력 따위, 두 번 상대하는 거야 일도 아니다.

    자신이 조금 거든다고 오크노디가 크게 곤란해질 일은 없겠지.

    하지만 남에게 조종당하는 행위 자체가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다.

     

    “조사라면 너희 2학년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날 이용해야만 했나?”

    “2학년은 바쁘다.”

    “1학년도 바쁘다.”

    “우린 너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바쁘다.”

     

    벨로카시오의 얼굴에 미약한 초조함이 일었다.

     

    “2학년은 ‘유급’의 공포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지. 포인트 대출로 진급했던 1학년 때와는 달리 대출한도를 맞아서 더는 대출도 안 되니까.”

    “그럼 대출을 안 받으면 되지 않나?”

    “공부만 하면 진급하는 줄 아는 얼간이들이 착실하게 포인트를 벌어서 진급비를 낼 수 있을 줄 아냐? 낼 포인트가 있어도 성장을 앞당기고자 학생회 신용대출을 쓰는 마당에.”

     

    앞으로 몇 개월 뒤에는 자신에게도 다가올 이야기에 자쿠는 귀를 기울였다.

     

    “이미 대출을 당긴 2학년은 성실하게 공부해서 학점을 쌓고 부지런히 의뢰나 도전과제를 달성해서 포인트를 벌고 자신의 힘으로 진급해야 한다고.”

    “…그게 뭐가 문제지? 학생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해서 진급해야 하지 않나?”

    “그 당연한 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가혹한 수강난이도와 학사일정에 시달리니까.”

     

    자쿠는 꽤나 의외의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촉박한 2학년이면서 1학년을 정보조사원으로 써먹을 정도로 당신은 여유가 있군.”

    “원래부터 인챈트에는 일가견이 있었고 계약의 신을 믿는 신도이기도 하니까. 다른 학생들이라면 수지가 안 맞는 행동도 내게는 짬짬이 할 만한 수준이지.”

     

    이유야 어쨌든 평상시에 강의진도와 과제를 따라가기도 벅찰 정도라면 계약사기 따위를 해먹을 여유도 없다. 정말 인정하기는 싫지만 벨로카시오 선배는 나름 2학년 중에서도 모범생, 진도를 잘 따라가는 성적우수자에 속한다는 것!

    자신은 그렇게까지 여력이 남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쿠 입장에선 배알이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얘기를 듣고 당신을 돕는 데 귀한 내 시간을 할애할 것 같나?”

    “훗. 그래야만 할 거다. 계약의 금지조항에 의거하여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면 너는 포인트를 물어내야 한다. 아까운 포인트를 무려 1만 포인트나 뱉어내고 싶지는 않겠지?”

    “…”

     

    1만 포인트.

    오크노디같은 포인트부자에게는 흔쾌히 내어줄 수 있는 푼돈이지만 자신처럼 한 끼 식사도 아끼는 여건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거액이다.

    하지만 도저히 갚을 수 없어서 당장 학생회에 달려가 구조를 요청할 정도는 아니다.

    아마도 학생회에서도 1만 포인트 정도는 남이 주워달라는 물건을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인생교훈 삼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할 수준.

    제대로 된 도움을 얻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군. 당장 알아봐주지.”

     

    하지만 곱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

    자쿠의 음험한 마음을 모르는 벨로카시오는 접선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1학년은 다 괴물 아니면 또라이밖에 없나…?”

     

    약속한 접선시간.

    불과 48시간 만에 자쿠와 재회한 벨로카시오는 사색이 되었다.

     

     

    * * *

     

     

    벨로카시오의 계약에는 몇 가지 제약이 따라붙었다.

     

    ━━━

    □벨로카시오의 계약

    3. 제약.

    ①비밀엄수 : 계약에 당했다는 사실을 타인에게 알려서는 안 된다. 이를 위반할 시, 즉시 위약금을 지불한다.

    ②성실의무 : 하루 중 1시간 이상을 조사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으면 변제의지가 없다고 판단하여 위약금을 지불한다.

