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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8

        

       사람들은 주술사를 보고 기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도 주술사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은 일반 사람들의 상식과 동떨어진 것들이 있었고, 그것을 본다면 기인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러한 기행이 나올 수 있는 것에는 주술사가 뚜렷하게 세운 그들만의 사상이, 정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성의 앞에 있는 남자는 그러한 주술사의 사고방식 대신에, 일반인…. 그것도 공무원의 사고방식이 강하게 자리잡혀 있었다. 그냥 공무원도 아니고, 엘리트주의와 보신주의에 찌들어있는 고위 공무원 말이다.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앞서 진성은 그것을 교만이라고 말하기는 했으나, 그것이 과하지만 않다면 지도자로서의 미덕이 되며, 자만심이 아닌 자신감의 영역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주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진성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엘리트로서 사람들을 이끈다?

       자신의 집단, 소속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것이 진성에게 도움이 될 것이 뭐가 있는가?

         

       박진성은 이방인이다.

         

       소속이니 집단이니 떠들면 이익은커녕, 불이익을 받아야 하는 처지다.

       일본인 특유의 배타적인 성향에 더해서, 일본이 극도로 경계하는 외국의 주술사라는 입장까지 더해진다면…. 당장 자위대를 동원해서 진성을 습격해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그렇기에 진성은 남자를 조각하였다.

       남자에게 분명히 이득이 되지만, 그 자신에게도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개인주의적 성향이 매우 강한, 일반적인 주술사로서의 자각을 일깨워준 것이다.

         

       자신만의 사상.

       자신만의 사고방식.

       자신만의 규칙.

         

       무소의 뿔처럼 우직하게 혼자서 나아가며, 자신이 만든 세계 속에서 오직 제 뜻대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주술사의 방식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그 누구도 손해를 보지 않는 방식이다.

         

       진성은 집단에 매몰되어 정체성을 잃어 부품이 된 주술사의 눈을 뜨게 해주는 것이니 남자에게 이득밖에 되지 않으며, 진성은 그러한 남자 덕분에 알아서 이득을 주울 수 있으니 그 또한 이득이 아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윈-윈(Win-Win)이었다.

         

       “나라라는 것은 허상이다. 실재하는 듯 보이지만 허상이다. 앞서 말하였듯 존재하기 위해 조건이 필요한 것은 실존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나라를 이루고 있는 존재들, 사람이다. 나라는 그들의 인식과 합의와 약속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그들이 사라지거나 그들의 인식이 바뀐다면, 약속이 깨지고 다른 약속이 그 자리에 들어서게 된다면 나라라는 허상은 다른 허상으로 대체되게 된다.”

         

       그렇기에 진성은 조각했다.

         

       “붓다께서 유언으로 남기시기를,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이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하였느니라. 그런 것을 두고 ‘절대로 부서지지 마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

         

       남자가 가치 있다고 여겨왔던 것을.

       충분한 교육과 함께 습득한 ‘상식’을.

         

       모두 그가 원하는 형태로 조각했다.

         

       “나라 역시 마찬가지이니라. 영원불멸할 것 같은 합의도 언젠가는 빛이 바래게 되고, 그 자리에는 다른 것이 들어서게 된다. 천 년 전을 생각해보라. 수백 년 전을 생각해보라. 야만이 가득하고 수없이 쪼개졌던 나라가 이렇게 하나로 합쳐지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그때 지금의 미래를 상상할 수 없듯, 지금의 우리도 미래를 상상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나라는 허상이다. 중요한 것은 나라를 이루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나와 같은 존재이며, 자네와 같은 존재로다.”

         

       국가에 대한 충성에 망치를 휘둘러 금을 만들었다.

         

       “옛적 서양에서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구별이 엄격하였다. 지배층은 자신들의 몸속에 푸른 피가 흐른다고 말하고 다녔고, 자신에게 부려지는 더럽고 미천한 피지배층 사람들과는 존재 자체가 다르다고 여겼다. 하지만 묻는다. 진정으로 그러한가? 단두대에 걸려서 목이 잘린 왕의 목에서 나온 피는 과연 푸른색이었는가? 꼬챙이에 꿰여서 고통스럽게 죽은 귀족의 칠공(七孔)에서는 푸른 피가 줄줄 흘러나왔는가? 그렇지 않다. 그들의 몸에서는 붉은 피가 나왔고, 떠들고 다니던 것과 달리 단 하나도 피지배층과 다르지 아니하였다.”

         

       “….”

         

       “사람과 사람 사이는 유별나지 않으며, 거기에는 위아래도 없느니라. 태어났을 때 귀한 자가 몸에 보석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듯이, 미천한 자가 악취를 풍기며 태어나지 않듯, 생명 그 자체의 무게는 동등하다. 다만 인간이, 사회가 거기에 무게를 붙이고 옷을 갈아입힘으로써 다르게 취급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교만을 버리기 위해서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자네와 다른 이의 생명이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며, 자네는 그저 재주를 더 잘 부릴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선민의식을 부수기 위해 말의 폭력을 행사하였다.

