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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7

       탁!

       

       “햐아….”

       

       취한다.

       

       프레이는 자신의 주량을 잘 안다. 술을 많이 마셔본 사람이라면 그 정도는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은 취했고, 정신은 몽롱한 상태이다.

       

       이쯤에서 멈추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 정신건강이든, 육신의 건강이든. 알코올이 몸에 해롭다는 걸 누가 모를까.

       

       그런데도, 프레이는 병나발을 하나 더 만들었다.

       

       꿀꺽꿀꺽. 달큰하고도 따뜻한 주정을 목구멍으로 흘려 넘긴다.

       

       “캬하아─!!”

       

       얼굴이 얼얼하다.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렇지만 멈출 수가 없다.

       

       한 병을 더 비워내자 평소 주량을 아슬아슬하게 넘겼다. 진전인가, 퇴보인가. 술은 마실수록 늘어난다고는 하지만, 애주가라면 무리를 해야만 그 양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프레이는 술잔을 털어내며 탁자에 몸을 파묻었다.

       

       “이봐, 아가씨. 그렇게 마시다가 탈 나!”

       “됴용히 해애……!”

       “어이쿠.”

       

       프레이는 손을 휘적거리며 주인장을 쫓아냈다.

       

       아무래도 좋았다. 오늘따라 그리운 사람, 잊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에테르 보구 싶다아….”

       

       여우의 것처럼 생긴 귀를 꼼지락거리며 한숨을 토해낸다. 꼬리도 살랑거려 본다. 의식 반, 무의식 반이다.

       

       이렇게 귀와 꼬리를 드러낼 수 있는 것도 다 에테르 덕분이다. 에테르가 없었더라면 아직도 수인족 차별이 대놓고 있었겠지.

       

       물론 모든 사람의 인식이 바뀐 건 아니지만, 프레이는 괜찮았다.

       

       구제국은 신분주의 사회임과 동시에 능력주의 사회였다. 신분도, 능력도 출중해야 대접받는다. 신분이 천한데 능력이 고만고만하거나, 혹은 수인족처럼 환대받지 못하는 종족이라면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제국이 몰락하면서 신분주의는 사라지고, 능력주의만 남았다.

       

       사실 유능한 사람은 어느 사회에서나 대접받는다.

       

       “후아….”

       

       프레이는 유능했다. 정말, 아주 많이 유능했다.

       

       틸레트 아카데미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 지금도 꾸준히 극상위권에 머무르는 천재.

       

       인간이 요호를 무시할 때는 보통 ‘짐승처럼 멍청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런데 프레이는 대다수 인간보다도 똑똑하다. 상식이 결여되어 있거나 얼빠진 소리를 한 적도 왕왕 있지만, 마법에 관해서라면 매우 영명하다.

       

       “에테르 보구 싶다고오!”

       

       프레이는 홧김에 토트백에서 마전지를 꺼냈다. 오늘 해야 할 과제였다.

       

       “에테르랑 같이 하면, 이런 과제 아무것도 아닌데….”

       

       씩씩거리며 스크롤을 사각거렸다.

       

       프레이는 이런 식으로 술에 취하면 공부를 했다. 아니, 원래는 이러지 않았는데 틸레트에 입학한 이후로 이렇게 됐다. 친구들과 술자리만 가졌다 하면 마법 얘기만 했던 것이 버릇으로 스며든 것이다.

       

       사각사각.

       

       “아우우….”

       

       한 장을 새길 때마다 늑대 수인처럼 울어댄다. 이건 옛날부터 있었던 술주정이다.

       

       그렇게 위스키와 눈물을 같이 홀짝이고 있을 때였다.

       

       “윽, 술 냄새 봐. 대체 얼마나 퍼마신 거야?”

       

       흐릿한 시야 사이로 한 소녀의 모습이 들어왔다.

       

       보랏빛이 살짝 묻어있는, 푸른색 머리카락의 소녀였다. 그녀는 코를 잡고 눈살을 찌푸리며 탁자 앞의 술병을 흔들었다.

       

       “하나, 둘, 셋, 넷…. 여덟?”

       

       오늘 마신 독주만 여덟 병에 이른다.

       

       “이 여우가 미쳤구나.”

       “아우우….”

       

       주량을 넘어서서 그런가? 사람 말이 안 나온다. 이래서야 그냥 들짐승과 다름이 없다.

