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49

        

         나는 전화 같은 걸 자주, 오래 붙들고 있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좀 있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급하게 답을 들어야 하는 문제가 있거나, 연락이 닿아야 뭔가 액션이 가능한 상황이 아니라면 보통은 간단한 메시지… 그러니까 흔히 쓰는 무슨무슨 톡 같은 메신저 앱으로 용건을 슬쩍 남겨놓는 걸 훨씬 선호하지.

         

         엥? 왜 굳이 그런 식으로 행동하냐고?

         

         그야… 그쪽이 스트레스를 덜 받으니까…?

         

         아니, 솔직히 내향적인 성격이 아니더라도 그게 더 편하잖아. 경솔한 말실수 같은 걸 할 가능성도 좀 줄일 수 있고, 상대도 여유가 될 때 충분히 생각한 다음 대답을 줄 수 있고.

         

         서로 얼굴 붉히거나 오해가 생겨서 어색할 확률을 획기적으로 낮춘다는 게, 어딘가의 누군가에게는 생각보다 엄청난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답니다? 예.

         

         세상에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걸 마냥 기피하는 것 자체가 너무 유약하고 애처럼 물러 터진 사고 방식이니만큼, 호구 잡히지 않고 사회 생활은 물론 긴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선 심지를 곧게 세울 필요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있는 건 잘 알지만!

         

         지금 이것과는 경우가 약간 다르지 않을까?

         

         아무리 메가 코프끼리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하고 상호 협력하는 분야가 많다지만 그 이상으로 견제와 기 싸움도 심한 법이거늘, 피해 당사자인 엘리시움도 아니고 파라다이스 인간한테 구석에서 조인트 까이듯 압박을 당해야 하냐고요…!

         

         

         

         “아무래도… 또 재밌는 일을 벌이셨더군요. 흥미로운 소식이 있다면 저에게 미리 언질을 남겨 주기로 그때 분명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자주 인사를 못 드리는 입장이라고 이렇게 안 챙겨 주시면 굉장히 서운합니다만.”

         

         “…그런 주장을 펼칠 거라면 그 놈의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라도 어떻게 감추고 하는 게 어때?”

         

         아, 세상에는 왜 화상 통화 같은 끔찍한 문화가 존재하는 걸까.

         

         비대면 상태가 주는 막대한 안정감을 인류는 워째서 구태여 포기하였는가. 그냥 어조와 단어 선택만 유심히 듣고 알아서 각자 잘 유추하면 안 돼? 어으… 목소리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지끈한데 저 능구렁이 같은 표정이 더 화를 돋우네.

         

         ‘엥? 화상 통화면 비대면이 맞잖아!’라고 냉정한 지적질을 일삼을 사람은 부디, 이 점을 좀 먼저 기억해달라.

         

         나는 얘랑 가상 모니터 너머로 쳐다보는 것만 해도, 이미 대면 상태와 다를 바가 없는 피곤함과 두통에 찌들고 있다는 것을.

         

         차라리 어떤 인간인지 알고 있는 파라다이스 회장이랑 독대를 하면 했지, 임마는 원래 게임에서 등장이 없던 인물이라 한마디 섞을 때마다 숫제 시한 폭탄 전선을 건드리는 느낌이 들어서 신경을 박박 긁히는 게 아주 컸다.

         

         “에라이, 씨.”

         

         제로가 조용히 놓고 간 음료 빨대로부터 억척스럽게 낚아채 탄산을 한 모금 쪼르륵 빨아 마시고선 탁자 쪽에 올려놓은 발을 괜스레 과장된 태도로 까딱거렸다.

         

         꼭 억지로 끌려온 치료 센터에서 개인적으로 영 마음에 안 드는 상담사 선생님을 보는 것처럼, 소파에 반쯤 드러누운 자세로 내가 전화하는 이는 황금색 제복과 단정한 금발이 인상적인 독일계 미남 형씨.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파라다이스 코퍼레이션의 전략기획부서 실장이자 사갈(蛇蝎; 뱀과 전갈) 같은 남자, 미스터 아론 드레이퓨스가 되시겠다.

         

         “쯧, 거 소외된 것처럼 느꼈다면 미안한데! 워낙 모든 게 즉흥적으로 일어났던 사건이라 내가 뭐 부모님 허락 맡듯이 선보고 후조치를 할 수가 없었다니까? 대신 지금 이렇게 일부러 시간을 냈잖아. 어??”

