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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8

    <348 – 조직항쟁>

     

    시작과 끝을 처음부터 알고 있는 이야기는 따분하다.

    게임도 마찬가지였다.

     

    -저 바보 스트리머. 다른 일정 때문에 현생 살다가 왔다면서 리액션이 구리잖아. 플탐도 안 까는 거 보니 쉬는 동안 게임만 줄창 하다가 왔네.

     

    한 번 했던 게임을 처음 해보는 척 시치미 떼고 연기해도 어떻게든 티가 난다.

    <운빨로 아카데미 졸업하기>의 조기졸업 엔딩을 보았던 어떤 스트리머가 그렇듯이 뭐든지 예상되는 나날의 지루함은 누구도 속일 수 없다.

    고인물은 그런 지루함과 싸워가며 같은 게임을 수천 수만 번 반복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반대로 예상치 못한 이벤트는 즐거움을 일으킨다.

    0.1%의 억까.

    흔치 않은 확률의 의외성.

    자쿠의 돌발행동은 그런 0.1%를 내게 보여줬다.

     

    “계약서 가져와. 이번만 특별히 적색마탑의 견습마법사인 이 로지니가 불태워줄 테니까.”

    “앗, 저놈들 튄다!”

    “샌드쿠커.”

    “이미 문의 잠금장치에 변형을 걸었어. 바닥이나 벽이 이어진 곳은 대지술사의 영역이라고.”

     

    퇴로가 끊긴 채 계약서가 불탈 위기에 처한 하급반 여학생들이 사납게 외쳤다.

     

    “우리가 니들한테 뭘 잘못 했는데 난리야!”

    “쥬엘은 내 펫이야. 부족한 이론점수를 내가 채워주는 대가로 말 잘 듣는 애완동물이 되기로 했을 뿐이라고. 우린 공정한 계약을 맺었어!”

    “멍멍.”

    “그렇다고 개처럼 짖어대는 녀석이 행복해보이지는 않는데?”

    “닥쳐! 쥬엘, 명령이야. 저 녀석들을 무찔러!”

     

    곱상하게 생긴 남학생이 검을 들고 달려들기 무섭게 전신갑옷을 입은 모브가 마주 돌격했다.

    갑옷의 방어력을 믿고 과감히 공세를 취하는 모브를 쥬엘의 검이 연달아 받아쳤지만 그때마다 쥬엘의 몸이 크게 들썩거렸다.

    단련된 신체의 차이가 검에 실린 무게의 차이를 만들고 숙련된 검술이 타점의 완벽한 흘리기를 방지하며 충격을 누적시켰다.

     

    덜덜.

     

    손에 쌓인 충격을 견디지 못해 받아치기에 실패하는 순간, 모브가 쥬엘의 검을 바닥에 내리꽂고 손목을 비틀어 제압했다.

    충견을 잃고 계약서를 빼앗긴 여학생이 발버둥을 쳤지만 자쿠는 용서 없이 싸대기를 날려 여학생을 제압하고 계약서를 끄집어냈다.

     

    “자, 태워.”

    “묘하게 적극적으로 변했네? 조금은 껄끄러워하는 기색이 남아있었더니.”

    “정보야 직접 만들어서 줘도 된다고 깨달았거든.”

    “정보?”

    “아무것도 아니야.”

    “아하. 일이 끝나고 나서 교수님이나 학생회에 알릴 정보 말이지? 변명도 안하면 우린 그냥 이유 없이 남의 계약에 오지랖 부리고 폭행을 저지른 패거리가 되니까. 나서기 전부터 사후처리까지 고민했다니, 자쿠는 꽤 철두철미하네.”

     

    칭찬을 받을수록 해탈하는 표정도, 될 대로 대라며 막나가는 느낌도 전부 재밌다.

     

    “축하해. 넌 이제 자유의 몸이야.”

     

    계약서가 불타자 이제 싸울 이유가 없어졌다고 생각하고 제압을 풀고 쥬엘을 일으켜 세운 모브. 그의 투구를 쥬엘의 주먹이 가격했다.

     

    “무슨 짓을 한 거야!”

    “계약서가 아직 덜 타서 명령이 작동하는 건가?”

    “웃기지 마. 그깟 계약이 아니어도 난 자발적으로 그녀를 돕고 있었다고!”

    “뭐?? 아니, 대체 왜??”

    “펫은 인간이 아니야. 그러니까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여도 부끄럽지 않아. 메이가 그렇게 믿을수록 내 앞에서 무방비한 모습을 보여줘서 얼마나 기뻤는데!”

    “아니… 이 녀석 욕망에 너무 솔직하잖아?”

    “메이가 날 펫으로 대하고 그걸 받아들이는 동안에는 포인트변제가 이루어지지 않지만 그래도 이런 달콤한 계약이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생각이었어. 펫의 위생관리는 주인의 몫이라며 씻겨줄 때는 평생을 이렇게 살아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모브가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이 녀석, 학생회에 데려가서 불순이성교제로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야?”

