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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8

       입고 온 옷이 걸레짝이나 다름없는 것은 나와 마찬가지라, 나는 일단 집에 있던 내 옷을 입혔다.

        

       아무래도 남자와 여자의 체격 차이 때문인지 여러모로 헐렁하고 펑퍼짐했지만 이건 이거대로 꽤 어울리긴 했다. 이대로 바깥을 돌아다니는 건 조금 그럴 것 같기는 했지만.

        

       특히 앨리스 쪽이.

        

       “우와, 이것 좀 봐! 언니, 이건 뭐야? 안에 원판 같은 게 들어있는데?”

        

       “클레어, 설명해줄 테니 일단 여기 좀 앉아봐요.”

        

       어느새 내 게임 컬렉션을 집어다 열어보고 있는 클레어에게 그렇게 말했다. 클레어가 내 물건을 함부로 다룰 일은 없으니 크게 걱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용도를 모르고 만지는 시점에서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어, 잠깐만. 여기 그려진 건—”

        

       아니, 잠깐, 그건!

        

       클레어가 다른 패키지를 꺼내 드는 것을 보고 나는 있는 힘을 다해 클레어에게 달려들어 그 손에 있는 것을 빼앗았다. 다행히 클레어가 손에 힘을 꽉 주고 있었던 건 아니라 쉽게 빼 올 수는 있었다.

        

       클레어가 꺼내 들었던 것은, 내가 이쪽 세상에서 플레이했던 아제르나 전기의 최신작이었다. 표지에는 당연히 게임의 중요 인물들이 대부분 그려져 있었다. 그것도 주로 히로인 위주로.

        

       당연히 클레어와 앨리스도 그려져 있었고.

        

       삑.

        

       위잉—

        

       “오, 켜졌다. 켜진 거 맞지?”

        

       옆에서 기계 켜지는 소리가 들려서 황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클레어가 내 콘솔 게임기를 켜고 있었다. 하필이면 버튼이 터치식이라서 손만 대도 켜지는 모양이다.

        

       조금 전에 전기세를 내고 돌아왔기 때문일까? 전기가 끊어졌던 방에 전기가 다시 들어온 모양이다. 아니, 이게 이렇게 빨리 들어온다고? 보통은 시간이 더 걸리지 않나?

        

       일단 그런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은 둘째치고, 일단은 틀어지는 게임기가 더 시급했다.

        

       계정 로그인 화면 때문에 바로 게임 아이콘이 뜨지는 않겠지만, 내 기억으로는 이 안에 들어있는 게임 디스크는 아제르나 전기의 이번 세계관의 첫 작이었다. 최신작까지 플레이한 뒤 다시 처음부터 다시 플레이해보며 떡밥이라도 찾아볼 생각에 넣어둔 것이었다.

        

       그리고 콘솔 게임기 특성상 로그인을 하는 순간 마지막으로 플레이하던 게임 아이콘이 선택된 채 보이고, 보통 그러면 바탕에 게임 패키지 일러스트가 대문짝만하게 보이는 법이다.

        

       나는 게임기 멀티탭 전원을 내려버렸다. 모니터와 게임기 전원이 동시에 꺼지며 들어와 있던 화면이 나가버렸다.

        

       “일단 두 사람 다 자리에 앉아주시죠.”

        

       “언니는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알고 있는 거야? 이것저것 만지는 게 왠지 전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맞아. 생각해보니 그러네. 엄청나게 수상해. 나갔다가 들어오는 중이었다는 것도 그렇고.”

        

       내가 들고 들어온 비닐봉지 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앨리스가 말했다. 그 얼굴에는 재미있다는 표정이 숨길 수 없이 드러나 있었다.

        

       “일단, 자리에, 앉아주시죠.”

        

       “이런 맨바닥에?”

        

       “원래 이 나라에서는 집에 들어갈 때 신발을 신지 않고, 맨바닥에 앉아서 생활합니다.”

        

       그리고 너희들 그 맨바닥에 이미 앉아있잖아. 앉은 상태에서 물어봐야 무슨 의미가 있는데? 이거 그냥 괴롭히고 싶어서 물어보는 거지?

        

       내가 인내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설명하는데, 클레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아카데미에서 교사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학생의 태도였다.

        

       “……클레어.”

        

       내가 클레어를 가리키며 말하자, 클레어는 손을 내리며 물었다.

        

       “맨바닥에서 생활하는데, 방바닥에 왜 이렇게 먼지가 쌓여있어?”

        

       “……그건 제가 이쪽 세상에서 사라진 지 시간이 꽤 흘렀기 때문입니다.”

        

       번쩍.

        

       이번에는 앨리스의 손이 올라갔다.

        

       앨리스는 이렇게까지 열정적으로 손을 들고 대답하는 학생이 아닌데.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선생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굳이 나서서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클레어한테 옮은 건지, 아니면 그냥 이 상황이 재미있는 건지.

        

       “앨리스.”

        

       내가 한숨을 꾹 참은 채 말하자, 앨리스는 손가락으로 불이 들어온 전등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건 뭐야?”

        

       “……LED 전등입니다.”

        

       원래는 형광등이었는데 집주인 허락받고 바꿔 달았지.

        

       “불이 꽤 일정하게 나오네. 마력석은 아닌 것 같은데. 제국에도 도입하면 좋을 것 같은데, 가능하려나?”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의 전문가들을 모두 데리고 간다면 수십 년쯤 시간을 투입해 가능하게 만들 수는 있겠지. 그런데 아마 그 세계에서 전기를 이용하는 법을 연구하는 사람이 나오는 쪽이 차라리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클레어.”