         

         “그렇습니까? 충동적인 행동이었다기엔 한 줄기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던가, 일관적인 거대한 의지가 좀 느껴지는지라 주관적인 견해는 좀 다른데 말이죠. 어떻게, 잠깐 미스 아나스타샤에게 제 사견을 읊어드려도 될까요?”

         

         “하지 말라고 해도 절대 안 참을 거면서 하여간 말은!”

         

         ……아니, 이 망할 놈이? 세상 즐거워하는 것 좀 보소.

         

         간드러지는 말투에 빨대를 이빨로 잘근잘근 씹으며 나름 준비한 핑계를 주워섬겼거늘, 그런 투덜거리는 반응마저 기껍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는 변태 같은 작태에 피부에 소름이 쫙 돋았다.

         

         구경을 못한 게 너어어어무 아쉽다는 어조로 칭얼거리길래, 영상으로나마 즐기게 제로의 메모리로부터 시청각 자료라도 추출해서 넘겨줄까… 싶었으나.

         

         먹음직스러운 건수를 잡자마자 오싹하게 말하는 꼴을 보니 서로가 서로의 켕기는 부분을 쥐고 공존하는 관계라 한들 물증으로 쓰일 수도 있을 약점을 건네주는 행위는 조금. 다시 고민해봐야겠다.

         

         아론과 맺었던 전략적 동반자 계약.

         그건 내가 무슨 비상시 활용 가능한 일선 전투원이나 그의 직속 거리의 해결사 역할로 시작했던 게 아닌, 어디까지나 소프트웨어 전문가로서의 잠재력을 상당히 고평가 받은 김에 궁지에서 벗어나고자 이놈과 한 배를 타기로 합의했던 거라 형태가 약간 엉성했지만.

         

         하지만 모든 걸 해결해주는 만능약인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히 이익과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그 태가 잡혀갔달까.

         

         이렇게 주고받는 연락은 아주 비정기적이고 불규칙적, 누가 걸지 따로 합의한 적은 없지만 보통 용건이 있는 아론 쪽에서 비밀 회선을 통해 데이터를 보내오는 걸로 스타트를 끊는다.

         

         중요한 자료일수록 종이 문서를 고집하거나, 이동식 메모리나 데이터 볼트 등을 쓴다는 22세기 상식을 쿨하게 무시하는 건 저만한 인간이 보안 의식 부족일리도 없고 내 실력에 대한 믿음이려나… 어쨌든.

         

         의례 행사처럼 되어버린 이런 잡담 주고받는 과정은 차치하고 주된 업무는 역시 수상쩍게 암호화된 파라다이스 내부 자료들을 해석하거나 데이터 진위 여부를 판별해주기.

         

         그렇게 이쪽이 작업하고 검증해준 기밀 자료들을 바탕으로 여러 부서들을 통폐합하고 인사권 관련으로 옥신각신한 끝에, 아론은 꽤 승승장구해서 정말 2인자 자리를 완전히 굳힌 모양새다.

         

         오죽하면 언젠가 고발성 뉴스 채널에서도 한 번 ‘의문의 불명예 퇴직자 발생으로 수혜를 본 건 파라다이스 A임원!?’ 같은 헤드라인이 나왔다가 얼마 뒤에 수면 아래로 사라졌을까.

         

         …그 일 하느라 얼마나 더러운 꼴을 많이 봤는지 나날이 내 인간성이 메말라가고 성격이 시니컬해질뻔한 이야기는 뭐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자.

         

         오죽하면 아직도 그것과 관련된 파일 중에서 인간적인 치부와 엮인 것들은 ‘제로 열람 금지’ 폴더에 보관하고 있대도?

         

         – …하지 말라 명 받은 일에 대해 탐구욕을 비롯한 묘한 충동이 일어나는 건 저도 똑같은 만큼, 가혹한 처사를 철회하는 걸로 아샤님의 개인 자료에 대한 접근 권한을 주시면 학습에 용이할 것 같습니다만. –

         

         “어허.”

         

         아무튼지간에 내가 제공하는 맞춤형 서비스는 대충 그런 종류. 나름 한정된 분야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자부한다. 음.

