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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9

        

         

       그렇게 대화는 끝이 났다.

         

       진성은 대화가 마무리되자 새타니를 부려 그를 꿈속에서 해방해주었고, 꿈에서 해방된 남자는 그립다는 듯 지하실의 풍경을 천천히 살펴보더니 고개를 돌려 구석진 곳에 웅크리고 있는 새타니를 바라보았다.

         

       “저 귀신의 이름은 뭡니까?”

         

       그는 구석의 어둠이 마음에 드는지 벽을 바라본 채 웅크리고 있는 새타니를 바라보며 그렇게 물었고, 진성은 인형처럼 무기질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의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비밀이라네.”

         

       “저런. 아쉽군요.”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것을 토대로 정보를 알 수 있다는 것.

       새타니의 이름을 말하면 남자는 당연히 그것을 조사할 것이고, 새타니의 능력과 그 약점을 조사할 것이다.

         

       진성은 그런 일을 별로 원하지 않았다.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약점을 드러내는 꼴이었으니까.

         

       남자는 진성의 거부에 바로 이름을 아는 것을 포기해버렸다.

         

       그 질문은 그냥 찔러보기에 지나지 않았는지 새타니에 관한 관심을 그대로 지워버렸고, 진성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곤 진성의 몸을 이루고 있는 벌레를 느끼기 위함인지 어두컴컴해서 잘 보이지 않음에도 눈에 힘을 줘서 진성을 잘 살펴보았다.

         

       하지만 남자가 그리 쳐다본다고 무언가 티가 날 리가 없었다.

         

       진성이 지금 이루고 있는 몸은 벌레로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일반적인 인간의 육체로 의태 하기 위해서 호흡을 하는 것처럼 주기적으로 숨을 쉬듯 움직이게 했으며, 심장이 있는 위치에 심장 형태로 덩어리를 뭉쳐서 박동하도록 만들기까지 했다.

         

       그냥 맨눈으로 바라봐서는 쉽게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참 감쪽같군요.”

         

       남자는 얼마 전 머리를 폭발시켜서 자신을 습격한 것으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감쪽같은 진성의 몸을 보면서 감탄하고는, 찌뿌둥한 몸을 풀기 위해 기지개를 켰다. 그리곤 진성의 안내를 받아 지하실의 밖으로 향했다.

         

       남자와 진성은 저택의 밖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으며, 단지 걷기만 했다. 남자는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진성은 밖을 안내해주기 위해서.

         

       그리고 저택에서 벗어나고 나서야 진성은 입을 열었다.

         

       “이제 어찌할 생각인가?”

         

       “돌아가야겠죠.”

         

       남자는 당연한 질문에 당연한 대답을 했다.

       그리고는 진성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근데 말입니다. 당신, 과격하다는 이야기 많이 듣지 않습니까?”

         

       “흐음. 종종 듣고는 했다네.”

         

       “종종이 아닐 것 같은데.”

         

       남자는 홀가분해 보였다.

       재갈이 풀린 짐승처럼, 혹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짐꾼처럼 말이다.

         

       “갑자기 습격당한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긴 한데, 어쨌든 고맙습니다.”

         

       “그러한가.”

         

       “방법이 좀 많이 과격하긴 했지만…. 어쨌든 저의 눈을 뜨게 해줬으니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지요.”

         

       남자는 습격을 당했음에도 진성에게 나름의 호감을 품은 듯 보였다.

         

       이러한 호감은 바로 진성이 남자에게 보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시작은 갑작스러운 공격과 납치였지만, 그 후의 진성의 행동은 남자에게 아주 우호적이었다. 귀신을 부리고, 사람의 꿈을 조종하고, 꿈속에 정신을 투영할 수 있었음에도 아무런 개수작도 부리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남자가 생각하기에 진성은 귀신을 부려서 정신을 어지럽혀서 빙의시킨다거나, 귀신에게 홀리게 만들어서 종처럼 부린다거나, 꿈을 조종해서 악몽과 트라우마 속에서 헤엄치게 만들거나, 정신력을 갉아먹은 후 정신을 장악하거나 암시를 새겨넣는다거나 하는 짓을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진성이 보인 실력을 본다면, 작정하고 하려고 한다면 남자로서 막기 힘들었을 것임은 분명했고.

         

       하지만 진성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의 정신을 갉아먹을 그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고, 그의 육체에도 그 어떠한 수작도 부리지 않았다. 물론 그의 몸에 걸린 주술을 무력화시키기는 했지만, 그것은 위해라기보다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았다.

         

       진성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남자에게 그 어떠한 위해도 가하지 않았고, 대신에 오직 대화만을 했다.

         

       길고도 긴 시간 동안, 끊임없는 대화를 말이다.

       그것은 고승이 말하는 것처럼 현기가 담겨 있었고, 길을 잃은 사람에게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처럼 아주 친절했다. 위에서 바라보는 태도로 강압적으로 강요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계도와 계몽을 해야겠다며 위에 선 자의 입장에서 내려다보며 지도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이야기를, 자신의 의견을 말할 뿐이었다.

         

       물론 그 내용이 좀 과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거기에 강요도, 악의도 없었다.

       세뇌하기 위한 수작도 보이지 않았고, 오직 남자가 집단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독립적으로 있을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원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한 진성의 의도를 느꼈기에 남자는 귀를 닫지 않고 점차 진성의 말에 귀를 기울였던 것이기도 했고.

         

       그리고 진성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이것저것 생각을 거듭함에 따라 그의 사고는 한없이 넓어져 있었다. 편협했던 과거의 사고방식보다도 훨씬 넓은, 훨씬 거대한 가능성을 품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이는 당연하였다.

