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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9

       “뭐랄까, 다른 세상이라는 게 실감 나네.”

        

       자기네 이야기가 이쪽 세상에서는 말 그대로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 클레어가 보인 첫 반응이었다.

        

       보여줘야 할까, 그러지 말아야 할까.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두 생각이 부딪히며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내가 내릴 수 있었던 결론은 ‘결국엔 들킬 거다’였다.

        

       이 두 사람을 밖으로 내쫓을 수는 없지 않은가. 저축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이 두 사람과 여기서 얼마나 지내야 할지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호텔이나 모텔에 돈을 주고 이 두 사람을 내보내는 것도 여러모로 무리였고.

        

       무엇보다, 이쪽 세상에 완벽하게 적응하지도 못했는데 무책임하게 두 사람만 그런 곳에 넣어둘 수는 없었다.

        

       “…….”

        

       “앨리스.”

        

       “…….”

        

       “앨리스!”

        

       “으, 응!?”

        

       “너무 아래만 뚫어보지 말아주세요. 당신에 대한 이미지가 망가집니다.”

        

       “아, 아니, 나도 그러고 싶지는 않았거든!? 하지만 애초에 이런 조형이 있으면 어쩔 수 없잖아!? 내 모습인걸!? 대체 이쪽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지 않아!?”

        

       피규어같은 2차 창작물이 자주 나오지는 않아서 나오자마자 질러버린 피규어를 살펴보는 앨리스에게 그런 말을 했더니 앨리스는 화들짝 놀라며 반박했다.

        

       나도 그럴 것 같기는 해. 내 모습을 피규어로 만들었고, 하필이면 그 피규어가 입은 옷이 치마라면 그 아래쪽이 궁금하긴 할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앨리스가 앨리스의 치마 안쪽을 보고 있는 꼴을 보는 건 조금 그래.

        

       내가 알고 있던 아제르나 전기의 앨리스는 고압적인 츤데레 미소녀라고. 남의 치마 속을 살펴볼 캐릭터는 아니란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남의 치마 속은 아니고 자기 치마 속이지만.

        

       “그보다, 너는 이미 이 안을 봤다는 소리 아니야? 오히려 이미지가 깨질 것 같은 건 내 쪽이라고.”

        

       앨리스는 자기 앞에 피규어를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 하필이면 앨리스의 피규어가 내 쪽을 보는 방향으로 내려놓아서, 작은 앨리스가 나를 올려다보며 탓하는 것처럼 보여 기분이 묘했다.

        

       “언니, 내 피규어는 없어?”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꾹 눌렀다.

        

       아니지, 차라리 충격받아서 자기 인생을 부정하는 말을 중얼거리는 것보다는 나을까? 나라면 내가 살아온 삶이 소설 속이나 만화 속 세계의 이야기였다고 하면 엄청나게 충격받을 것 같은데.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얘네들은 내가 시간을 돌렸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이미 자기네가 한 행동을 부정당한 꼴이니, 고작 이 정도로 충격받지 않아도 이해할만하다.

        

       다시 생각해보니까 내가 몹쓸 짓을 했구나.

        

       “그러니까, 우리가 나오는 건 영화나 소설 같은 게 아니라 ‘비디오 게임’ 속의 이야기라는 거지? 놀이라는 말인데, 그 놀이는 어떻게 하는 거야? 역할을 정하나?”

        

       앨리스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앨리스가 이렇게 궁금증이 많은 애였나?

        

       “왜, 왜 그러는데? 내가 나온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이야?”

        

       “아닙니다. 그건 아닌데…….”

        

       아하.

        

       잠깐 생각하던 나는 앨리스가 왜 이렇게 들떠 보이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여기는 완전히 다른 나라다. 아니, 다른 세계다.

        

       이쪽의 정치 체계가 어떤지 아직 두 사람에게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둘째 치고 일단 이 두 사람에게는 이세계는 자기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세상이었다.

        

       팬그리폰 황가 자체가 없으니, 누구 눈치 볼 필요도 없겠지.

        

       해외여행을 가면 이상한 해방감이 드는 것과 비슷한 이유이리라.

        

       물론 여기서 얼마나 지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이 ‘게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려면 최소 스무 시간은 필요합니다. 중간에 그만두었다 이어서 할 수는 있지만, 여러분은 이쪽 세상의 문자도 모르니 지금 당장 시작하기에는…….”

        

       “으음, 그런가?”

        

       “그보다, 여러분은 여기서 얼마나 지내실 생각입니까?”

        

       앨리스의 말투가 ‘그렇게 길면 포기하지’가 아니라 ‘그럼 일단 나중으로 미뤄둘까?’ 하는 말투가 나는 진지하게 물었다.

        

       “응? 지금 당장은 돌아갈 방법이 없으니까 기약 없는 거 아니야?”

        

       “……만약 지금 당장 돌아갈 방법이 있었다면 얼마나 지내다 가실 생각이셨습니까?”

        

       질문을 들은 클레어에게 다시 그렇게 질문으로 돌려주었더니,

        

       “……그래도 바로 돌아가지는 않지 않을까? 기껏 넘어왔잖아. 언니가 어떤 세상에서 살다가 왔는지 궁금하니까 말이야. 그렇지?”