         

         하지만 파트너쉽이란 일종의 쌍무적 계약(당사자 양쪽이 서로 의무를 지는 것) 관계.

         

         그저 빚을 져서 좋을 게 없는 음흉한 상대란 인식상 이쪽에서 따로 연락해서 무언가를 요구하는 게 거의 없는 걸 뭐라고 해석한 건지, 예전 에나마 건도 그렇고 자기가 멋대로 능동적으로 도우려 드는 게 존나 무섭다. 진짜로.

         

         진짜 혹시 모른다니까? 필요한 일이라 생각해서 저질렀다는 핑계 하에 나조차 모르는 장소에서 무슨 일이 막 일어나고 있을까 봐.

         

         “자, 시간 순으로 한 번 되짚어볼까요? 아나스타샤 양이 무려 대범하게 저희 파라다이스 산하 외부 브로커의 가족 프로필로 시민권을 결제해가며 하베스트 플래닛에서 데뷔하신 게 최초. 저와 접촉하신 후… 바로 여타 메가 코프들이 있는 네오 헤이븐으로 가셨죠.”

         

         “참나….”

         

         난 미친 인간한테 잘못 물려서 끌려 다닌 죄밖에 없거늘, 마치 의도적으로 내가 만남을 유도했다는 것처럼 몰아가는 말투가 심히 거슬렸지만… 일단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들어보고자 펼친 손가락을 차례차례 접는 아론을 구경했더니만.

         

         “도착하신 직후에는 에나마에 깊숙이, 그 다음에는 아마 시설 상황을 잘 아는 내부자를 꼬드기셔서 엑사테크 연구동을 한 번. 바지 사장을 내세워 차명 회사를 설립하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엘리시움의 구속력을 흔드시기까지.”

         

         “야, 야야야! 중간에 아무 증거도 없는 일부 추측성 사건들을 다 내 행적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섞어 넣고 우기진 말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음모론이 퍼져 나가려는 걸 황급히 제지했다.

         

         이 인간 또 시작이다 또 또! 무지막지한 확대 해석과 재생산 좀 그만하라니까 이건 귓등으로도 안 들어 처먹네.

         

         메가 코프를 주요 타겟으로 삼아 순회 공연을 도는 극악무도한 범죄자 프레임은 안 된다 이놈아.

         

         무수한 어그로의 피뢰침 역할을 해줄 주인공도 아직 못 파악한 상황인데 어딜 나한테 그런 감투를 냅다 씌우려고 해? 남이 실수한 걸 봤어도 살짝 눈 감아줄 줄도 몰라??

         

         “그런 섭섭하신 말씀을. 합동 조사단마저 꾸려졌던 일이라 최소한의 증거가 나오는 편이 정상인데 아무것도 없으니, 외려 소거법으로 여러 지하 단체나 아나스타샤 양 중에서 저는 더 ‘치밀하다’고 믿는 측을 지목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알아본 바, 입고 다니시던 복장 일식이 헤이롱 제 특수 비매품으로 추정되더군요. 어쩌면 제가 모를 뿐, 이미 헤이롱과도 무언가 담판을 지으신 상태일지도 모르죠. 사실상 저 같은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수완과 추진력을 보유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맨땅에서 이런 성장세라니.”

         

         “묵비권…! 묵비권을 행사하겠어!! 진짜 그 누구보다 재밌게 멀리서 구경하고 있었으면서 서운한 척 작정하고 날 떠보셨구만 아주!”

         

         마시던 음료수 잔마저 탁자에 쾅쾅 내려쳐가며 소리를 빽 지르는 나와, 플랜트에서 괜찮은 원두가 생산되었으니 택배로 보내주겠다며 그윽하게 커피 향을 즐기는 평온한 아론.

         

         이게 만약 수를 겨루는 보드 게임의 일종이었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승패가 명확하게 갈린 셈이겠지만.

         

         저 희대의 문제아가 주도적으로 끼어들어 다시 마찰을 만들려는 조짐도 딱히 안 보이고, 그냥 멀찍이 떨어져서 일이 돌아가는 추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한다면 나로선 다행이다.

         

         오늘 억지로 연락했던 용무 자체가 저 인간이 나중에라도 뒤늦게 알고 괜한 짓을 할라, 내가 먼저 자진납세해서 ‘대충 그런 일이 있었다~’하고 타이르는 게 목적이었으니.