    “크흠. 뭐 그럴 수도 있지.”

    “다 큰 성인들끼리 같이 샤워하는 게 뭐 유별난가.”

     

    로지니와 샌드쿠커의 떨떠름한 반응도 재밌다.

    이 두 사람, 다른 회차에서는 언제나 앙숙이었다.

    같은 견습마법사.

    서로 다른 탑을 대표하는 신인.

    마탑의 지원과 자존심을 등에 업고 서로 척을 지면서 사이가 가까워 질만 하면 강제로 멀어지고, 속마음과 다른 소리를 하며 진심으로 상처받기도 하면서 완전히 적이 되었으니까.

    플레이어와 파티를 짜서 던전을 돌아다니며 죽을 만큼 고생을 하면 조금은 친밀해져서 ‘그런대로 실력은 괜찮은 동료’ 정도는 될 수 있지만.

    위험한 일은 나와 조나가 대신해줬는데도 고작 뱃놀이 한 번 다녀왔다고 숨길 생각이 있는지 의심될 정도로 티 나는 커플이 된 모습을 보면 정말 특별한 회차라는 느낌이 팍팍 든다.

     

    “그렇게 좋으면 계약서가 없어도 달라질 건 없지 않나? 오히려 계약서의 핑계를 대지 않고 진심으로 서로 이어질 수 있는 기회라고 보는데.”

     

    쥬엘과 메이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이 거칠게 떨렸다.

     

    “쥬엘… 계약서를 이용해서 그렇고 그런 일을 시켜서 화나지 않았어? 일부러 네가 완수할 수 없는 일을 시켜서 빚을 늘리고 잔뜩 널 부려먹었는데…”

    “알고 있었어. 그래도 이 관계가 좋았으니까 할 수 있는 일도 변제를 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실패한 적도 있었다고.”

    “쥬엘…!”

    “메이.”

     

    졸지에 커플 하나를 서로에게 솔직하게 만들어준 꼴이 된 자쿠와 모브의 표정만 썩어 들어갔다.

    분노에 찬 두 사람의 적극적인 솔로행동에 의해 연달아 격파되는 카멜라 사단 계약자들!

     

    “아니 이놈들은 뭐 죄다 커플밖에 없나!”

    “좋은 일 하러 와서 기분 좋은데? 그래도 우리 덕분에 감정에 솔직해진 커플이 많잖아.”

    “전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흥미롭기는 하네. 카멜라라는 사람, 잠재적 커플들을 계약의 형태로 엮기라도 한 것처럼 다들 서로를 꽤 신경 썼어.”

     

    1회차 NPC들의 눈에는 신들린 조화나 엄청난 연애고수의 작품처럼 보이겠지만 진상을 아는 입장에서는 이미 정답을 아는 미래란 그리 놀랍지 않다.

    오히려 저 커플들이 계약이라는 형태의 지배와 복종에 더욱 적응하기 전에 끊어낸 자쿠가 놀랍다.

     

    “자쿠는 어때요?”

    “기분이 좋군. 커플을 잔뜩 깨부숴서. 오크노디 넌 어떻지?”

    “저도 기분이 좋죠!”

    “의외군. 너처럼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아이는 커플을 좋아하고 지지하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요? 에이 설마.”

     

    <근 력올인한방캐릭이조아해병> 시절에도 중반기 중수시절까지는 그놈의 커플링은 NPC들 사이에 징조만 보여도 다 뜯어 놨다.

    이유야 간단하다.

    지들끼리 커플놀이 하느라 수련시간이 줄어서 약해지고, 시너지효과는 지들끼리만 나서 파티결성에도 강제로 제약이 따르고 효율이 떨어진다.

    그런 주제에 막상 커플들끼리 맞춰서 몸 비틀어서 파티를 짜놓으면 뭐 때문인지 갑자기 싸움이 난다.

    <헤어짐> 디버프라도 달리면 파티 분위기는 아주 초상집이 따로 없지.

    가끔 전남친한테 걸어야 할 버프를 의도적으로 걸지 않고, 탱킹을 하다가 슬쩍 전여친한테 몹을 흘리는 경우도 있다.

    얼마나 민폐야!

     

    “커플 같은 건 존재해서는 안 돼요. 방해만 될 뿐인걸요. 약한 것들은 특히 더!”

    “훗. 그렇지. 약한 것들은 사랑놀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고말고.”

     

    가뭄에 콩 나듯이 사랑의 힘으로 같이 강해지는 커플도 있지만 그건 정말 극소수다.

    그러니 싱도 억까 당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키우고 있지 않은가!

    고인물인 나조차도 이렇게 공을 들이는데 뉴비들이 뭣도 모르고 꽁냥거리는 꼴은 두고 못 보지!