        

       다시 클레어의 손이 불쑥 올라가길래 나는 반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다시 클레어를 불렀다.

        

       “그래서 여기는 어디야? 우리가 살던 세상은 아니지? 동쪽 끝에도 이런 나라가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어.”

        

       “맞아. 이런 기술이 있었다면 우리 쪽으로 수입되지 않았을 리가 없겠지.”

        

       전등과 콘솔을 번갈아 보고는 앨리스도 클레어의 말에 동의했다.

        

       돌고 돌긴 했지만, 드디어 내가 꺼내고 싶은 이야기가 나왔다.

        

       기껏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는 말했다.

        

       “이곳은 제가 원래 살던 세상입니다.”

        

       “원래 살던 세상?”

        

       클레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앨리스, 당신은 놀라지 않습니까?”

        

       “글쎄, 이쪽으로 넘어오는 순간에 그런 것 같다고 느끼고는 있었으니까. 애초에 여신 같은 존재가 얽힌 네가 평범하게 ‘우리 세상에서 태어났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상했고.”

        

       그렇다면 이야기가 빨라서 좋다.

        

       “이 세계는 원래 제가 지내던 세상입니다. 그 질서의 여신이라는 존재 때문에 제가 당신들의 세상으로 넘어가게 되었던 거고요. 그리고 제가 승리하게 되자, 여신은 그것에 대한 보복인 건지, 아니면 그래야 했던 것인지 저를 이쪽 세상으로 되돌려보냈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하면 할수록 뭔가 잊은 것 같아서, 설명하던 말이 점점 느려졌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쩌다 이쪽으로 넘어오게 되셨습니까?”

        

       그리고 겨우 잊고 있던 것을 떠올리고 그렇게 물었다.

        

       내가 이쪽으로 온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저쪽 세상과 이쪽 세상의 시간이 어떤 식으로 얽혀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옷이 걸레짝인 것을 보면 전투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왔을 것이다.

        

       “아, 그게.”

        

       클레어가 조금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언니가 갑자기 사라진 뒤에 어떻게든 따라가려고 하다가, 아직 품 안에 지보가 있다는 걸 깨달아서.”

        

       오.

        

       그렇다는 건 지보에 아직 힘이 남아있다는 뜻인가?

        

       내 생각을 읽었다는 듯 바로 이어서 앨리스가 입을 열었다.

        

       “맞아. 너희들이 지보를 이용해서 세상을 깨어버렸던 것처럼, 클레어가 바로 지보를 꺼내서 널 따라가려고 했지. 나는 그런 클레어한테 손을 댔다가 그대로 이쪽으로 넘어오게 된 거고.”

        

       앨리스의 말을 듣는 사이에 클레어가 일어나 벽에 걸린 자기 옷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꺼낸, 아직 완성되지 못한 지보에서는 과연 빛이 희미하게 나오고 있었다.

        

       “다시 돌아갈 만한 힘이 있을까요? 그래야 할 텐데요.”

        

       “…….”

        

       내 말에, 클레어와 앨리스가 갑자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휴우, 하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왜 그러십니까?”

        

       “어, 그게.”

        

       앨리스는 내 시선을 살짝 피하면서 말했다.

        

       “솔직히…… 이쪽으로 오고 나서 잠깐 그런 생각을 했거든. 네가 이쪽 세상에서 계속 지내고 싶어 할 거라고.”

        

       “…….”

        

       나는 고개를 들어서 내가 사는 집을 휘 둘러보았다.

        

       혼자 살기에 좁은 곳은 아니었다. 직장 때문에 임시로 전세 낸 집이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마냥 살기 안 좋은 곳은 아니었다. 안도 깨끗했고. 여름에 창문 열어두면 바퀴벌레가 기어들어 온다는 게 단점이었지만.

        

       “아무리 봐도 제가 지내던 방이 훨씬 좋아 보입니다만.”

        

       하지만, 그랬다.

        

       내가 제국에서 살던 방은 이곳보다 훨씬 더 크고 좋다. 벌레가 들어올 일도 없고, 돈도 많아서 뭐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바로 할 수 있다.

        

       뭐, 비디오게임을 하지 못한다거나 하는 불편함이 있기는 했지만, 그쪽에서도 영화산업이 막 발전하고 있었고, 내가 살던 이 세계가 기술력이 순식간에 발전해온 것처럼 그 세계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오히려 오버 테크놀로지를 생각하면 더 빠를 수도 있고.

        

       혹시 모르지.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스타●즈 같은 작품이 나올지도 모르고.

        

       내 대답에 앨리스는 피식 웃었다. 아니, 농담 아닌데.

        

       “일단 여기서 며칠 정도 지내며 추이를 살펴보죠. 저도 이쪽에서 계속 있을 생각은 없으니까요.”

        

       “좋아!”

        

       내 말에 클레어는 활짝 웃으며 외쳤다.

        

       “여기서 지내는 동안 언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고 싶어!”

        

       “그건 나도 궁금하네.”

        

       두 사람의 기대감으로 가득한 눈이 나를 보았다.

        

       “…….”

        

       나는 그런 두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방 안에 있는, 오타쿠나 살 법한 수많은 도서와 게임과, 피규어, 굿즈 등을 떠올렸다.

        

       ……망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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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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