         

         엘리시움이 얼마나 공격적으로 그 폭동을 탄압했는지 모르겠는데, 그날 집에 겨우 돌아와서 보니 다크 웹 한 귀퉁이가 통째로 에러가 난 상태더라니까? 보나마나 아론 귀에도 자연히 들어갈 수준의 이슈라 오랜만에 전화 걸기를 잘 했지.

         

         “흐흠, 뭐 예나 지금이나 외모처럼 고혹적인 비밀주의로 가득하신 점은 여전하시군요. 좋습니다. 저도 그 일부로서 존재하되, 큰 그림의 윤곽을 그려보는 게 요즘의 낙이니까요. 다만… 운석 얘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꼬인 비유가 아니라 진심에 가까우시던데….”

         

         “…어라?”

         

         “네오 헤이븐에서 저희 쪽 투자금을 당기라는 것 같은 원론적인 얘기는 아니고, 고의적으로 유동성 흐름을 방해하라는 지시라 쳐도 저 홀로 수도에 디플레이션을 일으키기는 어렵습니다만.”

         

         뭐야, 대기업 커트라인 말석이라 쳐도 엄연히 자금력과 민간 영향력 최고봉 메가 코프인데. 그 파라다이스도 아직 전혀 아는 바가 없나? 확실히, 내가 조금 일찍 터트린 감이 있긴 하겠다.

         

         농담인가 싶어서 몸을 일으키고, 끼고 있던 쿠션에 팔꿈치를 대고선 상반신을 앞쪽으로 휙 기울여봤다.

         

         입가와 눈가에 늘 감돌던 웃음기마저 사라진 채, 답안지 제출 시간이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빈 칸을 남겨둔 시험지를 보는 것 마냥 고심하는 아론의 표정은 진지함 그 자체.

         

         그러고 보니 단순 방송 및 전파 위성이 아니라 군사 위성이나 천체 관측용 우주 망원경 종류는 있을 만한 업종이 계열사에 전무하긴 하다. 후원받는 단체 중에서도 일찍 발견한 곳이 없다면 어쩔 수 없겠지.

         

         혹은… 재해를 극적으로 막아냈으며, 최선을 다해 도시를 지켜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저 잘난 군수 기업 두 곳에서 정보 통제를 빡세게 했을 수도 있고!

         

         그렇게 생각하면 여기서 파라다이스 회장의 심복이자, 5대 메가 코프 중 하나의 행동 지침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아론에게 정보를 얼마만큼 넘겨주냐는… 굉장한 변화를 가져올만한 분기점이 아닐까?

         

         내가 여지껏 실수한 거나 최소한으로 간섭한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으음….”

         

         건너편에서 그만 정답을 공개해달라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아론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고민하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약간 천천히 음료수를 홀짝이며 생각을 차분히 정리했다.

         

         과한 정보를 주거나 단언하는 건 존나게 위험하다. 이건 전체적인 균형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이벤트의 근간이 산산이 부서질 수도 있는 힘을 담고 있는 주제이니.

         

         그렇지만 파라다이스에 출혈을 강요하게 되는 업체들은 제외했더라도, 아예 대대적으로 금융 상품까지 홍보한 내가 이제 와서 갑자기 아무것도 모른다 시치미를 떼는 것도 영 앞뒤가 안 맞는 이상한 행동이다.

         

         당장 내 코가 석자인 마당에 원작 존중이 능사라는 바보 같이 천진한 논리를 펼칠 마음도 없을뿐더러, 그럴 성격이었으면 얌전히 헬레나 옆에 붙어있다가 슬쩍 도매금으로 같이 메인 시나리오에 넘어갔지 독자적인 노선을 걸을 준비를 하진 않았으리라.

         

         …어디, 그럼 은근히 눈치만 주되 미리 흥미를 가지게 만드는 선에서 살짝 자중하는 걸로 해볼까.

         

         어차피 파라다이스 코퍼레이션에서 나중에라도 취할 액션만 넌지시 언급하는 수준이면 점수만 따면서 큰 오차는 발생시키지 않을 것도 같고.

         

         “회사 프로젝트에 사람가지고 되도 않는 사회 실험 같은 걸 돌릴 여유가 있으면 파라다이스 영향권 내에 착탄지나 추후에 잘 긁어모아보던가. 혹시 알아? 쓸만한 희토류 무더기말고도 과학사에 유례가 없는 물질 같은 게 좀 나올지.”