    ③위약금지불 : 위약금은 1만 포인트이며 포인트를 지불하면 계약상의 의무는 사라진다.

    ④성과주의 : 일주일 간 조사의 성과가 미비할 시, 위약금을 즉시 지불한다.

    ⑤강제대출 : 소지 포인트가 부족할 시, 즉시 학생회 신용대출을 받아 변제한다.

    ━━━

     

    비밀엄수. 성실의무. 위약금지불. 성과주의. 강제대출. 가볍지만 무시할 수 없는 제약들이 잘 맞물린 고리처럼 이어져있다.

     

    ‘역시 제약은 최소한도에 불과해. 이 정도면 학생회도 묵인했겠군.’

     

    3학년과 4학년이 주축으로 이루어진 학생회.

    존재 자체는 간간히 들어봤지만 제대로 된 녀석들은 아닐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종이비행기의 면적이 작은 탓에 돋보기로 들여다봐야 할 정도로 깨알 같은 크기의 글씨로도 고작 이 정도에 불과했지, 대자보처럼 커다란 종이에 썼으면 얼마나 상세하고 숨 막히는 계약서가 되었을지 상상만으로도 아찔한 구석도 있다.

     

    ‘뭐가 됐든 벨로카시오 선배에게도 지금 이상의 <고점>이 존재한다는 말이군. 그런 계약에 당한다면 정말 자살이 마렵겠어.’

     

    그래도 종이비행기 계약서는 그 정도는 아니다. 자쿠는 학생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대신에 <오크노디와 놀아주는 조직>을 먼저 찾아갔다.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면 분명 수상함을 느끼고 계약에 당했음을 알아차릴 녀석이 있을지도 모르지.’

     

    자쿠는 조직의 휴식처에서 인사를 건네는 다른 장학생들에게 다가갔다.

     

    “반갑군. 다들 과제는 잘 되어가나?”

     

    장학생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서로를 돌아보며 경악했다.

     

    “저 싸가지 없는 자쿠가 인사를 했어?”

    “어디서 머리라도 다친 거 아니야?”

    “…”

     

    평소와 다른 모습.

    어울리지 않는 친절함을 어필한 것은 좋았지만 형언할 수 없는 꺼림칙함을 느낀 장학생들은 자쿠를 피해 즉시 휴게실을 떠났다.

     

    ‘쯧. 눈치 빠른 녀석들 같으니라고.’

     

    다소의 친분이 있는 상대가 아니면 도와줄 의지 자체가 없겠군.

    자쿠는 몇몇 조직원들이 땀 흘리며 수련에 정진하는 훈련실을 찾아갔다.

     

    “실력이 많이 늘었군. 내 수준으로는 성장한 너를 감당할 수 없겠어.”

     

    평소 타인을 향한 칭찬 따위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내뱉지 않던 자쿠의 노골적인 칭찬!

    그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발언에 사방에서 시선이 쏟아졌다.

     

    “불쌍한 녀석. 교수님한테 잔뜩 깨졌구나. 그래서 실의에 찬 거지?”

    “그 맘 이해해. 열심히 준비한 과제가 까였을 땐 진짜 울고 싶었지.”

     

    샌드쿠커와 로지니의 따스한 위로에 자쿠는 괜히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의도치 않게 굉장히 가슴에 와 닿는 위로를 받기는 했지만 그런 걸 바란 적은 없다고!

     

    “자쿠. 이런 날은 훈련하지 말고 푹 쉬어. 하루쯤은 기분전환을 해야 하는 날도 있는 거야. 같이 10km 달리기나 하면서 쉬자!”

    “…그걸 쉰다고 할 수 있는 거냐?”

     

    모브의 같잖은 위로에 정신이 번쩍 든 자쿠.

    그는 계획을 바꾸었다.

     

    “너희들. 혹시 카멜라라는 녀석이 벌이는 계약사기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

    “오크노디가 내년까지 묵혀두는 우량주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지.”

    “…”

     

    첫 대답부터 불길하기 짝이 없다.

