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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9

    오늘 아침부터, 서드의 기분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옥상에서의 그 전투라고 부르기도 뭐한 바보 같은 장난 이후 벌어진 일 때문이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싱거운 서드의 승리였다.

    잭은 서드에게 어떤 저항은 커녕, 무슨 행동조차 해 보지도 못 하고 단 한 합만에 기절했다.

    놀랍게도 잭이라는 녀석은 그저 살기조차 느끼지 못 할 정도로 감각이 끔찍하게 둔한 머저리새끼에 불과했을 뿐, 아무런 능력도 수단도 없었던 것이다.

    그 예상치를 크게 밑도는 수준의 상대에게 서드는 극도로 실망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겼으면 그만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카데미에서는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음날, 서드는 교무실에 불려간 것이다.

     

    사유는 당연히, 교내 폭력행위.

     

    웃기게도 그것은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그저 일방적이었기 때문에 쌍방적인 다툼이 아닌, 단순한 ‘폭행’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이유로, 서드는 잭의 부모의 ‘합의금 요구’에 응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고 말았다.

     

    하지만 시비를 먼저 걸어온 것도 그쪽이었고, 서드가 생각하기에 어린아이를 괴롭히는 악행을 한 쪽도 마찬가지로 그쪽이었다.

    그런데 그 때에는 별 이야기도 없다가, 이렇게 되고 나서야 일이 이런식으로 진행된다니.

     

    서드가 생각하기에도 정말로 멍청한 이야기였지만, 이게 결국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이 아니겠는가.

    그저 생각이 짧았다.

     

    그렇게 책상에 앉아 턱을 괴고 있으니, 서드의 눈빛을 가까스로 받아넘기며 명령아닌 명령을 건네던 선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 내일까지 아카데미에 보호자 모셔와라.’

    ‘내일까지, 내 보호자를?’

    ‘그, 그래. 양가에서 합의를 진행해야 하니까…….’

     

    그렇게 말하는 선생의 곁에는 목과 팔에 깁스를 두른 채 이유모를 의기양양한 미소를 띈 잭이 앉아 있었다.

     

    전투에서 승리하고 전쟁에서 진다는 표현이 있는데, 정확히 그런 꼴이 아닌가.

     

    서드는 잭의 그 불쾌한 표정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과거, 서드는 처음부터 피해자나 목격자를 살려두는 짓을 하지 않았다.

    죽은 자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격언도 있지 않은가.

     

    물론 사령술과 기억읽기가 발달한 지금은 그 격언도 꽤 의미를 잃기는 했다.

    죽은 자도 현대에 와서는, 생각보다 말이 많으니까.

     

    안 그래도 그런 쪽의 지식이 서클 재구성의 여파로 많이 유실되어있는 상태.

     

    그렇다보니 죽이는 법은 알아도 치우는 법은 모르는 터라, 아무래도 서드로서는 조금 더 신중할 수 밖에 없었다.

    아카데미라는 좁은 사회에서 학생들을 지워버린다는 것은, 잠깐만 생각 해 보아도 너무 위험하다.

     

    하지만 적당히 손속을 두어 목숨을 붙여 둔다면 알아서 감사를 느끼고 조용히 하지 않을까, 그런 얄팍한 기대감을 품은 것이 바로 패배의 원인.

     

    서드는 애초에 자신에게 최선이라는 수는 없었던 것인가, 하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그나저나, 보호자라…….’

     

    서류상으로 보호자라고 한다면 일단은 숲지기인 예르나였으나, 이런 일로 그녀를 부르기엔 굉장히 석연치 않다.

     

    숲지기인 그녀에게 교내 폭력이라는 이슈로 아카데미에 와 달라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껄끄러운 것이었다.

    그녀는 루크 덕분에 자신에게 어느정도 믿음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이기는 했지만, 그 신뢰도가 깊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이번 일로 그 인식이 부정적으로 변하기라도 하면, 자신에게 그것이 어떤 식으로 돌아오게 될 지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냥 숲지기도 아니고, 그 ‘프로이튼’가문의 이면을 파면서도 어떤 해도 입지 않을 정도로 유능한 숲지기였다.

    그런 그녀가 혹, 마음먹고 자신의 과거를 캐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상상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부모가 없으니 보호자를 데려오지 않았다고 말하면 원래 서드를 그다지 우호적으로 보지 않던 선생들은 ‘옳다구나’하고 퇴학절차를 진행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일을 스승님이 알게 된다고 하면, 절대 ‘잘했다’고 말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아카데미를 다니게 된 것에 아주 기뻐하고 있었으니까.

     

    “…….”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

    서드는 그나마 화창한 창 밖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답답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하늘은 참 파랬다.

    오늘 아침에 비가 엄청나게 내렸던 건 마치 환상이라도 된 것 처럼.

     

    ‘역시 죽였어야 했나…….’

     

    지지리도 안 풀리는 날이다.

    —-

     

    그 무렵, 그런 서드를 바라보고 있는 한 소녀, 유미르가 있었다.