         

       한쪽만 바라보는 이가 어찌 세상 모든 곳을 눈에 담을 수 있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에 올라가서 바라본다고 한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세상의 한 뼘도 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드넓은 것이 세상인데, 거기서 굳이 외눈박이처럼, 한쪽만을 바라보는 불구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한다면 어찌 자유로이 사고할 수 있을까?

         

       진성은 남자의 뒤틀린 고개를 똑바르게 만들었고, 감고 있던 한쪽 눈을 뜨게 만들었으며, 반쯤 잠들어있는 뇌를 일깨워졌을 뿐이다.

         

       이제, 거기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담고 무엇을 생각할지는 온전히 남자의 몫이 되리라.

         

       “돌아가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군요. 하하.”

         

       남자는 새로 태어난 기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뒤에는 어쩌면 그것이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처박혀 있다가 밖으로 나와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고.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 저에게 원하는 것, 없습니까?”

         

       “없다네.”

         

       “이런 짓까지 벌였으면서 원하는 게 없다고요?”

         

       “허허. 주술의 길을 걷는 이가 편협함 대신 자유로움을 끌어안았는데 무얼 더 원할 것이 있단 말인가? 다시 한번 말하겠네. 나는 자네에겐 원하는 게 없네.”

         

       “흐음.”

         

       진성은 원하는 게 없냐는 남자의 말에 고개를 살짝 저으며 그렇게 말했다.

         

       원하는 게 없다고.

       네가 나에게 뭘 해줄 필요가 없다고.

         

       “뭐, 원하는 게 있다고 해도 많은 걸 들어줄 수도 없긴 했습니다. 제가 뭐 음양청에서 대단한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남자는 거기까지 말하다가 피식 웃었다.

         

       “하하, 그러고 보니 직위에 관해서도 이야기했지요. 재미있군요. 얼마 전까지라면 음양청의 힘이라면 뭐든지 해줄 수 있다고 말했을 것 같은데, 벌써 음양청의 힘과 저의 힘을 분리해서 생각하기 시작하다니. 이거 참, 새삼 제가 변화했다는 걸 느끼는군요.”

         

       얼마 전이었다면 그는 진성에게 큰소리를 뻥뻥 쳐댔으리라.

       음양청은 전부 가족이고, 자기 말 한마디면 음양청의 사람들이 나서서 그에게 특혜를 베풀어 줄 수 있다고. 그리고 음양청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으며, 원하는 것을 다 이루어줄 수 있다고. 대신에 분수에 맞지 않는 요구를 한다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그렇게 말을 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음양청과 남자가 분리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변화였다.

       긍정적인 변화 말이다.

         

       “이거 돌아가면 말을 조심해야겠습니다. 하하하. 전부 다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혼자 겉돌고 있으면 저만 손해를 볼 테니까요.”

         

       일본은 툭 튀어나온 못을 절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일본의 교육체계는 원석이 있다면 그것을 갈고 닦아서 보석으로 만드는 대신, 다른 돌처럼 깎아서 같은 형태로 만드는 형태였다. 이와 같은 방법은 특출난 천재가 나타나기에는 어려웠지만, 평균 혹은 평균 이상의 인재들을 끊임없이 효율적으로 생산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거기에다가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윗사람에 대한 절대복종이 더해져 있으니 다루기도 편했고.

         

       엘리트라고 해서 이런 풍조는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하면 심했지, 부족하진 않았다.

         

       엘리트들은 ‘엘리트’라는 환상과 편견 속에 자신을 가두고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이는 그것을 체통이라고 했고, 어떤 이는 그것을 품위라고 말했다.

       그것은 엘리트를 돋보이게 만드는 화려한 갑옷이자, 움직임에 제약을 주는 구속구이기도 했다.

         

       이런 세상에서 갑자기 괴짜가 툭 튀어나온다?

       당연히 망치를 얻어맞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 괴짜가 정말 압도적인, 엄청나게 압도적인 천재였다면 모르되….

       대부분은 규격과 질서, 전통을 무기 삼아 휘두르는 망치를 견디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남자는 압도적인 천재도 아니었고, 굳이 괴짜 노릇을 하며 사람들에게 얻어맞고 욕을 먹고 싶지도 않았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그렇지. 선배에게 당신을 ‘인정할 만한’ 사람이라고 말하려고 합니다.”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별건 아니긴 합니다만, 앞으로 무엇을 하던 좀 편해질 겁니다.”

         

         

         

        * * *

         

         

       남자가 떠나간 별장에는 단 두 사람만이 남아있었다.

         

       사이고 리세와 진성.

         

       그 둘만이 말이다.

         

       “저 사람을 왜 그냥 보내신 건가요?”

         

       리세는 진성의 맞은편에서 그리 물었다.

       호기심 때문인지 그녀의 머리에 솟아나 있는 여우 귀가 쫑긋 움직였고, 꼬리 역시 살랑살랑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저 남자를 그냥 보내지 아니하였다.”

         

       진성은 리세의 질문에 얼굴을 움직여 웃음을 지었다.

         

       “마음속에 불과 같은 깨달음을 안겨주지 않았느냐?”

         

       불.

       세상을 밝히고, 어둠을 밝히고, 모든 것을 더 또렷하게 만드는 빛을 내는 불.

         

       그리고 불은.

       타오르고, 태우며, 번진다.

         

       그렇게 점점 거세게 타오르고, 몸집을 불리게 되리라.

         

       그것이 바로 불의 성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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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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