    명백히 건드려서는 안 되는 지뢰 느낌이 팍팍 풍기는 모브의 대답에 자쿠가 화제를 돌리려 시도했지만 수련분위기가 끊긴 샌드쿠커가 떡밥을 물었다.

     

    “그놈들 뭐 있어?”

    “녀석들이 펫계약이라는 걸 하는데 멍청하게 당하지 말라고 충고해준 적이 있었거든.”

    “펫 계약?”

    “멘토마냥 공부나 과제를 도와주는 대신, 도움을 준만큼 대가를 강제로 요구할 수 있는 계약서를 쓴다는 모양이더라고.”

    “뭐야. 굉장히 건전한 계약이잖아. 난 또 견습마법사 마탑입주계약서마냥 연 수익의 85%를 마탑에 지불한다는 계약이라도 쓰는 줄 알았네.”

     

    마법사는 그런 계약을 하고 다니는 건가!?

     

    “조건이 많이 후하네. 적색마탑은 90%였는데.”

    “너무 많지 않아?”

    “대신 우리는 무상급식을 배급받거든.”

    “어쩐지. 그럼 인정이지.”

     

    샌드쿠커와 로지니의 눈물 나는 이야기에 모브가 의심을 보였다.

     

    “그럼 펫 계약서에도 수익분배가 붙어있을까? 대놓고 ‘펫’이라고 했으니까 굉장히 극악한 조건이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드는데.”

    “그렇겠지? 어차피 그런 수상쩍은 계약에 응한 바보들이니 당해도 싸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긴 하지. 5%나 10%의 이득도 챙기지 못하는 바보들은 당해도 싸.”

     

    마탑에서의 불공정계약에 익숙해진 나머지, 자신들도 거기서 거기라는 사실은 모르고 펫계약자들을 흉보는 샌드쿠커와 로지니!

     

    “너무 그러지 마. 모르고 당했을 수도 있잖아. 오히려 이건 기회일지도 몰라.”

    “기회?”

    “녀석들을 우리가 도와주는 거야.”

     

    자쿠도 딴에는 계산이 있었다.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녀석이 갑자기 정의감 넘치는 소리를 하면 정말 대놓고 수상하게 보이겠지.

    누가 봐도 정신지배를 당하거나 원치 않는 행동을 강제로 하고 있다는 의심이 들고 머지않아 계약에 끌려 다니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을 것이다.

    우회적으로 계약 사실을 알리려는 자쿠의 시도!

    그의 계산된 정의감에 모브가 손을 덥썩 잡았다.

     

    “젠장, 믿고 있었다고 자쿠!”

    “?”

     

    샌드쿠커가 자쿠의 어깨를 다독였다.

     

    “너, 알고 보니 엄청 괜찮은 녀석이었구나?”

    “??”

     

    로지니가 마법사모자의 챙을 만지작거리며 훗 하고 웃었다.

     

    “제법이네. 오크노디는 나중에 이용해먹을 생각이었지만 그 잠깐을 참는 것도 네 정의심은 견딜 수 없다는 거지? 좋아. 이번 한 번만 특별히 도와줄게.”

    “???”

     

    졸지에 넘치는 정의감을 주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자쿠를 필두로 3인방이 오크노디를 찾아갔다.

    자쿠는 식은땀을 가득 흘렸다.

    일이 왜 이렇게 되었지?

    아니, 아직은 괜찮아.

    오크노디는 놈들을 나중에 이용할 작정이라고 했지.

    오크노디가 말려주면 이 황당한 짓거리도 당장 끝날 수 있어.

     

    “오크노디. 자쿠의 용기를 봐서라도 카멜라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도록 싸우는 걸 허락해줘!”

     

    모브의 외침에 오크노디가 시원스레 대답했다.

     

    “음, 묵혀뒀다가 챙겨먹을 수 있었던 보상이 아깝긴 하지만 파파의 저택에서 잔뜩 땡겨 먹은 것들도 많으니 양보하죠 머. 저도 도와드릴게요!”

    “!?”

     

    자쿠의 본의 아닌 정의감 때문에 <카멜라사단>과 <오크노디와 놀아주는 조직>의 조직항쟁이 시작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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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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