     

    유미르는 서드가 겉보기만큼 무서운 아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서드가 저 하늘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약간의 따듯함이 어려 있지 않은가.

    혹자는 그 눈빛을 보고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서드의 표정에는 분명히 불만이 있어 보였고, 그 이유는 같은 반이라면 금방 유추해낼 수 있을 정도로 꽤 명확하다.

     

    당연히 오늘 아침에 있었던 선생님과의 면담 때문이리라.

     

     

    ‘이를 어쩐담…….’

     

    유미르는 서드가 기분이 나쁜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어쩔 줄 몰라했다.

    애초에 자신이 없었으면 그가 싸움을 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러면 교무실에 불려갈 일도 없었을 테니까.

     

    따라서, 유미르는 서드의 저 상태에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유미르에게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로 다가왔다.

     

    만일 길거리에서 강도를 당하는 사람을 구해주었는데, 도움을 준 상대가 무섭다는 이유로 현장에서 도망쳐버리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도와준 사람이 폭행범으로 구속되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강도는 사회로 풀려나고 의인이 감옥에 갇히게 되는, 선과 악이 뒤바뀌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여기서 유미르 자신은 강도를 당할 뻔 한 피해자인 셈이고, 서드는 자신을 구해 준 의인이었다.

    앞으로도 의인이 의인으로서 남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유미르는 괴롭힘 당하는 자신을 위해 나서 준 남자애의 기분을 풀어줄 의무가 있는 것이다.

     

    아무리 그 남자애가 무섭게 생겼더라도 말이다.

     

     

    유미르는 조심히 서드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저, 저기…….”

    “뭐지?”

     

    말을 걸자 대답으로 들려오는 서드의 낮게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에 유미르는 그만, 크게 위축되고 말았다.

    서드는 분명 자신을 도와준 착한 아이인데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몸이 떨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아무것도 아냐!’라고 하면서 도망치기는 싫었다.

     

    자신이 그동안 겪은 슬픔과 공포에 비하면 이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 있잖아. 고, 고마워어……. 여태껏 날 위해 나서준 건, 너 밖에 없었어.”

    “그런가.”

     

    하지만 고마움을 표하는 유미르의 말에 서드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을 뿐, 애초에 고마움을 받으려고 한 행동도 아니었으니 감사를 받는다고 딱히 기분이 나아지거나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서드의 입장에서는 무엇하나 해결된 것이 없지 않은가.

    적어도 싸움에서 뭔가 얻어가는 게 하나라도 있었다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었고.

     

    필요 없는 감사인사 하나가 더해진다고 해 봤자, 서드에게는 겉치레에 불과했다.

    오히려 사색을 방해받은 느낌에 인상이 찌푸려진다.

    그래도 아이한테 고맙다는 말을 들었는데 대놓고 꺼지라고 말 할 수는 없고…….

     

    “그래서 용건은 그게 끝이냐.”

    “요, 용건이라니……?”

     

    용건이라니, 그저 감사를 전하고 싶었을 뿐인 유미르에게 그런 거창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유미르는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당황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런 표정을 바라보던 서드는 이내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아니, 가만.’

     

    서드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눈을 번뜩였다.

     

    자신이 한 행동은 일반적으로는 그냥 폭행을 저지른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으로 도움을 받은 사람이 있다고 하면?

     

    이건,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을 확신할 수는 없는 것이, 서드는 아카데미의 생태에 익숙하지 않았다.

    이번 일만 해도, 고작해야 애들 주먹다툼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넘긴 일이 퇴학의 위기로 돌아오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아카데미에 익숙한 스승님께 연락을 취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합당해 보였다.

    그녀라면 반드시 방법이 있을 테니까.

    뭐어, 정 방법이 없어 퇴학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녀의 실망감을 줄이는 효과는 있을 테고.

     

    이건, 써먹을 수 있겠다.

     

    순서는 조금 이상하기는 해도, 이왕이면 ‘친구’라고 설명하는 편이 좋겠지.

    사실은 친구가 아니지만, 그 정도는 뭐 어떻게든 될 거다.

     

    그녀는 자신이 아카데미에서 많은 친구를 사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까.

     

    “좋아, 넌 이제부터 내 친구다.”

     

    서드의 말에 유미르는 큰 충격을 받은 듯 얼어붙고 말았다.

    싫어서가 아니라, 좋아서.

    유미르는 눈에 띄게 밝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서드, 우린 이제 친구야!”

    “그게 그리 좋나?”

     

    이유를 모르겠군, 나 같은 것과 친구가 되는 게 그렇게까지 밝은 표정을 지을 정도로 좋은 일인가?

    뭐, 아무렴 어떤가.

     

    “좋아, 그럼…….”

     

    말을 이으려던 서드는 문득, 그녀의 이름을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당연한 일이다. 서로 이름을 나눈 적은 없었으니까.

       

    잭이 부르는 걸 한번 듣긴 했지만, 아무래도 ‘유 뭐시기’는 이름이 아닐 것 같고.