         

       “선 곳에 따라 시야가 달라지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재주를 가진 자가 귀히 대접받는 것 역시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을 때 마음속에 교만이 자라나 다른 사람과 나를 엄격히 구별하게 만든다.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서 있는 사람을 낮게 보고, 자신보다 재주가 없거나 재주가 모자란 자를 천하게 여기며 자신을 높게 만든다. 아래에 있는 사람이 발을 옮겨서 위에 올라가면 같은 높이에도, 더 높은 높이에도 올라갈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재주 없는 이가 재주를 익히고, 재주가 모자란 이가 재주를 발전시킬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그것이 바로 교만의 폐해이니, 이는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 것과 다르지 아니하니라.”

         

       남자가 귀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자각시켜주었고, 한 사람에 지나지 않음을 말했다.

         

       그렇게 진성은 남자에게 깨우침을 주었다.

       태생부터 다른 존재도 아니요, 선택받은 존재도 아니며, 귀한 것이 당연한 존재도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것을 반복한다.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시간은 많았다.

         

       새타니를 이용해 만든 꿈은 현실보다도 훨씬 느리게 흘러갔으니까.

       적어도 시간에 쫓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 * *

         

         

         

       반복.

       반복.

       또 반복.

         

       그리고 그 반복의 끝에서 마침내.

         

       “…시야가 탁 트인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군요.”

         

       남자는 개안(開眼)했다.

         

       진성이 원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남자는 경계심이 하나도 드러나지 않는 눈으로 진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고마움과 의아함이 함께 혼재해 있었다.

         

       남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말입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탄 것 같은 인생을 보내왔습니다.”

         

       그가 입을 열어 처음 꺼낸 이야기는, 자신에 관한 이야기였다.

         

       자신을 소개하는 내용.

       자신의 인생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저의 집은 유복했습니다. 진짜 부자나 권력자에 비빌 정도는 아니었지만, 사립에 저를 보내도 부담이 되지 않을 수준은 되었지요. 그렇기에 저는 유명 대학교의 부속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거기서부터 레일이 깔린 인생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남자는 진성을 빤히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유명 대학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듯이 부속 중학교에 입학. 그리고 거기서 다시 부속 고등학교로 입학. 그리고 좋은 교육을 받으며, 좋은 인맥을 쌓으며, 저는 좋은 성적을 얻고 유명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요.”

         

       남자의 인생은 판에 그린 듯한 엘리트의 일생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것을 먹고, 좋은 인맥을 쌓는다.

       자연스럽게 깔린 단계를 밟으며 엘리트로 향하는 길을 순조롭게 걸었고, 그리고 마침내 일반적인 공무원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곳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음양청.

         

       국가공무원 1종 시험을 통과한 캐리어조(キャリア組)조차도 선망하는 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 게다가 단순히 직원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가족이 되었다.

       음양술을 익혔고, 그들의 일원이 되었으며, 그들과 함께하는 존재가 되었다.

         

       어찌 보면 가족보다도 더 끈끈한 존재라고 할 수 있으리라.

         

       피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음양술이라는 것으로 끈끈하게 연결된 존재였으니까.

         

       사용할 때마다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주술, 음양술의 특성 때문인지 음양사들은 서로를 각별하게 여겼고,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며 공동체로서의 결속을 단단하게 했다. 게다가 보신주의가 극에 달해있는 음양사들은 보호와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기까지 했다.

         

       당연하게도 결속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거기에다 선민의식까지 더해지니….

       남자의 음양사가 최고이며 제일이라는 사고방식은 당연히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저는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살아왔습니다. 제 집안도 꽤 좋은 편이었으니, 아예 유전자부터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생각하고 있었지요. 이러한 생각은 음양청에 들어간 후부터 더 강해졌고,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하지만 지금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니…. 저는 지금까지 무언가에 얽매여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어두운 동굴 속에서 빠져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몸을 두르고 있는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 던지고 시원한 바람을 몸으로 느끼고 있는 느낌입니다.”

         

       남자는 물었다.

         

       “저를 구속하고 있던 것이 바로 교만입니까?”

         

       진성은 대답했다.

         

       “그렇다.”

         

       남자는 진성의 대답에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교만을 벗어던진 지금, 제 시야는 넓어졌습니다. 생각 역시 시야와 함께 넓어졌고, 고요하게 머무르는 호수의 위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넓어진 생각 속에서 의문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의문.

       아주 당연한 의문.

         

       “당신은 왜 저와 이야기를 한 겁니까?”

         

       진성은 남자의 질문에 웃었다.

         

       그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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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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