     

    ‘내가 못 하면 남들도 못 해!’

     

     

    * * *

     

     

    커플 다섯 쌍을 갈라놓고 나니 카멜라 사단의 남은 커플들이 반격에 나섰다.

     

    “암흑상회의 창고에 불이 붙었습니다. 다행히 조기에 발견해서 화재진압에는 성공했으며 습격자는 카멜라 사단의 조직원으로 예상됩니다.”

    “흥. 저 아카디아가 있는 이상 이 정도 화재로는 어림도 없어요. 해전에서 화공으로부터 창고나 탄약고를 지키는 노하우를 쓰면 불이야 금방 잡는걸요.”

    “녀석들이 강의를 마치고 귀가하던 저희 조직원들을 습격했습니다! 피해는 전무합니다!”

    “누가 있었는데요?”

    “티토소가 님의 조명대 눈뽕 공격에 대열이 다 무너져서 역으로 두들겨 패고 쫓아냈습니다!”

     

    시도는 많지만 조직원들의 수준 차이에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는 카멜라 사단!

    그렇다고 잔챙이만 모여 있으면 아무리 2학년 1학기까지 줄곧 성장할 기회가 주어져도 챕터보스가 될 정도로 위험도가 높아질 리가 없지.

     

    “큰일이야! 과제를 도둑맞았어!”

    “아닛… 기숙사 방문이 열려 있잖아?”

    “꺄아악! 속옷이 사라졌어!”

    “비키니아머 빌려줄까?”

    “필요 없어!!”

     

    모두의 신경이 힘 싸움에 쏠려있는 와중에 무려 빈집털이를 해버린 카멜라 사단.

    심지어는 헤스티아마저 수련을 마치고 기숙사에 돌아왔다가 정색하며 방문을 두드렸다.

     

    “미니골렘이 털렸어. 오크노디네 식물친구는 어때. 괜찮아?”

    “응애.”

     

    응애 만드라고라가 잔뿌리를 쪽쪽 입으로 빨아먹다가 머리를 갸웃거렸다.

    은근히 피비린내가 나는 것이 침입자는 있었지만 응애에게 호된 꼴을 당하고 쫓겨난 모양이다.

    그런데… 과제가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응애야. 여기 있던 과제 어디 갔어?”

    “응애?”

     

    아무것도 못 봤다고 어리둥절해하는 응애.

    이 녀석, 식물 아니랄까 봐 자기 뿌리가 닿는 범위 내에서만 싸웠구나!

     

    “보다시피 응애는 멀쩡해요. 과제는 싸그리 다 털렸지만요…”

    “약한 애들을 괴롭히는 건 내키지 않아서 수련만 하고 있었지만 불똥이 튀었는데 가만있을 순 없지. 네 과제도 그렇고. 한손 보태게 해줘.”

    “열심히 길들인 펫을 도둑맞는 건 선 넘긴 했죠. 과제를 건드리는 건 더 선 넘고요. 오늘은 자지 말고 같이 숙소를 습격해요!”

     

    헤스티아와 함께 하급반 학생들의 숙소로 올라가는데 복도에 사감선생님이 보였다.

     

    “윽. 경호서비스를 신청했네요. 귀찮게 됐어요.”

    “그런 것도 있어?”

    “포인트를 내면 사감선생님이나 교관들이 숙실을 지켜주기도 해요. 단체실이니까 여럿이 더치페이를 하면 못 부담할 가격은 아니겠죠. 1학년 특별할인도 있을 테니까요.”

    “그럼 어쩌게? 사감선생님도 괜히 사감을 맡은 건 아닐 거 아니야.”

    “정면싸움은 부담스럽긴 하죠. 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포인트를 쓰면 경호를 받는다고?

    포인트를 더 쓰면 그 반대도 가능하다.

     

    “포인트 더 드릴게요. 비켜주세요!”

    “즉시이체 아니면 안 받아.”

     

    사감선생님이 내민 마나보드에 마법시계를 대고 포인트를 결제했다.

    잔액을 보고 잠시 놀란 눈을 하던 사감선생님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정면에서 숙소 문을 열자 습격에 대비해서 밤새 깨어있으면서 창가를 노려보던 카멜라 사단의 남은 패거리들이 화들짝 놀랐다.

     

    “오크노디? 설마 사감선생님을 쓰러뜨렸어…?”

    “응애싸움에 펫이랑 과제까지 손 댄 건 선 넘었죠. 당장 돌려주세요! 안 그러면 마구마구 때릴 거야!”

    “무슨 소리야. 네 방에선 그 악마 들린 미친 식물 때문에 아무것도 훔쳐가지 못했는데?”

     

    이런 괘씸한 뉴비들 같으니.

    이실직고하면 적당히 봐주려고 했더니 아주 매를 버는구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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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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