         

         목소리가 아주 살짝 부자연스럽게 떨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 멀리 우주에서 날아온 물건이니만큼, 신기한 현상 한두 개쯤 일으킬 수 있다 쳐도 사이버펑크 세상 수준으로 그리 괴상한 일은 아니지 않겠나.

         

         그래, 가령 특필할 것 하나 없는 달동네 무명 용병 나부랭이를 특별한 운명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도 모자라, 많은 신기술의 근간이 되는 특이점.

         

         게다가 네오 헤이븐이 무수한 평행 차원 안에서 정말 실존했던 만큼 나를 불러들이는데 한몫 했을지도 모르는 미지의 물건, 그리고 차원 균열 간섭기에 들어가야 할 첫번째 재료이자.

         한국 네오 헤이븐 커뮤니티에서 내가 본 것만 해도 수천 개는 가뿐히 넘어가는 ‘히든 특전 보상 퀘스트 및 이벤트 목록’을 양성해낸 주범.

         

         지금처럼 크레딧만 꾸준히 벌어도 어찌저찌 블랙 마켓 커넥션이 확고한 만큼 꾸준히 수급할 수 있는 여타 재료들과는 입수 난이도부터가 다른 한정 물질이신, 우리 빌어먹을 공허 광물에 대해 얘기를 꺼내는데 그만큼 정색하고 조심스러웠던 건 응당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 ☆ ★ ☆ ★

         

         

         

         “아아아아악—!! 이 개, 씨발! 돌팔이 새끼들아!! 우리 엘리시움 의료팀이 이렇게 병신 머저리처럼 헛다리만 짚는 무능한 놈들일 줄은 몰랐다!! 치료할 방법을 도저히 모르겠으면 그냥 복지 내규에 따라 얌전히 에나마에 출장 요양이라도 보내 달라고! 씨팔놈의 되도 않는 통각계통 인체 실험 좀 그만하고!!”

         

         쾅!!

         

         환자 침대에 올라가 있던 남자가 궤도를 일절 고려하지 않고 전력으로 휘두른 팔이, 의료 도구와 보조기기가 정렬되어 있던 알루미늄 소독 쟁반을 뒤집어 엎으며 중환자실 바닥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간 치열한 폐쇄도시 전선에서 꽤 혁혁한 전공을 쌓아, 중간 관리자나 오퍼레이터 교관으로 영전 얘기가 슬슬 나오던 인센디어리 4팀 팀장 티모르가. 돌연 ‘반영구적 시각 손상’으로 치료 센터에 입원한지도 어언 나흘째.

         

         시술이 주는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식탁 맞은 편 앉은 이의 솜털까지 볼 수 있던 강화 시각을 보유자가 하루아침에 장님이 되어서 겪는 절망과 심리적 공포감이란… 폭력성을 일으키는 것도 일종의 불가항력이 아닐는지.

         

         그 증거로 곁에서 대기하던 간호사들이 주치의를 비롯한 의사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어질러진 장비를 삭삭 치우는 모습을 어딘가 꽤나 통달해 보였다.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네만…… 거듭 설명하나, 자네는 어마어마하게 희귀하고. 동시에 굉장히 실험적인 성능이 강한 사이버 바이러스에 노출되어서 평소에 쓰던 안구 임플란트를 통해 뇌까지 오염된 상황일세. 과정이 답답하더라도 정확한 데이터를 얻어내야 그걸 바탕으로 확실한 치료가 가능하지 않겠나.”

         

         “씨발, 수집 과정도 치료의 일환인 건 알겠으니 그러니까 그걸 좀 더…… 하. 진짜 맘대로 하쇼. 정보 분류 끝나면 제대로 보험 처리랑 후송만 시켜주던가.”

         

         제대로 돼먹은 전문가에게 진료받고 싶다며 욕설보다 더 심한 모욕을 퍼부으려던 팀장은, 지금 당장 얘기를 나누고 있으며 매번 목소리가 달라지는 의사들이 구체적으로 어느 직급인지.

         

         또 듣고 있는 사람이 누구고 얼마나 되는지 순전히 인기척으로 짐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에 아찔함을 느끼며 뒤늦게 체념하고 선처를 바랬지만.