    또 예전에 건네받은 초콜렛에 적힌 메모로 이름을 보기는 했는데, 대충 넘겨버린지라 뭔가 가물가물하다.

    ‘유미……. 뭐더라.’

    서드는 뒤늦게 그녀에게 이름을 물었다.

     

    “그런데 너 이름이 뭐냐.”

    “유, 유미르인데에…….”

    “그래, 유미르. 아카데미 끝나고 시간 되나? 함께 어디를 같이 가줘야 겠는데.”

    “가다니, 어디를?”

     

    서드는 잠시 스승님의 위치를 떠올려 보았다.

    루크가 선물한 이 서클보조용 반지에 인챈트된 ‘위치파악’마법.

    그것의 작용은 일방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만 집중하면 스승님의 위치 정도는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

    반지를 준 루크의 의도는 서드가 도움이 필요할 때에 언제든 찾아오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드는 자신이 알아낸 루크의 위치를 이야기했다.

     

    “아마 티그 아카데미일 것 같군.”

    “티, 티그 아카데미? 정말?”

     

    서드의 입에서 나온 목적지를 들은 유미르의 반응은 약간은 지나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도 그럴게, 서드의 입장에서는 단순히 루크를 만나기 위해서 향하는 목적지에 불과했지만, 유미르에게는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오늘, 티그 아카데미는 공교롭게도 축제를 시작한 상황.

     

    그것을 아는 유미르의 입장에서 서드의 그 제안은 ‘같이 축제에 놀러가자’는 식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뭐가 그렇게 좋지?”

    “아, 아무것도 아냐!”

     

    유미르는 굉장히 기뻤다.

     

    ‘용건이라는 건 이걸 말하는 거였구나!’

    ——

     

    그 무렵, 축제가 시작되는 당일.

    루크는 탈의실에서 한숨을 쉬며 한탄했다.

    “끔찍한 날이군.”

     

    오늘, 루크의 운세는 그야말로 최악.

     

    우산도 안 챙겼는데 갑자기 축제가 취소될 수도 있을 정도로 쏟아지는 비, 난간에서 자신의 머리를 향해 떨어지는 화분, 지나가던 차에 차도의 물웅덩이에서 물이 튀어 옷이 된통 젖어버릴 뻔 했으며, 별 생각없이 탄 버스는 교통체증으로 늦어서 하마터면 지각할 뻔 했다.

    등교길에 겪을 불행이란 불행은 다 겪은 상황.

     

    하지만 루크는 이것이 자신을 향한 불행인지, 아니면 그저 우연의 일치인지 알 수는 없었다.

     

    ‘확률조작은 이게 참 짜증나는게다.’

     

    신이 주사위의 눈을 조작한 결과인지, 아니면 그냥 주사위의 눈이 그렇게 나온 건지.

    단지 자신에게 주어진 결과만을 관찰할 수 있는 인간에게 그것은 알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불행이 닥쳐오더라도 루크는 그것을 모조리 정면에서 파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에 별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비는 정령의 힘으로 잠재워 두었고, 화분은 간단히 받아냈으며, 물웅덩이는 실드를 이용해 막았고, 버스는 내려서 뛰어왔다.

    이처럼 불행이라는 건, 결국 압도적인 능력으로도 극복이 가능한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도 피곤한 날이긴 하다.

    설마, 이 불행이 카페의 성사에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

    루크는 우려에 몸을 떨었다.

    점차 강도를 높이기 시작한 불행은 그런 우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했으니까.

    그래도 이 만큼의 불행이 있었다면 적어도 오늘 하루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도박사의 오류를 범하고 있을 때, 루크의 마력시에 비친 이상한 물체가 하나.

    “허. 이것도 카메라인가.”

    탈의실에 카메라, 이건 뻔하다.

    자신에게 마력시가 없었다면 대체 어쩔 뻔 했나.

    루크는 코웃음을 친 후, 그 카메라를 집어들었다.

    적어도 이 불행만큼은 마력식 소형화의 응용에 큰 도움이 되리라.

    ‘그래도 오늘 하루 하나정도는 얻어가는 게 있구나.’

    그 때, 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케일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크야, 아직도 준비 안 끝났어? 다 갈아입었으면 꾸물거리지 말고 얼른 와줘!”

    “그래, 지금 나가지!”

    그렇게 대답한 루크는 다시 자신의 손에 놓인 마도기기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범인을 잡기 위해서는 이걸 자신이 가지면 안되겠지?

    그것은 약간 아쉬울 따름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건 뭐, 거의 유미르에겐 데이트신청?(아님)

    ps. 몰래카메라는 학교 관계자가 설치한 게 아니라, 외부인이 축제를 틈타서 설치해 둔 거라고 합니다.
    물론 내부데이터는 루크에 의해 완전히 지워졌고, 이후 범죄자는 바로 잡혀갔습니다.
    아무런 피해자도 없었으니, 답답해할 필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루크도, 몰카의 구조를 기억했으니까 언젠가 또 써먹겠죠.

    아무튼 해피엔딩인것입니다.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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