       

       프레이는 개다래나무에 취한 고양이처럼 헤실거렸다. 로즈마리는 그런 프레이를 보며 혀를 쯧쯧 차댔다.

       

       “언니, 얘 좀 어떻게 해 봐.”

       “어떻게 할 것도 없어. 과제에 치여 사는 평범한 대학생이잖아.”

       “아니, 술집에서 이러면 민폐잖아! 언니가 책임지고 이 요호한테 예절을 가르쳐 주라고!”

       

       로즈마리가 따지듯이 물었다. 곧 로즈마리의 대화 상대가 허어, 하는 한숨을 흘렸다.

       

       그녀는 뒤뚱거리며 프레이 곁으로 다가왔다. 독한 위스키 냄새 사이로 산뜻한 청량감이 감돈다.

       

       “…아우?”

       

       개가 되어있었던 프레이는 그쯤에서 정신을 차렸다.

       

       요호족의 청각과 후각은 인간보다 수십 배는 예민하다. 특히 후각이 그러하다. 요호족은 일반적인 개과 동물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냄새로 피아를 구별한다. 특히 중요한 이의 냄새는 확실히 기억하는 편이다.

       

       그런 프레이의 후각 센서에 들어온 것은 그리운 냄새였다. 

       

       프레이는 코를 킁킁거렸다. 술 때문이 아닌 듯하다. 이제는 맡을 수 없는 내음이 났다.

       

       천천히 고개를 내린 프레이.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작고 동글동글한 인상의 금안족 소녀가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에,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녀였다. 허리춤에 양손을 올리고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야, 술 작작 퍼마셔.”

       “…….”

       

       프레이는 유리창을 닦는 것처럼 눈을 매만졌다.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나?

       

       아니면 유령을 보나? 내가 사후세계에 있는 걸까?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설마 간경화 같은 걸로 죽은 건 아니지?

       

       “내말 듣고 있냐고!”

       

       소녀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에 알딸딸한 기운이 머릿속에서 달아났다.

       

       눈을 슴벅거린 프레이의 시각이 차차 정상으로 돌아온다.

       

       “어? 어? 어어?”

       

       프레이는 의자에서 폴짝 내려왔다.

       

       “……에테르?”

       “그래, 나다. 노랭이 에테르.”

       

       설마, 이럴 리가 없는데.

       

       이건 꿈일지도 몰라. 그래. 여기서 술을 퍼마시다가 그대로 꿈나라에 온 거야. 뇌는 사람의 기억을 조합한 값을 꿈으로 보여준다고 했어. 그러니까 이건 꿈일 가능성이 아주아주 높은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냄새가 너무 선명하잖아. 소리 들리는 것도 명쾌하고.

       

       “우리 꼬맹이, 그동안 잘 지냈어?”

       

       눈앞의 소녀가 피식 웃었다.

       

       얼굴이며, 말투며, 사용하는 단어까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너, 너, 너어…! 내가 꼬맹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프레이는 참지 못하고 에테르에게 달려들었다.

       

       

       **

       

       

       “어디갔따가이제돌아온거야나너무보고싶었어흐어엉…!”

       

       프레이는 나를 껴안고 청승맞게 울어댔다. 이게 사람의 울음이냐, 짐승의 울부짖음이냐.

       

       로즈마리를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였다. 어째 체구가 작은 애들은 하는 짓도 어린애스러운지.

       

       우는 어린애를 다루는 법은 간단하다. 바로 울음이 멈출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다.

       

       “아, 진짜…. 이게 무슨 민폐야.”

       

       부끄러움은 로즈마리의 몫이었다. 로즈마리는 우리 둘을 술집 바깥으로 인도하여 울게 시켰다.

       

       기나긴 응애응애가 끝나자 접혀 있던 프레이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오랜 기간 프레이를 관찰했던 내 추측이 맞다면, 이건 짐승 모드에서 인간 모드로 돌아왔다는 뜻이다.

       

       정신을 차린 프레이는 내 몸을 구석구석 훑더니 응당 해야 할 질문을 했다.

       

       “너 몸이 왜 이래?”

       “말하자면 긴데.”

       

       나는 정령이 됐고, 아기부터 시작이라 지금은 이런 몸이다. 나는 전후 사정 다 자르고 축약해서 그리 알려주었다.