         

         …그는 알까, 지금 있는 장소와 처한 상황이 예상과는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아무래도 환자분이 정신적으로 많이 몰려서 초조해하시는 것 같군요. 스트레스와 환경 요인을 고려하여 오늘 진료는 좀 일찍 마치도록 하죠. 에나마 쪽과 데이터 취합 과정을 가지고 내일 계속할 터이니, 식사를 비롯한 개인 복지 서비스는 얼마든지 요청하시오 미스터 티모르.”

         

         마치 병실 밖에서 에나마 파견 의료인들이 대기하고 있는 것처럼 실컷 떠든 담당의.

         

         혹은… 의료 면허만 있을 뿐, 엘리시움에서 실질적으로 사이버네틱스 연구팀장으로 재직 중인 남자는 평범한 중환자실에는 절대 없을 관찰 유리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엘리시움 간부 몇몇에게 눈짓으로 인사를 하고는 연구진 일동을 뒤로 물렸다.

         

         엘리시움 본사에서 가상현실에 접속했던 사람이 네오 헤이븐 네트워크까지 출장 갔다가 장애를 안고 돌아왔다는 소식이 워낙 괴담처럼 퍼지기도 했고.

         

         직원 피해가 발생해도 업무 특성상 보통은 사이버웨어나 임플란트 오작동으로 인한 장기 피해 수준에서 그치지, 납치 사건이나 염산 테러가 일어난 것도 아니거늘 일선 요원이 악성 코드로 장애를 얻는다?

         

         책임자들이 관심있게 지켜보는 건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일이었으나… 그렇게 따듯한 격려와 걱정으로 돌아가는 가족 같은 기업 문화가 정착하기엔 시대가 너무 맞지 않았다.

         

         “그래서, 예전 에나마의 카사네 아마기 숙청에서 내부 총질하면서 나왔던 변사체와 상당히 유사하다? 우리도 드디어 연구 표본 확보에 성공했다 봐야 하나?”

         

         “…정확히 어느 쪽도 변사체는 아닙니다. 그때는 신체 전체와 뇌의 감각 연결이 모조리 단절되어 있었다면, 이번에는 뇌가 ‘시신경’으로 분류하는 모든 신호 전달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아니, 인지하고도 왠지 무시하도록 변질되었다…고 하는 게 맞겠군요.”

         

         나름 정중하고 쉽게 풀어서 한 설명에 답을 바란 간부의 얼굴이 갸웃하는 게 눈에 들어오자, 연구실 측 안내인은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이래서 WFM(Workforce management; 인력 관리)계열 관리자들은 실무와 괴리되었다며 투덜거리는 건 속으로 끝마친 채로.

         

         “기계화 시술조차 없이, 몸에 있는 모든 피와 살을 제거하고도 목숨이 붙어있게 만든 것과. 멀쩡한 두 눈을 도려내고도 뇌에 ‘넌 원래부터 맹인이었다.’ 믿게 한 것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둘 사이의 연관성은? 얼마나 강하지? 동일범의 소행은 맞나??”

         

         “카드 마술과 탈출 마술 모두 시야의 허점을 이용한 트릭이라고, 인공 두뇌학과 신경 과학을 동일 학문이라 치부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만… 적어도 양측 모두 뇌와 관련해서는 저희나 엑사테크, 에나마 수준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건 확실합니다. 아마 역대 퇴사자들을 전부 별도 조사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잘 됐군! 우리 쪽 명예 퇴직자만 아니라면, 메가 코프 경력직으로 의심되는 초일류 엔지니어가 시장 어딘가에 매물로 나와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아주 희망적이야. 진작 그런 보고를 올려줬어야지!”

         

         환자는 이미 사실상의 생체 표본 취급이며, 지부 인원 위주로 나섰다 한들 소재 파악조차 실패한 기술자의 잠재 가치를 더 고평가하는 건 어떨까 싶었지만… 직원으로서 더 변호할 거리는커녕 그럴 시간도 없었다.

         

         지금 현장에 있는 다른 계통 간부들이 침묵을 지키는 건, 업무 분장 때문도 있고 장애를 얻은 예비 퇴사자 때문도 있으나… 더 근본적으론 인류가 당면한 위협에 대한 대면 보고를 들으러 온 셈이니까.