        

       “조금 신세를 지긴 하겠지.”

        

       앨리스가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알겠습니다.”

        

       나는 한숨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것을 꾹 참고 그렇게 말했다.

        

       *

        

       이 둘이 얼마나 길게 있을지 모른다. 자칫 잘못하면 연 단위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은 돈을 아끼는 편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나는 일단 사 온 컵라면을 꺼냈다.

        

       며칠은 먹을 생각이었기에 종류가 겹치지 않도록 다양하게 사 왔는데, 문제는 이 두 사람은 이 컵라면조차 처음 본다는 것이다.

        

       갈 길이 멀다.

        

       차라리 어린 시절로 돌아왔다면 학교라도 갔을 텐데, 이 두 사람한테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가르쳐 줘야 할 걸 생각하니 벌써 머리가 지끈거렸다.

        

       “매, 매워……!”

        

       “…….”

        

       게다가 이쪽으로 온 내가 고른 라면들은 죄다 하나같이 매운 것뿐이었다. 맵거나, 더 맵거나, 굉장히 맵거나. 사실 여기서 ‘맵거나’에 해당하는 라면들은 한국인 기준으로는 표준에 해당하는 맛이었지만, 아무래도 평소에 매운 걸 거의 먹지 않는 처지에서는 굉장히 매운 모양이다.

        

       하긴 예전에 한국 컵라면을 먹는 외국인 반응 영상에선 육●장도 맵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앨리스, 여기 물 있습니다.”

        

       맵다고 외치며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클레어와는 다르게 이 악물고 버티는 중인 앨리스에게 물잔을 건네자, 앨리스는 곧장 그 잔에 있던 물을 전부 마셨다.

        

       참고로, 솔직히 나도 이런 맛의 라면만 고른 것을 격하게 후회하는 중이었다.

        

       ……정작 매운 음식을 오랫동안 먹지 않은 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

        

       침대도 없는 원룸이다.

        

       사실 살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직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해서 그냥 적당한 곳에 얻은 방인데 굳이 그런 번거로운 것들을 놓을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래도 이불은 좀 더 사둘 걸 그랬나.

        

       자기 전에 좀 넓게 뒹굴다가 잠드는 버릇이 있어서 그나마 이불은 까는 것이나 덮는 것이나 큰 것으로 사두었지만, 다른 사람이 함께 와서 잘 것을 생각해두지 않아 여분의 이불이 없었다.

        

       여름용 이불을 꺼내면 될지도 모르지만, 그거 덮으면 추울지도 모르고.

        

       말 그대로 ‘어쩌다가’가 되었지만 어쨌거나 내 자매들이 내 집에 방문한 것이 아닌가. 감기 걸리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덕분에 우리는 이불 하나에 셋이 나란히 눕게 되었다.

        

       서로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는 거리는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이 중 한 사람이라도 뒹굴면 누구 하나는 이불 밖으로 삐져나가게 될 거다.

        

       “…….”

        

       한동안 아무도 말이 없다가,

        

       “……언니, 자?”

        

       클레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직 잠들지 않았습니다.”

        

       “나도.”

        

       내 대답에 앨리스가 작게 말했다.

        

       “…….”

        

       다시 침묵.

        

       “지금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조금 맞지 않는 것 같지만.”

        

       다시 입을 연 사람은 이번에도 클레어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이 상황은 조금 즐거워.”

        

       “…….”

        

       앨리스도, 나도, 그 말에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직 우리가 있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그래, 그런 사실만 접어두고 보자면, 나도 클레어의 말에는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내일 일어나면, 다 같이 옷을 사러 가죠.”

        

       나는 눈을 감은 채 말했다.

        

       “그리고 이불도. 신발이나 속옷도 있어야 하고…… 준비할 것이 많습니다. 한동안은 여기서 지내야 하니까요.”

        

       “한동안 신세 지겠네.”

        

       앨리스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두 사람은 제 손님이니, 제가 책임지고 지낼 수 있도록 해줘야겠죠.”

        

       —그리고, 그래.

        

       만약 돌아가지 못한다면 나는 몹시 낙담할 거다. 앨리스도 클레어도 그렇겠지.

        

       우리가 여신을 몰아낸 건 그 세상에서 다 같이 즐겁게 살고 싶기 때문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솔직히 이쪽 세상에 남게 되더라도, 나는 이 결말이 최악의 결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내가 ‘혼자’가 되지는 않았으니까.

        

       “굳이 아침 일찍 일어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돌아갔을 때를 생각하면 생활은 규칙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나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이만 자도록 하죠. 이 세상에 대한 설명은, 내일 밖을 나가서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응.”

        

       “알았어.”

        

       클레어와 앨리스가 차례대로 대답했다.

        

       나를 포함해 세 사람 모두 딱히 움직일 틈이 없었기에 그저 가만히 있어서 누가 먼저 잠들었는지는 알지 못하겠다.

        

       하지만 적어도 가운데 끼듯 누운 내가 잠든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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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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