       

       “아, 이해했어!”

       

       프레이는 눈알을 뒤룩 굴렸다.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은데.

       

       “잠깐만 일어서 봐.”

       “갑자기 왜?”

       “잠깐 일어서 보라니까! 중요한 일이야!”

       

       그 말에 의심을 품으면서도 일단은 일어섰다. 프레이도 덩달아 일어났다.

       

       “자, 여기 이렇게 하고 서 있어 봐. 그래, 거기서 가만히 있는 거야!”

       

       그래서 무얼 하려나 봤더니, 프레이는 내 키와 자신의 키를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내 기억에 프레이는 키가 140cm 중반이었다.

       

       반면에 지금의 나는 100cm를 겨우 넘기는 애새끼. 

       

       프레이도 이 점을 알았는지 희미하게 웃었다. 아니, 웃는 것보다는 입꼬리를 말아올린다고 표현하는 게 알맞았다.

       

       “지금은 내가 너보다 크네?”

       

       프레이가 내 머리를 툭툭 두들기며 킥킥거렸다.

       

       “자, 이제 누가 꼬맹이지?”

       

       그동안의 설움을 복수하려는 듯 기고만장해진 프레이.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오늘부터 나를 언니라고 부르도록, 엣헴!”

       

       “네, 알겠어요. 프레이 언니.”

       

       물론 나는 이 녀석과는 다르게 2년이 지나면 성령이 된다. 원래 키까지 큰다고.

       

       “오냐오냐! 나를 언니로 모셔야 해. 알았지? 히히히!”

       

       불쌍한 프레이.

       

       지금이라도 즐기게 해 주자.

       

       “우리 꼬맹이, 언니가 한 턱 쏠게! 적셔!”

       

       이날 프레이는 날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술 몇 잔을 마시고 뻗어버렸다. 정령족이 되어서도 주량은 그대로였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었다.

       

       아무튼, 프레이까지 만났겠다. 이젠 몇 명을 제외하면 더는 만날 사람이 없었다.

       

       “…우윽.”

       “언니, 괜찮아요?”

       “잠깐 정령계에 갔다 올게.”

       “가서 푹 쉬고 오세요.”

       

       나는 로즈마리와 잠시 떨어져 정령계로 돌아왔다.

       

       그래도 이런 몸이라고, 현계보다는 정령계가 편하다. 마수였을 시절에는 심계에 발을 내디디는 것도 고역이었는데.

       

       “자. 정리해 보자.”

       

       이제 몇 가지 남지 않았다.

       

       친구들과도 재회했고, 세상은 평화를 되찾았다. 엘프와의 일은 적당히 중재할 수 있는 범위 내라 상관없다.

       

       적어도 이곳, ‘에테리아’에는 근심이 덜할 것이다.

       

       “끝이구나.”

       

       이제 무얼 해야 하나.

       

       정령이 되었어도 학자인 건 변함없다. 애초에 내 정체성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물리학자였다.

       

       지금도 그렇다. 마법을 전부 배울 이유는 사라졌지만, 공부는 계속하고 싶었다. 겸사겸사 후학도 기르고.

       

       내일, 클라이스와 헤를라인 선생님을 만나면 얼추 정리는 되겠지. 그때까지 잠시 몸을 쉬어두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 날.

       

       “테르야.”

       

       로즈마리의 몸을 빌려 현계에 현현한 나는 예상치 못한 제안을 받고 말았다.

       

       “나 좀 도와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 에피소드를 끝으로 후일담이 끝날 예정입니다.

    본편 완결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후일담까지 끝입니다. 사실 후일담이라고 해봤자 주인공이 현세의 사람들과 만나 행복하게 사는 과정을 그리는 것이 전부였지만요.

    후일담 이후로는 정사 외전 몇 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사임에도 불구하고 ‘후일담’이 아닌 ‘외전’인 이유는 주인공의 시점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외전에서는 작중 주요 등장인물의 과거, 혹은 먼 미래를 담을 예정입니다. 과거라면 (과거), 미래라면 (미래)라고 외전 앞에 써놓을 계획입니다.

    원래 이르면 2월, 빨라도 4월에 외전까지 전부 적고 싶었지만 작품에 애정이 생겨서 쉽게 보내주질 못하고 있었어요.

    정말, 정말로 6월 이내엔 끝내려고 합니다.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AiBi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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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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