         

         “…이만 본론으로 들어가지. 그 idkHacking이란 녀석은 흡사 신체가 탈취당한 것처럼 한순간을 기점으로 접속 지연율이 한없이 0까지 내려갔다가 인위적으로 치솟았다.

         

         이건 인공지능의 전형적인 위장 전략과 유사하나, 여태 제대로 된 여론전에 성공한 개체가 없던 것과는 달리 이번엔 일말의 의심조차 받지 않고 들개 새끼들의 구심점으로 떠올랐다. 그러니 말해보게, 후반부 뇌파 패턴과 정보 처리 양식을 폐쇄 도시의 악마들과 대조한 결과는 나왔나?”

         

         “그게…… 그러니까 말이죠 정말….”

         

         백 단위 넘버링에 달하는 전문 대응 부대 인센디어리 팀을 운용하기까지 하며, 비록 등뒤에서 비난받고 손가락질당할지언정 엘리시움 코퍼레이션이 여전히 책임지고 수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재앙.

         

         날짜도 넉넉히 주었던 만큼 이제는 내부적으로 결론을 내릴 때다.

         

         그런 의미를 담은 임원 여럿의 시선을 받은 담당자였지만, 여전히 명쾌한 답변을 내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아직도 이것도 모른다 저것도 모른다 신뢰도가 떨어지는 확률이다 갑론을박이 한창인 것을 짐작한 부서장들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종말을 연상케 하는 살아있는 인간 뇌가 둥둥 떠있는 정체불명의 전자 수조도 여기저기 한가득, 파이프라인 단위의 쿨링 시스템을 사용하는 슈퍼 컴퓨터도 동 단위로 배치되어 세기말적 첨단화를 자랑하는 엘리시움의 분석력조차도.

         

         자신들의 최고 창조물이자 업보에 대한 문제만 되면 이렇게나 답답하고 불확실성 가득한 결과밖에 내놓질 못한다니.

         

         탈주 인공지능과 관련된 이슈를 보유한 인공지능에 질문해서는 절대 안 되기 때문에 이렇게 답답하게 비효율적인 토론을 나눠야 했지만 뭐 어쩔 수 없는 건 없는 거다.

         

         “어쩌면… 우려했던 일이 생겼을지도 모르겠군. 코드 칼라미티 경보를 현시간부로 임시 보류한다. 상위종 출현 가능성에 비하면 휴먼 에러는 사소하니,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단서가 나올 때까지 모든 일선 부대에게 가상 전선을 압박하라는 명령을 하달하도록. 돌연변이들이 사회유지망을 타고 새어 나오지 못하게 철저히 소독하라.”

         

         결론은 엉뚱하게도 때리던 놈들을 더 거세게 때리되 정체를 알 수 없는 해커 녀석은 계속 사찰한다는 다소 어긋난 방향으로 마무리되었지만… 글쎄.

         

         압도적으로 부족한 판단 근거, 반체제적인 내용이 가득한 연설문.

         

         부족한 게 많지만 당장 가진 변수만을 가지고도 수풀을 찔러서 최악의 상대가 튀어나올 경우와 위험성을 가까스로 배제하는데 성공했단 점에서, 과연 엘리시움의 의사 결정 보조용 시뮬레이션 성능도 썩 나쁘지 않았던 것이리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외전으로 분류했지만, 실질적으로는 18.5화 후일담이 이렇게 끝났습니다. 와아~

    본래는 “하모하모, 기술짜 금마 일은 고만 주깨리고.” 라든가.
    도중에 비서가 사투리를 번역해주느라 끼어들면 “마! 나가 말하는디 와 걸거치게 똑같은 소리를 씨부리는교!” 같은 구수한 엘리시움 임원 캐릭터가 나올 예정이었으나, 온전히 자료 조사에 의존하여 차후 에피소드에 계속 나올 컨셉을 글로 옮기려 하였더니 레오나르와는 차원이 다른 난이도라는 걸 깨닫고 일단 익명의 간부들로 전원 뭉뚱그려 표현하였습니다.

    어떻게든 설정을 살려볼 방법을 강구하도록 하겠습니다.

    휴재 기간 및 다음 에피소드 업데이트 일도 가급적 빠른 시일 내로 얼른 공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재밌게 읽어주시고, 아나스타샤의 이야기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남겨주시는 댓글 추천 모두 너무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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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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